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원 역사
이사야 42:1-25
이사야 42:1-25
1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8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10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13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14내가 오래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15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16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18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보라 19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20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21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22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23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24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2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1. 그리스도의 고요하고 자비하신 은택
그리스도 사역의 개요
본문 1-4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종이라고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버리셨습니다.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시는 방법
본문 2절에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8장 4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조용합니다. 쬐이는 햇빛같이 조용히 쬐여 나갑니다. 가을 더위의 운무같이 소리도 없고 들리는 것도 없습니다. 햇빛이 조용히 쬐여나가지만 그 빛으로 만산 초목을 다 소생케 합니다. 떠들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햇빛이 떠들면서 만산 초목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 18-21절에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투셨습니까? 떠들썩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게 햇빛이 쪼이는 것처럼 그렇게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세미한 음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떠들썩한 것, 바람, 지진, 불이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고요해진 가운데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떠들썩한 것은 세미한 음성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요 4:24). 신령으로 영적인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고, 진리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일광이 고요하고 은밀하게 쪼이는 것처럼, 신령한 세계를 찾아서 영적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려야 하고, 진리에 맞게 드려야 합니다. 햇빛은 아무 소리가 없지만 쬐여나가면 모든 것이 소생해 올라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그와 같습니다. 들리는 소리가 없고 떠드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고요히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은밀하고 세밀한 음성으로 골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이루어져나가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눈으로는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고요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이루어나가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에 큰 일이 일어난 것같이 떠들썩하고, 신령한 영적 세계에서 하지 아니하며 육신의 세계에서 하는 이들은 타락된 종교가들입니다. 종교가 타락한 증거입니다. 말세의 교회는 떠들썩합니다. 예전에 사용하지 않던 드럼, 제금 등을 사용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기도원들도 예전에 없었던 것들을 해놓습니다. 북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고요하던 교회들도 얼마 있다 보면 떠들썩한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무당 굿하는 것과 같은 교회도 있습니다. 가수들을 돈을 주고 불러다가 찬양을 시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열광적으로 찬양을 하다가 예배가 시작되면 그 가수들은 갑니다. 가수들은 돈 벌러 왔으니까 노래해주고 나면 자신들의 일이 다 끝났으니까 그냥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떠들썩하면 안 됩니다. 은밀한 음성, 세미한 음성을 듣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오락 등으로 모인 사람들을 흥분시킵니다. 요즘에는 교회가 오락장입니다. 교회가 음악당이 되었습니다. 또 찬송도 하겠지만 복음 성가를 합니다. 그리고 춤을 추는 교회도 있습니다. 춤도 그냥 춤이 아닙니다.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여자들이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었는데 속이 다 비칩니다. 그런 것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춥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음악당으로 만들고, 음란하고 방탕하는 장소로 만드는 악한 일입니다. 교회를 연애하는 장소로 만들고, 남녀가 음행하는 장소로 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은 교회라고 할수 없습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이 되었습니다. 진리에서 떠나고 떠들썩합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송 목사가 가 있는데, 거기에도 교회마다 다 떠들썩하답니다. 그런데 우리교단은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교회 허가를 내려고 하는데, 어느 교회에서 왔느냐고 묻길래 계약 신학 계통에서 왔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 교단은 조용해서 좋다고 하더랍니다. 거기에서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즈벡 수도에 몇 십 명의 다른 교단 선교사가 교회 허가를 못 받고 있는데, 우리 교단은 허가
를 받았습니다. 고요하게 하니까 좋다고 합니다. 하여간 어디를 가나 떠들썩합니다. 벚꽃 기도원, 노엘 기도원도 드럼을 사다놓았습니다.
교회마다 복음 성가를 떠들썩하게 합니다. 물론 복음 성가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을 하려다 나쁜 것이 같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복음 성가는 곡조부터 세상 곡조입니다. 아리랑 곡조, 방탕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곡조, 락(rook)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곡조, 귀신 부르는 곡조 등 세상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곡조가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되 가사를 고쳐서 교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음녀(淫女)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원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떠들지 아니하고 외치지 아니하며 고요하게 나가야 합니다. 일광에 쪼여서 모든 것이 소생하는 것처럼, 참된 교회는 그렇게 해나갑니다. 우리는 고요한 교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나가는 교회, 은밀한 골방과 같은 교회, 세미한 음성을 듣는 교회를 유지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이 되어도 교회는 타락이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은밀한
골방 생활을 하며 세미한 음성을 듣고 떠들지 않고 고요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진리만 가르치고 영을 살리는 참된 교회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또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참 교회를 끝까지 세워나가야만 합니다.
