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9일 토요일

이사야 43:1-28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심
이사야 43:1-28

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8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9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10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14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6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6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27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28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1.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임

본문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
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택한 백성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도 택한 백성입니다. ‘너를 창조하고 너를 지으신 자가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고, 너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지명(指名)’이라는 것은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불러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까? 다 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우리 이름을 하나님께서 다 부르시면서 “나오너라.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아, 마리아야, 베드로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이름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부르시되 한 사람씩 지명하여 부르셔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내셨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나 알아주지, 나 같은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실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들이 여럿이라고 해도 그 부모가 아들을 각각 다 지명하여 부릅니다. 큰 아들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또 훌륭한 아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막내, 잘 못사는 아들도 다 부르십니다. 그런데 누구를 더 생각합니까? 잘 사는 아들을 더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잘 못사는 아들을 더 생각합니다. 무슨 먹을 것이 있으면 ‘이거 잘 못사는 아들 주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하여간 지명하여 부르는 하나님이신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이름을 아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만약에 이름을 몰라준다면 얼마나 섭섭합니까?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알아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또 무엇을 해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고 지켜주심

본문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물 가운데로 강을 건널 때에는 물이 우리를 빠뜨려 죽지 않게 해주시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는 불이 타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널 때에 물이 그들을 삼켰습니까? 삼키지 못했습니다.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불 가운데로 지낼 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게 해 주셨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나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서 다 건져주셨습니다. 불같은 시험과 맹렬한 사막의 골짜기에서 다 건져주셨습니다.

나는 6·25 사변 때에 청천강을 건넜는데 강에 들어서서 건넜습니다. 사실 그때 죽었을 것이었습니다. 피난민이 다 일 자로 서서 건너 오는데, 제일 얕은 곳 아래로 내려가봐도 물이 허리까지 올라옵니다. 그런데 유엔군 비행기가 와서 총을 내려 쐈습니다. 왜 내려 쐈느냐 하면 군인들이 다 철수했는데 패잔병 가운데 몇몇이 피난민 가운데 섞여서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부대를 잃어버리고 피난민 가운데에서 총을 가지고 건너왔습니다. 또 군인 말고 치안자(治安者)들도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인들과 치안자들이 총을 메고 건넜습니다. 이것을 보고 비행기에서 총을 멘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쏜 것입니다. ‘인민군들이 사복을 입고 총을 메고 건너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거기서도 죽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당시에 비행기가 4개가 왔는데, 제트기 한 대가 ‘드륵륵’하고 쏘면서 지나갑니다. 좀 있다가 또 하나가 내려옵니다. 그것이 지나가자마자 또 하나가 ‘드륵륵’하면서 또 쏘고 지나갑니다. 계속 돌아가는데 한 번씩 쏘고 지나갑니다. 내 옆에 최 목사가 있었는데, ‘최 목사가 죽었나?’ 하고 가만히 있으면 “주여, 주여”합니다. 그래서 ‘안 죽었구나’하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드륵륵’ 쏘고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죽었나?’하고 보면 또 “주여, 주여”합니다. 또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까 우리 옆에 총 멘 사람이 같이 엎드렸습니다. 이 사람이 아마 치안대인지 패잔병인지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총을 내버리라. 너 때문에 비행기들이 왔는데 빨리 내버리라”고 말을 해주니 총을 벗어서 강 속에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비행기가 갔습니다. 간 다음에 보니까 죽은 사람들이 깔렸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안 죽게 해주셨습니다.

또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탄가스 먹고 죽을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때는 꼼짝 못하고 죽을 뻔했습니다. 온돌을 고쳤는데, 고쳐놓고 제대로 세면도 안 바르고 거기서 잤습니다. 온돌을 들쳐놨으니까 연탄가스가 그쪽으로 들어와서 조금만 더 있으면 죽을 것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깨워주셔서 안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낼 때가 많이 있었고, 불같은 시험도 많이 당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안 죽도록 건져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니까 안 죽지, 다 죽을 것인데 어떻게 안 죽겠습니까?

