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9일 토요일

이사야 40:1-31 위대하신 여호와를 앙망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위대하신 여호와를 앙망하라
이사야 40:1-31

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9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15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16레바논 짐승들은 번제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17그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19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21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23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25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 구속자가 올 것이니 그 길을 예비할 것

예수님께서 오시면 험한 곳이 평지가 되어 평탄케 됨

본문 1-2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를 사해주신다는 내용입니다.

본문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시겠으니 그 대로를 평탄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골짜기같이 무모한 마음이 메워집니다. 또 산과 작은 산 같은 교만이 다 낮아집니다. 고르지 아니하고 평탄하지 아니한 것이 고르고 평탄해집니다. 험한 마음이 평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전부 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골짜기, 산, 험한 것, 이러한 것들이 다 평지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때에는 여러 가지 험한 골짜기가 많고 산도 많고 작은 산도 많아서 사람이 잘 못 삽니다. 이리로 가려면 높은 것이 가로 막고 저기로 가
려면 구덩이가 있고, 또 이리로 가려면 평탄하지 아니하고 고르지 아니하고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험악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것이 다 평탄해진다는 것입니다. 산이 낮아집니다. 골짜기가 다 메워지고, 험한 길이 다 평탄하게 됩니다.

2. 육체의 것은 잠깐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함

세상 것은 다 지나가며 잠깐임

본문 6-7절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기운이 돌아오면 꽃은 마르고 풀은 시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육체는 풀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풀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광이라는 것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꽃이 피면 아름다운데, 그것과 같습니다.

5월 사경회 기간에 기도원에 꽃이 많이 펴서 모두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제 한 달 있다가 와서 보십시오. 저기 있는 꽃이 다 집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한 것처럼, 다 지고 8월 집회에는 또 다른 꽃이 핍니다. 이것은 다 없어지고 다른 꽃들이 많이 핍니다. 그때는 부용화, 칸나, 사루비아, 사피아, 베고니아가 핍니다. 그런데 그것도 얼마 안 가면 시들어서 다 떨어지고 맙니다. 또 백일홍, 수국도 피는데, 그것도 다 잠깐입니다. 다 떨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고 좋은 것도 다 떨어지고 다 쇠퇴하고 맙니다.
잠언 31장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운 것, 아름다운 것이 다 헛된 것입니다. 잠깐이면 다 지나가고 맙니다. 다 지나갑니다. 부자도 지나가고 아름다운 것도 지나가고 고운 것도 지나가고 다 지나갑니다. 얼마 안 가면 다 시들어지고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모두 시들어서 떨어집니다. 자랑한 것이 다 없어집니다. 다 지나갑니다. 큰 집 산 것도 다 지나갑니다. 좋은 자동차 산 것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아무리 잘해놓았어도 다 지나가고 맙니다. 수영장을 마당에다 만들어놓고 집 내부에 굉장한 것들로 많이 채워놨어도 그것도 다 지나가고 맙니다. 얼마 있다가 보면 다 지나갑니다. 그럼 무엇이 안 지나갑니까? 안 지나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

본문 8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다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가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이루어나간 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도 안 없어집니다. 돈도 없어집니다. 세상 권세도 없어집니다. 아름다운 것도 없어집니다. 또 부귀영화가 다 없어집니다. 자녀들도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집니다. 자기의 기업체도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간 것, 말씀을 받아서 생명을 삼은 것,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진 것, 말씀대로 이루어나간 것은 영원히 안 없어집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고 말씀이 영원한 것이지, 다른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영원한 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어디에 놀러가서 “참 좋다. 하하”하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달빛도 차면 기우나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하하하하”하는데 그것은 몇 십 년 내로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고, 이 말씀대로 만들어나가고, 이 말씀의 세계가 자기의 세계가 되게 하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 교제가 깊어지고, 하나님으로 자랑한 그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노는 것이 좋은 것 같아도 그것은 다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영원한 것인데, 영원한 것을 내버리고 노라리하면 허송세월한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안 됐습니까?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음란과 호색하는 것입니다.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쟁투와 시기한 사람은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회개하고 말씀대로 바로 서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을 이루어나간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서라도 남아 있습니다.

