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
예레미야 6:1-30
예레미야 6:1-30
1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2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4너희는 그를 치기를 준비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볕 그늘이 길었구나 5일어나라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그 전각들을 헐자 하도다 6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을 쌓으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발하니 강포와 탈취가 거기서 들리며 질병과 창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9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10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11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13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7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1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20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 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22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23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자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 24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25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행치 말라 대적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 26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찌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27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28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29풀무를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 하나니 30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
1. 여호와의 훈계를 받지 않는 성은 파멸됨
본문 1절에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 자손들’은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가리키는데, 예루살렘 백성의 반 이상이 베냐민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드고아’나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지방인데, 재앙이 북방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성까지 피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앙이 예루살렘 남쪽까지 미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을 아름답고 묘한 딸이라고 묘사한 것은 시온이 아름다운 딸과 같이 평안하게 잘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평안하게만 살고, 환난을 모르고 지내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환난을 모르고 부잣집에서 자라난 딸처럼 평안하고 사랑만 받으며 귀엽게만 자라났기 때문에, 연단이 없는 가운데 갑자기 환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에서 아름답게 사랑을 받고 자라났지만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예기치 않고 당해보지 않았던 무서운 환난이 갑자기 임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처소에서 먹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먹인다’는 것은 바벨론 나라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점령할 것을 말합니다. 군대를 거느리고 오는 것은 목자가 양 무리를 거느리고 오는 것 처럼, 바벨론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4절에 “너희는 그를 치기를 준비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볕 그늘이 길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정오는 너무 더워서 전쟁하기가 힘든 때인데도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하기 힘든 때에도 올라가서 열심히 싸우자는 것이고, 날이 기울어서 밤이 된다고 할지라도 싸우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침략군들이 밤낮도 가리지 않고, 전쟁하기 어려운 때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침략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5-7절에 “일어나라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그 전각들을 헐자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을 쌓으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샘이 그 물을 솟쳐냄같이 그가 그 악을 발하니 강포와 탈취가 거기서 들리며 질병과 창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샘이 물을 솟구쳐내는 것처럼 계속 악을 발하기 때문에 이 백성들이 학대를 받고 질병과 탈취와 창상을 받아 계속 불의한 일이 이루어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고 하였습니다. 훈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훈계를 받지 않다가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었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훈계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때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위할 줄 알고,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만 위해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충성을 다 기울이는, 그러한 바른 훈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것을 받지 않고 여전히 우상을 지고, 제 고집대로 나가고, 자기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원수에게 다 멸망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늘 순종하고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인데,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귀중히 여기는 것들을 다 버리고, 이제는 온유, 겸손한 마음으로 훈계를 잘 받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2. 하나님 백성의 상처를 고쳐주지 않으면 벌을 받음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군대가 마치 포도를 따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손을 놀려서 남김없이 잡아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10-11절에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무엇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는 사람, 여호와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여호와 섬기는 일을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는 사람은 벌 받을 사람입니다. 여호와 섬기는 일을 욕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예배당 가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욕으로 여기고, 기도하는 시간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욕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교회에 나가고, 성경 보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것도 억지로 하며 욕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새벽 예배에 나오라는 것을 욕으로 여기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을 욕으로 여기는 사람은 벌 받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해야 하는데, 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것을 욕으로 여기는 사람은 벌 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라고 하면 단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게 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즐겁게 단 마음으로 하고, 충성되게 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말씀 섬기는 것을 욕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반드시 분노하시고 그 분노가 쏟아져 내려올 날이 오게 됩니다.
본문 11-12절에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분노가 쏟아져 내려오는데,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청년들, 지아비와 지어미,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3-15절에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악을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범죄하고 나아감으로 평강이 없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하였음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하다고 하며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남도 엎드러지게 하고 결국 자기도 멸망하고 맙니다.
