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일 토요일

에스겔 15:1-8 포도나무 비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포도나무 비유
에스겔 15:1-8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6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찌라 7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8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1. 포도나무로는 도구를 제조할 수 없음

포도나무의 본분은 열매 맺는 것임

본문 1-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
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이것은 포도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는 열매 맺는 것 하나를 보고 포도나무 주인이 그 포도나무를 심었고 물을 주었고 비료를 뿌려줬고 짐승들이 와서 상하지 않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주었고, 또 소독을 하며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해준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 해주셨습니다. 울타리를 치듯 휴전선으로 원수를 막아주시고, 전쟁이 났을 때 유엔군을 보내서 다 내쫓아주시고, 각종 좋은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한량없이 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셨는데, 열매 맺는 것 하나를 바라보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잘 맺고 있습니까? 나무는 무성했지만 진짜 열매인 믿음의 열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의 열매를 잘 맺는가 그 말입니다. 생명이 자라나는 것, 영이 자라나는 것, 영이 자라나고 생명의 역사가 커지고 그 열매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이 이루어져 의의 열매, 진리의 열매, 거룩한 열매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은 시험 속에서 순종하여 다니엘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노아와 같은 열매, 욥과 같은 열매가 맺혀져야 되겠습니다. 욥은 아들과 딸 모두 열이 다 죽었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우리는 하나만 죽어도 새까매집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무슨 열매를 맺겠습니까? 죽으려고 해도 새까맣게 되고 학교만 떨어져도 새까매집니다. 그것은 참 포도나무 열매가 아니고 들 포도입니다. 참 포도나무가 들 포도를 맺는 것입니다.

삼림 가운데 포도나무를 심음

그러면 무슨 포도나무입니까? 삼림 속에 있는 포도나무로서, 이 포도나무를 여러 다른 종자의 나무 가운데에 심어놨습니다. 그런데 ‘너도 열매를 내니 나도 좀 내보자. 같은 나무이니 나도 좀 내보자’고 하면서 포도나무를 메고 가서 한 몫 하겠다고 여러 나무 가운데 심어 놓으면 나무가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나무끼리 따로 심어 놔야 합니다. 여러 나무하고 갈라서 심어야 하고, 밭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일반 수풀과 포도나무는 종자가 서로 다릅니다.
수풀 가운데 있어서는 자라나지도 못하고, 또 자라나도 포도나무 구실을 못합니다. 한 몫 멜 것 같아도 못 멥니다. 모든 것이 아예 다릅니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의 뜻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는 세상 사람하고 섞어놓은 것을 말합니다. 사회를 삼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세상주의로 나가는 교회와 사회에 참여하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잘못된 교단에서 열매를 맺혀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단 자체가 진리에서 탈선된 상태, 즉 삼림에서는 바른 진리로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열매를 맺힐 수 없습니다. 또 일시적인 열매를 맺는다 하더라도 먼 장래를 보면 열매를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소금 한 가마니를 한강 물에 풀어놓으면 한강 물이 짜집니까? 소금이 어디로 갔는지 넣으나 마나입니다. 넣었다는 말 뿐이지, 하나도 짠 기운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금 서너 말을 한 항아리에 풀면 어떻게 됩니까? 짜집니다. 진짜 간장이 됩니다. 그런데 요새는 항아리에다 간장을 만들지 않고 한강에다가 만드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메주 소금 한 가마니를 갖다 넣고 휘휘 저어서 떠먹으려고 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메주 덩어리는 하나도 없고 또 소금도 없습니다. 삼림 가운데 포도나무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넓은 데에 옳은 것을 섞어놓으면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어디든지 가서 바른 진리만 외치면 될 것 같아도 잘 안 되고, 그것을 잡으려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잡히고 맙니다. 먹으려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좀 가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진리는 다 없어집니다. 죽도록 해도 죽은 후에 다 없어집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밭에 심어야 함

그렇기 때문에 포도나무는 포도원을 만들고 거기에 심어 열매를 맺게 하여야만 합니다. 포도나무끼리 따로 심어 길러야 하고 섞어놓으면 안 됩니다. 적은 누룩이라도 있으면 온 덩이가 다 썩고 부패하므로 누룩을 제거하듯이 삼림에서는 포도나무를 갈라내어 포도밭을 만들어놓고 포도나무만 심어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는 자라나기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무성하고 크기도 빨리 큽니다. 나무 사이에 있으면 서로 먼저 올라가느라 빨리 크긴
하는데, 아무리 빨리 크고 잎사귀가 무성하여도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들을 한 번 보십시오. 하나도 열매를 못 맺습니다. 위로 나무들을 따라가다가 다 기운이 빠져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무 따라 올라가느라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풀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포도나무 밭에서 잘 자라나던 포도나무를 뽑아 수풀 가운데 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이, 포도나무 밭 못해먹겠다. 포도나무만으로는 재미가 없다. 수풀 속에 들어가면 꾀꼬리, 콩새, 부엉이, 까치 등 여러 가지 새도 많고, 산림 가운데 들어가면 가을에 잎사귀가 많이 떨어져서 비료가 되어 토지도 좋아진다. 거기 가면 서늘하기도 하고…’라고 하면서 포도나무 한 폭을 뽑아서 삼림 가운데로 잘되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림으로 포도나무를 옮겨간 사람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100% 실패입니다.

