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어버린 가증한 이스라엘
에스겔 16:1-22
에스겔 16:1-22
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4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6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7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8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11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12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14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16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7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8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19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0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21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22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1. 시온 백성의 비참한 근본 상태
태생이 이방 사람이었음
본문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가증한 일’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3절에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근본’이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이 예루살렘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근본이 가나안 땅이라는 것입니다. 또 아모리 사람, 헷 사람에게 속해 있던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예루살렘의 사람들도 헷사람이나 아모리 사람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네 아
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은 가나안 본토인입니다. 가나안 족속으로, 본래 가나안에서 살고 있던 이방사람들인데, 지금 예루살렘도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그 예루살렘에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도시로 삼으셨습니다. 즉,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에 속한 도시였는데 이제는 하나님 백성의 도시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령한 뜻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본래 이방 나라 사람으로서 안 믿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은 가나안 본토인입니다. 가나안 족속으로, 본래 가나안에서 살고 있던 이방사람들인데, 지금 예루살렘도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그 예루살렘에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도시로 삼으셨습니다. 즉,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에 속한 도시였는데 이제는 하나님 백성의 도시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령한 뜻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본래 이방 나라 사람으로서 안 믿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내버림을 당했던 자들임
본문 4절에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날 때에 이렇게 내버림을 당하였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은 다음에 배꼽 줄을 잘라야 하는데 배꼽 줄도 자르지 못하고, 또 물로 씻어야 하는데 물로 씻지도 못하고, 소금을 뿌려야 하는데 소금도 안 뿌리고, 강보로 감싸야 하는데 감싸지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근동에서는 아이를 낳은 다음에 소금을 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새도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피부를 단단하게 하며 또 소독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백성들은 그렇게 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보호해주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태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5절에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던 날에 들판에 내버려진 자들입니다. 배꼽 줄도 안 자르고 물로 씻지도 못하고 소금도 못 뿌리고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는 등 돌봐주는 사람 없이 들판에 내버려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려져서 버둥거리다가 결국 다 죽고 말 뻔한 비참한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상태에 있던 자들입니까? 바로 우리가 그런 비참한 상태에 있었던 자들인 줄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 들판에 버려졌던 자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전에 우이동에서 교역자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는데, 아마 한 3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여러 목사님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인재 목사님도 오셨습니다. 그때 에스겔 본문을 했는데, 이인재 목사님은 지금 아주 훌륭한 목사님 아닙니까? 그런데 이인재 목사는 어느 들판에 내버려졌던 목사였냐고 물어보니, 밀양 들판에 내버려졌던 목사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이 밀양이므로 밀양 들판에 내버렸던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향 들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에 내버려졌던 우리들입니다. 형편없는 꼴이 되어 다 버림 받았던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또 어려운 일을 당해서 죽을 통에 빠졌을 때, 6·25 사변 때 제주도 들판에 내버렸던 자들, 마산 들판, 대구 들판 등 여러 들판에 다 내버렸던 자들입니다. 전쟁 통에 들판에 다 내버려졌던 자들입니다. 내버려져서 누가 돌봐줄 사람도 없고 거기서 그저 발버둥 치다가 죽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 보니, 갓 태어난 아기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을 하고 있습니다. 난 다음에 그냥 내버려져 물로 씻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피투성이가 된 그대로 내버림을 받은 자인데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보니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살라고 하셔도 살 희망이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셨다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들인 줄 알아
야 합니다. 우리가 다 그런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형편없이 다 버림을 당했던 그런 상태에 있던 자들입니다. 버림받았던 자들입니다.
피투성이가 된 그대로 내버림을 받은 자인데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보니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살라고 하셔도 살 희망이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셨다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들인 줄 알아
야 합니다. 우리가 다 그런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형편없이 다 버림을 당했던 그런 상태에 있던 자들입니다. 버림받았던 자들입니다.
2.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영화롭게 하심
중생시켜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
본문 7절에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건져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하시며 우리를 건져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건지사 잘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벌거벗고 피투성이가 된 것을 건져서 데려다 기르셨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심히 아름다워졌고 유방이 뚜렷해졌고 머리털도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본래 벌거벗은 적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해내신 그 은혜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참한 상태에서 건져내셔서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번성시켜 주셨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서 벌거 벗은 수치도 가리어주셨습니다.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로 하나님께 속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본문 9절에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라는 것은 중생을 가리킵니다. 물로 씻는 것은 우리를 중생시키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네 피를 없이 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죄악을 다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우리 피를 없이 해주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부끄러움을 없애주셨습니다. 또 ‘네게 기름을 바르고’라는 것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중생시켜 주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극히 곱고 형통하게 하시어 왕후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심
본문 10절에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라고 하였습니다. 물로 씻고 기름을 바른 다음에 수 놓은 옷, 좋은 옷, 세마포 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돼지 가죽신’이 신 가운데 제일 좋은 신인 것 같은데, 그 제일 좋은 신으로 신겨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 아름다운 세마포로 우리에게 입혀주셨고 제일 좋은 신으로 신겨주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보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겨놓았습니다.
