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형통
예레미야 12:1-17
예레미야 12:1-17
1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 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6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7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 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8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다 9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10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11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12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13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14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15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예레미야가 악인이 형통함에 대하여 질문함
성도가 종일 징책(懲責)을 당하고 매일 아침 재앙을 만나는 이유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질문할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라고 해놓고 질문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주의 의로우심을 믿고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바른 줄로 알고 거기에 대해 알아
보기 위하여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옳습니다.
의로우신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질문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의 내용은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안락 생활을 하며 악한 세상에서 잘되는데 왜 그렇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망해야겠는데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안락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이라고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어서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고 열매가 잘 맺혀 무성하도록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자녀가 잘되고 몸도 건강하고 사업도 잘되어 돈도 많이 버는데, 왜 그렇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라고 한 것을 보니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긴 섬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타락된 생활, 속화된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악한 자들이 성경대로 살지 않는데, 왜 잘되느냐는 것입니다.
보기 위하여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옳습니다.
의로우신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질문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의 내용은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안락 생활을 하며 악한 세상에서 잘되는데 왜 그렇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망해야겠는데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안락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이라고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어서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고 열매가 잘 맺혀 무성하도록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자녀가 잘되고 몸도 건강하고 사업도 잘되어 돈도 많이 버는데, 왜 그렇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라고 한 것을 보니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긴 섬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타락된 생활, 속화된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악한 자들이 성경대로 살지 않는데, 왜 잘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지자가 사명을 다했으나 그들이 듣지 않으니 이제는 죽이는 일밖
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선지자가 사명을 다 했지만 그들이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성도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잘되고 성도는 잘못되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73편 2-14절에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찌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잘되는데,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형통하고,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습니다. 건강하며 재앙도 없고 살찜으로 눈이 솟아나고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고, 또 먹는 것도 잔뜩 잔에다 부어서 먹고 항상 편안하며 재물은 날마다 더해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고 있으니,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시편 73편 16-17절에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 결국을 깨달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결국을 깨달았다는 것은 첫째, 신령한 영적 성소에 들어갈 때에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죽을 때, 세상을 떠날 때에 깨닫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주시려고 세상에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징책을 주셨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적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세상을 떠날 때에 가서 깨닫는 것입니다.
욥기 21장 7-13절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도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라고 하였
