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예레미야 20:1-18 중심에 불이 붙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중심에 불이 붙음
예레미야 20:1-18

1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3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4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 가리라 6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7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13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1.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着錮)에 채움

본문 1-2절에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다가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져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5장 20-21절에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찌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돌아와서 천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취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이 안 되어 주시겠습니까?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셨습니다. 대적하는 자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오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못한다고 하지 말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세워주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인본주의에서 떠나 완전히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기쁨이 넘치는 그 자리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세워주십니다. 또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면 무엇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으로 돌아왔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전하시지, 누구를 통해서 전하시겠습니까? 따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나이가 어립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옵소서’라고 하지 말고,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여서 귀히 쓰는 그릇,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관으로 사용되어야 하겠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말할 줄 몰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됩니다. 또 나이가 어려도 괜찮습니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면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골방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데로 돌아갔다면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 육신 중심, 의식주의는 다 천한 것인 줄 알고 사도 바울처럼 ‘나는 쇠해지고 그만 흥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나가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돌아오고, 하나님
말씀만 대언하는 그 자리로 돌아와야겠습니다.

2. 바스훌이 당할 징벌에 대한 예언

본문 3절에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골밋사빕’은 각주에 보면 ‘사방으로 두려움을 당한다’라는 뜻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네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때리고 착고에 채우며 거짓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사방으로 두려움을 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면 하나님께서 사방을 두려움으로 삼게 하십니다.

본문 4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스훌은 하나님의 제사장 임멜의 아들인데, 그는 여호와의 집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직분을 가지고 있는 높은 사람이 바스훌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에게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라고 예언하였으며, 또 원수들이 온 유다를 사로잡아 갈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본문 5절에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그 손의 부와 부귀, 소득, 모든 귀물, 보배,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들을 다 원
수들이 가져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잘 건설해놓았어도 죄를 지으면 그 건설해놓은 것들을 원수에게 다 빼앗기고 맙니다. 부, 보물,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갖다놔도 원수들이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고,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전부 원수의 손에 붙이신다고 하였는데, 잘 건설하는 것도 좋지만 죄를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서지 못하면 건설하는 것이 다 쓸데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보물, 아무리 귀중한 것을 갖다놓아도 얼마 동안에 원수의 손으로 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예언을 한 예레미야와 친구들이 다 바벨론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죽어 묻힌다는 것입니다.

3. 예레미야의 수난

본문 7-8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권유를 받았사오며’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설득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설득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설득을 받고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했더니 핍박이 더 심해지고 고통이 더 많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서 전하니까 종일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
라 강포와 멸망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죄로 인해서 멸망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한다. 다 불타진다’라는 것을 나가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나가 예언하니까 종일토록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종일 전하였지만 사람들의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 속에서 불이 일어남

예레미야의 속에서 불이 일어남

본문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다시는 나가서 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해봐야 좋은 말이 아니라 망한다는
말을 하니까 핍박만 더욱 심해지므로 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 않겠다고 해서 안 하면 마음이 평안할 줄 알았는데, 문제가 더 생기는 것입니다. 그대로 나가서 전하면 외부적으로 비방과 환난이 오기 때문에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속에서 열이 난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불이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답답하여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안해야 되는데, 문제가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하는 것을 안 하겠다고 결심하니까 어디서 문제가 생깁니까? 속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골수에 사무치고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전하지 않는다고 결심하고 그대로 할 때에 속이 평안하면 죽은 것입니다. 살았기 때문에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 특별히 교역자들이 속에서 불이 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삯꾼 목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익을 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은 해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 목사 외삼촌이 장로인데, 최 목사가 평양 신학교에 들어갔다
고 하니까 “야, 이놈아, 뭘 해먹을 것이 없어서 목사 질을 해먹으려고 신학교에를 들어갔느냐”고 책망했다고 합니다. 외삼촌이 장로이고 부자라서 최 목사를 일본에 유학까지 보내주면서 의사를 만들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가자 책망한 것입니다. 그래도 최 목사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서 일생동안 목회를 합니다. 지금은 미국에 가서 목회를 몇 십 년 하다가 요새는 선교하러 다닌다고 합니다. 그분이 금년 88세인데, 최근에도 몽고, 중국을 선교하러 갔다가 우리 창광 교회에 들렀는데 88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건강하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하신 김 목사님이 금년에 90세인데, 얼마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하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붙들어주십니다.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방법

1)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것 

그런데 예레미야가 속에서 왜 불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사람의 속에서 불이 일어나야겠는데,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 마음처럼 속에서 불이 붙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에 얼마나 불이 붙으셨으면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다 내려놓으시고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비방과 핍박이 많아 멸시를 받아도 대적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2) 자기의 생명보다 믿음의 백성을 귀중히 여길 것

속에서 불이 붙는 방법 두 번째는 자기의 생명보다 믿는 백성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1-32절에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기도하기를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하니까 그 죄를 사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하지 마시고 오히려 자기를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가 자기의 생명보다 이스라엘 백성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생명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실지언정 이스라엘 백성을 사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32장 3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범죄하면 내 책에서 지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지워버리실 것이고, 아무리 지워달라고 해도 한 번 기록된 것은 지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지워버리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정치 않으신다는 뜻이 있고, 또 신앙으로 이루어놓은 인격을 지워버리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의를 인정치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과거
에 믿음으로 행한 신앙 인격을 다 지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지워버리지 않으십니다. 하여간 모세는 이렇게 자기 생명보다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김으로 멸망 받게 될 처지에 놓이니 이스라엘 백
성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모세는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 같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
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기를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생명보다 더욱 사랑한 것입니다. 백성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니까 속에서 불이 붙은 것입니다. 불은 일으키려고 해서 붙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붙습니다. 불이 일어납니다. 또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 자기 양 떼를 생명같이 사랑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같이 사랑하면 불이 일어납니다.

