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 토요일

아가 5:1-16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심
아가 5:1-16

1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2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6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7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8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9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10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11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12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14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15다리는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16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1. 주님께서 성도를 즐거워하심

본문 1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의 말인데,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를 향해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예수님의 동산입니다. 내 동산은 성도의 심령 속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심령 속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동산입니다.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주님과 교통하면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고 꽃이 만발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예수님은 그 동산에 들어와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젖을 마십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내를 내면 예수님께서 그 향 재료를 거두십니다.

‘꿀송이와 꿀을 먹고’라고 하였는데, 꿀송이와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시 19:10).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된 성도의 심령 속에는 꿀과 꿀송이가 가득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꿀송이보다 달게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 성도의 심령 속에 오셔서 즐거워하십니다. 성도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같이 먹습니다.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라고 하였는데, 포도주는 구속의 은혜를 가리키고, 젖은 진리, 즉 신령한 양식을 가리킵니다(사 55:1; 벧전 2:2).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간직하면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서 뛰놀게 됩니다. 그것이 성도 속에 있는 포도주와 젖이며 주님이 제일 먼저 마시고, 다음에는 예수님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이 마시도록 하십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고 하였는데, ‘나’라는 말이 한 절에 열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내가 내 동산에, 나의 몰약, 나의 꿀송이, 내 포도주, 내 젖, 나의 친구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열 번이나 예수님께서 성도에게 찾아오셔서 같이 먹고, 같이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고 하였는데,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은 예루살렘 여자들을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자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가 넘쳐나오니, 그 향기로움과 아름다움을 예수님이 먼저 거두시고, 다음에 다른 성도들에게도 나눠주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심령 속에 은혜와 진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예수님이 오셔서 즐거워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잔치집이 됩니다. 술람미 여자와 같은 성도가 한 교회에 몇 사람만 있어도 온 교회가 즐거워하게 됩니다.

2.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심

신앙의 잠이 듦

본문 2절에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술람미 여자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교통하였으나 여기서 잠깐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들도 때때로 신앙의 잠이 드는 수가 있습니다. 노아가 신앙의 잠든 때에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있었고, 세례 요한은 신앙의 잠든 때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잠이 든 다음에는 알쏭달쏭
해집니다. 과거에 확실히 증거하던 일도 ‘그런가, 안 그런가’하고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아브라함도 신앙이 잠든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고, 다윗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 범죄했습니다. 엘리야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 로뎀 나무 아래에
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 잠든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신앙의 잠이 들었으나 마음은 깨어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깨어있다’는 것은 자면서도 ‘이래서는 안 되는데, 예수님을 찾아 만나야겠는데, 처음 사랑과 처음 은혜를 다시 찾아야 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 믿던 성도가 신앙의 잠이 들어도 전에 받은 은혜를 늘 생각합니다. 이전에 어떻게 말씀을 들었으며, 어떻게 주님을 따라다녔으며,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은혜를 받았던가를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앙이 타락되고 믿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깨어나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깨어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신앙이 잠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밤새껏 이슬을 맞으시며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하시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머리에는 무엇이 가득했다고 하였습니까? 이슬이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밤이슬이 가득하도록 문을 두드리고 계셨지만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어가지고 어느 정도 문을 두드리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을 안 열어주고 예수님을 밤새도록 밖에 세워놓고 밤이슬이 가득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밤새도록 밖에 계시게 하고, 예수님 몸에 밤이슬이 가득하게 해놓는 것은 아주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가시지 않고,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이슬을 맞으시면서 계속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은 무한한 사랑입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감동을 주고 양심에 가책을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문을 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나가는 완고한 문, 자기의 지혜와 지식으로 닫아 놓은 문, 물욕․정욕․사욕으로 기울어져서 닫힌 마음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안일

본문 3절에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하나님의 일하던 것을 그만 두고, 옷을 벗고, 발을 씻고, 마음 놓고 자려고 침상에 누운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잡니까? 옷을 벗고 잡니다. 또 발은 어떻게 하고 잡니까? 발은 씻고 잡니다. 이것은 다 걷어 버리고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무엇을 또 계속 하겠느냐? 이제는 다른 사람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주의와 안일주의와 자유 방종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6장 3-8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침상에 눕습니까? 상아 침상에 누웠다고 하였습니다. 침상 가운데 상아 침상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또 살찐 송아지를 잡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립니다. 포도주는 대접으로 마십니다. 성경에 포도주는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값비싼 기름을 사다가 바릅니다. 요새 남자들도 목욕탕에 가보면 몸에 계란, 우유 등을 바릅니다. 다른 곳에서는 굶고 있는데 그게 무슨 짓입니까? 몸에 귀한 기름을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서는 근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믿음 지키다가 당하는 환난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환난이 계속 옵니다.