는데, 악인들이 형통하고 오래 삽니다. 악인이 세상을 괴롭게 하므로 그들이 빨리 죽어야 세상이 편안해지겠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찌오래 살며 세력이 강한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라고 하였는데,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고, 또 목축을 하면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가 무럭무럭 늘어나가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경각간에 음부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음부로 내려가게 될 것이니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니까 그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이 다음에 하늘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므로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채찍질하시고 징계하시며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눈, 코 뜰 새가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여러 가지 재앙이 많이 옵니다. 악한 자들은 이제 곧 지옥에 갈 것이니 간섭할 필요도 없고 책망할 필요도 없고 때릴 필요도 없습니다. 잘 먹고 살라고 가만히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돼지를 채찍질합니까, 자기 아들을 채찍질합니까? 아들을 채찍질합니다. 돼지는 곧 잡아먹을 것이니 채찍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왜 그렇게 합니까?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왜 공부를 안 하느냐? 왜 이렇게 더럽혔느냐? 어디에 가서 빠뜨렸느냐? 아들에게는 여러 가지 간섭을 많이 합니다. 돼지는 구렁텅이에 빠졌으면 빠진 것이고, 몸뚱이를 다 적셨으면 적신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고 잘 먹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채찍질하여야 필요가 없습니다. 채찍질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가만히 놔두면 되겠습니까? 물론 잘하면 가만히 놔둡니다. 그런데 잘하는 아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매일같이 얻어맞고 얻어 터지는 것입니다. 매일 터집니다. 좀 아물려고 하면 또 터지고 매를 얻어맞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마다 좋은 징책을 만나고 좋은 재앙을 만나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종일 재앙을 만나고 아침마다 징책을 만나니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망할까봐, 아주 내버린 자식이 될까봐,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회개시키고 바로 세워 돌아오게 하시려고 징계하십니다. 연단시키느라, 또 세상 죄를 끊어버리게 만드시려고 징계하십니다. 죄를 끊어버리고 돌아서서 구원을 이루게 만드시려고, 하나님을 닮아가게 만드시려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두시니 잘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9장 2-3절에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다 일반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안 믿는 사람에게 병이 날 때 믿는 사람도 병이 나느냐? 목사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는데, 목사도 감기에 걸리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이 성경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일반이라고 하였고 세상에서는 똑같이 당한다. 감기도 똑같이 걸리고 여러 가지도 일반으로 당한다. 그런데 영적인 면이 다르다. 신령한 면이 다르다. 그러나 육신으로 당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이다. 제사 드리는 자나 안 드리는 자나 마찬가지이고, 선한 자나 악한 자도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당한다.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도 다 세상에
서는 같이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한 술 더 떠서 하나님께서 바로 세우려고 하시므로 또 징계를 당하는 것이다. 연단시키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이 하나 더 있다”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 종일 재앙을 당한다고 하였고, 매일 아침 징책을 본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종일 재앙을 만나게 하시고 아침마다 징책을 하십니다. 보통 사랑하는 아들은 이따금씩 하지, 종일 징책하지 않습니다. 이따금씩 한 번 징계를 받고 이따금씩 한 번 재앙을 받습니다. 그 다음에 사랑을 보통 이하로 받는 사람은 몇 년 가다가 한 번 징책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죽을 때에 한 번 징계를 받습니다. 여기서 매일 징계 받는 자가 A급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 계급을 주시려고 특별 케이
스에 올려놓은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며칠마다 한 번 징계 받는 자는 B급이고, 몇 년마다 한 번씩 징계를 받는 자는 C급입니다. 그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다 사랑하십니다. 그 다음에 아무리 못되게 돌아가도 가만히 뒀다가 죽을 때에 가서 한 번 징계하시는 것은 D급 성도
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A급이 되면 좋긴 좋은데 조금 힘이 듭니다. 하지만 힘들어봤자 몇 년 힘들겠습니까? 일생은 잠깐 동안인데 그것만 힘들면 됩니다. 그러면 A급이 되지 말고 C급도 되지 말고 죽을 때 가서 한 번 징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생동안 아무렇게나 해도 잘됩니다. 예배당에만 나오면 됩니다. 별 짓 다하고 돌아 다녀도 가만히 둡니다. 죽을 때 한 번 곰국만 먹고 죽으면 됩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바득바득할 것도 없습니다. 예배는 처음만 나오면 되는 것이고, 연보하면 100원 짜리 갖다 내는 것입니다. 그래도 잘만 됩니다. 아이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돈도 잘 벌고 몸도 건강하고 시집도 잘 보내고 며느리도 잘 얻어오고, 다 잘합니다. 그것이 D급니다. 그래도 죽을 날 곰국은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회개하고 구원을 이루어나갈 기회가 없습니다. 죽을 때 회개하고 죽으면 그것으로 다입니다. 언제 구원을 이뤄나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개털 모자 비슷한 것밖에 쓸 것이 없습니다.
심을천 목사가 한 말입니다. 한 성도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앉아계셨습니다. 바닥은 전부 정금입니다. 성도들은 의자에 앉아서 면류관을 쓰고 찬송을 하고 있더랍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라고 하며 흔들흔들 하면서 “너도 저기 가서 모자 하나 쓰고 오너라”고 하
더랍니다. 그래서 가보니 바람벽에 쓸 것들이 쭉 걸렸더랍니다. 제일 좋은 것은 금 면류관, 의의 면류관, 자랑의 면류관, 칭찬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으로 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면류관을 쓰니까 머리에 가시가 꽉 쪼이더랍니다. 좋은 면류관에는 속에 가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아, 이거 사람 죽겠다’하고 그것을 벗어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것을 썼는데 역시 가시가 꽉 쪼였습니다. 번쩍번쩍하는 것은 전부 가시가 있는 것입니다. 쓰면 죽겠더랍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사람이 쓰는 것인가 하
