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4일 금요일

이사야 9:1-21 메시야의 출생과 그 왕국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메시야의 출생과 그 왕국
이사야 9:1-21

1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8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9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10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11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12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3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14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17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8대저 악행은 불 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19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20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21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 흑암의 땅에 큰 빛이 비췸

본문 1-2절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흑암에 처해있었는데, 이제는 빛이 비취어져서 영화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5-16절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스블론과 납달리 지방으로 가셔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복음이 들어간 후, 흑암이었던 땅에 빛이 비취어졌고 고통하던 땅에 화평이 오게 되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되어 있는 땅에 복음이 들어가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을 믿으면 미련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약한 자가 강해지고 멸시받는 자가 존귀해지며 무식한 자가 유능해지는 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먼저 왔다면 아시아가 큰 빛이 비췄을 뻔했는데 유럽으로 갔기 때문에 유럽에 큰 빛이 가게 되었고 문명이 발달되어 먼저 앞섰습니다. 또 유럽으로 갔던 빛은 다시 아메리카로 가서 아메리카에 빛이 비추어졌고 발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받는 것이 큰 복인 것입니다. 한국이 먼저 복음을 받았어야 했는데 대원군이 복음을 반대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바람에 이 큰 빛이 일찍 들어오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일본은 벌써 그 당시에 복음이 들어가 있었고 서양 문화가 들어갔기 때문에 서양에서 나오는 총으로 군대를 무장했고, 한국은 복음을 다 막아놨기 때문에 활을 가지고 싸우니까 일본에게 먹혔던 것입니다. 또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의 나주에 짐을 풀려고 했는데, 그 당시 나주 사람들이 자기들은 양반이라며 서양 사람들이 오는 것을 반대하여 선교사들이 광주로 간 것입니다. 그때 벌써 나주에는 항구도 있는 상당히 큰 도시였고 광주는 나주만 못하고 호남선 철길에서도 한 30리를 들어가 흑암에 앉은 것과 같았는데 복음이 들어가니 나주보다도 더 나아졌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면 비천해지고 늘 흑암 속에 살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광명한 빛이 비춰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서면 큰 빛이 들어가는 줄을 알고, 또 큰 역사인줄을 알아,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는 일에 더욱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현재 우리가 구공산권에 복음을 전하여 거기에도 지금 큰 빛이 들어가 흑암에 앉은 사람들이 사망의 그늘진 땅에서 빛을 보는 중에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의 영혼을 살려나가는 것이고 약하고 무식하고 멸시 받는 사람들을 건져서 존귀하고 강하며 유능하게 만들어나가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복음, 살려내는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전해야 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6-17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능력인데 능력은 ‘다이너마이트’라고 하는 말과 같다고 합니다. 즉, 폭탄과 같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폭탄을 던져 놓으면 폭탄이 터져서 정복이 되어 사람들이 살아나고 지혜로워지고 능력 있게 되며 밝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일꾼을 길러 내고,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길러내며,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 메시야의 출생과 그 왕국

본문 3절에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교회인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나가야 창
성하고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에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실로아 물이 계속 흘러나가는 교회가 계속 창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빛으로 인해 즐거움이 더한다는 것입니다. 이 즐거움은 추수하는 자의 즐거움,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인데,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우
리가 주 앞에서 크게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가 물리친 미디안의 군사들의 칼날같이 무거운 멍에도 다 벗어놓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처음 믿는 사람은 소수지만 점점 창성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한 무거운 압제자의 채찍과 멍에를 다 벗겨주십니다. 또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도록 큰 역사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절에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므로,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옷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 불에 살라지고, 영적 화평과 기쁨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기’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고 하였습니다. 정사는 모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잘하시기 때문에 모사이시며 기묘자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본문 7절에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사와 주시는 평강을 따라갈 이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주님의 모략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인도대로 하는 것이 정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따라서만 하면 그것은 성공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왜 안 되겠습니까?
창광교회에 주차장이 협소하여 곤란하였는데, 기도하면서 작년 초부터 주차장 확장 연보를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금이 마련되면 2년 후나 시작할까 생각했는데, 다음 월요일부터 공사를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허영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인 줄을 알고, 기도하고 또 교인들이 힘을 써서 연보 작정을 하니 하나님께서 비쌌던 건물 값도 차차 내려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면 다 잘됩니다.
또 우리 광주 기도원도 우리가 앞날을 내다보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 것입니다. 처음에 기도원을 하나 사려고 곤지암, 평택, 오산을 몇 년 동안 돌아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 멀면 다니기 힘드니 광주에서 한 10분 이내의 곳으로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이곳을 발견하게 해주셔서 고천 기도원 판 돈을 다 주고 이 땅을 사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짓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잘되었는지 모릅니다. 광주에서 십분 내로 갈 수 있고 새벽에 교회에서 출발하면 40분이면 갑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면 그것이 제일 좋은 모략이고 제일 좋은 정사이며 제일 좋은 정치가 됩니다.

