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7일 금요일

아가 2:1-17 고난(苦難)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苦難)
아가 2:1-17

1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 같구나 2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3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5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6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7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8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9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16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1. 성도는 가시밭 가운데 있음

아가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는가를 알게 해 줍니다. 또 성도가 예수님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상태를 알게 해줍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알게 하신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주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가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알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골짜기에 수선화와 백합화가 피어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않는데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골짜기에 숨어있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본문 2절에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성도를 뜻합니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런데 바람만 불면 백합화가 가시나무에 찔리고 상처가 납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세상에 사는 동안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이 상처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상처라고 했습니다. 가시나무에 찢길 때마다 향기는 더 많이 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당하며 향기를 더 내뿜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느라고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면 가시가 오고, 환난이 옵니다.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 욕하면 먹자’하고 나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성도가 이렇게 고난당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백합화같이 보
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고,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게 해주시고 거뜬히 다 낫게 해주십니다.

2. 고난 중에서도 주님으로 즐거워함

본문 3절에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9절은 술람미 여자의 말, 즉 성도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풀 가운데 우뚝 솟은 사과나무 같습니다. 뛰어나십니다. ‘수풀’은 사람들을 뜻하는데, 베드로전서 1장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풀이고, 예수께서는 그 가운데 우뚝 솟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는 사과나무와 같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사과나무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심히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입 안에서 매우 단 맛이 나는 실과처럼 주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이 달기 때문에,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히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며 말씀을 달게 받습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이 잔치집인데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으로 들어가시므로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합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고 사랑으로 기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즐겁게 연회를 합니다. 출애굽기 17장 15절에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것은 기를 말합니다. 국기는 나라의 표시이고 하나님의 기는 사랑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건포도는 진리의 말씀이고 사과는 은혜를 말하는데, 말씀을 받아 힘을 얻고, 은혜 속에서 시원해집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예수님만 생각하다가 병이 날 정도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왼손으로 평안하게 안식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베게는 잘 때 사용하는 것인데, 시편 127편 2절에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면 잠을 주십니다. 육신의 잠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능력의 오른손으로는 보호해주시고 붙들어주십니다.
능력의 손으로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
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 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믿음이 어린 성도들로 육에 속한 성도들입니다. 노루와 들 사슴은 놀라기를 잘하고 도망치기를 잘 하는데, 성도는 노루와 들 사슴 같아서 손해볼까봐 도망치기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께서 원하시기 전에는, 즉 예수님께서 깨우쳐 주셔야 심령이 깨우쳐지는 것입니다. 심령이 깨어 일어나는 것은 예수님이 해주셔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3. 고난의 주가 찾아오심

본문 8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그가 큰 산에서 달린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을 말하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것은 우리가 당하는 환난 가운데로 예수님이 빨리 오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의 성도를 다 죽이려 할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빨리 오십니다.
고난 길 헤치고 찾아온 길이라는 찬송가도 있습니다. 고난당할 때 주님이 빨리 찾아오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즐겁게 이겨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결사각오로 나갈 때 주님께서 와주십니다.

본문 9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 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이 잘 피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
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는데 벽 뒤에 서서 심령을 깊이 살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앞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창살 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심령에 감동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면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4. 은밀한 중에 있는 성도를 부르심

본문 10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앞의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에게 성도는 사랑이고 어여쁜 자입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권면하십니다. 아가 4장 8절에 “나
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 보아라”고 하였습니다. 스닐과 헤르몬 산꼭대기, 험산준령을 넘어 맹수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산꼭대기로 가기 힘드니까 평지로 가자고 하면 예수님은 떠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시는 곳으로 함께 가야 합니다. 일어나서 가야 합니다. 잠자고 있다가는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함께 가면 예수님께서 왼손으로 안식을 주시고 오른손
으로 보호해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11-13절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얼어붙은 땅이 다 녹고 양춘가절이 돌아왔습니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반구 즉 비둘기 소리가 들리는 좋은 시절에 일어나 포도원에 함께 가서 일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꽁꽁 얼어붙었을 때에는 농사짓기 힘든데, 하나님이 녹여주시고 날씨도 따뜻하게 해주실 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 가서 심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고 협조하고 도와야 합니다. 열고 닫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이 여시면 하루아침에 됩니다.