3. 장차 여호와께서 정복자와 목자로 오실 것

복음 전하는 일을 잘하라

본문 9-11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가져오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하였는데,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으며 전도하려고 산을 넘어서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 발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우랄산을 넘어가서 모스크바까지 전도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전도하고 이 복음을 가지고 알마타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 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록키 산맥을 넘어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넘어가는 사람도 아름답고 보내주는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보내주는 사람, 넘어가서 전하는 사람이 다 아름답습니다. 이 일을 잘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고 열방은 미약함

천지에 하나님과 의논할 자가 없음

본문 12-17절에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하나님께 감히 누가 가서 의논할 수 없습니다. 의논할 자가 없습니다.

5. 우상은 허무하나 하나님께서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심

하나님만 홀로 살아 계시며, 영광이 충만하심

본문 18-25절에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능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땅의 기초를 만드셨으며, 거민들은 메뚜기같이 여기시고, 하늘은 차일같이 펴셨습니다. 세상의 귀인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로 다 폐하게 하시고,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이 다 돌려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는데, 이 천지만물이 창조하신 하나님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 홀로 살아계시고, 영광이 충만하십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본문 26절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어서 천지만물, 만상을 한 번 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창조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는 말이 사도신경 제일 앞에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한 마디만 해도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능하셔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다른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신이 또 어디 있습니까? 태양을 섬기면 태양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 신, 아세라 신 등이 있습니다. 또 한국은 무슨 신을 섬깁니까? 곰이 낳았다는 단군 신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닭이 알을 나서 거기에서부터 자기 조상이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가 나면 자기는 소 새끼 자손, 닭이 나면 닭 새끼 자손이 되는 것입니까? 이것 참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신을 믿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기도할 때에 사도신경을 이따금씩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 마디만 해도 천하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십니다. 또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는 것은 우주의 만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천체 만상도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강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다 돌아가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지구도 자전하고 1년에 한 번씩 태양계를 돌아가는 공전을 어김없이 합니다. 몇 백 년
이 가도 1초도 안 틀리게 돌아갑니다. 서로 많이 돌아가도 충돌하지 아니하고 돌아갑니다. 태양계는 성층계를 돌고, 성층계는 은하계를 돌아갑니다. 그래도 서로 부딪히지 아니하고 고장도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이루어나가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세력이 셉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능력의 손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있는데, 아들들이 왜 이렇게 맥을 못 추고 그렇게 좋은 아버지의 아들들이 왜 힘이 없습니까? 세세한 것 가지고 싸우고 다투고 더러운 것을 가지고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사실은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양보하는 것이 얻는 것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남편하고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진리 문제가 아닌 것, 성경 문제가 아닌 것은 남편에게 지는 그 부인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편에게 져놓으면 남편이 자기 수하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려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
지 않으려고 계속 싸우다가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진리 문제가 아니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주면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능력이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저희들입니다.

6.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음

사정의 수리하심을 받는 법

본문 27절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아’라고 하였는데, 야곱에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 신령한 이스라엘, 오늘날 성도들까지 다 들어갑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내 딱한 사정을 몰라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원통한 일을 당했는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께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원통한 것을 알아주지 아니하십니다. ‘내 사정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까? 자기 사정을 다 알아주십니까? 원통한 것을 하나님께서 다 수리해주셨습니까? 사정을 알아주신 것도 있지만, 수리해주지 않으신 것도 많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딱한 사정, 자기의 원통한 것 등 여러 가지 섭섭한 사정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주지 않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원통한 것을 수리하지 않게 자기가 만들어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수리해주지 않으십니다. 제가 바로 하
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정을 다 알아주시고, 모든 원통한 것을 다 들어주십니다. 자기가 알아주지 않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에, 원통한 것을 수리하지 않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수리하지 않으시고 알아주지 아니하십니다. 알아주도록 자기가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며, 원통한 것을 풀어주려고 해도 오지 않는데 어떻게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이제 나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세계를 발견하라

