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2일 수요일

이사야 5:18-23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바로 보고 바른 길을 가라 이병규성경강해 창광 계약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바로 보고 바른 길을 가라
이사야 5:18-23

18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 19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21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22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 23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1. 여러 가지의 화(禍)

죄를 끄는 자의 화

본문 18절에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한 범죄가 다른 죄를 범하도록 끌게 되고 그것을 가리려는 거짓을 하게 되면 더욱 죄악의 줄이 굵어집니다. 그 줄에 끌려 죄를 더욱 많이 짓게 됩니다. 그때에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지만, 회개를 안 하고 그것을 가리려고 거짓말을 하면 죄를 더 많이 짓게 되고 후에는 앙화(殃禍)를 받게 됩니다. 거짓말로 죄를 덮고 그 거짓말이 탄로되면 또 다른 거짓말로 그 거짓을 가리려고 하면 멸망으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속고 자기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손해가 나는 것 같아도 솔직하고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하면 일시에 낮아져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마귀의 종이 되며 마침내 멸망합니다.

본문 19절에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며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심판을 속히 이루어 자기들로 보게 하라고 하며 비웃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행하시는 일을 비웃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 정직하게 해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며 비웃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고 나갑니
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는 반드시 화가 있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는 자의 화

본문 20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악이 선하다, 선을 악하다, 흑암으로 광명을 삼고, 광명으로 흑암을 삼고, 쓴 것으로 단 것을 삼고,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고 하면 어떻게 바른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선은 악하다, 악은 선하다, 쓴 것은 달다, 단 것은 쓰다, 죽을 자는 죽지 않는다, 죽지 않을 자는 죽는다고 말하는 자가 화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멍에를 메야만 산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여러 선지자들은 바벨론 멍에를 메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나무로 멍에를 만들어서 메고, 바벨론 멍에를 메야 산다고 외쳤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그 멍에를 꺾어버리고, 바벨론 멍에를 메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바벨론 포로가 된 후에도 예레미야는 70년을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집을 짓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오랫동안 소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선지자들은 2년 후에 돌아온다, 2년 내에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신다고 하며 반대로 나갔습니다. 그때에 백성들이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쪽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고 나갔습니다. 이처럼 이사야당시 때도 그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의 화

본문 21절에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6절에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같이 가시는데, 제자들의 눈이 가려져서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눈에 가려졌습니까? 눈을 떠서 길을 가는데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눈에 가려졌습니까? 세상에 가려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세상이 눈을 가리어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술 만드는 자의 화

본문 22-23절에 “포도주룰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술에 취하여 방탕하면서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재판을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
니다. 술에 취한 자는 사건을 공정히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2절에 나온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는 것은 세상주의에 도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주의에 도취된 자는 화가 있습니다.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자들’은 술을 빚어서 남을 취하게 하고 이익을 보려는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술에 취하게 만들어서 세상에 도취하게 만드는 자들은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의 정신을 흐리게 하여 바른 일을 못하게 하고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뇌물을 받고 눈이 어두워져서 바른 판단과 바른 재판을 못하니 화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잠언 17장 15절에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둔하여져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

정욕, 물욕, 사욕에 가리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

이사야 44장 18절에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7장 51절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둔해져서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세상이 눈을 가리어서 바로 보지 못하고, 흑암 속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 어두워졌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소경인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본다고 하므로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소경되었다면 볼 것인데, 본다고 하기 때문에 아직도 보지 못하고 어두운 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는 줄 아는 사람은 아직도 어두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쓴 것은 달다, 단 것은 쓰다고 하면서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눈을 가리는 것은 물욕이 가리고, 정욕이 가리고 사욕이 가립니다. 세 가지 욕(慾)이 눈을 가리어서 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물질 욕이 눈을 가
리면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로 가지 못합니다. 비뚤게 갑니다. 물질을 따라 갑니다. 가룟 유다도 물질이 눈을 가리어서 예수님을 팔아 먹었습니다.

