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9일 토요일

이사야 41:17-29 하나님의 구원 사역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구원 사역
이사야 41:17-29

17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21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23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25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
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 26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27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28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29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1. 빈핍한 자에게 생수를 주고 광야를 소생시킴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을 보고 모든 사람이 깨닫고 감사하게 됨

본문 17절에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
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로 구원에 참여하게 해주십니까?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수를 먹을 자는 어떤 자입니까? ‘가련하고 빈핍한 자’라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 갈급증이 난 사람, 또 혀가 마른 사람, 어떻게 하든지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사람, 원하는 사람, 목마른 사람, 어떻게 하든지 하나라도 얻어먹어야 사는 줄 알고 주리고 목마른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모하는 자는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배부른 자와 웃는 자와 부요한 자는 돌봐주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사모하는 마음, 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산에 강을 내십니다. 나무가 하나도 없는 빨간 산, 메마른 산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 또 광야로 못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마른 땅에 샘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자산, 광야, 사막, 마른 땅에 샘이 나게 하시고, 생수가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강이 흐르게 하시고 못이 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들로 거기에 와서 그것을 마시고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구원 운동을 해나가십니다. 생수 운동을 해나가시며, 메마른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 마른 땅과 같은 이 땅에 그것을 풍성히 내리워주십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 사모하는 사람은 다 와서 생수를 마시고 영생하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는 백향목이 나게 하시고,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으시며, 또 사막에 샘물이 나게 하셔서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으로 함께 자라게 하십니다. 마른 땅에 나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샘도 없는 마른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나 사막에 샘물이 나게 하셔서 이렇게 백향목, 싯딤나무, 화석류, 감람나무, 황양목, 소나무 등 많은 나무가 거기서 소생하게 만들어놓으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이 세상에 풍성하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0절에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른 땅에 샘물과 나무가 나게 하시고, 골짜기에 샘물이나고, 사막에 샘물이 나며, 붉은 산에도 나무가 나게 하시고, 그것들로 무성하게 해주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외에는 미래사를 알지 못하고 화복(禍福)을 주지 못함

우상은 과연 아무것도 아님

본문 2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야곱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상들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고 하였는데, 우상들이 진술할 수 없습니다.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고 하였는데, 전에 일이 어떠한 것을 우상이 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라’고 하였는데, 장차 어떻게 될 것을 우상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들이 보일 수 없습니다.

본문 23절에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고 하였습니다. ‘후래사(後來事)를 진술하라’는 것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라는 것인데, 우상은 전에 일도 보일 수 없고 후대에 일어날 것도 보일 수 없습니다. ‘너희의 신됨을 우리가 알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보여주면 알겠다는 것입니다. 또 우상에게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고 하였는데, 우상을 보고 복을 내려 봐라, 또 화를 내려 봐라. 그러면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복을 내리지도 못하고 화를 내리지도 못합니다. 우상이 어떻게 복과 화를 내릴 수 있습니까? 우상이 장래사를 알 수 있습니까? 또 전에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또 우상이 소송할 수 있습니까?

본문 24절에 “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요, 허망하며 우상을 택한 자는 가증한 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과 같이 섬기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는 줄로 알고 섬기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만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만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줄 알고, 하나님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 세상이 복을 준다, 어떤 사람이 복을 준다, 어떤 직장이 복을 준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줄 믿고 하나님만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심과 심판하심을 세상이 알지 못함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 예언

본문 25절에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일으켜서 북방에서 오게 한다는 것은 고레스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북방에서 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고레스 왕이 와서 유다 나라를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백성들로 포로 생활하던 것에서 돌아오게 해줄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해주실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한다’고 하였는데, ‘해 돋는 곳’은 동방으로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에서, 각처에서 모든 택한 백성들을 다 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앞으로 고레스 왕이 와서 세상 방백들을 다 정복하고 회삼물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다 밟아 치우고 그만둔다는 뜻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을 때에 고르게 밟지 않습니까? 한 쪽만 밟는 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 사방을 다 밟아야만 진흙이 잘 이겨질 것 아닙니까? 그와 같이 전체를 다 어디 하나 놔두는 것 없이 모질게 밟아치웁니다. ‘회삼물같이 밟을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회삼물(灰三物)’이라는 것은 쇳가루, 모래, 황토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시멘트, 콘크리트가 없으니까 쇳가루에다 모래를 섞고 거기에다 황토를 섞었습니다. 그 세 가지를 잘 섞어가지고 잘 밟아야만 그것이 잘 섞어집니다. 그래서 옛날 집들을 보면 쇳가루를 발라놓은 것이 있습니다. 기와 부분을 보면 쇳가루로 그 사이를 발라놓은 것이 있고, 어떤 성벽에 가서 보면 돌 사이에 쇳가루를 바르고 쌓아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오래 가도 성벽이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요새 시멘트, 콘크리트와 같이, 옛날에는 쇳가루에 황토를 섞은 것입니다. 풀처럼 오래 단단히 잘 붙어 있으라고 섞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모래를 섞을 때는 잘 밟아야 합니다. 한 쪽을 안 밟으면 갖다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방을 다 밟아야 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도 한 곳도 남기지 아니하고 사방을 다 밟아야만 잘 이겨집니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와 같이 앞으로 고레스 왕이 와가지고 이 세상 방백들을 한 곳도 남김없이 다 밟아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준다는 것입니다. 또 그와 같이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을 다 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레스 왕에 대한 언급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같이, 회삼
물을 밟는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 정복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시고 구원해내실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땅 끝에서부터 사방으로 다 건져내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나님을 공경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이루심

