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2일 수요일

이사야 6:1-8 이사야의 소명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사야의 소명
이사야 6:1-8

1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1. 하나님 발견

이사야가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남

본문 1-4절에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 9장 36-38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소명 받은 자입니다. 그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이사야 선지자를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이사야가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한 것이 분명한데, 우리도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하는 생활을 이제부터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마귀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세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와 같이 기도를 많이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아무리 배워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은 성경대로, 자기는 자기대로 따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명이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성경말씀
을 배우고, 또 모든 것을 배워야만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는 기도를 많이 하는 신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 2시간 이상씩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고, 성경은 10장 이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학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경을 하루에 10장씩만 보면 1년에 신, 구약 성경을 3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4년이면 12번을 읽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학교 4년 졸업생들이 많은 경우에 12번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 성전에서 기도하는 우리 신학생들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성경을 많이 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에 즉시 순종하라

그리고 이사야가 하나님을 발견하니까 스랍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는 얼굴을 가리었고 두 날개는 발을 가리었고 두 날개로는 날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얼굴을 가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발을 가리었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자리에 내려간 것을 가리킵니다. 날아가는 것은신속히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배우고, 속히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히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즉시 순종을 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순종할 때에 모든 면에서 성공합니다.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즉시 순종했을 때에 사렙다 과부를 만났고, 또 사도행전8장에 보면 빌립이 전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광야로 가라고 할 때에 즉시 순종해서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니까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갔다면 못 만났을 것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그때에 딱 만났습니다. 빌립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에 즉시로 갔기 때문에 내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께서 가까이 가라고 할 때에 또 가까이 갔습니다.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까이 가라고 하니까 무조건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선지자 이사야가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즉시 순종하는 것 하나,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을 때에 그 사람을 가까이 하여 친근히 대하고 친절히 하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읽은 것을 깨닫습니까?”라고 물은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을 좀 달라는 대화법도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다가 처녀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에 물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또 엘리야도 사렙다 과부에게 “물 좀 달라. 마실 것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대화를 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이 아니면 안 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되시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2. 자기 발견

하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정결함을 받은 사람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심

본문 5절에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입술이 불결한 자, 부정한 자라는 것입니다. 입술
이 부정하다는 말에는 속이 다 부정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이 입술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가 만군의 여호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으니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죽었다, 망하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숯불을 입술에 대므로 죄가 사하여졌다고 하였는데, 이 숯불은 제단에서 가져온 숯불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있는 숯불이라는 것은 그 숯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단 전체를 가리킵니다. 제단 전체를 통해서 이사야가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9-21절에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으
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제물 전체를 두고 다 같이 맹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단의 불이라는 것은 제단과 불과 그 위에 있는 제물 전체를 가리키며,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정결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의 제물로는 예전에 소나 양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시는 그 제사로 인해서 우리가 정결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입술이 부정하고 불결하지만, 그 제단을 통해서 우리를 정결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구속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가 사하여졌다는 뜻입니다. ‘악이 제하여졌고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정결케 만들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또 정결케 만드신 것뿐만 아니라 능하게도 만들어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6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제물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을 능하게 해주셨습니다. 정결함을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능하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능력을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정결케 함을 주셨고, 능력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리고 ‘충성되이 여겨’라고 하였습니다. 실제 충성되지 못하지만, 죄인 가운데 괴수이지만, 충성되이 여기셔서 직분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입술을 제단의 불로 지져서 정결케 하고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제사를 통해서 정결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서, 구속의 은혜로 인해서 우리가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결함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능하게 해주셨습니다. 능력을 주셨습니다. 죄를 정결케 함을 받은 사람, 구속 받은 사람,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충성되이 여기셔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양심을 안 쓰고,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충성되이 여기겠습니까? 충성되이 여김을 받은 사람은 충성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잘 충성할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참되며 거짓이 없고 충성할 것이기 때문에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3. 사명 발견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에 자원하여 나서야 함

