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 토요일

아가 3:1-11 광야 교회의 보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광야 교회의 보호
아가 3:1-11

1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2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3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4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6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7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 8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9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10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11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1. 주님을 찾음

본문 1절에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 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은 술람미 여자의 말인데, 누구의 말인지 모르면 혼돈이 오기 때문에 누가 한 말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밤에 침상에서 예수님을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모스 6장 4-6절에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고급 상아 침대에 누워서 주님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고급 침대에서 주님을 찾으려고 하면 주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안일주의에 빠져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 근심하지 않고 환난을 당하는 것에 대하여는 근심하지도 않게 됩니다.

언제나 믿음을 지키다 보면 환난이 오는데 이것이 바로 된 믿음이고 믿음을 지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믿음을 지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환난은 믿음을 지키다가 당한 환난이고 성경말씀을 지키다가 받은 고난입니다. 성경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면 고난도 받지 않고 대접은 잘 받을 뻔했는데 말씀을 지키다가 그만 감옥에 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면 환난이 올 것을 각오해야하고 환난을 받지 않으려면 믿음을 배반하며 다 버려야 하는데 그러나 믿음을 버리는 결과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다 망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침상에 누워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새벽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것도 침상에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침상에서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한 번 엎드렸다가 졸고 잠들게 되어 결국 구르게 됩니다.

본문 2절에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 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느라고 일어나서 성중의 거리, 큰 길에서 돌아다녔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여기저기 다니며 예수님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나 교역자들이 안일주의에 빠져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쓴 책을 보거나 설교를 듣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지만 거기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본문 3절에 “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중의 순행하는 자는 성을 지키기 위하여 순행하는 파수꾼을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바로 가르쳐 주는 인도자를 말합니다. 올바른 인도자를 만나 바
로 배우는 것이 큰 은혜요 복입니다. 아가 5장 7절에 보면 술람미 여자가 잘못된 순행자를 만나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본문 4절에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순행하는 자에게 바른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힘써 나아갈 때에 곧 사랑하는 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가르침을 받고 바로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깨우친 대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를 붙잡고’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어미 집’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 세계를 말합니다. ‘잉태한 자의 방’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붙잡고 어미의 집인 영적 세계로 들어가고 또 잉태한 자의 방인 말씀 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령한 세계에 있는 술람미 여자를 깨우기 잘 합니다. 육에 속한 신자들은 신령한 성도를 신령한 신앙세계에서 나오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방해합니다. 노루와 들사슴은 놀라기 잘하고 잠들었다가도 깨어나기 잘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도 신령한 자리에서 나오기 잘합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 여자를 그 신령한 세계에서 나오게 하여 자기들과 같은 길을 걷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자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2. 광야 교회의 보호

솔로몬의 연(輦)

본문 6절에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6-10절은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이 솔로몬의 혼인행렬을 보고 노래한 것입니다.
‘연기 기둥’은 혼인 행차 시 피우는 향연으로, 거무스름하여 아름답지 못하나 위엄스럽게 높이 올라감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아름다운 것과 볼만한 것이 없으나 연기 기둥과 같이 위엄 있게 높이 솟아 있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바라보는 산 위에 있는 동네와 같습니다(마 5:14).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라고 하였는데, 교회가 외부적으로는 연기기둥같이 볼품은 없으나 속은 각종 향품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거친 들에서 오는 자’라고 하였는데, 거친 들은 이 세상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교회가 거친 들과 같은 험악한 세상을 통과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보잘 것이 없으나 속은 여러 가지 향품으로 아름답게 단장하였고,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거친 들과 같은 세상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연’은 옛날 왕이 타고 다니던 가마와 같은 것으로, 여기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용사 중 육십 인은 천사들과 신앙의 용사들을 가리킵니다. 육십 인은 연 밖에서 옹위하였고 예수님은 연 안에 계십니다.
인간 구원의 숫자는 삼 수, 칠 수, 십이 수가 만수인데 왜 육십 명이라고 하였습니까? 왜 하나님의 교회를 육 수로 했느냐 하면 육 수와 예수님 한 분을 더하면 칠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 수이지만 칠 수라고 봐야 합니다. 교회라는 것도 예수님을 더해야 칠 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하지 않으면 육수는 세상 수고, 마귀의 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면 인간단체가 되고 마귀의 놀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교회는 예수님을 첫째로 모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떠나 육수 로 돌아가면 인본 단체가 되고 마귀 단체가 됩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모인 단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모시면 산 교회가 되고, 예수님을 떠나면 마귀의 가정이 됩니다. 교회도 예수님을 모시면 생명이 있는 교회가 되고, 예수님을 떠나면 인본주의 단체, 친목 단체, 오락 기관, 마귀의 기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용사들이 교회를 옹위해야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교회를옹위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손에 칼을 잡고 허리에는 칼을 차며 옹호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본문 9-10절에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금은 믿음을 상징하고 믿음은 교회의 기초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고, 은 기둥을 세워나간다는 것은 교회가 말씀으로 세워져 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행하면서 말씀으로 세워나가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가 말씀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워나가는 곳이고 믿음을 기초로 하는 곳입니다. 또 그 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계셔야 하고 교회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이 힘든 일이기 때문에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은 용사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관, 예수님의 기관이므로 대적이 와서 침략하는 일이 많은데 이 때, 용사들이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육십 인은 인간의 숫자로서는 굉장히 많은 숫자입니다. 여러 용사들이 합하여 연을 보호해나가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어두운 세상에 침략자들이 와서 다 파괴할지 모릅니다. 육십 명이 일치단결하여 연을 보호하고 진리의 기둥을 세워나가는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세워 나가는 교회