롯이 나무를 뽑아 소돔 고모라 수풀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토지가 비옥하고 들판이 많고 초장이 많아 목축하기 좋고, 도시가 풍성해서 판로가 상당히 좋으니 거기로 가자’하고 포도나무가지 세 개를 뽑아서 갔습니다. 큰 가지 한 개와 작은 가지 두 개를 뽑아가지고 소돔 고모라에 갖다가 옮겨놨습니다. 그런데 성공했습니까? 완전 실패입니다. 거기 가서도 롯은 경건하게 의를 지키고 삼촌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또 소돔 고모라의 죄를 위해서 탄식하고 그들의 죄를 보고 날마다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벌써 간 것이 실패입니다.
그것은 할 수 없어서 간 것이 아니고 자원해서 간 것입니다. 롯이 제대로 되려고 했더라면 삼촌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고 할 때에 “삼촌이 먼저 택하면 난 삼촌이 보내주는 데로 가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삼촌보다 앞장서서 나는 저기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삼촌한테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지기 무섭게 “예! 소돔 고모라요”라고 하면서 아예 거기로 가려고 첫 번에 택하였습니다. 허락이 떨어지니까 ‘됐다’하면서 그리로 가서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삼림 가운데 다른 나무들, 즉 죄악의 요소들, 죄악의 자식들이 자꾸 무성해지는 데에서는 자라날 수도 열매를 맺힐 수도 없습니다. 사위도 그 백성 가운데에서 다 얻었는데, 그 사위들은 불에 타서 다 죽고 딸들도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림 가운데 포도나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성하긴 무성할 수 있습니다. 삼림 가운데 포도나무가 무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100% 다 실패합니다.

포도나무는 주인을 의지하고 살아야 함

또 교회 일을 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삼림 중으로 가는 포도나무입니다. 교회 일을 보다가 세상으로 가서는 ‘나는 삼림 중으로 가는 포도나무다’하며 이, 삼 년은 좋은 모양입니다. 콩새도 오고 꾀꼬리도 오고 꿩도 오고 부엉이도 오고, 많이 왔다 갔다 합니다. 족제비도 오고 다람쥐도 오고 많이 왔습니다. 또 삼림에 가니 포도나무가 쑥쑥 잘 올라와서 무성합니다. 잘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습니까? 포도밭에 있어야 하는데 포도밭에서 뽑아 삼림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성공인 것 같으나 실패입니다. 살 것 같으나 죽고, 흥할 것 같으나 망합니다. 열매를 절대로 못 맺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밭에 있어야 합니다. 절대 뽑아가서는 안 됩니다. 죽어도 포도밭에서 죽을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포도밭에서 죽자’하고 있으면 주인이 옵니다. 주인이 와서 포도나무마다 살살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양이 부족하니 비료 좀 쳐라. 이것은 소독 좀 해라. 이것은 풀이 많은 것 같으니 풀 좀 뽑아줘라”고 하면서 주인이 돌보아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슬슬 해주면 죽어 가다가도 퍼뜩 살아납니다. 벌레가 먹으면 주인이 와서 소독약을 척 쳐줍니다. 그러면 쑥쑥 자라납니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니 퍼뜩 살아나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림 가운데 있는 것은 벌레를 먹었을 때 누가 와서 소독약을 쳐줍니까? 벌레 먹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자립한 것입니다. 삼림 가운데 있는 것은 자립이고, 포도밭에 있는 것은 주인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잘 돌봐줍니다.

포도밭에 있는 것이 심심하고 크기도 작고 주인을 의지하고 살게 되어 있어도, 그래도 포도나무는 포도밭에 있어야 합니다. 절대 포도밭을 떠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도밭을 떠나서 잘되려고 하다가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제조는 무슨 제조입니까? 아직 열매도 맺지 못한 어린 포도나무로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습니까? 포도나무로는 책상이나 강대상이나 의자나 옷장 같은 것을 만들수 없습니다. 또 의복을 거는 못도 만들 수 없는데, 가지에 힘이 없고 구부리면 구부리는 대로 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가시나무만도 못합니다. 가시나무는 울타리라도 하지만 포도나무는 울타리도 못합니다. 아무 쓸 데가 없어서 결국 땔감밖에는 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 밭을 떠나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그저 포도나무 밭에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열매를 맺혀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주인이 더 잘해주고 비료도 더 많이 줍니다. 모든 것을 더 잘 돌봐주는 것입니다. 주인의 덕분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인이 안 돌봐주면 못 삽니다. 또 주인은 소망을 전부 포도나무에 두는데, 주인의 기업체가 포도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실패하면 주인이 실패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실패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만 맺으면 모든 나무보다 훌륭한 나무이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더 잘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것으로는 불을 땔 수밖에 없습니다. 화목밖에는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2.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화목(火木)이 될 뿐임