3. 옛 길을 찾아 그리로 가라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옛적 길’은 옛날 신앙의 조상들이 걷던 바른 신앙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일을 옛날로 돌아가 그 방식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옛적 길 그대로 믿어야 하는데, 옛 길이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성경대로 믿었고, 부흥회가 아닌 사경회로 말씀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사경회는 성경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흥회를 하지 않고 사경회를 하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들이 부흥회를 하느라 손뼉을 치고 떠들썩하지만 그것은 옛날식이 아닙니다.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에 성결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손뼉을 치는 교회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무슨 교회냐고 물으니 성결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장로교회는 손뼉을 치지 않습니다. 장로교나 감리교는 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옛날식이 다 변해서 손뼉을 치는 곳으로 변하고, 신비주의로 변하고, 신 신학으로 변하고, 현대주의로 다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적 길이 성경대로 믿는 길이고, 영적인 길인 줄 알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영이 사는 길, 처음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믿는 길이 옛적 길이고, 영이 사는 길이 옛적 길입니다. 말씀대로 믿는 길이 옛적 길이고, 순수하게 믿음의 길로만 걸어나가는 것이 옛적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순수하게 말씀 중심, 영이 사는 중심으로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을 떠나서 인본주의로 기울어져 여러 가지 제도와 의식을 많이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옛적 길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옛적 길로 나가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파숫군을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세웠다는 것이고, ‘나팔소리를 들으라’는 것은 깨우치는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즉, ‘파숫군의 나팔’이라는 것은 선지자가 깨우치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가 깨우치는 그 말씀을 듣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가 깨우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나 회개를 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우상을 섬기며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18-19절에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법을 버리며, 옛적 길을 다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재앙밖에 내려올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4. 의식주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사
본문 20절에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고 하였습니다. 시바에서 유향을 가져 오고, 원방에서 향품을 가져 옵니다. ‘시바’는 예루살렘 남방 1500마일 지점에 있는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의 지방이라고 합니다. 1500마일이면 몇 리나 되겠습니까? 5마일이 20리니까, 6000리입니다. 6000리 밖에서 유향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6000리면 얼마나 먼 거
리입니까? 서울에서 부산이 1000리인데, 그것보다 6배가 더 먼 거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먼 지방에 가서 유향을 실어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 온 것입니다. 얼마나 정성이 있습니까? 또 원방에 가서 향품을 가져온다고 하였는데, 그것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오는 것입니다. 6000리나 떨어진 먼 지방에서 유향과 향품을 사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리입니까? 서울에서 부산이 1000리인데, 그것보다 6배가 더 먼 거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먼 지방에 가서 유향을 실어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 온 것입니다. 얼마나 정성이 있습니까? 또 원방에 가서 향품을 가져온다고 하였는데, 그것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오는 것입니다. 6000리나 떨어진 먼 지방에서 유향과 향품을 사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성은 있습니다. 요새 일본에 가서 향품을 사다가 제사를 하려는 것도 힘이 들 것입니다. 비행기로 부산까지가 한 40분이 걸리니까 6000리면 대략 4시간 정도는 갈 것 같습니다. 또 서울에서 대만까지가 3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은데, 이것은 대만보다 더 멀리 가서 유향을 사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정성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의식주의로 기울어진 것을 말합니다.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섬기는듯하지만 의식과 형식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안 받으십니다. 왜 안 받으시겠습니까? 옛적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옛적 길을 떠나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삼는 자리를 떠나고 말씀대로 믿는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에,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의식적으로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삼고 사는 사람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또 사람들 앞에 의와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먼저 자신부터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영이 살고 사람 자신도 바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야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돈을 들여 아름다운 것을 사기 위해 멀리까지 가서 제물을 사서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거침에 빠지지 않는 법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 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제사,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내적 생명 없이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 앞에 하나님께서 거침을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걸려 넘어지는 것,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곳에 아버지와 아들이 다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인 종교 생활만 하고, 내적 생명 없이 옛적 길을 떠나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삼지 않으며, 말씀 앞에 벌벌 떨지 않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침을 주십니다. 무슨 거침을 주실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다가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14절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자가 음녀의 구렁텅이 빠집니까? 여호와의 노를 받는 자가 거기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빠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노를 당하는 사람은 빠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본문 21절에서 말씀하신 거침 중의 하나입니다. 거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시험에 빠지는 것, 사기를 당하는 것, 포로로 잡혀가는 것, 또 악한 무리에게 손해를 보는 것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빠지지 않습니다. 본인들도 빠지지 않고, 자녀들도 안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 지켜주시면 본인도 빠져서 거침에 넘어가고, 자녀도 거침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함정에 한 번 빠지면 생명이 위험하고, 돈 몇 천 만 원이 한 구렁텅이에 다 들어갑니다.