느헤미야 4장 13-23절에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계를 잡았다’는 것은 무기를 잡은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건축, 한 손으로는 칼을 잡고 전쟁을 한 것인데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건축만 잘하고 전쟁은 잘하지 못하면 적들이 들어와 다 허물어 버립니다. 또 전쟁만 잘하고 건축하지 못하면 전쟁하다 끝나고 난 후에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두 가지가 다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 자기 하나만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연을 옹위해나가야 합니다. 육십 명이 합심, 단결하여 하나님의 연을 옹위해야 합니다.

아무리 수고해서 건축을 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여러 교회가 합하여 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저 나 혼자 예수님을 믿고 나 혼자만 천국에 간다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옹위하지 않는 사람은 육십 명 가운데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육십 명 가운데 들어가야 하고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연을 옹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옹위를 잘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고 진리 운동이 잘되어져나갈 것이고 옹위하지 못하면 아무리 자기 혼자 잘해도 진리 운동이 잘되어나가지 못합니다. 교역자도 하나님의 연을 옹위하는데 일심 단결해야 합니다. 교인들도 하나님의 연을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 일심 단결하여 육십 명 가운데 다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모시면 칠 수가 됩니다. 잘 옹위하여 기둥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군사 육십 명이 옹위해야하는 것이지 그저 예수님의 연이 예수님 혼자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기주의로 나 혼자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셨으니 감사함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연을 옹위해 나갈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옹위하지 않으면 다 무너지고 마귀에게 먹히게 됩니다.

세워 나가고 싸워 나가야 함

한 쪽으로는 세워나가고 한 쪽으로는 싸워나가야 합니다. 세워나가는 것은 진리이므로 진리를 무너뜨리는 것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둥은 열 개인데 이것은 십계명을 말합니다. 계명을 무너뜨리는 것은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요새는 마귀가 제 사계명을 먼저 무너뜨리려고 들어옵니다. 왜정시대에는 제이계명을 무너뜨렸는데, 요즘은 마귀가 온전한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제사계명을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 합니다. 주일 날 시험을 보라고 하면 죽인다고 해도 보지 않아야 합니다. ‘자색 담’이라는 것은 사랑의 담요를 말하는데, 제일 좋은 담요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 위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십계명을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영화와 존귀

본문 11절에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인데 혼인날 예수님께 그 모친이 면류관을 씌워드렸습니다. 예수님 머리에 면류관이 있는 것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친이 누구인가를 따지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부활하여 받으신 영감을 면류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시편 8편 4-5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보다 잠시 못하게 하였다가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웠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부활입니다. ‘천사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후에 성령으로 부활하시므로 영화와 존귀로 면류관을 받으신 것입니다. ‘모친이 씌웠다’는 것은 성령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쓸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라는 것은 십자가의 구속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해주실 때에도 성령으로 부활시키셔서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관이 머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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