본문 4-5절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벌써 징계를 받아서 시원찮은 상태, 태우지 않은 부분이 조금 남았어도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가운데를 태웠다는 것은 가운데도 징계 받았다는 것인데, 빨리 열매를 안 맺으면 무엇에 쓰겠느냐는 것입니다. 벌써 두 끝과 가운데도 불로 태웠으니 병이 났고 어디 내다 놓아도 변변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고 실패와 낙망을 당하고 벌써 다 매를 얻어맞아 성한 곳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면 살고 안 붙들어 주시면 죽게 되어 있는데, 그래도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면 살고 안 붙들어주시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제조에 소용이 없습니다.

3. 범법한 예루살렘을 대적의 불에 던짐

교회의 범죄 결과

본문 6절에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열매 맺지 않는 수풀 속 포도나무를 불에 던진 것처럼, 예루살렘을 또 불에 던지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수풀 속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포도나무는 하나님께서 대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멸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라는 것은 그들이 불에서 나와도 또 불이 사른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방을 따라가고 이방 풍속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던져서 심판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교회가 범죄할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의 몽둥이를 들고 그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여러 나라의 실례(實例)

예전에 소련에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의 그리스 정교회가 타락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 세상 권력을 잡았습니다. 정교회 교역자가 추천을 안 해주면 취직도 못하고 땅은 대개가 교회에서 사 갔습니다. 교회의 세력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풀 가운데로 교회가 나가자 하나님께서 공산당 몽둥이로 소련에 혁명을 일으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하시고 비참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한국도 일제 치하 말기에 신사 참배를 가결하였는데, 노회 중 평북 노회가 먼저 가결하고 총회적으로는 전국 교회가 평안 성도 교회에 모여 신사 참배를 가결하였습니다. 기독교 연맹도 일본 기독교단에 들어가 일본의 어용기관이 되어 사회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교회 연보로 비행기를 헌납하고, 연보로 전쟁 무기를 사는데 보내고, 교회에 신사를 만들어놓고 절하며 교회가 세상의 언론기관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38선을 이북 교회에 먼저 내주신 것입니다. 죄를 먼저 지었기 때문입니다.

월남에도 교회가 꽤 많이 있었고 천주교도 많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반 정부 데모나 하고 세상주의로 나가니까 하나님께서 공산당에게 다 내주셨습니다. 불에 다 붙여서 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가 학살당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리비아도 800년 동안 교회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리비아는 구레네 시몬의 고향으로, 구레네 시몬을 통해서 예수를 믿어 초대 교회 때, 즉 2000년 전에 기독 교회가 들어가 800년 동안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기독교가 세속화되니 아랍 마호메트교 몽둥이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기독교가 다 없어지고 지금은 마호메트교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800년 동안 컸는데도 수풀 가운데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른 몽둥이로 다 때려 부수시는 것입니다. 다 불에 던지십니다. 요새 리비아는 800년 동안 자란 여러 교회들이 핍박으로 많이 없어지고 이제는 숨어서 믿는 사람만 더러 있다고 하는데, 그 수가 약 30명가량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함

그러니 한국 교회도 앞으로 수풀로 나가면 우리 믿는 사람도, 한국 자체도 희망이 없게 됩니다. 소금을 한강에 물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나무 밭에 심어야 하고, 진리는 진리 안에 두어야 됩니다. 진리를 진리 안에서 세워나가야지, 비 진리와 섞어 두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 신학과 섞어놓으면 안 됩니다. 속화된 교회와 섞어 두면 안 됩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둘 다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새 술이 팽창할 때 낡은 가죽 부대는 불어나지 못하여 찢어지고, 술도 그 찢어진 곳으로 다 나갑니다. 새 포도주, 새 술은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새 술이 불어나도 새 가죽이어서 같이 커집니다.
‘새 술’은 새로운 진리 운동, 생명 운동입니다. 또 영적 운동입니다. 그리고 ‘새 가죽 부대’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만 역사하여야지, 이것을 섞어놓으면 다 터져나갑니다. 섞어놓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에 진리와 비 진리 간에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신앙이 맞는 교단에 들어가야 합니다. 진리가 맞는 사람끼리 교단을 섬겨야 하고, 맞는 교회끼리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교단적으로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것입니다. 새로
운 진리와 새로운 생명 운동을 낡은 가죽 부대, 즉 아무 곳에나 섞어 놓으면 술도 버리고 부대도 버리고 둘 다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고, 포도나무가 수풀에 나가거나 수풀속에 포도나무를 기르면 안 되겠습니다. 포도나무대로 길러나가야만 끝까지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진리를 양보하고 세상으로 나가든지 비 진리를 섞어놓으면 그것이 범법이므로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서 다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타협하지 말고 진리만 세워나가야 합니다.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하는 자리에서 벗어나면 악으로 쫓아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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