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일 목요일

시편 73:1-28 악인의 형통과 최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악인의 형통과 최후
시편 73:1-28

1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22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23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
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1.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심

본문 1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심을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 선을 행하시며 복을 주십니다.

2. 악인의 형통함과 성도의 재앙 당함을 보고 실족할 뻔함

악인의 형통

본문 2절에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거의 실족(失足)하였다는 것입니다.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발이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하여간 내가 그만 미끄러져서 거의 넘어질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넘어질 뻔했습니까?

본문 3절에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질시(嫉視)라는 것은 시기하였다는 말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또 거만한 자들이 잘되는 것 같아서 그만 시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끄러질 뻔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이렇게 죽는 날까지 고난과 고통 없이, 또 힘이 건강하게 잘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은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재앙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목걸이라는 것은 교만한 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강포(强暴)를 거침없이 행하고 다닙니다.

본문 7절에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살이 쪄서 눈이 쑥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먹고 살이 쪄서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소원보다 더 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이 20만원을 벌면 좋겠다는 것이면, 40만원씩 버는 것입니다. 또 100만원씩 벌면 좋겠다고 하면, 200만원씩 버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또 몸은 건강해서 살이 찌고 눈이 다 솟아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기운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능욕하고 압제하며 거만히 말하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입을 하늘에 두었다’는 것은 하늘과 같이 교만한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혀가 땅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악한 자들이 땅에서 여러 사람을 훼방한다는 뜻입니다. 훼방하고 압제하며 남을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백성들이 일단 미혹을 받아서 그 사람들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와 동조하고 또 교만한 자를 따라갑니다. 교만한 자가 잘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 교만
한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잘되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잘못되면 다른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도적이라도 세상에서 잘되면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 11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한 사람들의 말만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면 자기도 세상에서 잘될 줄 알고 나아간
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 가면 더 얻어먹을 것이 있으니까, ‘따라가자’고 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항상 평안하며 재물은 날마다 더해간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항상 평안하고 그 재물이 날마다 더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많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 -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성도가 실족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실족할 뻔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하였는데, 왜 악한
사람이 잘되고 성도는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아마 실족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넘어질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집어치우고 나가서 그 사람들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악하게 되어도 돈을 벌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족, 즉 마음에 의심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정결케 하고, 죄를 안 지으려고 하고, 바로 믿으려고 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바로 믿으려고 하니까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점점 더 잘되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냐? 실로 헛되다’는 생각이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진리, 진리 하기만 하지, 진리대로 나가서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남 보기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종일 재앙만 당하고 매일 아침 하나님의 책망만 받는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날마다 더해간다고 하였습니다. 또 건강하여 살이 찌고 고통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에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됩니다. 아이들도 잘됩니다.

욥기 21장 7-12절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
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잘되지 않았습니까? 또 수를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세력이 강하며 오래 삽니다. 악한 사람이 더 오래 삽니다. 호메이니(이란의 시아파 종교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 악한 사람인데, 그가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오래 살았습니다. 호메이니가 몇살에 죽었습니까? 90세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이 더 오래 삽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정치가들 가운데에서도 악한 정치가가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 신학자가 오래 살고, 믿음이 없는 사람, 되는 대로 믿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오래 사는 것을 가지고는 모릅니다. 악한 사람도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또 몸도 건강합니다. 악한 사람의 자녀들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양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기름이 쩔쩔 도는 것들이 한방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소고를 치며 춤춘다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공부도 잘하고 출세도 잘하며, 다 잘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잘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믿으려고 하는 성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아들들과 딸들이 다 죽었습니다. 몸에는 병이 나고 재산은 하나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쫄딱 망했습니다.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

