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화요일

에스겔 9:1-11 인치는 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인치는 자
에스겔 9:1-11

1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1. 살륙(殺戮)의 사자와 인치는 사자

본문 1-2절에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읍을 관할하는 자’는 천사를 가리키는데, 이 천사들로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에 살륙하는 기계로 멸망시키시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관할하는 여섯 사람 외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한 사람이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섯 사람은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나왔다고 하였고 한 사람은 인을 치기 위해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차고 나왔다고 하였기 때문에, 인치는 사자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죽이는 사자가 인치는 것이 아니라 인치는 사자가 별도로 있었기 때문에 일곱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살륙하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이 먼저 진행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 운동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인해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기 전에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먼저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먼저 주셔서 건질 자를 살려내신 다음에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이마에 표를 치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치는 역사가 먼저 일어남

본문 3-4절에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안에 그룹이 있는데, 지성소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는 성전 문지방에 이르렀기 때문에 먼저 표를 치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성전 문지방으로 나왔는데, 조금만 있으면 그 영광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기계를 준비하셨는데, 그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인치는 역사를 먼저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네 천사가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을 불게 할 수도 있게 하고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2-3절에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를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관할하는 네 천사와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여섯 천사, 그리고 인치는 사자가 나와 인을 치기까지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사역을 먼저 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서에서 미스바 회개 운동이 있은 다음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7장 3-8절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
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미스바 운동이 있은 후에 큰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큰 전쟁이 나기 전에 은혜를 주신 역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북에서도 6·25 사변이 나기 전에 이기선 목사님을 통해 큰 생명의 역사를 주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전쟁이 나기 전에 은혜를 주실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 개인적으로도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은혜를 주시는 역사가 종종 있습니다. 보통 때는 믿음이 시원치 않던 교인인데 6·25 사변이 나기 얼마 전부터 성경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6·25사변이 난 다음에 순교를 당하였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기 전에 은혜를 많이 주시는 일이 개인적으로, 교회 전체적으로, 국가적으로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심

이제 하나님께서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베옷’은 회개하며 부르짖는 것을 가리키고, 먹그릇을 차고 이마에 인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서기관’은 성경말씀을 기록하는 사람들인데, 옛날에는 이 서기관들이 성경말씀을 먹으로 가죽 종이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이마에 말씀으로 인을 치라는 뜻입니다.

인은 두 가지인데, 말씀의 인과 성령의 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3절에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증거를 받는 것이 인치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령으로 인치는 것입니다. 인에는 말씀의 인과 성령의 인 두 가지가 있는데, 합하면 하나입니다. 합하여 하나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우리 심령 속에서 성령으로 믿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성경말씀이고, 우리의 심령 속에 인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이마에 표를 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마’는 사상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상 속에 꽉 들어 박혀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이 이마에 인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치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심령 속에서 생명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치는 사업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 영혼이 자라나는 것, 중생한 영이 자라나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인을 치는 일입니다. 이마에 표를 받아 말씀대로 영이 자라나는 것도 표를 치는 것이고, 전도를 하여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돌아와 회개하며 바로 서서 영이 자라나는 것도 이마에 표를 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마에 인을 치라고 하였습니까?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였는데, 회개하는 사람의 이마에 인치라는 것입니다. 먼저 가증한 일을 보고 우는 사람에게 인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가증한 일, 부패성, 스스로 되지 못한 것, 자기 눈에 있는 들보, 성경말씀에 위반되는 모든 마음의 생각을 가지고 탄식하며 울부짖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에 있는 죄, 자기 행동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거역한 죄들을 붙들고 탄식하며 우는 사람의 이마에 인을 쳐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 성읍의 죄, 곧 교회의 죄를 가지고 탄식하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요새 성경에 이탈되어 나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이를 위해 탄식하며 우는 사람의 이마에 인을 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되지 못한 교회, 가증한 일을 행하며 영적 생명에서 떠나 인본주의와 세상주의로 나가는 교회, 의식주의로 나가는 교회 때문에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인을 쳐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에 대해 예민하고 안타까워하며 무서워하고 어찌 하든지 하나님께 바로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의 이마에는 인을 쳐주시지만, 죄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의 이마에는 하나님께서 인을 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발견하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을 알아 벌벌 떨면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하고 바로 믿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은 떠나려고 하고 옳은 진리는 자기의 생명으로 삼아 바른 진리대로 걸어가며 그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몸과 마음을 바쳐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그 말씀만 따라가는 사람의 이마에 인을 쳐주십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에 대해 관심과 감각이 없고 양심이 마비되어 둔해진 사람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날마다 회개하고, 옳은 진리를 발견하여 붙들며,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서 전폭을 쏟아 바쳐서 따라가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에스겔 8장에 보면 교회에 가증한 것이 가득 들어와 찼습니다. 투기의 우상이 들어왔고, 곤충과 짐승 우상을 방 안에 그려놓았고, 여인들은 담무스 우상을 위하여 울고 동방 태양을 향해 절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가증한 일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럴 때에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안타까워 하며 울면서 그것을 제거하려고 죄와 싸우며 죄를 떠나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인을 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마에 인을 쳐주십니다.