본문 26절에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고한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나오기 전에 누가 고한 자가 없었고, 또 누가 이 일을 알게 한 자도 없었고, 누가 옳다고 말한 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말을 듣는 자도 없었습니다. 아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생각도 못했던 일을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속해주시는 것도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또 복음을 전해주셔서 택한 백성이 구원받게끔 해주신 것이고, 바른 길로 이렇게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시면 다 됩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한 일이 다 됩니다.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시면 다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에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됩니다. 사람이 계획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셔야 되고, 여호와께서 집을 짓게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의 팔을 펴주셔야 합니다. 구원의 팔을 펴주시면 사람이 알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날 이북에도 하나님께서 손을 한 번 펴주시면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때가 되면 다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전할 자를 예비하심

본문 27절에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자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자를 보라는 것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인데, 믿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사는 곳이 시온입니다. 시온 성과 같은 교회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잘 지키고 믿음으로 살면 교회가 시온 성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믿음으로 살면서 믿음을 잘 지키면 시온 성에 사는 것이 됩니다.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기쁜 소식 전할 자’는 복음을 전할 자를 말합니다. 복음은 히브리어로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인데,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할 자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전할 자를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한 자는 와서 전하여야 합니다. 또 보내라고 하시는 곳에는 복음 전할 자를 보내야 합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는 자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발입니다. 그 발이 산을 넘어가므로 산 너머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 아닙니까? 산을 넘어가는 것에 고난이 많지만, 십자가를 지고 결사 각오를 하고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발자취는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도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는 자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그것에 대한 상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 산을 넘으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고, 자라나게 됩니다. 또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상당히 귀한 것입니다. 심방하는 일, 전도하는 일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가서 성경말씀으로 가르치는 일, 그것이 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적 예루살렘에서 사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주셨는데, 이제 우리는 가라고 하면 “네. 내가 여기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시옵소서”하고 무조건 가는 것이고, 전하라고 하면 무조건 전하면 됩니다. 예레미야는 못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못 가겠다고 하였습니까? 예레미야 1장 5-7절에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니, 예레미야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른다고 하지 말고 두 가지만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없다. 무엇이 없다”하지 말고 두 가지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라고 하였습니다. 가라는 곳에 가라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그대로만 말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가라하면 가라 하는 곳에 가면 되고, 가서 이 말을 하라고 하면 그 말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었다’는 것은 전할 책임을 신약 교회에다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종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전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아이들이 나와서 얼마나 잘합니까? 아이들에게도 복음 전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보내야 합니다. 보내야 전합니다. 보내지 않으면 전할 수 없습니다.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었는데, 여기에 와서 배울 사람, 예루살렘에서 나가서 구원할 사람인 유년부 아이들도 보내고 합니다. 아이들을 다 보내십시오. 이런 구원 역사가 세계적으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서 땅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하여야 되겠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무지하고 허무할 뿐임

본문 28-29절에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도 모릅니다. 또 북방에서 한 사람이 와서 토기장이가 회삼물을 밟도록, 진흙을 밟도록 세상을 밟아서 심판하고 그 다음 택한 백성을 건져내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어도 한 사람도 대답하는 자가 없고 모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다 허탄합니다. 공허하고 허무하며 허탄한 것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헛된 것입니다. 허탄한 일, 바람 잡는 일입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은 바람을 잡으러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무슨 행복을 주거나 화를 주지 못합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다 우상과 같이 허무할 뿐입니다.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입니다. 하여간 하나님 섬기는 것만 생명이 있고 영원하고 참된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져나가고 구원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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