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3일 화요일

예레미야 21:1-14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예레미야 21:1-14

1-2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3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 5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6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하셨다 하라 7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8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9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10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11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13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바벨론 왕이 침략할 때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함

본문 1-2절에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유다의 마지막 왕인데, 그가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서 말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너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사를 행해주시면 바벨론 왕이 떠나리라고 하며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을 보면 그때 예레미야는 왕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선지자들과 왕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핍박했지만, 예레미야가 진짜인 줄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드기야 왕이 제사장도 선지자도 많았는데, 사람들을 다른 선지자에게 보내지 아니하고 예레미야에게 보내서 기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참 사람이다, 예레미야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들으시고 이적을 행해서라도 바벨론 군대를 물리쳐주시지 않을까 하며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핍박하던 사람들이 진짜인 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로 나가기만 하면 다 아는 것입니다. 비방하고 악평하고 핍박을 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 하나님께 바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이렇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다니
엘도 평안할 때에는 안 불렀습니다. 처음에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해석하면 상을 주겠다고 하니까 여러 사람들이 상을 타려고 다니엘 몰래 왕 앞에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해석할 수 없고, 왕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니까 ‘우리만 죽을 수 없다’하며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예레미야
도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바벨론 군대가 와서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왕이 다급하여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양심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을 해도 진짜는 다 알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유다 백성을 바벨론 왕에게 붙이심

본문 3-7절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처럼 예레미야에게 사람의 생사권을 가지고 있는 왕의 귀한 부탁이 들어왔는데, 예레미야가 좋은 말을 해줬습니까?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돌이킨
다는 것은 싸우다가 싸움하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고 하였는데, 바벨론 군대를 예루살렘 성으로 들인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팔을 들어서 노와 분과 대노로 너희를 치신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라고 하였는데, 전염병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 하시되 그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엄청난 재앙을 선언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왕이 모처럼 예레미야를 귀하게 생각해서 어려운 환경을 면하려고 기도해달라고 한 것인데, 전염병에 다 죽고, 남는 사람은 칼에 죽고, 왕과 신하는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에 잡혀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다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내놓고 전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이렇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살든 죽든, 좋아하든 나빠하든, 환영하든 배척받든 상관없습니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만 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징벌 받는 유다 백성에게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주심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망하는 길 하나만 두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도 하나 주셨는데, 생명의 길로 가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무리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셔서 원수가 침입하여 다 망하게 되었어도 생명의 길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본문 9-10절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면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항복하는 자는 겨우 노략한 것같이 자기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4. 회개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다 망하게 됨

회개해야 할 죄 두 가지

본문 11-12절에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하
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 가지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9장에는 다섯 가지 죄가 나왔는데, 
첫째, 하나님을 버린 것,
둘째, 하나님의 성소를 부정하게 만든 것,
셋째, 여러 신들을 섬긴 것,
넷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
다섯째, 자녀들을 바알에게 불사른 것입니다. 예레미야 22장에도 일곱 가지 죄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공평, 정의, 탈취하지 않는 것,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학대하지 않는 것, 무죄한 자가 피 흘리지 않는 것,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지 않는 것, 다른 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왜 두 가지만 나왔습니까? 그 시대적인 진리, 그 사건에 대한 진리, 자기 진리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진리라는 것은 그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도적질하는 사람은 도적질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음하는 사람은 그것만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왕이 이것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는 것이 자기 진리입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양심 지키는 것이 자기 진리입니다. 자기 진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는 사람은 비방하는 것을 고쳐야 합니다.‘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라’는 것은 아침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판단해서 모든 것을 바로 할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서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할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저 믿사오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사오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적질을 안했다고, 살인, 강도를 안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아침마다 사사건건 공평하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바로 판결해서 행하는 것이 지금 행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도와달라고만 하고 공평하게 할 생각을 안 하는데, 우리가 모든 것에 공평하게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법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당한 위치를 찾는 것입니다. 정당한 위치를 찾아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하는 것이 공평한 판결입니다. 양심을 쓰고 바로 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안하고 성령을 받겠다고 하고,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큰 교회를 만들겠다고 하며, 큰일을 하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저 공평하게 할 생각을 하고, 양심을 바로 쓰며, 모든 것을 바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 항상 같이 계십니다. 그 다음에는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고 하였습니다.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낼 책임이 있습니다. 탈취당한 자가 많이 있는데, 건져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건져내야 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건져내는 일,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 억울함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앞 길이 환하게 열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고치지 않으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하나님의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살 길임