본문 28-31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피곤해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피곤해 하지 않으십니다. 곤비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곤비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명철은 한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무능한 자에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곤비해서 넘어지며 자빠진 자는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자를 이렇게 일으켜 세워주시고, 곤비치 않게 피곤치 않게 해주시며, 일으켜 세워주십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졸려서 낮잠 자는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놀러 다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의 사정을 알아주시고 원통한 것을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피곤한 자에게는 여호와를 앙망하면 피곤치 않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힘이 없는 자에게는 여호와를 앙망하면 능력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넘어지고 자빠진 자는 여호와를 앙망하면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앙망할 수 있습니까? ‘앙망(仰望)’이라는 것은 우러러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땅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은 봐야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땅을 볼 때에 사자들이 잡아먹으려고 입을 쩍 벌리는 것도 있고, 곰 같은 것도 있고, 여우 같은 것, 무서운 짐승들, 괴악한 짐승들 등이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면 서로 잡아먹고 있는 것,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것, 욕심만 채우겠다는 것 등 이기주의, 양육강식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그것을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라보려면 시간이 좀 걸려야 합니다. 한 번 척 쳐다보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척’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늘은 비가 온다. 오늘은 해가 난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영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심령으로 하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령으로 바라보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쓰고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루 바라보고 또 이틀 바라보고 사흘 바라보고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높이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앙망하려고 할 때에는 눈을 감아도 세상 것이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떨 때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동안의 시간을 통해 앙망하려고 힘을 쓰면 그것들이 좀 없어집니다. 그래도 이따금 하나씩 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앙망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앙망하고 바라보면 다 없어집니다. 여우 새끼가 없어지고 호랑이와 사자도 다 없어집니다. 쥐 새끼도 다 없어집니다. 족제비도 다 없어집니다. 다 없어지고 이제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원통한 것이 있습니까? 한참 바라보니 원통한 것이 다 없어집니다. 바라보기 때문에 원통하지, 안 바라보면 무엇을 압니까? 또 한참 바라보니까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사정이 다 없어집니다. 땅을 바라보니까 사정이 있지, 하늘을 보면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원통하다, 사정이 있다, 내 사정을 몰라준다, 나 같은 팔자가 어디 있겠느냐 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 땅을 바라보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모두 없어집니다. 그저 계속 하늘을 앙망하면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교통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통한 것이 있습니까? 다 없어집니다. 사정이 있습니까? 딱한 사정, 억울한 사정이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무엇이 억울하고 무엇이 원통하고 무엇 때문에 섭섭해 합니까? 그 까짓것은 다 버리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옛 사람이 하는 일들입니다. 이제는 하늘을 앙망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높은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면 원통한 것이 다 없어집니다. 미운 것이 다 없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팔아먹으려고 유다가 가까이 왔어도 원통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친구여,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불쌍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으려고 왔지만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제 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늘을 앙망하는 자는 원통한 것도 없고 원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하나님과 떠나 있을 때 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세계가 자기 세계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나라인데, 조그만 것을 가지고 원통하고 섭섭해 하겠습니까? 무슨 사정이 있겠습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이시고, 또 예수님이 자기 신랑이신데 말입니다. 따라서 천지만물이 다 자기의 것인데, 무엇이 불공평합니까? 누가 자기 것을 잘라먹었으면 제 까짓것이 얼마나 잘라먹었겠습니까? 몇 억, 몇 십억 잘라먹었다 해도 하나님의 것이 다 자기 소유인데 몇 십억 같은 것은 먼지 하나만도 못합니다. 티끌 하나만도 못합니다. 그러니
상대가 불쌍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죄 짓는 것을 볼 때에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여간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되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힘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쁨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위로가 되시고, 노래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 사람은 원통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다 갔다 놔도 하나님만 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세계를 찾아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삼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발걸음으로 삼아서 그대로 나가면 항상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항상 충만한 사람이고, 그에게는 늘 모든 것이 넘칩니다. 원수가 다 녹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 세계에서 주와 같이 동행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떠한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고 곤비치 않습니다. 제 힘으로 하려면
피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힘으로 하면 피곤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힘으로 하기 때문에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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