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시편 97:1-12 의(義)의 판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의(義)의 판단
시편 97:1-12

1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찌어다 2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3불이 그 앞에서 발하여 사면의 대적을 사르는도다 4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5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 같이 녹았도다 6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 7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8여호와여 주의 판단을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9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 10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11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12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찌어다

1. 여호와께서는 의와 공평으로 통치하심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왕이십니다. 우주만물을 통치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우주만물, 만국과 만민,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여호와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온 땅이 즐거워하고 허다한 섬은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주의 왕이시고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그 왕은 의와 공평으로 그 보좌의 기초를 삼았습니다. ‘의의 왕’이요, ‘공평의 왕’이요, ‘자비하신 왕’이십니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라고 하였는데, 구름과 흑암이 둘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19장 18-19절에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라고 하였는데, 시내 산에 구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빽빽한 구름이 있었습니다. 번개와 뇌성이 있었습니다. 옹기점 같은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
에 강림하셨습니다. 구름과 흑암이 하나님을 둘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말하는데, ‘두려우신 하나님’, ‘위엄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평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의를 기초로 하고 공평을 기초로 해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의가 없고 불공평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의롭고 선하며, 공평하게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온 땅이 기뻐하고 허다한 섬들이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위엄 있게 다스리시며, 의와 공평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기 때문에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본문 3절에 “불이 그 앞에서 발하여 사면의 대적을 사르는도다”라고 하였는데,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불로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이 땅에 의와 공평을 이루어 놓으십니다.

본문 4절에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번개를 내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떨었도다’라고 하였는데, 그만큼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번개가 비추면 온 땅이 벌벌 떠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번개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번개를 낸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위엄이 있겠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번개가 칠 때도 우리가 두려운데 그것을 내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두려우신 하나님이실까 생각하고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하며, 위엄이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섬겨야 합니다.

본문 5절에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 같이 녹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산과 온 땅이 주 앞에서 밀같이 녹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땅을 다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산’은 보통 ‘나라’를 가리키는데, 세계 만방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밀 같이 녹는다는 것입니다. 맥을 못 추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하나님이 한 번 손만 대시면 밀 같이 녹아버립니다. 세상 왕들이 아무리 악하게 나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손만 대시면 다 녹아버립니다. 또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하나님께서 손만 대시면 다 녹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해같이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을 하나님께서 내시고 태양 빛이 온 땅 모든 백성에게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는 온 땅의 백성들에게 나타나고 백성이 그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하나님의 빛이 태양빛처럼 온 땅에 비추어서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봅니다.

2. 의의 판단을 시온이 기뻐함

본문 7절에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각 신’이라는 것은 사람이 나무나 돌을 도장 새기듯 새겼다는것입니다. 나무에 도장을 새기는 것같이 새긴 신들을 섬기며 허망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신을 새겨 만들고 또 허무한 것으로 자랑을 하는데 그런 자들은 다 수치를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반드시 가다가 수치를 당하는 날이 옵니다. 자랑하는 자, 그 우상을 섬기면서 자랑하고, 세상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라는 것은 우상 섬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즉,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아 다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는 뜻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 길이 생깁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여 주의 판단을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판단’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시온이 듣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합니다. 이것은 다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온이나 유다의 딸이나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심판할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심판할 때에 주님의 심판을 보고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숨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13-17절에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고, 하늘의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다 말리어가며,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어가고,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종과 자주자들이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서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이들이 산과 바위틈에 들어가 숨은 것입니다. 우리를 가려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때에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때에, 성도는 즐거워하고 불신자들은 너무 두려워서 산과 바위에 가서 숨고 자기를 가
려 달라고 아주 통곡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심판이 나타날 때에 시온은 듣고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게 되지만 안 믿는 사람은 벌벌 떨고 두려워서 도망친다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 한국군과 유엔군이 이북에 들어왔는데, 그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뻐서 다 나가서 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공산당들은 벌벌 떨면서 도망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 성도는 환난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것을 신원하여 주는 심판이기
때문에 즐거워하지만 안 믿는 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도망치고 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시기 때문에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성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다 도망치고 그 나라들은 다 녹아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그 모든 신들 위에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신과 주들은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물주이시므로 그 신들을 뛰어 넘어서 월등하게 초월해 계십니다. 피조물하고 조물주하고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신들은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신들과 우상은 다 사람이 만들어 마귀를 섬기는 것이고,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다 창조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보다 얼마나 더 뛰어나실지 생각해보십시오. 아주 초월해서 하나님께서는 우주에 충만하신데 이런 저런 세상 신들이 많이 있지만, 파리 새끼만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목소리만 발하셔도 다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들 위에 초월하십니다. 모든 신들은 다 아무것도 아닐 따름입니다.