본문 15절에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들들’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즉, 이 말씀은 이러한 말을 나와서 전파하고 돌아갔다면 성도들에게 궤휼을 행하였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를 속이는 것밖에 안 됐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잘 믿는 것이 다 헛되다. 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되는 대로 믿는 사람이 잘되고, 안 믿는 사람은 더 잘된다. 바로 믿는다고 하는 것이 다 헛되다’, 이러한 말을 나와서 전파했다면, 성도들에게 궤휼을 행하고 죄만 지었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생각하기를 잘 했지, 말로 나왔다면 큰 죄를 지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좋은 고민이 들어왔을 때에 혼자 생각하다가 혼자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섣불리 알려놓으면 남에게 죄를 짓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까? 그런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왜 안 될까? 아무리 잘 믿어보려고 해도 점점 더 안 되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한 집사가 있는데, 자기 형제들은 다 잘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네들만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모이면, 그 형제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형제들이나 되는 대로 믿는 형제들은 다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자기 하나만 형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럽다고 합니다. 또 할 말도 못하고 오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된 것입니까? 사도행전 3장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과 같이 한 마디하고 나오면 됩니다. 부끄럽긴 왜 부끄럽습니까? 나사렛 예수가 그것만 못하겠습니까? “재산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는 예수가 있다. 생명이 있다. 진리가 있다”라고 냅다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자들이 쩔쩔매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더니, 멋있다. 속에 뭐가 있긴 있는가 보다’라고 여깁니다. 속에 있을 것이 있어야지, 재산도 없는데 속에도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속에 진리가 있고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냅다 내놓는 것입니다.
고민은 자기 혼자서 하고, 내놓는 것은 나사렛 예수만 내놓는 것입니다. 진리만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들은 잘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느냐는 생각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가 들이치는 것입니다. 마귀가 들이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욥은 재산은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은 모두 죽고 몸에는 병이 났습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고통 가운데 빠져 있습니까? 종일 재앙을 만나고 아침마다 징책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것입니다.

3. 성소에 들어갈 때에 결말을 깨닫게 됨

영적 성소에 들어가 말씀이 깨달아질 때에 모든 것이 바로 해결됨

본문 16절에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이 곤란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성소에 들어가서 말씀이 깨달아질 때에 모든 것이 바로 해결된 것 입니다. 영적 성소에 들어가서 말씀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깨닫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마귀 시험에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소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금식 기도라도 하고, 산에 찾아 가서라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말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소에 들어가서 ‘아, 이것이구나!’하고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악인을 졸지에 심판하심

본문 18-19절에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졸지에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어나가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악을 졸지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되는대로 믿는 사람이 잘되어나가지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진리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졸지에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주무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도 가만 놔두시고 성도가 고난 받는 것도 안 도와주시고 가만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나 이제 깨신다는 것입니다. 깨어나신다는 것입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다가,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어서 일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실 때, 즉 일하실 때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의 형상은 다 멸시, 즉 다 파멸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잠잠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깨어나셔서 일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손을 대셔서 실제로 결과가 나타나도록 역사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악한 사람의 형상을 멸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것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집니다.

5. 자기의 불신과 무지함을 부끄러워하며 뉘우침

본문 21-22절에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짐승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매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또 하나님께서 깨신 후에 악한 자를 심판하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니 자신은 참으로 우매 무지한 자라는 것입니다. 짐승과 같은 자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우매 무지합니다. 왜 우매 무지합니까?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해서 심령이 어두워지고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그래서 바른 판단을 잘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오묘한 뜻을 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때에 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에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모든 것을 바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고 보니 자기가 얼마나 우매 무지한 말과 생각을 했는지,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자신이 짐승과 같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였습니다.

6.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

하늘에는 주밖에 없고, 땅에는 주밖에 사모할 자가 없음

본문 23절에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다른 것은 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우매 무지한 짐승과 같은 것을 깨달은 이상, 다시는 그런 우매 무지한 생각이나 짐승과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항상 주와 함께 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항상 주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주와 함께 하니,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종일 재앙을 만나고 아침마다 징책을 당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는 나를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영광으로 영접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고난과 재앙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깨닫고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는 주밖에 없고,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사모할 바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만 사모할 바가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박영순 전도부인이 늘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자기 것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마 과부로 혼자 살면서 ‘주 밖에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매일같이 주님만 사모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좋아해 줄 사람이 없으면, 이것만 밤낮 외우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본문 26절에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종일 재앙을 만났기 때문에 육체와 마음이 쇠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반석이시라는 것은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으로 영원히 나의 분깃으로 삼고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어 주시려고 재앙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성도가 재앙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사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고 분깃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이 잘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기 어렵습니다. 또 분깃이 되시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니까 하나님밖에 사모할 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간절히 사모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반석이 되시고 분깃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도리어 유익입니다. 반석과 분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멀리하는 자는 망하고, 음녀와 같이 주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자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다 멸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가서 전해야 되겠습니다. 전파하는 일, 전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기만 혼자 알고 있지 말고, 이렇게 귀한 진리를 깨달았으면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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