교회 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고 인간의 수단과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고, 하나님께서 미시는 대로 밀려가고, 끄시는 때로 끌려가며,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저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을 잘되게 만들어주십니다. 소가 순종만 하면 주인이 다 책임지지 않습니까? 주인이 “이랴”하면 앞으로 가고 “외나”하면 왼쪽으로 가고 “마라”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와”하면 서고 “도취”하면 돕니다. 이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소는 주인이 하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점심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주인아주머니가 큰 솥에 콩을 넣어 소죽을 끓여다가 많이 먹으라고 줍니다. 또 소가 병이 나면 소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지만 속이 타는 것은 주인입니다. ‘병이 나면 어떡하나? 수의사를 데려오나, 무엇을 어떻게 하나? 약을 먹여야 하나?’라고 하면서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걱정은 주인이 하시고 책임도 하나님께서 지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편안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세계의 제일 좋은 정사, 제일 좋은 모사, 세계 일등 되는 것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한 발자국 가라고 하시면 한 발자국 가고 두 발자국 떼라고 하시면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떼라고 하시면 세 발자국 떼면 됩니다. 애굽 세력이 와도, 바벨론 세력이 와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여 한 것은 절대 막지 못하고 오히려 애굽이 밀려나가고 바벨론이 밀려나가게 됩니다.
천하가 와도 막지 못하기 때문에 천하를 밀고 나갈 수 있고, 세계의 강대국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인도대로만 하면 예수님의 정사와 권세가 되어 세계 속에서 대성공의 길을 나가는 것이고 누구도 절대 막지 못합니다. 발자국 마다 승리하는 완전한 승리인 것입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인도대로 순종만 하며 나가면 됩니다.

본문 7절에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의 나라를 반드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보존해나가시고 이루어놓으시므로,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3. 교만하여 거역하는 자는 벌을 받음

본문 8-10절에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야곱때부터 즉 조상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교만하여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벽돌집과 뽕나무가 찍히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회개는 않고 이젠 돌과 백향목으로 더 잘 지으면 된다는 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 받은 것이 다 헛된 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교만하고 완악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벽돌집이 다 무너졌고 뽕나무가 찍힌 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를 하라고 다 무너뜨리시고 뽕나무를 찍어놓으셨는데 제힘으로 더 잘해 보겠다 하니 하나님의 노가 더욱더 커지
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는 받았지만 마음들이 교만하고 완악하여 말씀은 말씀대로 자기는 자기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본문 11-12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 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징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잘해보겠다고 나가니까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르신은 아람 왕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인데,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격동시켜 아람 사람과 블레셋 사람들이 이제 입을 벌리고 이
스라엘 나라를 삼킨다는 것입니다.