면 세상에서 가시 면류관을 써서 머리에 가시 자국이 난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시가 들어가서 맞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을 따라가느라 머리에 가시 자국이 난 사람은 그 가시자리가 자기 자리니까 모자가 돌아가지도 않고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뻔뻔하게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건달 예수꾼으로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새벽 기도를 했나? 주를 위해서 봉사를 했나? 하나님의 일을 했나?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맞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다 내려가다가 마지막에 개털 모자가 하나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써보니 속에 가시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쓰려고 하면 가시가 푹푹 찔러서 쓸 수가 없는데, 그것은 딱 맞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거라도 써야겠다’하고 그것을 쓰고 와서 성도들이 쭉 앉아 있는 의자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저 좋은 낙원 이르니”라고 하면서 아래를 보니까 바닥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는데 개털 모자 같은 것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입니다. 그래서 ‘남은 다 금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썼는데 이것을 쓰면 되겠느냐?’해서 벗어놓으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못 벗는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바람에 화닥닥 깨서 살았답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한 번 살려주셨는데 좀 더 두면 영원히 개털 모자를 쓸 것이니 내가 이제 정신을 차려야겠다’하고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돌아다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일심정력을 다 하고 재산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노력하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전도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불이 나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개털 모자 쓰는 것을 면하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갔답니다. 아마 개털 모자는 면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가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영광이 다릅니다. 상급도 다릅니다. 또 인격도 다릅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실력이 다릅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세상 것을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믿는 일을 못하고 구원을 이루는 것도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면 개털 모자 감입니다. 실제로 하늘나라에 개털 모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무슨 개털모자가 있겠습니까? 하여간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만 두시니까 괜찮은 줄 알고 있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께 회개할 바를 찾고 하나님께 몸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몸과 마음, 재산과 시간을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다 바쳐서 남은 삶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드리다가 가야 합니다. 그것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시키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죄악을 끊어버리고 못된 버릇을 끊어버리고 세상 우상을 끊어버리고 자기 교만을 깨뜨려버려서 성도를 연단시키어 하늘나라에서 귀히 쓰는 자로 데려가시려고, 그래서 늘 간섭하시고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돌아가므로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여호와께서 성전을 버리심
무늬 있는 매가 된 유다 나라를 많은 이방 나라 왕들이황폐케 할 것임
본문 5절에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평안한 땅에서 겨우 다닌다고 하면 이 다음에 요단 강물이 창일할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보행자와 같이 다닌다고 해도 피곤한데 말과 같이 경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실력이 없습니다. 보행자와 같이 다녀도 피곤하다는 것은 작은 환난도 못 견뎌서 쩔쩔 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다음에 큰 환난이 오면 네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 하나를 시키셔도 못 하겠다고 하는데, 이다음에 큰 것을 시키시면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즉, 네 실력이 없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에 겨우 현상 유지나 하는 신앙을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평안할 때에 겨우 예배당이나 나오는 정도를 가지고는 이 다음에 요단 강물이 쩔쩔 넘쳐서 창수가 나는 대 환난이 들어올 때에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예 미리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요새 당하는 것은 조그마한 것이다. 보행자와 같이 가는 것이다. 아, 이것도 힘들다고 못 한다고 하면 이 다음에 어떻게 말과 같이 경주할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요새는 다 이런 보행자와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 새벽 기도 나오는 것, 주일 오후 예배, 수요 예배 등은 다 보행자와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요새 들어오는 가정의 시험, 교회의 시험, 사회의 시험 등 작은 시험들, 또 요새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등은 작은 것들입니다. 보행자와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다음에 말과 같이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새는 조금 바치라고 해도 못 바치고 절반 바치라고 해도 못 바치고 삼분지 일을 바치는 것도 못 바치는데, 다 바쳐야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 요새 작은 환난은 조그마한 십자가인데, 이 다음에 큰 십자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그것을 어떻게 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삼일 예배 하나 못 나오고 새벽 기도 하나 못 나오는 형편에 그런 실력을 가지고 이 다음에 대 환난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평안한 땅이나 겨우 다니던 사람이 이 다음에 요단 강물이 넘쳐서 대 환난이 들어오면 어떻게 다닐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거기서 자기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조금만 가면 깽깽하고 하나님께 조금 바치는 것도 못 하는데, 이 다음에 다 내놓아야 할 때에 어떻게 내놓겠습니까? 또 독자를 내놓으라고 할 때에 어떻게 내놓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독자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예 작은 것부터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보행자같이 할 때에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새벽 기도 나가려고 힘을 쓰고,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힘을 쓰고, 봉사할 것이 있으면 몸 바쳐서 봉사해야 합니다. 연보할 때에는 힘써서 하나님께 합당한 만큼 잘라서 하고, 아예 전적으로 바치고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말과 같이 경주할 때에도 나갈 수 있습니다. 말과 같이 경주하는 연습입니다. 연단입니다. 다 내놓고 갈 날이 옵니다. 독자까지 바쳐야 할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것을 탄식하고 회개하며 이제부터는 보행자와 같이 다닐 때에 잘 다녀야 합니다. 작은 환난이 들어오는 것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잘 이기며 작은 것을 바치라고 할 때 잘 바치면서 지금 잘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과 같이 경주할 때에 잘 달릴 수 있고 요단 강물이 창일해서 창수가 나도 잘 감당할 수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됩니다.
