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심령
시편 131:1-3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편 131:1-3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1. 큰 일을 할 생각을 버림
본문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신앙의 세계에서 심령이 고요하며,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교만
치 아니하고’라고 하였는데,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 갈 수 있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믿음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는데(잠 16:18), 교만하면 반드시 패망하고, 또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약 4:6). 자기를 위하는 생활은 다 교만인 줄 알아야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을 “내가 건설했다, 내 도성이다,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다”하며 ‘나’ 소리 세 번하다가 망했습니다(단 4:28-33). 자기를 위하는 것이 교만인데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신앙의 세계에서 심령이 고요하며,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교만
치 아니하고’라고 하였는데,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 갈 수 있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믿음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는데(잠 16:18), 교만하면 반드시 패망하고, 또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약 4:6). 자기를 위하는 생활은 다 교만인 줄 알아야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을 “내가 건설했다, 내 도성이다,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다”하며 ‘나’ 소리 세 번하다가 망했습니다(단 4:28-33). 자기를 위하는 것이 교만인데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하였는데, 눈이 높은 사람은 믿음에 설 수 없습니다. 높은 것을 바라보고 그 높은 것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언제나 시험에 듭니다. 눈이 높은 사람은 만족함이 없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언제나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늘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는 것은 허영심이고 교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딤전 6:9). 그러므로 큰 일 하겠다는 생각, 또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는 것을 다 버려야겠습니다. 자기의 실력과 분수를 모르고 큰 일을 하겠다는 것은 벌써 시험에 든 것이며,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마 6:27).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낸 자는 큰 그릇으로 쓰임을 받고, 작은 그릇으로 낸 자는 작은 그릇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옛말에 뱁새가 황새 걸음 하려다가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뱁새는 뱁새 걸음으로 하면 평안하고 잘 살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고, 황새는 황새 걸음을 하여야 잘 살고, 평안합니다. 그런데 뱁새가 황새 걸음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서 사고가 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기 정도를 모르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큰 것을 하겠다, 높아지겠다고 하면 다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을 맡은 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창찬하십니다. 그러므로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분량에 충성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큰 일 할 힘을 주시면 큰 일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작은 일 하도록 그만한 실력을 주시면 작은 일을 하면 됩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면 도리어 손해만 납니다. 만사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분정해주신 것이 있는데, 그 분정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분정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하면 시험에 듭니다. 또 되지도 않고, 가다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분정에 만족하는 생활을 하여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께서 크게 해주셔서 크게 된 것
은 좋습니다. 크게 할 만한 힘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그 힘대로 하니까 커졌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이것은 순리적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일을 해나가다 보니까 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니까 그 이상의 것을 가지겠다고 하면 잘못됩니다.
이전에 삼각산 굴에 어떤 남자가 큰 은혜를 받으려고 여러 해 동안 와서 기도하였는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으려고 굴에 와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박태선보다 더 큰 것을 받으려고 왔다고 합니다. 그 때에 박태선이 한참 일어날 때입니다. 박태선이 받은 은혜는 소총이라고 하면 자기는 대포를 받으려고 와 있다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는 한번 외치면 삼천 명이 회개했지만 자기는 몇 만 명을 회개시키는 권능을 받으러 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당신은 시험에 들었으니 회개하고 내려가라”고 하였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나 자기 분수에 맞게 하여야 믿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 주시면 큰 은혜 받는 것이고, 작은 은혜 주시면 작은 은혜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큰 것이 필요할 것 같으면 큰 것을 주시고, 큰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안 주십니다. 예를 들어 사도들에게 주셨던 은사는 사도들에게만 주시는 것이지, 나도 그 은사를 받겠다고 아무리 철야기도 하고 금식기도 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다섯 달란트 받을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만, 그릇이 두 달란트인 사람에게는 아무리 더 달라고 해도 두 달란트 이상 안 주십니다. 그릇이 두 달란트인데, 다섯 달란트를 주면 세 달란트는 다 허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분정에 만족해야지, 억지를 써서 더 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지도 않고 자기에게 분수에 맞게 주신 것도 유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또 자기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하며, 일심정력을 기울여 분투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생명 있는 믿음으로 나가면 박토가 옥토가 되고, 황무지가 소생하고, 사막에 샘물이 나고, 사해 바다에 고기가 삽니다. 다 될 수 있습니다.
2. 심령을 고요하고 평온케 함
본문 2절에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으로 고요한 생활, 평안한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늘 심령이 고요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심령이 고요하고 평안해야 됩니다. 심령이 고요하려면, 큰 일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족하며 영으로 사는 생활해야 합니다. 또 자기가 죽어져야 심령이 고요합니다. 자기가 살아 있으면 심령이 고요하지 못합니다. 욕심으로 살면 심령이 고요하지 못해서 평안치 못합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욕심을 버리지 않아서 그렇고, 자기가 죽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이 마음이 상합니까? 죽은 사람은 섭섭할 것도, 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져야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죽어지지 않고 허영심과 욕심으로 무엇을 채우려고 하면 심령의 고요함을 찾지 못합니다. 심령이 고요하고, 평안한 자리가 믿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마16:24). 그러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각오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것에 최선을 다해서 충성해 나가면 마음이 언제나 고요하고 평안한 자리에 있습니다.
또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라고 하였는데,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함으로 섭섭한 마음도 있겠지만,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의 품 속, 자비의 품 속, 긍휼의 품 속에 있으면 최고로 만족합니다. 이처럼 성도도 아이가 젖 뗀 것처럼 과거에 좋아하던 세
상 것들을 다 떼어 버리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과거에 자랑하며 좋아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 한 분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빌 3:5-9). 바울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예수님 안에서 살며,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가 계획하고 애쓰던 것을 버리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심령이 고요하고 평안한 자리에서 살아야겠습니다.
3. 여호와를 순종하며 바람
본문 3절에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순종하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또 순종할 때에는 일심정력을 다 기울여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그 사람에게 채워
주십니다. 먼저 안식을 주시고, 생명의 역사가 있게 해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다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첫째,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해 주시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바라보며 닮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순종하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또 순종할 때에는 일심정력을 다 기울여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그 사람에게 채워
주십니다. 먼저 안식을 주시고, 생명의 역사가 있게 해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다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첫째,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해 주시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바라보며 닮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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