3) 살구나무가지와 끓는 가마를 볼 것 

속에서 불이 붙는 방법 세 번째는 눈 앞에 살구나무가지와 끓는 가마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눈 앞에 살구나무가지, 또 하나는 끓는 가마를 보았습니다. ‘살구나무가지’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다 이루어나가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재촉하시며, 말씀대로 경고하시다가 모든 것을 다 심판하셔서 황무지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끓는 가마’는 북에서부터 남쪽으로 기울어져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말씀대로 환난이 올 것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가 당장 눈 앞에 있는 살구나무가지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으므로 얼마 안 있으면 심판을 받아 다 망할 것을 아는데, 어떻게 애가 타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교역자가 어떻게 해야 불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구속에 감격해야 불이 일어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주님께서 세우신 양 떼, 값 주고 사신 양 떼가 금보다 귀한 줄을 알게 되니까 ‘내가 이 한 생명을 위해 내 생명을 희생할지라도 건져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에 입각해야만 하나님의 일, 즉 구속의 일이 잘됩니다. 교회도 잘되고, 봉사도 잘되고,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잘되며, 연보하는 일도 잘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라는 것을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희생해도 하나님의 백성만 잘되면 된다.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된다’는 신앙으로 나가면 불이 붙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 큰 일이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 큰 일이 되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을 하지 않으려고 해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 때에는 외부적으로 핍박이 들어왔지만 안 하니까 환난이 속으로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안 하려고 하다가 못하니까 속에서 불이 들어와 타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답답하여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 아무리 환난이 들어오고 핍박이 들어와도 내가 다시 아니할수 없다. 아니 하려고 해도 아니 할 수가 없어서 다시 하나님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재산을 바치고 모든 희생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해나가자’라고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에서 발동이 일어나서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 발동이 일어나고, 불이 일어나니까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속에서 발동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불이 붙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생명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셋째는 눈 앞에 살구나무가지와 끓는 가마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불이 붙는 데로 기어 들어가는데 그것을 보고 평안할 수가 있습니까? 속에서 불이 붙어 전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다시 나가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불이 붙는 이 세 가지를 행하여야 되겠습니다. 반대로 이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은 마음속에 불이 붙지도 않을 뿐더러 전하지 않아도 오히려 평안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5. 승리를 확신함

본문 10절에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수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레미야가 타락하기를 기다리고 유혹 받기를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진정으로 타락을 하고 유혹 받기를 바라겠습니까? 속에서 불이 일어났고, 또 완전히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왔는데 타락하기를 바라겠느냐는 것입니다. 천한 것을 다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을 붙잡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타락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려고 해도 속에서 발동 질을 하며 계속 돌아가는데 어떻게 안 하겠습니까? 안 하면 속에서 불이 붙어서 다 타고 맙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시지, 그 사람들이 이기겠습니까? 선지자를 핍박하는 사람이 이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편이십니다. 왜 예레미야의 편이 되셨습니까? 예레미야가 속에서 불이 붙어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또 천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해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는 대언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참 선지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큰 수욕을 당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큰 수욕은 영영토록 잊지 못할 수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험하시어 폐부와 심장을 다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에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
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폐부와 심장을 살펴보시고 그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핍박하는 자들의 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지금은 핍박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승리하십니다. 늘 진리가 이깁니다. 하나님께서는 폐부와 심장을 다 살펴보시며 언제나 붙들
어주십니다. 그 중심을 아시고 붙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이 깨끗해야 합니다. 폐부와 심장이 깨끗해야지, 벌레가 끼거나 찌끼가 끼면 안 됩니다. 욕심이 없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복장이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아무 흠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렇게 깨끗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6. 생일을 저주함

본문 13-16절에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승리를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며 심판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폐부, 즉 심장을 새벽부터 아신다는 것입니다. 찌꺼기는 있는지, 욕심은 조금이라도 있는지, 이기주의가 있는지 살펴보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수해주셔서 원수들을 심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가난한 중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가감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폐부를 살펴보시고 속이 깨끗하니까 그런 사람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가 이 승리를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전하였는데, 지금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승리를 확신하고 전해도 고통이 심하니까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이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태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미가 내 무덤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배로 항상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8절에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라고 하였습니다. 고생이 너무 심하여 현재의 탄식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부로 고생은 심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편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리가 확실할 것
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승리를 확신하고, 속으로 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속에서 불이 붙어 다시 나가 전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을 말한 것입니다. 너무 고생이 심하니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군의 하나님께서 자기편이시라는 것을 확신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들여다보신다고 하였습니까? 폐부, 심장을 다 들여다보신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이기주의, 물욕과 정욕과 사욕등 더러운 욕심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들여다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징계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승리를 확신하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환난과 핍박이 많지만 그래도 또 나가서 전하여야 합니다. 아니할 수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속에서 불이 나니까 힘든 줄 모르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속에서 불이 일어나,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죽도록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