그런데 여기서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왜 항복하는 길이 사는 길인가 하는 것입니다. 죽는 길은 원수에게 항복하지 않는 것이고, 사는 길은 항복하는 것입니다. 독립하는 것이 좋지, 항복하는 것이 뭐가 좋습니까? 독립 국가를 원하지, 항복하고 예속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
도 항복하는 것이 잘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와이를 생각해봅시다. 하와이는 예전에 독립 국가였지만 지금은 미국에 속해서 완전히 미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립 국가 하나를 유지하려면 경제, 군사 등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겠는데, 미국에 항복하고 미국이 되니까 그 혜택을
같이 받고 있습니다. 문화의 수준이 올라갔고, 투표해서 하와이 주지사가 나오는 등 여러 면에서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독립했으면 뭐했겠습니까? 월남도 필리핀도 미국과 합병했다면 갑자기 쑥 올라갔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미국 본토에 가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또 미국 사람들이 필리핀에 공장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인건비도 그만큼 올라가고, 문화 수준도 올라갔을 것입니다. 항복하면 한꺼번에 다 되는 것입니다. 독립하면 좋은 것이 있지만, 항복하는 것도 사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나라는 이방 나라이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나라입니다. 그 바벨론 나라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항복시켜서 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물론 항복하는 것이 낮아지는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고 나라도 망하고 해서 안 되긴 안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셔서 유다 나라를 살려 가시려는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독립하는 것만 고집하고 자립, 주권만 고집하면 결국에는 다 죽고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는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아지라고 하실 때 낮아지고, 내놓으라고 하실 때 내놓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빳빳한 고자세로 나가는 것은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하나님께서 머리를 숙이도록 만드셨을 때에는 머리를 숙여야 삽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머리를 숙이면 안 됩니다. 진리를 양보하고 숙이면 망합니다.
그러나 낮아지게 만드시면 낮아져야 살고, 자존심을 내놓도록 만드셨으면 내놓아야 삽니다. 그래야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존심이나 명예 등을 자랑하고 안 내놓으려고 발발 떨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저 낮아지는 것이 좋습니다. 내려앉아야 할 때에 내려앉는 것이 사는 것이고, 수치를 당해야 할 때 당하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독립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순종을 안 하고 우리는 독립이다, 왜 바벨론에 항복해야 하느냐? 죽어도 우리는 싸우다 죽는다 하면 결국에는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는 길은 다 내어놓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낮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국가를 하나 만들어놓았으니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그 국가가 없어질까 봐 발발 떨다가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를 주셔야 나라의 독립도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하나님께서 없애려고 하실 때는
사람이 아무리 막아보려고 해도 별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세우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낮추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뿐입니다. 그래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국가 문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 문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앙 문제에 있어서 자존심을 내버리고, 또 낮아지라고 하시면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권리도 내놓으라고 하실 때에는 내놓아야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실 때에 주장하는 것이 좋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실 때에는 주장하지 않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여기도 항복하라는 것이 다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진리는 생명을 내놓고 죽어도 지켜야 하지만, 진리가 아닌 문제는 자기의 모든 주장이나 권세를 다 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낮아질 때에 하나님께서 살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리고 5리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를 가라는 것은 무엇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권리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왼쪽 뺨을 맞고도 오른쪽 뺨까지 내놓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인격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당하라는 것입니다. 겉옷, 속옷까지 내놓으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재물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물권, 인권, 인격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좋지만, 내놓으라고 하실 때에는 내놓아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는 인격, 인권이 없어서 내놓는 것이겠습니까? 내놓으라고 하실 때에 내놓아야 승리하는 길이고, 사는 길입니다. 언제나 내 인격을 무시하면 안 된다, 왜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왜 내가 5리를 억지로 가야하는가 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생명 길로 가지 못합니다. 물론 주장할 때 주장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내놓아야 할 때는 내놓아야 그
것이 생명 길, 사는 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큰 진리가 있습니다. 안 내놓아야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도 내놓아야 사는 때가 있고, 인권도 내놓아야 사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놓은 것도 그렇습니다. 베냐민을 안 내놓으면 다 죽습
니다. 아까운데 내놓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내놓아야 사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골짜기와 평원반석’이라는 것은 난공 불략의 요새를 가리킵니다. 거민들이 이렇게 견고
한 요새에 들어와 있는데, 누가 들어올 수 있고 누가 우리를 칠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네 대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반석으로 되어 있는 골짜기 안, 견고한 요새지에 들어가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기 못 들어가시겠습니까? 하나
님께서 보실 때에는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타고 올라가는 원수만 있는 줄 아는데, 하늘에서 오는 원수도 있고, 또 그 안에도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고 말씀대로 바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성을 만들어 놓아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십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행위가 신앙적 행위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