4. 그릇된 지도자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멸망케 됨

본문 13절에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오히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으면 때리는 분에게 잘못했다고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징계를 하시는데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4절에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라고 하였는데 하루 사이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하였는데도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하루 사이에 더 큰 징계로 다 끊어버리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오히려 미혹을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다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장로와 존귀한 자이고,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입니다. 기차로 말하면 운전사가 장로이고 뒤에 따르는 차장은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역자 목사인 것입니다. 장로가 앞에서 운전을 하고 나가면 목사는 차장처럼 뒤에서 성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몰고 나가는 데, 그 기차가 바로 가면 되지만 잘못 가다가 전복되어 떨어져서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운전을 잘못하면 가지 않아야 하는데 뒤에서 몰고 가는 교역자가 “괜찮다, 괜찮다. 이대로 가도 된다, 된다”라고 하면서 몰고 가다가 떨어져서 다 죽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회는 교역자가 앞에서 운전하고 뒷 차장은 장로가 되어 몰고 나가는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차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목적지입니다. 바른 목적지는 ‘시온 산 정상’입니다. 그래서 시온 산을 향해 가는 기차에 탄 사람들은 전부 행복한 사람들이지만, 다른 데로 가는 열차를 탄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잘 인도하지 못하는 열차에 타면
기차는 결국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를 잘 만나라는 것입니다. 유원지와 시가지, 또 음식점이 많은 골목으로 가는 먹자주의 교회, 또 세상 정권의 지배를 받아서 나가는 교회로 나가는 것입니다. 시온 산을 모르는 열차에 탔다가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열차의 레일은 반드시 두 개로 하나는 진리, 하나는 영감으로 어느 하나도 없으면 절대 안 되고 그래서 시온 산으로 향하는 열차는 진리와 영감으로 가는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의 레일 위로 함께 굴러 가야 되는데 가는 방향은 푯대에 써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음박질해 나가라는 말입니다. 즉, 시온 산 정상을 향해서 달려 나가야 되겠습니다.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무작정 타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열차에 인본주의가 들어와 세상으로 끌려 나가고, 한 바퀴는 세상으로 굴리고 한 바퀴는 교회로 굴리며 탈선이 되면 어떻게 목적지를 바로 찾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도자가 어디로 끌고 가는가를 봐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를 오락 기관으로 만들어서 방탕하는 기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고 북 치고 장구치고 제금 치고 강대상에 나가서는 춤을 추고 또 나가서는 연극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
로 끌고 가는 것입니까? 이 차가 어디로 가는지를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하고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큰 낭패를 당하는 줄을 반드시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7절에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 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간다는 뜻입니다. 또 ‘망령되이 말한다’는 것은 제 정신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정이라도 기뻐 아니하시며 긍휼의 하나님께서 고아나 과부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5.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땅이 소멸됨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함

본문 18절에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시나무는 불태우고 빽빽한 수풀은 베어다가 불에 태운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말씀을 주셨는데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나가면 이렇게 전부 불에 타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만족이 없음

본문 19-20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우편의 것 좌편의 것 등 아무리 갖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불이 붙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무엇을 먹어야 배가 부를까’하여 이것, 저것을 갖다 먹어도 전혀 배부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족이 없고, 해갈이 안 되며 문제는 해결도 되지 않고 위
로가 없으며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말씀을 떠났는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한 들 만족이 있겠습니까?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은 하나님께만 있고 진리 안에만 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고 음란과 호색하면서 별 것을 다 해봐도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이 마시면서 “크흐~”라고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쓴데 할수 없이 먹는 것입니다. 오죽 할 수 없으면 그 쓴 것을 먹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단 것을 먹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께만 있음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을 찾아야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면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며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또 말씀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하며 말씀대로 나가야 됩니다. 아무리 핍박이 많고 환난이 많아도 말씀대로 나가다가 죽을 각오로 성경 말씀대로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송이 보다도 달다고 하였고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이시고 또 만족하고 충만한 극락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다 쓴 바구니가 들어가 있고 그 결과는 점점 더 쓰며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땅이 소멸됨

본문 21절에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하면 므낫세와 에브라임같이 형제간이라
도 서로 잡아먹고 또 잡아먹은 다음에는 둘이 합하여 유다를 치며, 회개하지 않은 다음에는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우편 것, 좌편 것을 움켜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합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는 생명도 없고 살 길도 없고 만족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살 길과 만족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벽돌집이 무너지고 뽕나무가 찍히는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너무 교만하고 완악해서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친 자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다 징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이 시대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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