3.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고 의인에게 빛을 주심

본문 10절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악을 미워하게 됩니다. 악은 하나님과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와 반대되니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합니다. 악을 미워하지 않은 사람은 여호와를 참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니골라 당을 미워하는 것은 잘하는도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니골라 당은 죄악의 길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들을 미워했는데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하게 나가는 사람의 죄를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 되고, 사람을 사랑하다가 죄를 사랑해서도 안 됩니다.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악인의 손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건지시는 하나님이시고 보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의 영혼을 보전해주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보전해 주실 것이고 또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하는 것은 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오늘 하루를 바로 살고 내일 염려는 내일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주를 위해서 고난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 바로 살고 오늘 하루 하나님께 충성하고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오늘 하루 믿는 일을 잘하면 됩니다. 내일 하루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성도의 영혼을 보전해주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앞으로 나의 영혼을 보전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악인의 손에서 건져주신다고 하셨으므로 앞으로도 나를 악인에게서 건져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성도의 자손들까지 책임지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25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의인이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또 그 자손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부모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자손도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잘되도록 해주십니다. 그 자손이 빌어먹지 않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28장 3-4절에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자손도 잘된다고 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의인의 자손이 왜 망하지 않고 빌어먹지 않고 잘됩니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자손은 어렸을 때부터 믿음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중생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을 절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성경말씀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 배운 말씀이 언제나그 속에 있습니다. 찬송가도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무릎에 앉혀서 무엇을 배웠다고 했습니까? 다니엘, 병거 타고 엘리야가 올라간 것을 다 배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말씀을 배웠기 때문에 속에 다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쳐주면 일생 동안 속에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가 신앙 생활 하는 것을 본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에게로 돌아가겠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겼는데 자기 아버지가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을 야곱이 봤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손이 잘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기도해 준 것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 준 것은 비오는 것과 같습니다. 또 말씀 전해준 것도 비오는 것과 같습니다. 비와 눈이 내리면 땅을 적셔서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기도해 준 것이 있습니다. 계속 기도해 준 것은 이슬 내려 주는 것이나, 비 내려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음에 땅이 적셔져서 싹이 나고 열매가 나게 됩니다. 이렇게 의인의 자손이 망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자손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네 가지입니다.
첫째, 부모에게 믿음을 받아서 중생했기 때문에 타락을 해도 중생한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어려서부터 성경 배운 것이 속에 있습니다.
셋째, 어려서부터 부모가 신앙생활을 한 것을 본 것이 있습니다.
넷째, 어려서부터 부모가 기도해 준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의인의 자손이 빌어먹지 않고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자손도 보호해주시고, 영혼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져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늘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기도해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주는 것은 비와 눈이 와서 땅을 적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싹이 나고 자라나고 그래서 열매가 맺게 됩니다.

본문 11절에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을 위하여’라고 하였는데, 믿음 잘 지키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에서 ‘뿌렸다’는 것은 ‘빛을 줬다’는 것이므로 믿음 지키는 사람을 위하여 빛을 줬다는 뜻이 됩니다. 또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기쁨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습니까?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기쁨을 뿌려주셨고 의인을 위해서는 빛을 뿌려주셨습니다. 뿌렸다는 것은 한 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준 것 같습니다. 뿌릴 때는 하나만 뿌리지 않습니다. 믿음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빛을 주시는데 뿌리는 것과 같이 넓게 많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지키는 사람은 항상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에도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고,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고 하였습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은 항상 빛을 줍니다. 빛을 뿌리는 것처럼 넓게 줍니다. 많이 줍니다. 그래서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갑니다. 믿음 안 지키는 사람은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예수 믿어도 믿음 안 지키는 사람은 흑암 속에 헤매고 돌아다닙니다. 죄만 짓고 돌아가는 사
람은 흑암에서 흑암으로 흑암 속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하고 흑암 속에 걸어가는 사람하고 얼마나 차이가 많습니까? 어두운데 걸어가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넘어지기도 하고,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은 마음도 환하고 길도 훤히 열릴 것 아닙니까? 믿음 잘 지키는 사람은 항상 빛 가운데 삽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서 가기 때문에 염려가 없습니다. 믿음 안 지키는 사람은 어두운데서 가다가 넘어지고 실족하고 빠지고 맙니다. 항상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안 지키면 마귀에게 걸려들어서 결국에는 구덩이에 빠져서 망하고 맙니다.

언제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진실하고 양심을 똑 바로 써야 합니다. 양심을 쓰는 자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기쁨을 뿌려주셨습니다. 양심을 쓰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남에게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고, 남을 때린 사람은 다리를 구부리고 잔다고 했습니다. 왜 구부리고 잡니까? 남을 때리고 나니 속이 편하겠습니까? 기쁨이 없습니다. 선한 마음을 쓴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을 썼습니다. 악한 마음을 쓰니 기쁨이 없습니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매를 맞아도 기쁨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됐다고 했는데 이렇게 의를 행하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이 기쁨을 뿌려줬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기쁨이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기쁨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또 무엇을 뿌려줬습니까? 빛을 뿌려줬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지키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항상 빛 가운데 걸어 다니고 항상 기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로 통과합니다. 기쁨으로 통과합니다.

본문 12절에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이여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념’은 각주에 보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할찌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믿음
지키는 사람은 무엇으로 즐거워합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돈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명예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합니다. 자기의 것이 다 없어졌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한다고 했는데 다 없어졌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박국 3장 17-19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 없어져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그 사람이 진짜입니다. 항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생활,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는 생활을 언제나 해나가는 사람이 참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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