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발견
이사야 6:1-13
1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 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1-13
1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 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1. 하나님 발견
웃시야 왕의 죽음과 기도하는 이사야
본문 1절에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은 유다 나라의 아주 훌륭한 왕인데, 그가 죽던 해가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역대하 26장 11-15절에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 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맷돌을 예비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모든 대적을 이기고 견고한 성을 많이 건축하였습니다. 또 다른 나라들이 웃시야 왕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6장 7-8절에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암몬 사람, 모압 사람, 블레셋 사람, 구스 사람, 아라비아 사람을 다 정복하고 심히 강성하여 그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아서 웃시야 왕 때의 유다 나라가 세계가 놀랄만한 발전을 한 것입니다. 군대도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나 되는 심히 강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과 기도하는 이사야
본문 1절에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은 유다 나라의 아주 훌륭한 왕인데, 그가 죽던 해가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역대하 26장 11-15절에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 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맷돌을 예비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모든 대적을 이기고 견고한 성을 많이 건축하였습니다. 또 다른 나라들이 웃시야 왕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6장 7-8절에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암몬 사람, 모압 사람, 블레셋 사람, 구스 사람, 아라비아 사람을 다 정복하고 심히 강성하여 그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아서 웃시야 왕 때의 유다 나라가 세계가 놀랄만한 발전을 한 것입니다. 군대도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나 되는 심히 강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죽고 나니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다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던 웃시야 왕이 죽은 뒤에 이사야가 염려가 많이 되어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는
하나님께 가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지금까지 왔는데, 앞날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한 이사야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하
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주님을 모시고 선 스랍들
본문 2절에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다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높이 들린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으셨고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랍들이 하나님을 모셔 섰다’고 하였는데, ‘스랍’은 천사입니다. 천사에게 각기 여섯 개의 날개가 있어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갔
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또 발을 가린 것은 겸손을, 날아간 것은 순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순종하되 신속하게 순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천사들이 하나님 섬기는 모습을 배워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항상 자기를 부인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퍼떡’ 날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날아갈 때에 퍼떡 날아간다고 하는데, ‘퍼떡’이라는 말이 좋은 말입니다. ‘빨리’보
다 더 빠른 것이 ‘퍼떡’입니다.
본문 3절에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창화(唱和)’라는 것은 서로 부른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세번 하였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거룩하고, 또 거룩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거룩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합니다. 거역하는 자들이 있지만 마지막에는 다 정복당할 날이 옵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만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판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
광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며, 죄를 징계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광이 되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징계
도 하시고 심판도 하셔서 다 제거해나가십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하나님의 영광만 남게 됩니다.
‘창화(唱和)’라는 것은 서로 부른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세번 하였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거룩하고, 또 거룩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거룩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합니다. 거역하는 자들이 있지만 마지막에는 다 정복당할 날이 옵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만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판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
광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며, 죄를 징계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광이 되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징계
도 하시고 심판도 하셔서 다 제거해나가십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하나님의 영광만 남게 됩니다.
본문 4절에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연기가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옷자락이 가득했다’는 것도하나님께서 임하신 것을 나타냅니다. 연기가 충만한 것으로도 하나님의 임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눈으로 불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2. 자기 발견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다 드러나게 됨
본문 5절에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지금 자신이 입
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이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자기 속이 전부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은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군대가 보호해주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사야가 이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염려가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해결 받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빛이 없을 때에는 부정한 것을 모르지만, 빛이 비치면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여기도 지금 먼지 하나 없는 것 같지만, 태양빛이 들어오면 먼지가 보입니다. 태양 광선이 비취면 방안에도 뿌연 먼지가 있는 것이 잘 보입니다. 태양 광선이 없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빛이 비취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정한 것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아직 깊이 들어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자기의 부정한 것이 점점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다 드러나게 됨
본문 5절에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지금 자신이 입
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이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자기 속이 전부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은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군대가 보호해주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사야가 이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염려가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해결 받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빛이 없을 때에는 부정한 것을 모르지만, 빛이 비치면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여기도 지금 먼지 하나 없는 것 같지만, 태양빛이 들어오면 먼지가 보입니다. 태양 광선이 비취면 방안에도 뿌연 먼지가 있는 것이 잘 보입니다. 태양 광선이 없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빛이 비취면 인간의 부정한 것이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정한 것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아직 깊이 들어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자기의 부정한 것이 점점 드러납니다.
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알지 못하던 인간의 부정함을 알아채게 됩니다. 빛에 비추어보니까, 그래서 밝아지니까 어두운 부분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을 발견한 다음에는 자신의 부족한 것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자
신의 부족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한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밝아져서 ‘옳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라고 알게
되며,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할 바를 회개하게 됩니다. 또 자기는 망하게 된 줄로 알고 어떻게 할까 하며, 그 다음에 살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음
본문 6-7절에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숯불이 제를 사하여주는 것입니까?