어떤 가정부인이 거침에 빠져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집을 다 팔고 몇 억대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거침에 빠지면 그렇게 됩니다. 또 자녀가 거침에 빠진 집도 있는데, 자녀가 거침에 빠진 것을 건져내려고 몇 천 만원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한 번 빠져놓으면 힘이 듭니다. 하여간 여러 가지 거침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빠지지 않게 해주셔야만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한 대로 한 번 빠지면 집 한 채 정도는 언제 날아갔는지도 모르게 날아가고, 재산도 다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거침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옛적 길로 걸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지 말고 감사하며,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세워 경고해주시는 말씀을 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종을 세우시고 권면해주시는 말씀을 잘 순종해서 나가면 거침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거침에 빠져서 하루아침에 다 망하게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여러 종류의 거침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한다고 한들 안 빠질 수가 없습니다.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을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산에 들어가면 새 그물망을 쳐놓은 곳이 더러 있는데, 내가 새라면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니 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물은 나일론 줄로 만들었기 때문에 새가 날아다닐 때에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앞에 가까이 가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중은 새가 마음 놓고 늘 날아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그 앞에 갑자기 그물이 보이면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일단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가는 그물이 새의 날개와 목을 다 감게 되어 있으므로 뒤로 돌아서려고 해도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해도 안 걸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물고기가 어떻게 하면 그물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안 걸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고기가 마음 놓고 늘 왔다 갔다 하는데, 투명한 그물 같은 것으로 갑자기 내려치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투망이 갑자기 내려오는데 고기가 어떻게 빠져나가겠습니까? 피하려다가 도리어 투망속으로 들어가는 물고기도 많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고기라고 치고 갑자기 투망이 내려오면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투망 내려오는 것을 알 수는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람이라고 해도 별 수 없을 것입니다. 투망이 어디에서 내려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막아주셔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지 않으시면 그물에서 새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투망에서 고기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입니다. 고기가 투망에 안 걸릴 수 없는 것처럼 일단 하나님의 재앙이 내리면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투망이 어디에서 내려올지 모르는데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미국에 내려올지, 일본에 내려올지, 한국에 내려올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다 보면 죄가 많은 곳에 투망이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며, 우상을 섬기고, 자기 이기주의로만 나가면 거기에 투망이 내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망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미리 투망이 내려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투망이 내려오지 않게 하는 법은 먼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도 거침에 빠지지 않고, 자녀도 빠지지 않으며, 옛적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제일 복 받는 길입니다.
5. 침략자의 잔인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본문 22-26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자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하시도다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행치 말라 대적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찌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잔인한 원수가 멸망을 시키려고 이렇게 홀연히 온다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고통을 하며 독자를 잃은 슬픔같이 슬픔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망대와 요새로 삼으심
본문 27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무엇으로 삼아놓으셨습니까? 백성을 살피는 자와 요새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망대와 같이 높이 올라가 멀리 바라보게 하셨고, 요새로 삼아 아무리 대적하는 자가 있어도 손해를 받지 않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망대와 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봐야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데, 그만큼 자세히 보고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럴 때에 다른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공격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요새로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쇠 기둥과 놋 성벽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해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사명을 담대히 전하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깨우칠 자를 깨우치고, 또 불순종하는 자에게 심판이 온다는 것을 예고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놋과 철’이라는 말은 강퍅하고 무감각하다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전부 이렇게 사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풀무를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하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은을 연단할 때에 납을 섞어서 풀무에 달구면 납하고 은 찌끼가 밑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순전한 은만 위에 뜨면 좋은 은을 선별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이 나쁜 경우에는 위에 뜨지 않고 납과 같이 섞여버립니다. 그래서 풀무에 담가놓으면 다 타서 없어지고 은도 연단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유다 백성들의 질이 나쁘기 때문에 아무리 연단을 해도 연단이 잘 안 되고 죄악이 갈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질이 좋은 은이어야 납과 분리가 되는데, 질이 엄청 나쁜 은은 연단을 아무리해도 죄가 제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은 전체를 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도 이와 같이 아무리 연단을 시키려고 하고, 찌끼가 되는 죄악을 갈라 내버려서 깨끗하게 만들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은까지 내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연단하실 때에 연단을 잘 받아서 선별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제거시키실 때에 순종해서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떠나야 되겠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은까지 다 내버리게 된다고 하였는데, 자기 자신을 내버릴 줄 알고 죄를 빨리 제거시켜서 회개하고 바로 서야 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