3. 표 있는 자 외에는 다 멸하라

말씀으로 생명을 삼는 인 맞은 자는 멸하지 못하게 하심

본문 5-6절에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읍을 관할하는 여섯 천사에게 죄로 가득 찬 성읍의 사람들을 잡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죄를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성소에서부터 먼저 심판이 시작되지만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은 죽이고, 인 맞은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마의 표는 심령에 맞는 것이고 영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라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영이 살았기 때문에 죽는 법 없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자기 영이 살아나면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삽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이 말씀으로 인을 쳐서 생명의 역사가 점점 계속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역사가 없고 영이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육신이 죽을 때에 아주 낭패를 당합니다. 만약 중생한 사람이면 구원은 받긴 받겠지만 아주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이 자라난 사람은 죽어도 빛나고 영원히 빛나서 죽지 않는 것입니다.

성소에서부터 멸하심

본문 6절에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 성소에서부터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소에서는 장로부터 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 목사, 장로들이 먼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부터 먼저 시작되고, 경건치 않은 자와 복음을 순종치 않은 자는 심판을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난 때에 교회부터 심판을 받고 교역자부터 죽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시고, 교역자나 장로는 책임이 중하기 때문에 먼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앞으로 환난이 오면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먼저는 교역자들과 장로들이 해야 합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과 죽는 것, 하나님 앞에 상 받는 것도 앞장서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교역자나 장로는 먼저 앞장서야 하고, 교회를 받들어나가는 데도 앞장서야 하고, 환난을 이기고 죽는 데도 앞장을 서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 장로는 면류관이 있다고 하였는데, 죽는 것에 앞장서지 못하면 면류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로될 사람이 ‘나는 앞장설 자신도 없고 먼저 죽을 자신도 없으니까 장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되라고 하시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격이 있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시키시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시니까 순종 하느라 여기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집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시키셨기 때문에 순종하느라 온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그래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원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1장12-16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인 가운데 괴수인데 하나님의 긍휼로 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혀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에 직분을 맡은 것 뿐입니다. 처음에는 능이 없었는데 직분을 맡을 때 능하게 만드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1-2절에는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직분은 자격이 있어서 맡긴 것이 아니고 긍휼을 베풀어서 그 직분을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
습니다. 이제 그 직분 맡은 자들은 충성하고, 궤휼하지 말고, 말씀을 혼잡케 하지 말고, 진리의 말씀만 바로 증거하면 됩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멸하심

본문 7-8절에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더럽힌 사람의 시체를 전부 성전 뜰에 채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륙당하는 것을 보고 에스겔은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4.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심

본문 9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에 죄악이 심히 중하기 때문에 멸망을 시키신다고 하였는데, 첫째는 피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피가 가득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남을 말로 죽이며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가 오늘날에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성읍에 불법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불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고 성경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일로 가득 찼습니다. 셋째는 디도서 1장 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이 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가 가득하고 불법이 찼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가 가득하고 성읍에는 불법이 가득함으로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시며 보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 것, 성경에 어긋난 것,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던 것, 행실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한 것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껴 보지 아니하시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며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명령 실행 후 보고함 

본문 11절에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회개하며 부르짖으면서 말씀대로 나가는 사람은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라고 복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회개하며 부르짖고,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고, 그 가운데로 나가서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데까지 나가야 하겠습니다. 먼저 말씀을 받아서 생명으로 삼고, 회개하면서 부르짖고, 나가서는 전도하는 일을 다 한 후에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나이다’라고 보고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다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남겼습니다’라는 보고를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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