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퀴
에스겔 10:1-22
에스겔 10:1-22
1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2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3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4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5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6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7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8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9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10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11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며 12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13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14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15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16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17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18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0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 21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22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몸뚱이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1. 숯불을 취하여 성읍에 흩으라 하심
본문 1절에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룹’은 천사를 가리키고, 그 위에 ‘궁창’은 영계(靈界), 즉 하나님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 영계는 궁창과 같이 무한히 넓고 높으며 거룩하고 깨끗합니다. 거기에 남보석 같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남보석 같다는 것은 보석과 같이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광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보좌입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고 하였습니다. ‘가는 베옷 입은 사람’은 말씀을 가지고 인치는 사역을 하는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천사에게 바퀴 사이에 들어가서 두 손으로 숯불을 취하여 성읍에 흩으라고 하셨습니다. ‘숯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상징합니다. ‘바퀴’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
의 경륜을 따라 예루살렘 성읍에 심판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숯불을 취하여서 성읍에 뿌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심판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으면 생명이 살고 자라나는 것이고, 말씀을 받지 않으면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생명을 전하는 것인 동시에 심판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 그것은 생명이 살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고도 말씀을 무시하며 순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이 불이 되어서 그 사람을 사릅니다.
의 경륜을 따라 예루살렘 성읍에 심판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숯불을 취하여서 성읍에 뿌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심판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으면 생명이 살고 자라나는 것이고, 말씀을 받지 않으면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생명을 전하는 것인 동시에 심판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 그것은 생명이 살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고도 말씀을 무시하며 순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이 불이 되어서 그 사람을 사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8-9절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고 하였는데, ‘해’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운다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줄 때에 그 말씀을 생명으로 받으면 자기 생명이 살고, 말씀을 받지 아니하고 무시하고 나가면 그 말씀이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벌벌 떨며 그 말씀에 복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복종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복종하면 자기 영이 사는 것이지만, 복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또 무시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명령도 어기고 무시하면 감옥에 가거나 처벌을 받습니다. 국가에서 군대에 나오라고 하는데 안 나가면 그 사람은 감옥에 갑니다. 국가의 명령도 거역하면 반드시 처벌이 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기 영이 살고 생명이 자라나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반드시 그 말씀이 자기를 심판할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어기는 사람은 참 불쌍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심판대 앞에 가서 불이 되어 그 사람을 사릅니다.
본문 3-4절에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이 동향하고 있으므로 우편은 남쪽에 해당하며 요긴한 자리입니다. 그룹들은 성전의 요긴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합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다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할 때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영화롭게 비취는 가운데에서 에스겔이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들의 소리인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범사를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날개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소리입니다. ‘바퀴’는 하나님의 경륜을 상징하며, 이 땅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경륜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퀴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 내포해있는 심판의 불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심판도 하나님의 경륜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대로 심판도 오고, 하나님의 구원도 옵니다. 그것은 성도에게 손해를 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 유익이 되고, 은혜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징계를 통해서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신 것도 우리에게 큰 복과 유익을 주시려고 내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와 독생자까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내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양심을 지켜서 구원 받은 사람이 없고, 또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그 이후의 모든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또 신약시대에는 이미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중생한
영혼은 범죄하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아담보다 나은 중생한 새 사람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하기 전 영혼은 우리만 못합니다. 그것은 범죄할 수 있는 영이고, 우리의 영은 범죄할 수 없는 영입니다. 우리의 영은 죽지 않습니다. 또 다 천
국에 올라갑니다.
본문 7-8절에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고 하였습니다. ‘손’은 일하는 것을 상징하며, ‘그룹’은 천사를 말합니다. 한 천사가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에게 심판권을 준 것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심판에 대하여 수종을 들고, 또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수종듭니다(히 1:14).
2. 네 바퀴 - 사방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경륜
본문 9-10절에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네 바퀴’는 사방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경륜을 가리킵니다. 황옥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 아름답게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경륜대로 이루어져 결국에는 성도의 구원 완성과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 됩니다.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란 각처에서 이루어져나가는 하나님의 경륜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퀴 안에 바퀴’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작은 경륜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경륜 속에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경륜이 있다는 뜻입니다.
경륜은 아름답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도 오고 징계도 오고 심판도 오지만 결과적으로 합동해서 유익되게 만들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의 심판도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시는 경륜이고, 소돔 고모라의 심판도 롯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시는 경륜입니다.