우리 대신에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죽게 하신 하나님

본문 3절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너 죽을 것을 대신해 애굽 사람을 죽이고 너를 건져주었고, 너 죽을 것을 대신해 구스와 스바 사람을 주어서 너를 건져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죽을 대신에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드시고 우리를 건져주신 일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 우리를 대신해 누구를 죽음에 내주셨습니까?
6·25 사변 때 우리가 죽게 되어 있었는데, 유엔군을 16개국에서 보내서 그들이 우리 대신에 죽고 우리는 죽지 않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유엔군 중 미군이 5만 명이 죽었다고 하고, 다른 군대들은 아마 몇 십만 명이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대신으로 죽여가지고 우리를 살려놓으셨습니다. 감사하지요? 우리가 죽을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 죽여주셔서 우리를 살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명’을 무엇으로 대신 합니까? 다른 백성, 다른 사람을 대신 죽게 해서 우리를 안 죽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얼마나 죽었습니까? 자기가 죽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대신 내주어서 안 죽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을 죽게 하셔서 우리를 살려주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무지몽매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기주의로 나가고, 욕심을 채우려고 하고, 세상과 돈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믿음을 안 지키고 죄만 짓고 나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주셨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보배롭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택한 백성이 보배입니다.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을 오게 하라’고 하였는데, 그들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2. 우상의 헛됨과 여호와의 참되심을 증거하게 하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

본문 8-11절에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자로,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셔서 종으로 세우시고, 증인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존귀함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셔서 다른 사람들을 주어 바꿔가지고 우리를 살려주시고, 물을 건널 때에 침몰치 않게 해주시며, 불이 사르지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사랑하여주시고 귀히 여겨주시며 항상 우리를 살펴
주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까?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에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될 때에 말로만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으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도 나가서 증인이 되어야 하고, 인격으로도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다음에 자기가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을 나가서 증거하여야 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기 영이 먼저 살아야 합니다. 영이 먼저 살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 다음에 나가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자기 영이 먼저 살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자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증인,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몰라주실 때가 더러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원통한 것을 풀어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때에는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사정과 원통한 것은 놔두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앙망(仰望)’이라는 것은 우러러 바라보는 것인데, 한 번 바라보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계속 앙망하고 사모하면 점점 하나님이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
고 하나님의 감동이 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힘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기쁨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도와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전체가 되십니다. 며칠이나 앙망하면 되겠습니까? 여러 날 앙망해야 합니다. 여기 기도원에 와서도 예배 시간 끝나면 가서 잡담하지 말고, 여러 날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하나님이 되십니다. 자기가 하나님 안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자기 세계가 됩니다. 그럴 때에 원통한 것도 다 없어집니다. 또 사정을 몰라준다는 것도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정을 너무 잘 알아주셔서 걱정이고, 하나님께서 원통한 것을 너무 잘 갚아주셔서 문제이지, 왜 몰라주시고 안 갚아주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택해서 구원해주신 것, 지명해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고 무엇을 해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하나님 편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편이 되어 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하나님의 편이 되면 됩니다. 그러면 만사가 다 해결됩니다. 나를 지명하여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구스와 스바로 우리를 대신하게 하시며, 우리를 건져 주신 것을 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것에 있습니다. 증인이 될 때에, 첫째는 자기가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말로, 생활로, 인격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말로 증거하고, 행동으로 증거하고, 인격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만들어지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면서 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27). 언제나 자기를 만들어나가면서, 자기의 삶 속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3.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심

본문 13-17절에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
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다 가운데 길을 내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는데,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일시에 엎드러뜨려 일어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홍해에서 다 소멸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해하고 멸하려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죽이시면서까지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언제나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든 원수들을 다 소멸시키시며 우리를 건져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이렇게 건져내십니다.

4. 여호와께서 새 일 행하실 것을 약속하심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심

본문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일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것과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어주시고, 십자가의 구속의 도를 통해서 택한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일이 새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사막 같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생명의 역사가 강같이 넘쳐나갈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생명수 강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영생 길을 주셨습니다.