호세아 7장 14절에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를 갖다가 먹으면서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입니다. 발을 씻고 침상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하라고 하셨지, 그만 두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때에 순종만 하면 되는데,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힘들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는 심부름만 하면 됩니다.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해나가십니다. 그런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더럽히랴’라고 하며 안일과 방종에 빠져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틈으로 손을 들이미심

본문 4-5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문틈으로 손을 들이 밀었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좀 나서 일어났습니다.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특별한 감동과 역사가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통으로 감동시키는 것이고, 손을 들이미는 것은 특별한 감동, 특별한 역사로 성도를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주님의 특별한 섭리와 징계 등은 예수님이 손을 들이민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와 간섭이 있을 때 즉시 깨닫고 속히 문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문을 여니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지방에 뚝뚝 떨어진다고 하였는데, 얼마나 많이 바르고 잤습니까? 몰약을 얼마나 많이 발랐고, 몰약의 즙을 얼마나 많이 발랐기에 일어나서 문을 여는데 그 몰약이 뚝뚝 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귀한 기름을 몸에 뚝뚝 떨어지도록 바르고 잤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일어나지 않습니까? 옷을 벗고, 또 발을 다 씻고 있는데 어떻게 다시 입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예 완전히 자려고 작정을 하고 누운 것 입니다. 그런데 문틈으로 예수님께서 손을 들이 밀었습니다. 기회를 이용해서 감동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킬 때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냥 누워 있으면 문틈이 생깁니다. 문틈이 생기면 그제서야 “아이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디로 문틈이 생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문틈으로 손을 들이미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자녀, 남편, 사업 등 여러 가지 종류로 문틈으로 들이미실 수가 있는데, 그것은 특별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문틈으로 예수님께서 손을 들이밀었을 때에 술람미 여자가 일어나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름을 발랐기 때문에 문지방에 기름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성도들이 생활이 부요해지고 평안해지면 이런 자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들어오고 고통이 심할 때는 예수님께 부르짖고 예수님만 따라가려고 하지만 세상의 것이 넉넉해지고 풍성해면 심령의 잠이 드는 자가 많습니다.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아마나, 스닐,
헤르몬 꼭대기, 사자굴, 표범산으로 갈 때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예수님만 의뢰하고 전적으로 예수님만 따르나 평안해질 때에 신앙의 잠이 듭니다(호 13:5-6). 풍성해지고 평안해지면 육신의 일들이 많아져서 이것 저것을 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다 빼앗기고 주님을 잃어버
리기 쉽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서 바벨론의 최고 학문을 공부하게 하고 명예와 출세를 얻게 해주었을 때에, 거기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심령이 잠들지 않았습니다.

3. 술람미 여자가 주님을 찾아 나섬

본문 6절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고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라고 하며 후회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에 왜 문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까? 미리 일어나서 문을 열었더라면 예수님께서 가지 않으셨을 것이라면서 후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릴 때 일어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 물러가셨습니다. 그 후에 문을 열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만날 수 없고, 불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큰 일이 난 것입니까? 일어나서 문을 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벌써 예수님께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를 때 그 감동을 무시하면 그 사람이 부를 때에 예수님께서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찾을 때에 오지 않으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도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호세아5장 6절에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실 때에 안 열다가 그 다음에 아무리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하나님께 갈지라도 하나님을 못 만난다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8-30절에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찾을 때 속히 일어나 영접해야 합니다.
주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순종하며 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아무리 예수님을 찾으려고 해도 못 만납니다. 한번 타락하면 원상회복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저버리고 처음 사랑에서 떠났다가 다시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찾아도 못 만나고 불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해야 되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에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을 때에 해야 합니다. “힘들다, 고생이 많다, 교인들이 순종을 안 한다, 어려운 고통이 많다”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면 괜찮습니다. 사자굴도 괜찮고, 표범산도 괜찮습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므로 나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발자국만 떼면 거저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대로 거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 씻고 들어앉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한 시간 남았어도 발 씻지 말고 나가서 해야 됩니다. 한 시간 일한 것도 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할 기회를 한 시간만 주셔도 그것이 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깊이 타락된 다음에는 벌써 시기가 늦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틈으로 손을 들이미신 다음에 일어나서 물을 열었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벌써 예수님께서는 물러 가셨습니다. 찾아도 만나지 못합니다. 불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깊어진 것을 어떻게 압니까? 밤새도록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셔도 안 열어준 것은 타락이 깊어진 증거이고, 또 옷을 벗고 발을 씻고, 기름을 뚝뚝 떨어지도록 발랐으니까 얼마나 안일주의, 육체주의, 방종주의에 빠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유 방종, 이기주의 입니다. 자기중심이고 안일주의이고, 술 취한 것입니다. 술 취한 것은 술 먹는 것도 술 취하는 것이지만 세상에 도취가 되는 것도 술 취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과 노는 데 도취되면 안 됩니다. 취해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타락이 깊어진 것입니다. 자기 몸 하나 단장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는 돈을 아낍니다. 자기 위해서는 몇 천만 원씩 써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렇게 안 씁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것입니까?