골방 생활을 하며 세미한 음성을 듣고 떠들지 않고 고요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진리만 가르치고 영을 살리는 참된 교회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또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참 교회를 끝까지 세워나가야만 합니다.
본문 3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십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십니다. 상한 갈대를 싸매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기름을 쳐서 등불이 잘 비춰나가게 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본문 4절에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 사역은 쇠하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고 계속 창성하여 온 세상에 공의와 진리를 전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공의로 이루어진 복음을 전파할 것을 가리킵니다.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한다’고 하였는데, ‘섬들’은 모든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방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공의로 이루어진 복음을 전파할 것을 가리킵니다.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한다’고 하였는데, ‘섬들’은 모든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방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하심
그리스도 구원 사역의 내용
본문 5-9절에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에 빛을 비추어주시고 갇힌 자를 옥에서 나오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흑암에 처한 자를 간(間)에서 나오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간(間)’은 방 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3. 여호와의 구원 역사가 열방에 퍼짐
그리스도 구원 사역의 결과
본문 10-13절에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가서 대적을 치시
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4-17절에 “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소경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해주시고, 또 그들의 길을 알지 못하는 첩경, 곧은 길로 인도해주시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시고, 굽은 데를 곧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해서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잘해주십니다.
흑암이 와도 광명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 순종만 하면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하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곧은 길로 인도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굽은 데를 곧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굽은 길이 곧게 됩니다. 험한 길도 평탄해집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아서 순전한 마음으로 순종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흑암이 와도 광명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 순종만 하면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하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곧은 길로 인도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굽은 데를 곧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굽은 길이 곧게 됩니다. 험한 길도 평탄해집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아서 순전한 마음으로 순종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4. 여호와의 종들이 도적을 맞으며 굴과 옥에 갇힘
여호와의 종들이 순종치 않으므로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며 굴과 옥에 갇히게 됨
본문 18-19절에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타락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쓰지 아니하고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하며 다 잠자고 좁니다. ‘소경’이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
느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종들이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종이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믿는 일을 하지 않고 고요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떠들썩하니까 다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종들이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종이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믿는 일을 하지 않고 고요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떠들썩하니까 다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것을 봐도 유의치 않고 귀가 밝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잘 보고 잘 듣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안 듣고 세상 것만 듣고 돌아다닙니다. 세상 이야기를 하면 귀가 번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 모릅니다.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본문 21절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해주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믿고 따라오게 하심으로 존귀하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본문 22절에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귀케 하시려고 신령한 교훈을 주셨는데, 그것은 따라가지 않고, 정욕을 따라가고, 자기 생각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다가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했습니다. 굴 속에 갇히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 속’은 어둠이고, ‘(감)옥’은 자유가 없는 데입니다. 타락된 종들은 이렇게 흑암에서 돌아갑니다. 자유와 빛을 잃어 버리고 돌아갑니다. 흑암에서 흑암으로,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였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나갈 요소를 전부 도적 맞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 요소와 구원을 이루나갈 요소, 달란트 장사할 본전과 므나 장사할 본전을 전부 도적 맞고 탈취당하여 가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나갈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나가지 않으므로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며 굴 속에 갇히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들과 백성들에게 잘해주시려고 말씀을 순종시켜서 존귀하게 해주시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흑암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빛인데,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니까 빛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자유가 있는데, 진리를 순종하지 않으니까 감옥에 갇혀서 자유가 없습니다. 요새 교회도 세상 오락, 세상 풍속, 습관, 귀에 즐거운 이야기, 육신 중심, 물질 중심으로 나갑니다. 교회가 쾌락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만들 요소와 구원을 이루나갈 요소, 달란트 장사할 본전과 므나 장사할 본전을 전부 도적 맞고 탈취당하여 가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나갈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나가지 않으므로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며 굴 속에 갇히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들과 백성들에게 잘해주시려고 말씀을 순종시켜서 존귀하게 해주시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흑암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빛인데,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니까 빛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자유가 있는데, 진리를 순종하지 않으니까 감옥에 갇혀서 자유가 없습니다. 요새 교회도 세상 오락, 세상 풍속, 습관, 귀에 즐거운 이야기, 육신 중심, 물질 중심으로 나갑니다. 교회가 쾌락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도적 맞은 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도적 맞고 탈취 당하여 다 빼앗겼지만 이제라도 나와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굴 속, 감옥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기에도 흑암에 갇힌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흑암을 만나서 빛이 없고, 감옥과 같은 생활, 자유가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나가라는 증거는 도둑을 맞았습니다. 도적 맞았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탈취를 당하였습니다. 억지로 빼앗겼습니다. 구원을 이루어나가라고 주신 시간, 건강, 마음, 환경, 물질을 가지고 이기지 못하고 나가니까 결국 빼앗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 붙잡혀 강제로 다 빼앗겼습니다.