정욕이 눈을 가리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욕이 눈을 가리어 정욕 가운데로 끌려가서 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윗이 성군(聖君)이었지만 갑자기 정욕이 눈을 가리어서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사욕이 눈을 가리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 눈을 가려서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자기 명예와 영광, 개인의 욕심이 눈을 가리 웁니다. 또 자기의 가정, 지방의 욕심이 가리어서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그 지방 욕심에 눈이 가리어져서 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잘못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성(姓)이 전주 이가 가문이다, 경주 김가 가문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네 문중이 눈을 가리어서 바로 보지 못하고 곁길로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국가적인 욕심, 즉 국가의 자주성이다, 독립성이다 라고 하면서 민족 욕심이 가리어서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한 민족이라고 하는데, 한 민족이라는 말이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가 너희 집안 식구라고 하시면서, “누가 네 형제며 네 자녀냐? 하늘에 계신 분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모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새도 이북 사람들이 형제다, 한 민족이다 라고 하면서 눈이 어두워져서 우리를 죽이려고 미사일을 배치해놓고 원자탄 실험을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한 민족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민족에 대한 욕심은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입니다. 예수님께는 민족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원수가 너희 집안 식구라고 하였습니다. 민족 욕심에 가리어서 죽는 데로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쟁을 해서 형제간에 내리치려고 하는데,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6·25 사변 때에 다 당해보았습니다. 6·25 사변 때에 북한이 민족이라고 하면서 내려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무슨 민족을 갖다 붙이고, 하나라고 하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성도는 세상을 바로 보고, 복음 운동만 해야 함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말을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반대되는 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사람들이 있고, 평안치 않다, 앞으로 이렇게 나가다가는 환난이 온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또 바벨론의 멍에를 메야 한다, 강대국의 멍에를 메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안 메야 한다, 자주 독립을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교회는 나가서 정치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적으로 정치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정치 기관이 아니고,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교분리(政敎分離)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 정부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친 정부운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려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본
분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로 봐야 합니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하고, 성도가 세상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 교회를 바로 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보지 못하면 다 소경이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5절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들어갔을 때에 세미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첫 마디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 나라에 대해서도 바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엘리야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눈을 바로 떠서 세상 나라도 바로 보고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바로 심부름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타락된 교회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심부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 엘리사를 세워서 선지자가 되게 하는 일들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 나라에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다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독립 운동하는 데에 전혀 가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보기는 바로 보셨습니다. 헤롯을 여우라고 하셨습니다. 헤롯 왕을 여우와 같은 자인 줄 알고, 그렇게 말해주셨습니다. 여우같은 왕을 양과 같은 왕으로 알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헤롯 왕을 바로 아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정치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정치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우와 같은 자이냐, 사기꾼이냐, 백성들 앞에서 거짓말만 하는 자이냐, 백성을 속이는 자이냐 라고 생각하며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못하면 다 속아 넘어갑니다. 속아 넘어가면 우리가 나중에 다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대로 교회는 정치 운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긴 바로 알아야 합니다. 헤롯을 여우와 같은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왕이나 정치
가나 여우와 같은 자가 아닌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여우를 양인 줄로 알았다가는 다 잡아 먹히는 것입니다. 이리를 양으로 알면 안 됩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예수 믿는 사람도 잘 모릅니다. 보고도 모르고, 듣고도 모릅니다. 왜 보고 모른다고 하였습니까? 눈이 가려져서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눈이 가려졌다’는 것은 물욕과 정욕과 사욕에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대개가 사사로운 욕심에 가려지고, 지방 욕심에 가려집니다.
학연, 지연, 혈연, 이런 것들이 다 사욕입니다. 거기에 가려져서 모르고 있습니다. 목사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지방에 있는 목사들은 그 지방 욕심에 가려져서 악을 선하다, 또 흑암을 광명이라고 하며 나갑니다.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교인들도 목사들도 그런 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바벨론 멍에를 메라고 하였는데, 안 메는 것만이 좋은 것인 줄 알고 반대하고 나가면 결국 비참하게 됩니다. 마지막, 예레미야 때에 바벨론의 멍에를 메지 않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다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상태로 계속 나가면 까딱하다가 종살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강대국에게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어떤 나라의 종살이를 하게 될지는 모릅니다. 일본에게 종살이하게 될지, 중국에게 종살이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또 북한에 종살이하게 될지 모릅니다. 하여간 까딱 하다가는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을 떠서 바로 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귀를 열어서 바로 들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3. 눈을 가린 것을 없애야 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눈을 떠야 하는데, 첫째로 가린 것을 다 없애야 합니다. 눈이 가리어졌는데, 가려진 것을 벗고 바로 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소경들이 예수님을 바로 깨달아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요구가 무엇이냐”라고 하시자, “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첫 마디가 보게 해주시옵소서 라는 것입니다. 바로 보게 해달라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바로 보려고 사모하고 기도하며 애를 써야 합니다. 다 비뚤어져서 바로 보지 못하는데, 바로 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보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눈이 떠집니다. 눈 떠지는 방법이 말씀 순종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소경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침을 발라서 진흙에 이겨서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경이 순종하였더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그 눈이 밝아집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보면 성경말씀을 다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8장 9-10절에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이 전부 다 거짓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니 무슨 지혜가 있으랴’라고 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는데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눈이 조금씩 떠질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소경이 순종해서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니까 눈이 떠졌습니다. 눈 떠지는 방법은 순종입니다.

순종한 후에는 바른 선지자와 바른 진리를 따라가야 함

그런데 누구 말을 순종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전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것과 다른 선지자들이 전하는 것이 다릅니다. 또 이사야의 전하는 말이 다르고, 다른 선지자들의 말하는 것이 또 다릅니다. 반대입니다. 예레미야 때도 반대
로 전하였습니다. 그러면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말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예레미야 8장 8절에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
의 거짓 붓이 너희를 거짓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이 잘못 기록해서 너희가 그것을 읽고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28-3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
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 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는 전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새도 목사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반대인데도 다 성경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따라가야겠습니까?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연구를 해봤습니다.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나왔는데, 어느 말씀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결론은 예레미야의 말을 순종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사야 때에는 이사야의 말을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지자가 많이 있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며 성경을 다 가지고 나와도, 이사야의 말을 순종하면 틀림없습니다. 또 예레미야의 말을 순종하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따라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말을 따라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또 에스겔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이사야와 같은 지도자, 바른 선지자, 지도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종에게서 바른 진리를 받을 수 있는가를 잘 선택해야합니다. 아무 데에나 가서 한 말씀 받고, 그것도 좋고 이것도 좋다고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들어도 마침내 진리의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바른 진리를 바로 가르쳐 줄 때에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을 뜬 후에는 예수님을 발견해야 함

그리고 눈을 뜨게 되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눈을 뜨고 첫째로 예수님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면 예수님을 모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또 세상도 바로 보고,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보는 것들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눈을 뜬 다음에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예수님이 제일 좋고, 제일 아름답고, 제일 영광스럽고, 제일 기쁘고, 최고의 소망이었습니다. 눈을 뜬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보고, 예수님을 즐거워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전적으로 다 바치려고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눈 뜬 사람의 제일 좋은 선물입니다. 우리도 오늘날 이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에서 눈을 떠서 모든 것을 바로 보고, 제일 중요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영접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즐거워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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