6·25 사변도 외부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한국에 상당히 비참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6·25 사변 때문에 유익된 것이 많습니다. 6·25사변으로 인해 성도들이 이북에서 남한으로 많이 나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6·25 사변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아직 이북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져나갑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북에도 복음을 전할 때가 옵니다. 또 망한 사람도 안 망했다면 예수님을 못 믿었을 텐데 망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의륜의 바퀴는 전부 아름답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란 천사들은 뒤를 돌아보는 법 없이 오직 앞으로만 전진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뒤로 돌이키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질 수 없다고 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메워 주신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만 나가야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그저 앞으로 나가는 것뿐입니다. 어디까지 갔든지 거기서부터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직도 시작을 못했으면 거기서부터 앞으로 가야 합니다. 또 조금 나왔더라도 거기서부터 앞으로 가야 합니다. 가다가 ‘갈까 말까, 그만 둘까’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나무 멍에를 벗으면 쇠 멍에가 옵니다(렘 28:13).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십니다(고전 10:13). 아무리 어려운 십자가가 와도 하나님께서 다 감당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갈 때, 독한 것을 마셔도 아무 해를 받지 않도록 해주십니다(막 16:18). 처음에는 환난이 조금씩 작게 오다가 차차 커져서 옵니다. 그러나 끄떡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견디게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이마를 금강석과 같이 해주셨고 예레미야는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해주셨습니다(렘 1:18). 원수가 아무리 강해도 다 이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 문제없습니다. 독한 것을 마셔도 상하지 않게 해주시고 뱀을 잡아도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십니다. 독사와 같은 사람이 아무리 쏘아도 끄떡 없이 만들어주십니다. 쏘면 자기 이빨만 아픕니다. 굳은살이 다 박힙니다. 가시가 찔러도 끄떡없습니다.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찔레와 가시와 전갈과 같이 산다고 해도 다 감당하게 하십니다. 네 이마를 금강석 같이 굳게 해주시어 넉넉히 이기도록 해놓았으니 겁내지 말고 담대히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뒤로 돌이키면 안 됩니다. 뒤로 돌이키면 소금기둥이 됩니다(눅 17:32). 자신은 맛이 없어지고, 하나님께서는 내버리시고, 사람들에게는 밟히며 구경거리가 되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네까짓 것이 천당 가면 나는 만당에 가겠다”고 하는 비방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 돌이키면 안 됩니다. 죽어도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일 때가 되어야 죽이시지, 안 죽이십니다. 목숨 내놓고 나가도 때가 되기 전에는 안 데리고 가십니다.
어떤 목사님의 사모님은 간이 나빠서 죽었다고 합니다. 캐나다는 공기도 좋고 물도 좋은 나라인데 왜 간이 나빠서 죽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외국은 스트레스가 더 많다고 합니다. 한국은 평안하고 다른 신경을 많이 안 쓰지만 외국은 민족적 차별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신경을 많이 쓰다가 간이 95% 정도가 녹아서 죽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간이 안 녹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륜대로 가야 피난입니다.
본문 12절에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룹의 온 몸과 손, 날개, 바퀴에 눈이 가득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눈’은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완전한 지혜를 가리킵니다. 네 바퀴의 둘레에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로 모든 경륜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에게는 미련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지혜로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것입니다(고전 1:25).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는 하나도 실패가 없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전부 밝고, 전부 완전합니다. 완전무결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해나가십니다. 전부 다 지혜의 눈으로 밝히 보고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도 하나님의 지혜에 어긋난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악한 사람이 아무리 득세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완전한 지혜로 이루어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사람 보기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지혜를 가지시고 모든 일을 이루어나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하기만 하면 됩니다.
3. 그룹들의 네 얼굴
본문 13-14절에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바퀴들이 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경륜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에스겔 1장 10절에는 사자, 사람, 소, 독수리였으나 여기에서는 소 대신 그룹들이 들어가서 그룹, 사자, 독수리가 나왔습니다. ‘그룹’은 천사인데,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영물(靈物)입니다. ‘사람’은 지혜, ‘사자’는 능력, ‘독수리’는 신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이런 성품이 있습니다. 성도는
첫째,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하고,
둘째는 지혜롭게 나가야 하고,
셋째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 영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이 제일 첫째입니다. 천사가 이용당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이용당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이용당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언제나 잘 분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이것 저것 해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이므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또 ‘무엇을 시키든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용당한 것만큼 가치가 있고 존귀합니다. 그 다음에 성도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인 영적 지혜를 써서 나가야 합니다. 영적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의 감동입니다. 말씀과 영감으로 지혜를 써나가야 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신령한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용당한 것만큼 가치가 있고 존귀합니다. 그 다음에 성도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인 영적 지혜를 써서 나가야 합니다. 영적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의 감동입니다. 말씀과 영감으로 지혜를 써나가야 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신령한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4. 그룹과 바퀴의 동작
본문 15-17절에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러 올라가는 것이고, 천사들이 내려오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진 것만큼 땅에서도 하나님의 경륜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도 위에 있는 경륜과 땅에 있는 경륜이 있는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위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고,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것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경륜대로 이 땅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고 하였는데, ‘생물의 신’은 천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8-19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서 떠나 그룹 위에 머물렀다가 성전 동문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가득하므로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떠나시고 동문에 머물러서 그룹들을 통하여 심판의 경륜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5. 그룹과 생물은 동일함
본문 20-22절에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몸뚱이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룹들은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날개 밑에 사람의 손 형상이 있습니다. ‘네 날개’는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손’은 행동과 역사를 가리키는데, 천사가 다니면서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룹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곧게 앞으로 행하며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앞으로만 행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