본문 6절에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형제까지 핍박을 합니다. 앞 장인 11장에서는 고향 사람들이 핍박을 해서 잡아 죽이겠다고 하더니, 여기는 형제들이 핍박을 합니다. 네 형제들이 다 배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좋은 말을 해도 배신할 것이니까 그것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배신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 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 던져’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성전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산업인 이스라엘 백성도 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라는 것은 다 내버려서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아무리 열심히 제사를 드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다 내버리십니다 집도 내버리시고, 하나님의 산업도 내버리시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도 내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내버리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합당치 않고, 마귀 짓만 하고 돌아다니면 내버리시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산업’은 유다 사람을 가리킵니다.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강퍅해졌다는 것입니다. 사나워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라고 하였는데, 유다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셔서 본문 7절의 내용처럼 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산업인데, 그들이 무늬있는 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산업인 유다 사람들이 무늬 있는 매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룩덜룩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이 섞였다는 것입니다. 순진하지 못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무늬 있는 매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섞어서 순수하지 못하고 비 진리와 우상 숭배와 각종 범죄로 인해 다 얼룩덜룩하게 무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여러 매들을 불러다가 그 무늬 있는 매를 둘러싸라고 하셨습니다.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 무늬 있는 매를 삼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무늬 있는 매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쓸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나라를 불러다가 유다 나라를 포위하라는 것이고, 들짐승을 모아다가 이 무늬 있는 매를 잡아 삼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유다는 잡아 삼킴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 독자이고 산업이지만, 그가 무늬 있는 매가 되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게 된 것입
니다. 어떻게 그냥 두겠습니까? 요새 교회들이 무늬 있는 매가 안 되었습니까? 섞이지 않았습니까? 요새 많은 교회들이 무늬 있는 매가 되었습니다. 신 신학을 섞고, 신비주의를 섞고, 인본주의를 섞고, 세상주의를 좀 갖다가 섞어서 무늬 있는 매가 되었습니다. 얼룩덜룩하게 섞어놨습니다.
그러므로 무늬 있는 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여러 매를 불러다가 에워싸게 만드시고, 들짐승을 데려다가 잡아먹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하고 무늬 있는 매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순수한 말씀에 입각한 신앙을 가
지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 하나님으로 생명의 근원을 삼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이 사는 교회, 하나님의 인도만 받는 교회, 말씀에만 붙들려 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0절에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목자’라는 것은 이방 왕들을 가리킵니다. “많은 목자, 즉 이방 왕들이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라고 하였
는데, ‘내 포도원’은 무엇입니까? 유다 민족입니다. 많은 이방 왕들이 와서 유다 민족을 삼키고 훼파하고, 또 분깃을 유린하였습니다. 유다 땅이 본래 낙원이었는데, 그 낙토(樂土)를 황무지로 만들어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7절). 내 집인 성전도 내버리고 내 산업인 유다 백성도 내버리고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도 다 내버려서 대적의 손에 붙였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왜 대적의 손에 붙였습니까? 얼룩덜룩하게 무늬 있는 매가 되었기 때문에 내버린 것입니다. 도저히 쓸데없이, 이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목자, 이방 왕들이 와서 포도원을 다 훼파하고 분깃을 유린하게 된 것입니다. 낙토는 가나안 복지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다 황무지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13절에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 다 훼파되었으므로, 13절의 말씀처럼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밀을 심어도 가시가 나옵니다. 밀을 심어도 가시 때문에 밀은 다 없어지고 가시만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를 해도 소득이 없습니다. ‘소산을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안 됩니다. 아무리 밀을 심어도 가시 때문에 먹지를 못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학개서1장 4-6절에 보면 왜 안 된다고 하였습니까?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집은 황무하였는데 자기는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지 않으므로, 많이 심어도 수입이 적고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아니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아니하고 전대에다 갖다 넣어놨지만 그 전대가 구멍 뚫어진 전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구멍이 뚫어져서 다 나갑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소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앙부터 바로 서야 합니다.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하면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며, 매일 당하는 적은 십자가를 잘 지어야 합니다. 보행자와 달리는 것을 잘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말과 달리는 것도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매일 닥치는 십자가를 잘 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여 당하는 고난을 잘 당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늬 있는 매가 되지 말고 순수하게 나가야 합니다.
