화평케 하는 자
시편 120:1-7
1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3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4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5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6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7나는 화평을 원할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시편 120:1-7
1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3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4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5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6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7나는 화평을 원할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1. 환난 때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1절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 해주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성도가 과거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응답해주신 것을 기억하면, 현재의 환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환난 중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빨리 응답해주시는 경우도 있고 또 얼마 있다가 응답해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2. 거짓말하는 자는 화를 받음
본문 2-3절에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라고 하였습니다. 궤사(詭詐)는 속이는 것입니다. 궤사한 혀는 거짓말하고 속이면서 성도의 생명을 멸하려고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생명을 보호해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거짓말하는 자의 혀, 속이는 자의 혀가 받을 보응에 대한 것입니다. 즉,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화살과 같이 쏘아서 해하고 칼과 같이 찌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같이 그 사람에게 보응하십니다. 화살로 쏘는 것처럼 남에게 손해를 주고 상처를 준 대가로, 장사의 날카로운 살로 그 사람을 찌르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로뎀나무 숯불은 한 번 피우면 보통 숯불보다 상당히 오래 간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고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로 남에게 손해를 주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자는 그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장사의 날카로운 살로 찌르듯이 보응을 받도록 만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숯불과 같이 꺼지지 않는 것에 오랫동안 뜨겁게 고통당하는 날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메섹은 야벳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거주하였는데 싸우기를 잘하고 남에게 손해를 많이 주는백성들이었습니다. 또 게달은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는데, 그들 역시 싸우기를 잘하고 남에게 손해를 주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는 것은 이렇게 야만적이고 싸우기를 좋아하며 남을 물고 찢는 사람들 가운데에 사는 것이 내게 화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이 많은 핍박을 한 모양인데 그 가운데 거하는 것이 많은 핍박과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고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그러한 고난 가운데에서 잘 참고 연단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 거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고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그러한 고난 가운데에서 잘 참고 연단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 거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3. 불화(不和)하는 자와 화평케 하는 자
본문 6-7절에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오래 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화평을 원하지만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은 싸우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화평한 사람은 같이 화평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화평하려고 해도 화평이 되지 않고 환난과 고통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화평할 수 없는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싸우자고 할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과 화평하려고 힘을 쓰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희생해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이 싸우자고 할 때에 싸우지 않기를 힘쓰고 어떻게 하든지 화평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좀 희생을 하더라도 화평하기를 힘 써야 합니다.
예전에 어디를 가려고 버스를 한 번 타고 내리려고 하는데, 버스비를 또 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까 줬다고 하니까 절대 안 받았다고 하면서 내라는 것입니다.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버스 차장과 싸우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냥 또 냈습니다. 싸우지 않아야 하는데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두 번 낸다고 말하고 또 줬습니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것입니다. 두 번 내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냈으니까 고맙다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일이 더러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싸우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 사람 생각에는 안 받았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본 사람은 다 내리고, 또 버스비 내고 타는 것을 누가 얼마나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화평하려면 희생이 들어가야 합니다. 용서해 주고 참고 희생하면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것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면 몇 배나 더 큰 손해가 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화평하지 못할 것을 화평하려고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은 풀어야 합
니다. 잘못한 것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화평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싸우려고만 작정합니다. 잡아서 싸우는 것이 목적이니까, 싸우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요새 국회에서도 싸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여간 잡아서 싸우려고 하는데 서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남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또 손해도 좀 보고 희생도 하면서 화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두려워하는 자는 마귀의 아들입니다. 화목을 깨뜨리고 불화하는 사람은 그 속에 마귀가 있기 때문에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불화하는 가운데 마귀가 역사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화평한 가운데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화평에 거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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