소련 선교도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후에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이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좋은 때를 헛되이 보내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면 됩니다. 뿌리면 나고 열매 맺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자
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걸어라, 걸어라”고 하지 않아도 것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뛰어다니고 말하며, 무언가를 배우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아이를 잘 먹여주고 돌봐주기만 하면 다 걷고 서게 됩니다. 우
리가 조금만 순종하면 크게 역사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와 양춘가절을 주셨는데 우리가 놀지 말고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일꾼들을 많이 길러야 합니다. 개척 교회도 세우고 선교사도 보내야 합니다. 미국에 우리 교단이 20여 년 전에는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하나씩 보내서 20개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만 하면 자라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순종만 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니 기회를 넘기지 말고 잘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비둘기는 성도입니다. 어디있는 성도가 아름답습니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속에 있는 성도의 얼굴이 아름답고 소리는 듣기 좋습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성도의 소리를 아주 좋게 들어주시고 부드럽게 들어주시고 얼굴을 아름답게 보아주십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라는 것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위틈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낭떠러지에 가서 기도하고 은밀한 곳에 가서 기도하는 음성을 예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십니다.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는 성도의 얼굴이 가장 아름답고 그 소리를 듣기 좋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좀 더 보자 좀 더 듣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위해서는 은밀한 곳 바위 틈 낭떠러지에 가서 기도하면 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에 가는 것은 성형외과에 백번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음성, 은밀한 곳에서 예수님께 부르짖는 얼굴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밀한 곳에 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주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아름답게 보십니다.

우리 교단 교역자들이 다른 면에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은밀한 곳에 찾아가야 합니다. 미국에 있는 교역자들에게도 기도하러 가라고 권면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 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바위 틈 낭떠러지에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봐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러 가서 일심정력을 다해 기도해야합니다. 또 기도하러 가면 교인들이 좋아합니다. 교회에 웬만한 시험이 있을 때 교역자가 기도를 자주 하러 가면 다 물리쳐주십니다. 기도하러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교인들도 기도하러 가야 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성도의 음성을 주님께서 듣기 기뻐하시고 얼굴을 아름답게 봐주십니다.

5. 여우를 잡으라

포도원을 허는 여우

본문 15절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번역할 때에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공산주의 사상을 넣어서 번역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넣어서 번역하고, 해방신학자들은 해방신학사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 사상, 기독교진화론자들은 기독교 진화론 사상으로 번역해놓은 것이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아주 잘못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잘못된 사상을 넣어 번역하는 것이 여우입니다. 이 여우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성경공회를 조직하고 바른 성경을 번역하는 중에 있는데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해주실
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번역을 바로 하는 것이 여우를 잡는 것입니다. 또한 신신학자들, 신비주의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곧 여우입니다. 따라서 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여우를 잡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 가보면 한국에서 선
교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그곳에서 신비주의를 가르쳐서 전부 한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른 교회를 세우면 여우를 잡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우 잡을 사명이 큰 줄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요새는 열린 예배로 인해 복음 성가로 각종 여우들이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열린 예배는 강대상을 없애고 그곳에 다 올라오게 해서 춤도 추고 율동하고 유희를 보고 복음성가를 합니다. 복음성가를 통해 세상 곡조가 교회 안에 다 들어와 요즘은 교회에서 세상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가사만 고치고 세상 곡조를 그대로 부르는데 심지어 복음성가를 통해 Rock and Roll 이라는 곡조까지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전부 세상 것인데 질서 없이 혼란하고 혼돈한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열린 예배도 작은 여우이기 때문에 잡아야 합니다. 복음성가를 통해서 들어오는 여우도 막아야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포도원을 허무는 것입니다.

이것을 잡아서 포도원을 헐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작은 여우는 하나님이 잡게 해주시는데 자기 마음속에 있는 여우부터 잡고 그 다음에 교회에 있는 여우를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단, 그릇된 신학사상을 잡아야 합니다. 여우를 잡아야 포도원의 꽃이 잘 피는데 그러나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는 작은 여우부터 잘 잡아야 성공하는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비방하는 말이나 악행하는 말, 교회에 손해를 주는 말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들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입을 막고 잡아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포도원의 꽃이 잘 피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시는 예수님

본문 16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술람미 여자가 한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꽃이 잘 피어 만발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양 떼를 먹이시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양 떼를 잘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꽃을 잘 피우면 예수님이 오셔서 먹여주십니다.
그런데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시다가 백합화를 꺾기도 합니다. 아가 6장 2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잘 핀 것을 꺾으신다는 것은 하늘나라로 데
려가신다는 것을 말하는데, 채 피지 않은 것은 꺾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잘 핀 사람, 꽃이 아름답게 핀 사람은 하나님께서 먼저 데려가신다는 말입니다.

6. 주님의 재림을 고대함

본문 17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날이 기울었다’는 것은 말세를, ‘그림자가 간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오는 말세가 다 되었습니다. 

‘베데르 산’이라는 것은 이별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별의 산에서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이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날이 기울었고 그림자가 점점 오는데, 이별의 산을 예수님과 같이 떠나서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말세가 다 되어서 그림자가 왔습니다. 이별할 것은 이
별해야 하고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달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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