숯불이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단이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9-22절에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이라고 하면 그 위에 있는 제물도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단 위에 있는 그 숯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그 위에 있는 제물까지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숯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단을 말하는 것은 제물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으로, 그 제단으로 인해서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제단의 제물은 옛날에는 소나 양으로 드렸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로 희생해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다 그러한 것입니다. 숯불도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우리 죄를 사하여주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흘려주신 그 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려서 그것으로 우리가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숯불이 제를 사하여주는 것입니까?
숯불이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단이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9-22절에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이라고 하면 그 위에 있는 제물도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단 위에 있는 그 숯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그 위에 있는 제물까지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숯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단을 말하는 것은 제물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으로, 그 제단으로 인해서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제단의 제물은 옛날에는 소나 양으로 드렸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로 희생해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다 그러한 것입니다. 숯불도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우리 죄를 사하여주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흘려주신 그 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려서 그것으로 우리가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을 더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가니까 점점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발견할수록 점점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이시고, 자기는 발견할수록 더욱 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망하게 됐는데, 제단의 제물로 인해서 사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 외에는 죄 사함 받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줄 수가없습니다. 누가 피를 흘렸으면 자기 죄 값으로 자기가 죽은 것이지, 우리의 구속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가 없으십니다. 왜 죄가 없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나신 것은 새 창조입니다. 둘째 아담, 새 창조입니다. 보통 사람처럼 부정모혈로 났다고 하면, 아담의 후손은 다
원죄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죄가 있습니다. 아담이 인간의 대표로 하나님과 계약을 했다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전 세계 인류가 정죄를 받았습니다. 법적인 정죄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은 다 유전 죄가 있습니다. 죄가 유전됐다는 것입니
다. 날 때에 선한 자로 태어나서 점점 악해진 것이 아니고, 사람은 날 때부터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자범죄가 있습니다. 자범죄는 자기가 나쁜 짓 한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죄는 원죄와 본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원죄는 정죄 받은 것, 유전죄가 내려온 것이고, 본죄는 자기가 나쁜 짓 한 것,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이 본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통 사람으로 났다고 하면 원죄와 본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같이 나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동정녀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원죄 없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둘째 아담으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도 새롭게 만들어졌고, 영혼도 새로운 영혼이므로 새 창조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죄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몰라서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죄가 없으십니다. 마리아가 성령 잉태했습니까? 새 창조입니까? 마리아도 다 죄가 있습니다. 예수님만 죄가 없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만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속해주실 자격이 됩니다. 그리고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해가지고 구원 받겠다는 것은 전부 헛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는데, 사람에게 악한 마음이 없습니까? 그리고 전에 죄 지은 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그때부터 선하다고 해도, 원죄가 있습니다. 또 본죄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요구대로 못한 것이 죄니까,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자가 성인이니까 죄가 없다고 하는데, 공자가 성경을 다 순종했습니까?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공자는 성경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공자가 제사하라고 했는데, 성경에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제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입니다. 또 공자가 주일을 지켰습니까? 하여간 천하 인간에 죄 없는 사람이 없고, 예수님 외에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야만 깨끗해집니다. 제단의 숯불로 네 입술에 댔으니 네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물로 인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을까봐 염려하지 마라, 죄 사함 받은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3. 사명 발견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에 거역하면 화가 있음
본문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숯불을 입에 대주셔서 구속해주시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구속을 받았으니까 가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순종해야 합니다. 망하지 않을 것이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가 감사해서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나가서 이제는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았는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하실 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눈만 깜빡깜빡하고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가증한 것입니까? 그러니까 이사야가 바로 말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안하면 도리어 화가 있겠는데,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갈꼬 하실 때에 안 가면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에 거역하면 화가 있음
본문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숯불을 입에 대주셔서 구속해주시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구속을 받았으니까 가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순종해야 합니다. 망하지 않을 것이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가 감사해서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나가서 이제는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았는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하실 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눈만 깜빡깜빡하고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가증한 것입니까? 그러니까 이사야가 바로 말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안하면 도리어 화가 있겠는데,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갈꼬 하실 때에 안 가면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진 능력을 다 기울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일을 이루심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가면 복을 받고, 안 가면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가면 복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십니다.