이겼으면 되는데, 이기지 못하니까 탈취를 당하는 것입니다. 붙잡혀 끌려갑니다. 영적 소원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인데, 환경에 빼앗기는 것입니다. 환경을 이겨야 하는데, 다 빼앗깁니다.
어떤 교인이 주일날 못 나왔습니다. 왜 못 나왔느냐고 물어보니까 결혼식에 가느라 못 나왔다고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야지, 결혼식에 가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라고 하시는데, 친척은 결혼식에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기고 하나님 앞에 나왔으면 안 빼앗길 텐데, 그만 결혼식에 가서 자기를 빼앗겼습니다. 자기가 없어진 것입니다. 탈취, 흑암, 감옥에 갇히고 도적을 맞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시대적으로 예수님 재림이 얼마 안 남았고, 개인적으로 보면 이제 천당 갈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리 저리 다 빼앗기고 준비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감옥에 갇혀서 영적 자유가 없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요즘에 교인들 가운데 빛 가운데에서 신앙의 자유대로 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해야 빛이 옵니다. 그런데 앙망하는 것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계속해서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앙망하는 생활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계속 하나님을 앙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나의 사정을 알아주시고 원통
한 것을 풀어주십니다. 또 안 풀어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앙망해서 하나님을 모신 것이 억만 배 더 낫습니다.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사정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면 그 사정보다 더 나은 사정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다 해결해주십니다. 우리가 탈취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일심정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앙망하고 말씀을 받아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탈취를 당하지 않고 감옥에 갇히지 않고 빛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을 맞게 하시고 빼앗기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도적 맞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죄를 범함으로 도적 맞게 하신 것입니다. 또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로 가지 않고, 제 길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도적 맞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도적 맞게 하시고 탈취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흑암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다 빼앗기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치 않는데 하나님께서 가만히 놔두시겠습니까? 다 잃어버립니다.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있는 것을 다 빼앗깁니다. 건강도 빼앗기고, 시간도 빼앗기고, 물질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깁니다.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정조도 빼앗기고, 재산도 빼앗기고, 다 빼앗깁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므로 도적이 꿈쩍하지 못합니다. 도적이 못 옵니다. 와도 슬슬 겉에서만 돌지 못 들어옵니다. 흑암이 없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니까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적을 맞은 다음에는 성경 어디를 봐야 합니까? 이사야42장 24절을 보면 됩니다. 도적 맞은 다음에 이것을 보면 됩니다.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도적 맞은 다음에는 이사야 42장 24절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도적 맞은 다음에는 이것을 보면 되지만, 다른 사람이 도적 맞은 데에 심방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어서 가뜩이나 마음이 상해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이 더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도적 맞은 사람에게 심방을 가서는 그저 믿음을 잘 지키라고 하면 됩니다.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게 만들어주시니 하나님만 찾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본문 42장 24절을 보면 됩니다. 왜 도적 맞았습니까?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도적 맞았다.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도적 맞았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여야 되겠습니다.
본문 25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방에서 불이 타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비방하는 것보다 자기가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임을 언제나 자기가 지고 자기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바로 세워주십니다. 도적 맞았다고 원망하지 말고, 흑암에 갇혔다고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해서 새 힘을 얻고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보충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도적 맞은 것 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로 서면 주시되, 억울한 사정 당한 것을 하나님께서 보충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비방하는 것보다 자기가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임을 언제나 자기가 지고 자기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바로 세워주십니다. 도적 맞았다고 원망하지 말고, 흑암에 갇혔다고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해서 새 힘을 얻고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보충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도적 맞은 것 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로 서면 주시되, 억울한 사정 당한 것을 하나님께서 보충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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