요셉의 환난을 위해서는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이 깊어진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언제 일어났습니까? 문틈으로 예수님께서 손을 들이밀 때에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 일어났습니다. 안 일어 날 수 있습니까? 안 일어나면 죽겠는데, 마지막에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회개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데 얼마나 회개해야 되겠습니까? 어디에서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는가를 살펴보고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4-5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처음 사랑을 어디에서 떨어뜨렸습니까? 몸에 기름을 철철 바르다가 떨어뜨렸습니다. 또 어디서 떨어뜨렸습니까? 의복을 벗고 발을 씻고 침상에 눕다가 떨어뜨렸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편안히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옷을 벗었습니다. 옷을 벗지 않으면 밤낮 “오고 가라, 이것 해라, 저것 해라”고 해서 편안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 벗었습니다. ‘아, 이제 난 못한다’라고 하는 것이 옷을 벗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옷을 벗었으니 자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문틈으로 들이미시면 그때에는 안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일어나서 순종하려고 해도 벌써 예수님께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비슷한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잠을 자지만 그래도 마음은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양심은 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세계에 있는 성도들이 다 이와 같은 환경에 빠진 것 같습니다. 너무 평안하고, 너무 좋으니까 다 안일주의에 빠졌습니다. 다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언제 신앙의 잠에 빠졌습니까? 전쟁할 때에 신앙의 잠이 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침상에서 낮잠 자며 안일주의에 빠졌을 때에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일주의, 이기주의, 육체 중심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성자도 신앙의 잠이 들었는데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엘리야도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입니까?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고 거짓 선지자 850명을 숙청한 위대한 선지자인데 어디서 잘못했습니까? 이세벨이 잡아 죽이겠다고 하니까 도망치다가 로뎀 나무 아래서 기진맥진해서 잠들어서 죽여 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잠이 드는 것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너무 평안하고 안일주의에 빠졌을 때에 신앙의 잠이 들고, 또 너무 위급해서 죽을 지경에 빠졌을 때에 신앙의 잠이 듭니다. 엘리야 같은 경우나 세례요한 같은 경우는 너무 고난이 심하므로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신앙의 잠이 들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마나, 스닐, 헤르몬 꼭대기, 사자굴과 표범산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결사각오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7절에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후에 예수님을 찾으려고 다녔습니다. 다니던 중에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과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예수님을 물어보고 찾으려 하였지만, 도리어 그들에게 상처만 받고 웃옷만 빼앗겼습니다. 또 성벽을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니까 거기서 만났습니까? 거기서도 못 만나고 웃옷만 벗기었습니다.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 성벽을 파수하는 자는 교역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3절과는 달리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인도하는 교역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참 성도에게 상처만 주고 웃옷을 빼았습니다. 웃옷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입니다(계 19:8).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나간 것, 예수님의 형상을 입은 것을 말합니다. 잘못 가르치는 교역자는 그것까지도 빼앗아갑니다. 그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잘못 믿는다, 그렇게 믿으면 안된다”고 핍박하며(요 16:2),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며 세상과 짝하게 만듭니다(계 2:14, 20).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을 때에 제자들이 분히 여기며 마리아를 책망하며 괴롭혔는데(마 26:7-10), 이것이 상처를 주는 것이며, 웃옷을 빼앗는 것입니다.