본문 11-12절에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놓았습니다. 믿는 사람을 이렇게 아름답게 단장시키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놓으셨습니다. 시편 8편 5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합니까? 이것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운 것입니다. 참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들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코에는 코고리, 귀에는 귀고리, 손에는 손고리, 팔에는 팔고리 등 패물을 채우셨습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영적 사람을 단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적 사람을 이렇게 신령한 단장으로 단장해주셨습니다.
영적 사람을 단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적 사람을 이렇게 신령한 단장으로 단장해주셨습니다.
본문 13절에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고운 밀가루를 주셔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꿀과 기름을 주어서 잘 먹게 하시고는 극히 곱고 형통하게 왕후의 지위에 나아갈 만하게 만들어놓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주셨습니다. 신령한 의복을 금과 은으로 장식해주셨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아름다운 광채, 아름다운 빛으로 그 인격을 아름답게 만들어놓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또 고운 밀가루, 꿀과 기름 등 제일 좋은 것, 고급 음식으로 먹여서 배부르게 하시고 살찌게 하시며 윤택하게 만들어놓으시고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본문 14절에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인한 명성이 이방인 중에 다 퍼졌습니다.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아주 존귀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3. 그들의 간음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간음 - 우상 숭배
본문 15절에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나 같은 것을 이렇게 건져서 왕후에 지위에 나갈 만하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하고 늘 하나님 앞에 더욱 더 감사하고 늘 울어도 시원찮은데, 그 화려함을 믿고 그 명성으로 인하여 오히려 세상으로 기울어졌습니다. 행음한다는 것은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을 건져서 이렇게 화려한 자리로 인도해주셨는데 이제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지배보다 더 지배 받는 것입니다. 세상과 짝하고 음란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날 때 부터 형편없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저 들판에 내버렸던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패물을 주시고, 또 제일 좋은 것, 고량진미(膏粱珍味)만 먹게 만들어 잘 길러서 왕후에 지위에 나갈 만하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가는 밀가루, 최고급 곡식과 꿀, 기름도 보통 기름이 아닌 제일 좋은 기름을 가져다가 먹여주신 것입니다. 의복도 좋은 것으로 입혀놓고, 신도 물돼지 가죽신, 아주 좋은 신으로 신겨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그만 교만해서 우쭐해졌습니다. 화려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명성을 떨치며 다른 사람이 우러러 보게 되니 그만 세상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세상과 짝하고 우상을 섬기며 나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란 교회에 조 목사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에게 딸이 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딸들을 잘 길러서 일본유학을 다 시켰습니다. 우리보다 나이가 바로 위입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 유학은 굉장한 것입니다. 요새 미국 유학보다 더 굉장한 것입니다. 그때 일본 유학한 사람이 한 동네에 한 명이나 있을까 말까입니다. 갔다 와서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배워주느라 꾀꼬리 소리를 하면서 찬송가도 잘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서 말도 못 붙여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주 고상했는데, 딸이 공산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목사이고 하나님께서 그때까지 잘 키워주셨는데 공산당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 됩니까? 이것과 다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좀 나을 것 같습니까? 배은망덕하고 세상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목사 딸과 비슷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상태에서 건져주셨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행음하였습니다. 아름답고 이제 높아졌으므로 다른 사람이 우러러봅니다. 또 면류관을 씌어주셨기 때문에 영광이 있으므로 나가서 떵떵거리며 명성이 울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욱 충성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배은망덕해서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고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과 짝하면서 나갔습니다.
본문 16절에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이십니다. 남편되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입혀서 신부로 삼아놓으셨는데,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전무후무하다는 것입니다. 왕되신 하나님께서 왕후를 삼으셨는데, 남편을 내버리고 배은망덕하게 다른 우상을 섬겼습니다. 행음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신부가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떠나서 남자 우상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와 더불어 행음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라고 하였습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준 수 놓은 옷을 우상에게 입히고 남편의 기름과 향으로 우상에게 가져다 베푸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랑이 준 고운 밀가루, 기름, 꿀을 다른 남자 우상에게 주어서 향기로 삼았습니다.
본문 20-22절에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녀들도 다 우상에게 주었습니다. 자녀들을 다 세상에 빠지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바로 못 길
렀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로 세상을 따라가게 만들고 공부하는 것이 우상이 되게 하며 돈 버는 것이 우상이 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잘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불 가운데 빠뜨렸습니다.
렀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로 세상을 따라가게 만들고 공부하는 것이 우상이 되게 하며 돈 버는 것이 우상이 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잘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불 가운데 빠뜨렸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과거에 근본이 버려졌던 자였음을, 피투성이가 되어 길가에 버려졌던 자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왕후에 지위에 나아갈 만큼 높여주신 것을 감사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늘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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