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30일 일요일

이사야 45:1-25 섭리(攝理)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섭리(攝理)
이사야 45:1-25

1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2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4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9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10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13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4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15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8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19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20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21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23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24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25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해서 고레스에게 큰 권세를 주심

고레스 왕을 쓰시기 위하여 붙들어 세우심

본문 1-2절에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된 상황에서 돌아오게 할 것을 가리킵니다. ‘기름받은 고레스’는 고레스 왕을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는다’는 것은 고레스 왕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또 ‘열왕의 허리를 푼다’는 것은 고레스 왕이 열국의 왕들을 쳐서 그들로 힘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게 큰 권세를 주시므로 그가 열왕을 정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막을 자가 없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또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보다 앞서 가시면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해주시고, 대적의 성읍들의 문과 쇠빗장을 꺾으시어 고레스 왕이 열국을 정복하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국을 정복한 고레스 왕에게 많은 재물과 보화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게 이런 큰 권세와 재물을 주신 목적은 고레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사용하시기 위해 이렇게 큰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운동을 위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임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 운동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줄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 운동에 우리를 한 몫 쓰시려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해서 이방 나라의 왕들도 이용하시고, 원수도 이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에 큰 권세와 많은 재물을 주신 것도 전 세계 택한 백성의 구원 운동을 도우라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소련이 미국에 원조를 요청할 때에 미국은 소련 내에 기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조건으로 원조 요청을 수락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스탈린이 미국의 원조를 받으려고 그 조건을 수락했다고 합니다. 한국도 6. 25 사변 때에 UN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공산화되고, 기독교는 말살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UN군을 동원시키셔서 한국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6. 25사변 때에 UN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다 공산화 되었을 것입니다. 또 미국이 1차 대전 때, 곧 대동아 전쟁 때에 일본에 원자탄을 사용하여 일본이 8월 15일에 항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에서는 8월 17일에 한국에 있는 모든 목사와 장로들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미국에 원자탄의 세력을 주신 것도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을 건져내시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재물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바로 사용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 쓰면 어떻게 됩니까? 안 쓰면 하나님께서 환난이 오게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큰 세력과 재물을 주신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 혼자 잘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다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많은 번영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빼앗아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고 큰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건강이 있다. 재물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수전노(守錢奴) 노릇을 하지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고, 앞으로 더 잘되는 길이고, 여러 생명이 살아나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을 위해서 고레스 왕에게 큰 세력과 재물을 주시고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고레스는 이방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칭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레스가 바사 왕이 되고 그 칭호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서 된 것입니다. 고레스는 ‘나의 종, 나의 목자(사 44:28), 나의 기름받은 자(1절)’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본문 5-6절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구원을 베푸셔서 하나님만 참 신이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있기 있지만, 마귀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네 띠를 동일 것이요’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게 권세와 힘을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2.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심

본문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도 창조하시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습니다. 평안도 지으시고, 환난도 창조하셨습니다. 필요할 때에 쓰시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다른 신이나 우상들은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을 조성하지도 못하고 주장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주장하십니다. 빛이 좋지만 빛만 있으면 안됩니다. 어두움도 있어야 합니다. 잠을 자려면 밤에 자야지, 낮에 자면 밤에 자는 것만 못합니다. 이와 같이 평안만 있다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평안만 있으면 연단이 되지 않습니다. 환난도 와야 연단이 되고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평안만 있어서는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도 기를 때에 늘 평안하게만 해주면 안 됩니다. 심부름도 시키고, 일도 가르쳐주어야 아이가 만들어집니다. 딸을 기를 때에 사랑한다고 해서 물 한 그릇도 떠오라고 하지 않고 길러놓으면,그 다음에 그 딸이 시집을 가서 사람 노릇을 못합니다. 시집가서 잘 살도록 “물 떠 오너라. 밥해라. 불 피워라. 마당 쓸어라”는 등 다 시켜야 합니다. 직장도 다녀보고, 쓴 고통도 당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필요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빛과 평안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며, 어두움과 환난은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어두움을 창조했다는 것은 마귀를 창조했다는 뜻도 있습니다. 마귀는 어두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창조하셨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는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털끝만큼도 어두움이 없습니다. 죄는 마귀로 부터 오는 것이며, 죄의 책임은 마귀에게만 있습니다. 죄책은 하나님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께는 죄가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론에는 안 맞습니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이치에 안 맞기 때문에 믿고, 불합리하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고 불합리한 것 같으나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의 이치에 맞고 합리한 것만 우리가 따른다고 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과 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의와 구원을 유다 백성에게 베푸셔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구원을 택한 백성에게 베푸실 것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궁창과 땅에서 의를 내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천지에 가득하여 천지 어디서나 그 의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의 구원 계획을 미리 세우시고, 그 계획대로 실천 하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9-10절에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주권으로 바벨론에서 유다백성을 해방하시는 것에 대하여 누구도 힐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란 질그릇 조각이 토기장이에게 기술이 없다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질그릇 조각과 같은 인간이 하나님께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항거할 수 없으며(롬 9:20-23),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항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에게 “왜 나를 이렇게 낳았습니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부모님께 감사하며 보답하는 신앙을 가져야지, “나를 왜 이렇게 낳았습니까? 차라리 안 낳았으면 좋았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왜 공부를 안 시켜주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공부를 자기가 해야지, 부모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합니까? 고학(苦學)을 해서 성공한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에 형들이 그를 팔았지만, 애굽에 가서 거기서 믿음을 잘 지키므로 총리 대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부모 핑계 댈 것 없습니다. 부모를 핑계하며 원망하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또 부모를 원망하는 자는 화를 받습니다. 절대로 부모를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지고 겸손하게 나가야지, 다른 사람을 원망하면 안 됩니다. 특히 부모를 원망하면 저주 받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도 큰 죄인데, 하나님께 왜 이렇게 했습니까? 하고 따지는 사람의 죄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반항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비방하는 말입니다.

3.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들이 석방될 것을 예고하심

본문 11-13절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차 신약시대에 세계 열방이 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가리킵니다.

4. 열방이 이스라엘에게 굴복케 됨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이방인들을 통해서 필요한 것이 공급될 것을 가리킵니다. 또 동시에 모든 이방 나라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가리킵니다(스 1:4, 6). 그때에 이방인들이 “너희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신으로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음

본문 15-17절에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할 때에 그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면 국가의 세력이 우상이고, 돈을 의지하면 돈이 우상이고,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이 우상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우상을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 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가 견고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언약도 견고한 것을 믿어야 하고, 그 언약대로 자기 백성을 틀림없이 구원해주실 것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흑암 가운데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시고 누구나 쉽게 다 알 수 있도록 드러내서 말씀하셨습니다.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각주에 ‘헛되이’는 ‘혼돈하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혼돈이나 흑암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서 명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의롭고 정직합니다.

본문 20-21절에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고 하였는데, ‘피난한 자’는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 유다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킬 때에 하나님께서 참 신이시며,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은 헛된 것인 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열방 중에 있는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불러낸다는 뜻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란 장차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스펄전 박사를 회개시킨 유명한 성구라고 합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 갔는데, 그 시골 교회의 전도사가 새벽 기도 때에 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에 회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말이 귀한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땅을 쳐다보고 살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구원을 얻고, 새 힘을 얻으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앙망(仰望)’은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본문 23-25절에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만 의와 힘이 있으며, 하나님께 노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던 자들은 다 수치를 당하게 되며, 하나님의 백성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또 신약시대에 복음을 믿는 자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만 자랑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제는 모든 무릎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와서 꿇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맹약하게 됩니다. 최후의 승리는 성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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