1) 시랑과 타조와 같은 자를 구원하심 

본문 20-21절에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랑같이 사납고, 악독하고, 잔인하며, 또 타조와 같이 무정한 이방 죄인들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생수를 마시게 하시며, 하나님을 공경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시랑은 물어 뜯고, 싸우고, 다투며 잡아먹는 잔인한 짐승으로, 이리를 가리킵니다.
또 타조는 알을 사막에 낳아놓고는 돌보지 않습니다(욥 39:13-16). 이렇게 우리가 이리와 타조와 같이 잔인하고 무정한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아직도 우리에게 이리와 타조의 성격이 남아 있습니다. 이리와 같이 물고 찢는 성격, 남을 해하는 성격, 타조와 같이 사랑이 하나도 없는 무정한 성격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욥기 39장 13-18절에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 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찌라도 괘념치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조가 인자를 베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짐승 가운데 제일 무정한 것이 타조입니다. 타조는 자기 새끼도 모릅니다. 사막에 알을 낳아놓고는 달아나버립니다. 그러면 사막의 열기에 그 알이 부화가 되어 새끼가 나온다고 합니다. 보통은 어미가 알을 품고 있다가 깨게 하는데, 타조는 얼마나 무정한지 사막에 알을 낳아놓고 와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정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을 이루어나가야겠습니다. ‘무정합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이기주의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타조와 같은 성격을 회개하고, 이리와 같이 잔인하며 남에게 상처나 주고, 싸우기 잘하는 성격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 주기를 즐거워 하는 사랑을 가졌습니다. 이기주의로 나가는 것은 타조와 같은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교회와 교인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이기주의가 아닌가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오면 물고 찢는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물고 찢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가 옮겨집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2) 광야와 사막과 같은 세상에 길과 물을 내심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단비를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를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광야에 물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방은 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습니다. 광야는 본래 길이 없습니다. 사막으로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죽는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밀입국 하기 위해서 멕시코에서 국경을 몰래 넘어 미국으로 갈 때에, 미국 땅에 들어섰긴 섰는데 사막이라 굶어 죽기도 하고, 또 햇빛에 병이 나서 죽는다고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미국 땅으로 넘어갔다가 사막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내주셨습니까? 길을 내주셨습니다. 길 하나 찾은 것이 귀한 것입니다. 또 길로 좀 가다 보니까 무엇이 있습니까? 강물이 흐릅니다. 강물을 마시면서 그 길로 가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길’은 무엇입니까?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요14:6). 그리고 ‘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수를 주셨고, 또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시랑과 타조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수를 마시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며 바른 길, 생명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더불어 연합된 생활을 할 때에 생명 강수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육신으로 돌아서면 강수가 다 마릅니다. 생수는 영에서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으로 돌아서면 생명 강수가 다 마르고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을 붙들고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알게 하셔서 바른길을 걷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야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생활을 하면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려 갑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수를 마시면서 광야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가는 것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며, 그 길이 천당 가는 길이며, 영생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길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길도 여러 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바른 길을 찾아서, 바른 길로 가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바른 길을 잃어버리고 곁 길로 가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겠습니다. 바른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5.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해 지음 받음

본문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서 건지시는 것도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며, 복음으로 모든 택한 백성을 건져내시는 것도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입니다(엡 1:6). 하나님께서 이리와 타조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됩니다. 그러면 생활 전체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고, 인격 전체가 하나님의 찬송이 됩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은 것이 변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입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하고, 생활로 찬송하고, 인격으로 찬송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전체 생활이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려고 하나님께서 택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또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6. 이스라엘의 범죄와 사죄

본문 22-24절에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막에 길을 내시고, 광야에 강을 내시며, 이리와 타조와 같은 자들을 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 백성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괴로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에도 나가기 싫어하고, 하나님 섬기기를 괴로워합니다. 또 번제와 양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마땅한데, 제물도 하나님께 바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벌벌 떨면서 바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많이 주셨는데,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칠 것을 바치지 않으며,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하면서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힌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하였는가를 생각해보고 회개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셨는데, 우리도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피와 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죄를 사해주시고, 깨끗케 해주시며,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38장 17절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등 뒤에 우리의 죄를 다 던져버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공로로 사해주시고, 하나님께서 기억도 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시며 영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못된 짓을 했어도, 패역무도한 짓을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영접해주시고, 허물을 도말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렇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영접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6-28절에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저주와 욕을 들으며 비방거리가 된 것은 그들의 시조와 교사들이 하나님을 배역하였고, 그 후손들은 그것을 본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며 죄악의 길로 갔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해주시고, 죄를 그대로 가지고 나가면 다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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