영적 면에 손해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요새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신령한 골방에서 주님과 교통하던 신자가 깊은 신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에게 가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도 없고 도리어 상처만 받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왜정 말단에 많은 교회가 신사참배를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을 때에, 신사 참배를 주장하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젖이 안 나오고 죽은 피가 나온다”고 말하며, 그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옷을 벗긴다는 것은 성화를 제거시키는 것으로, 외부적인 부흥 운동, 전도 폭발, 열린 예배 등을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영적 면에 손해를 주고 외부적인 교회의 성장 방법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을 찾아다니다가는 손해만 본다는 것입니다. 상처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므나”라고 하였습니다. 참 성도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므로 병이 날 정도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은밀한 골방으로 돌아가 주님을 영접하는 데까지 나가야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술람미 여자와 같이 침상에서 옷을 벗고, 기름을 바르고, 사치 향락하며 자기중심, 자유 방종 주의로 살았는데, 이것을 회개하여야겠습니다. 주님을 찾으려고 일심전력을 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영이 깨어 있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하게 회개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병이 날 정도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4.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자의 주님을 향한 사랑을 알지 못함

본문 9절에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성도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 말씀을 전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볼 때에 보통 신자들인 예루살렘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의문을 갖고 질문하게 됩니다.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주님은 어떤 분이기에 그 분을 사랑하므로 병까지 났으며, 그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본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성전 마당까지만 왔다 갔다 하는 신자들입니다. 침궁까지는 못 들어간 성도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여자들이 “네가 예수 믿는 것과 내가 예수 믿는 것과 같은데 그렇게 골똘하게 병이 나도록 까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주님과 살려고 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5. 술람미 여자가 주님의 아름다움을 증거함

본문 10-11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의 질문에 술람미 여자가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라고 하였는데, 희다는 것은 성결과 승리를 가리키고, 붉다는 것은 구속으로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성결하시며, 우리를 구속해 주심으로 영광이 충만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또 만 사람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세상 어느 위인보다도 뛰어나신 분이며, 아무도 예수님과 비교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십니다.

‘머리는 정금 같고’라고 하였는데, 머리는 주권을 가리키며(고전11:3), 정금은 믿음을 가리킵니다(벧전 1:7).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머리털이 고불고불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털은 순종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시고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도 순종하시고, 저런 면도 순종해나가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모든 면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또 ‘까마귀같이 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심한 고난을 받으신 면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5장 8-9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셔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참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 12절에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다’는 것은 지혜와 자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의 주님이시고, 자비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의 눈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본문 13절에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향기로운 꽃밭 같아서 향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향기가 납니다.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다’는 것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고 하였는데, 몰약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으로 구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입술에서 사랑과 사죄와 구원의 음성, 즉 복음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이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본문 14절에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원해주신 손이고,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손입니다, 또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손이므로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위하여 구속의 제물로 바쳐진 몸이므로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의 몸은 상아에 청옥을 입힌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본문 15절에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다리는 믿음으로 걸어가시고 모든 의를 이루신 다리이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다리이므로 정금같이 아름답고 화반석 기둥 같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형상은 레바논 같다’는 것은 높고 위엄스럽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의 형상은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향기롭습니다. 백향목은 여러 나무모다 뛰어난 나무로 향기가 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만인 위에 뛰어나시며, 향기가 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예수님의 형상에서 나옵니다.

본문 16절에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입이 심히 달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입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답니다.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란 예수님 전체가 다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체가 사랑이시요, 우리를 사랑하사 피 흘려 주셨기 때문에 그 전체가 사랑스럽습니다.
예수님처럼 아름다우신 분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입에서는 꿀이 나와 달고,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아서 우리를 구속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손입니다.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은 다리는 믿음으로 걸어 다니면서 우리를 구속해주신 다리이고, 형상은 레바논 같이 고상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발견한 술람미 여자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시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사모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는 그저 ‘예수님이 주님이시다’하고 따라 다니지만,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을 깊이 알고, 더 깊이 깨닫고, 더 깊이 사귀며 나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느라 병이 낫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예수님을 찾으려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레바논을 떠나서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로 찾아 갑니다. 이런 예수님이신데 안 찾아갈 수가 있습니까? 찾아가면 큰 복입니다. 만나면 복이고, 가까이 가면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사모하므로 찾으려고 애쓰고,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란 예수님께서는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시므로,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친구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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