순종하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옵니다. ‘일이 너무 크고 나는 힘이 없어 못 합니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힘이 약해도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만 하면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자신에게 있는 힘만 다 기울이면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충해주셔서 되게 만들어주십니다. 쉽지 않습니까? 다 하려면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다할 힘이 없습니다.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다 하려니까 뒤로 나자 빠지고 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몇 십 년 전에 토론토에 갔을 때에 차주성 목사가 파워브레이크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일반 브레이크는 차를 세우려면 있는 힘껏 다 눌러줘야 하는데, 파워브레이크는 조금만 눌러도 차가 선다는 것입니다. 나는 늘 그것을 생각하는데, 제가 하려면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파워브레이크처럼 조금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백 근짜리 짐을 옮겨놓으라고 하실 때에 못 진다고 하지 말고,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짐을 지면 됩니다. 그럴 때에 부족한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 근짜리를 옮겨놓을 수 있습니다. 이백 근짜리를 또 지라고 하시면 지면 됩니다. 그러면 또 힘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힘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은 ‘예’하고 달라붙어서 하면 됩니다. 그럴 때에 다 들어 옮겨놓기도 하시고, 서게도 하시고, 이기게도 하시며, 원수를 쳐 물리치게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드온 삼백 명 용사도 그 힘이 얼마 없었지만, 바다 모래와 같은 미디안의 군대를 다 이겼습니다. 오늘날에도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이 너무 커서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는 파워브레이크를 생각하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기울이면 하나님께로부터 파워가 와서 다 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태산도 옮기고 뽕나무도 옮기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십시오. 못한다고 하면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안 주십니다. 그러나 한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래도 못한다고 하면 달란트를 다 빼앗아 가십니다. 한다고 하면 달란트를 더 주십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역자도 못한다는 교역자는 교역자 구실을 못합니다. 하겠다고 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놓고, 자기 있는 힘, 백을 모두 기울여야만 하나님께로부터 힘이 나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내어놓고, 이것을 하다가 죽어도 좋다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부터 능력이 와서 그 사람을 도우셔서 일이 되게 만들어주십니다. 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고 하기 때문에 못 합니다. 안 간다고 하기 때문에 못 갑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
다시 말하는데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선교사 나갈 사람, 가정에서 일할 사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 다 다릅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할 때에는 생명을 내어놓고 하는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영원히 순교자의 반열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순교를 안 당했으면 몇 년
더 살고 마는 것입니다. 하여간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좋은 데로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보내시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좋은 데 보내주옵소서’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디든지 보내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에 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크게도 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열매도 많이 맺히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 사람으로 자라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많이 자라나야 되겠습니다. 이사야가 많이 자라났습니다.
본문 9-1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다음, 심판 날에 증거가 되기 위해서 돌아올 자에게도 전파하고 못 돌아올 자에게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돌아올 자는 그 말을 듣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판 날에 증거가 됩니다. 전
도할 때에도 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말고, 택한 백성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면, 마지막에는 버림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이 잘 들려지는 사람, 말씀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선교사 나갈 사람, 가정에서 일할 사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 다 다릅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할 때에는 생명을 내어놓고 하는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영원히 순교자의 반열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순교를 안 당했으면 몇 년
더 살고 마는 것입니다. 하여간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좋은 데로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보내시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좋은 데 보내주옵소서’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디든지 보내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에 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크게도 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열매도 많이 맺히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 사람으로 자라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많이 자라나야 되겠습니다. 이사야가 많이 자라났습니다.
본문 9-1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다음, 심판 날에 증거가 되기 위해서 돌아올 자에게도 전파하고 못 돌아올 자에게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돌아올 자는 그 말을 듣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판 날에 증거가 됩니다. 전
도할 때에도 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말고, 택한 백성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면, 마지막에는 버림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이 잘 들려지는 사람, 말씀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4. 환난 각지(覺知)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만들어진 것만이 영원히 남음
본문 11-12절에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앞으로 가옥들이 다 무너지고 성읍이 다 황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멀리 옮기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치 아니하다가 멀리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갈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3절에 “그 중에 십 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나가서 아무리 전파해도 백성들이 회개를 안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으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가옥들은 다 없어지고 성읍들이 황폐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건져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나가면 원수를 보내셔서 다 황폐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것이 십분의 일이 남아도 마지막에는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처럼 큰 사람들, 유력한 사람들도 다 베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남아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것은 다 훼파되고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 밤나무, 상수리나무, 훌륭한 목사, 훌륭한 사람은 다 없어진 바가 됩니다. 교회도 없어집니다. 이북에 교회도 다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진 것만 남습니다.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 자라난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자기 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상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읍, 가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한 것들은 다 없어져버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만들어진 것, 말씀 세워나간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영원히 남습니다. 거룩한
씨가 자기 속에 들어와서 자기 영혼이 만들어지고 자라나며 인격이 만들어진 것이 영원히 남습니다. 죽어도 남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세상은 다 없어질 때가 오지만,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말씀에 서는 신앙, 말씀 따라가는 신앙, 말씀으로 생명을 삼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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