3. 여호와께서 이방 나라들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심
악한 자라도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도를 배우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심
본문 14-17절에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
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아까 악한 자가 왜 형통하는가 질문해놓았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이 이제 내려왔습니다. 성도가 이렇게 범죄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무늬 있는 매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도 내버리시고
산업과 사랑하는 자도 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
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아까 악한 자가 왜 형통하는가 질문해놓았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이 이제 내려왔습니다. 성도가 이렇게 범죄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무늬 있는 매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도 내버리시고
산업과 사랑하는 자도 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다시 다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연단시키고 회개시켜서 바로 세운 다음에 다시 다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독한 물을 마셔서 연단시키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9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
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연단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 녹여가지고 깨뜨려버리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교만도 깨뜨려버리고, 의지하고 살던 것들도 다 깨뜨려버리고, 다 녹여서 연단시킨 다음
에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다 녹입니다. 교만을 녹이고, 의지하고 살던 것들을 다 녹여서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의뢰하고 살던 양식, 의뢰하던 세력, 재판관, 왕, 의뢰하는 물질, 의뢰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전도 껍데기만 의뢰하면 성전을 다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장 1절에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의뢰하는 것을 다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양식을 의뢰하느냐? 양식을 다 끊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용사를 의뢰하느냐? 물을 의뢰하느냐? 물을 다 끊어버리고 용사를
다 끊어버리고 전사를 끊어버리고 재판장, 선지자, 복술자, 장로, 오십부장, 귀인, 모사, 공교한 장인, 능란한 요술자 등을 다 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들이 의뢰하는 것은 다 끊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다 끊어버리고 녹여버리고 다 깨뜨려버리는 것입니다. 교만이 다 깨져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 버려서 그들이 각국에 흩어져 수치를 당한 다음, 다 쫄딱 망한 다음,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회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성도의 회복, 하늘나라의 회복, 에덴동산의 회복, 회복이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치는 자를 뽑아 버리신다는 뜻입니다. 또 14절 마지막에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포로가 된 유다 백성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 나라에, 유다 사
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 이제 그들이 회개해서 오랫동안 다 깨져나가고 녹아졌으므로 하나님께서 몽둥이를 다 꺾어 내버리시고 그들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제 몽둥이, 막대기, 방망이를 다 꺾어 내버린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셔서 각 사람을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의 그곳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 하나님께서 주신 산업으로 다시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산업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긍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쏟아 부으셨습니다. 다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은 참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옛날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옛날의 이스라엘은 강퍅한 이스라엘이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을 거역하던 이스라엘이요, 형식적으로만 주여 주여 하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올 때에는 진짜 이스라엘입니다. 참 이스라엘입니다. 얼룩무늬가 있던 매였는데, 다 깨져나가고 순수한 비둘기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순수한 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옛날의 산업을 다시 주시고, 낙토를 다시 주시고, 낙원을 다시 주셔서, 거기서 젖과 꿀이 다시 흐르게 해주시고, 거기서 생명의 꼴을 넘치도록 먹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낙원을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영적 이스라엘 운동이 되어나갈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신령한 영적 낙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도가 타락되었다가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신령한 낙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곳, 그곳이 초막이든 궁궐이든 거기가 낙원입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 되셨고, 자기는 생수 가운데 살고, 생수가 넘쳐 나오니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자기는 간 곳 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는 그 아름다운 자리를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장래적으로는 천년 왕국이 건설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다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건설됩니다. 천년 왕국이 다 지나간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이제 믿는 사람들이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고, 믿는 사람은 다 왕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다음에 이방 사람은 본문 16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들이’가 바로 이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라고 한 것은 이방 사람들이 내 백성의 도를 배운다는 뜻입니다.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또 와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와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하였는데, 이방 사람들도 다 이때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도 돌아와서 하나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도 버리지 않으시고, 또 다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 보십시오. 몽둥이라고 내버렸는데, 그들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도를 배우는 자들은 또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오기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그 말씀에 서서 말씀대로 바로 믿어야 합니다. 무늬 있는 매가 되면 안 됩니다. 바로 믿어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도 바로 세우십니다.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들이’가 바로 이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라고 한 것은 이방 사람들이 내 백성의 도를 배운다는 뜻입니다.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또 와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와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라고 하였는데, 이방 사람들도 다 이때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도 돌아와서 하나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도 버리지 않으시고, 또 다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 보십시오. 몽둥이라고 내버렸는데, 그들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도를 배우는 자들은 또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오기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그 말씀에 서서 말씀대로 바로 믿어야 합니다. 무늬 있는 매가 되면 안 됩니다. 바로 믿어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도 바로 세우십니다.
본문 17절에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였는데, 이방 사람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를 배우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자는 다 멸망입니다. 다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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