본문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하시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사야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말을 안 하면 죄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아서 지금 자기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야 되겠느냐고 하실 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순종입니까? 얼마나 큰 일입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고 하실 때에는 ‘네가 가라’는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뭐를 하나 달라고 할 때에 “그것 하나 줄래요?”라고 합니다. “물 좀 주십시오”라고 해야 하는데, “물 좀 줄래요?”라고 합니다. “주시오”라고 하든지, “갔다 오라”고 하든지 해야 합니다. “갈래요, 말래요? 줄래요, 안 줄래요?”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속으로는 달라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달라고 하면서도 “줄래요?”가 무엇인가 말입니까? 달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솔직하게 “그것 좀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가겠느냐?’, 자원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사람이 없어서 마지못해 누가 가겠느냐고 하셨겠습니까? 자원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이 있는데, 일꾼이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도 추수할 것이 많이 있는데, 일꾼이 너무 없습니다. ‘누가 가겠느냐?’라고 하실 때에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오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누가 가겠느냐’라고 하실 때에는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충성스러운 자가 되어야 함 - 양심을 똑바로 쓰고 진실하라

본문에서는 이사야가 나왔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안 됩니다. ‘부족합니다’라고 말해도 맞습니다. 사실, 부족합니다. 입술이 부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은 다 정결케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단의 불로 그것을 정결케 만들어주셨으니까 이제는 부족해서 못 간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능력이 없어 못갑니다’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하게 해주셨는데, 가라는 것입니다. 가면 능력이 나옵니다. 충성만 하면 됩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는데, 충성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되게 해주십니다. 순종만 하고 충성할 때에 일이 다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앞으로 충성할 것을 아십니다. ‘아무래도 충성할 것 같다. 김 아무개란 사람은 앞으로 충성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사람도 ‘이 사람은 앞으로 충성할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앞으로 충성 안 할 사람이다’라고 다 압니다. 똑똑히는 몰라도 비슷하게는 압니다. 충성할 사람은 무엇을 보면 압니까? 사람이 진실하고 겸손하고 솔직하며 양심적이고 순진하면 앞으로 충성할 사람입니다. 그러면 충성하지 않을 사람은 어떻습니까? 교만하고 자기 자랑이나 하며, 무슨 말이나 하면 핑계나 댑니다. 책임 전가나 시키는 그런 사람은 충성 못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충성되이 여겨서 너를 보낸다고 하실 때에는, 비록 지금까지는 충성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충성할 만하니까 앞으로 충성할 것으로 간주하셔서 보내시는 것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충성되이 여겨서 보내실 만한, 그런 저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여기시려면, 우리가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진실하고 겸손하며 양심을 쓰고 바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순종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보십니다. 그럴 때에 비록 지금은 충성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그러나 양심을 바르게 안 쓰고, 거짓말로 변명이나 하고, 자기 자랑이나 하며, 자기만 나타내려 하는 사람, 자기만 쪽쪽 삐져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
님께서 충성되이 여기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못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충성된 사람이 될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실 때에 충성되이 보셨습니다. 나다나엘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나다나엘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지 않으셨습니까? 이와 같이 진실하고 충성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아, 이 사람을 내가 충성되이 여기니 직분을 맡겨야겠다’하고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주시면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못한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는 단 마음으로 몸 바치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생명을 바쳐놓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 신학교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일꾼을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고, 우리 교단에서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을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랍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잘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함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스랍들이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빨리 순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제단의 불로 자기를 정결케 함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정결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혀주신다는 것입니다. 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능력을 주신 다음에는 가라고 하실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일꾼이 적은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일꾼이 된다고 하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꾼이 되려면 진실하고 충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이 된 사람은 모든 신자들에게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모본이 되어야만 앞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모본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게 주려고 하시는데, 그때에 못한다는 소리를 하지 안 되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믿는 자에게 모본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자기를 잘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자기를 잘 만들어나가면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일꾼이 됩니다. 이제 순종만 하면 됩니다. 단 마음으로 몸 바치고 나서서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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