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음란한 이스라엘을 돌이키심
호세아 2:1-7
호세아 2:1-7
1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2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6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저가 그 연
애하는 자를 따라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1.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이스라엘을 불러주심
본문 1절에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암미’는 내 백성이라는 뜻이고, ‘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1장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인하여 너희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고 하셨는데, 본문에서는 ‘너는 내 백성이라.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일시적으로 내버리시거나 긍휼을 끊어버리시고 긍휼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시는 때가 있지만, 아주 내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와주십니다. ‘너는 내 백성이다. 긍휼이 여김을 받는 자다’라고 하시며 다시 찾아와주시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음행을 책망하심
음행에 대한 책망
본문 2절에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미와 같은 선배들의 잘못한 것을 따라가지 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선배들이나 지도자들의 잘못한 전처를 밟지 말고,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그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깨달아 그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또 과거에 앞서간 사람들의 잘못을 모방하지 말며, 잘못된 것을 바로 발견해서,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앞서간 사람들이 잘못하면 뒷사람도 그 길을 따라가기 쉬운데, 잘한 것은 그 발자취대로 따라가지만 잘못한 것은 쟁론하며 그 죄와 더불어 싸워서 그 길로 걸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새 출발을 하고 새 생명의 길로 가야지, 다른 지도자들이 잘못하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을 발견한 뒤에는 쟁론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와 같은 선배들이나 지도자들의 잘못한 전처를 밟지 말고,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그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깨달아 그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또 과거에 앞서간 사람들의 잘못을 모방하지 말며, 잘못된 것을 바로 발견해서,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앞서간 사람들이 잘못하면 뒷사람도 그 길을 따라가기 쉬운데, 잘한 것은 그 발자취대로 따라가지만 잘못한 것은 쟁론하며 그 죄와 더불어 싸워서 그 길로 걸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새 출발을 하고 새 생명의 길로 가야지, 다른 지도자들이 잘못하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을 발견한 뒤에는 쟁론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프로테스탄트를 신교라고 하고 구교를 카톨릭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카톨릭이라는 뜻은 ‘전 세계의 교회가 하나다’라는 것으로서 교황을 중심으로 나가는 모든 교회를 하나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반항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잘못된 것에 대하여 반항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에 반항하는 신앙, 따라가지 않는 신앙, 잘못된 것과 더불어 싸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예후와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였지만 결국은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적개심으로 따라갔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호세아 1장 4절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진리 운동을 하기 위해 불의와 싸워도 예후와 같이 하면 결과가 비참해집니다.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언제나 진리 운동은 온유함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출세와 명예, 영광심으로 하는 것, 자기가 왕 노릇하는 것, 하나님으로 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자기는 낮아지고 희생하며, 하나님의 일만 잘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데까지만 가며 그 이상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킴으로 이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떠나서 세상주의로 나가는 것이 인본주의인데, 그것은 곧 음란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떠나서 의식주의로 나가는 모든 것이 음란한 것입니다. 그것은 외부적인 운동이고, 하나님을 떠난 운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3장 16절에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목에 음란이 가득 찼고, 눈에도 음란이 가득찼고, 걸음에도 음란이 가득 차서 아기죽거리며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장 18-26절에 “주께서 그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키지 않고 세상과 짝하며 향락주의로 나가면 조금 있다가
다 망하게 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휴가를 받는데, 보통은 사경회에 오지 않고 놀러 간다고 합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과 기회를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사용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오락을 더 좋아하는 것, 영이 쉬는 것보다 육신으로 쉬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음란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결과는 심판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얼굴에는 눈이 있어서 마음의 표현을 알 수 있는데, 마음에서 음란을 폐하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면 보통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마음에서 부터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9-20절에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이 밴 자들’은 욕심을 잉태한 것을 가리키고, ‘젖먹이는 자들’은 믿는 일하라고 주신 모든 요소들을 세상에 빼앗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시간, 건강, 물질, 환경 등 모든 것을 믿는 일에 사용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빼앗긴다는 것인데, 이러한 사람은 화가 있습니다. 또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도망하는 일’은 영적 시온 성을 향하여 도망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지만, 안식일이나 겨울에는 도망치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은 모든 것이 다 꽁꽁 얼어붙을 때입니다. 모든 것이 녹아지고 시냇물이 흐르며 비둘기 소리도 좀 나고 꽃이 피는 때에 도망쳐야 합니다. 그래야 훈훈해지고 감동이 오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 소리가 난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도망치라는 것인데, 완고한 것을 다 회개하고 온유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신령한 길로 도망쳐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하나도 없이 꽁꽁 얼어서 남을 미워하는 겨울에는 도망을 치고 싶어도 안 됩니다. 녹아지고 깨지고 회개하고 감동을 받아 자기 자신이 살같이 부드러워질 때 도망칠 수 있습니다. 완악한 마음, 강퍅한 마음,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 온유한 심령이 되면 겨울이 다 지나간 것입니다. 이때 도망쳐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남과 원수 맺은 것들을 다 풀고 회개하면서 도망쳐야 합니다. 안식일에 도망치는 것은 성경 위반인데, 성경을 어기면서 열심히 믿는다
고 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치며 몸을 불사른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합당한 사람, 성경말씀대로 힘써 믿는 사람이 바로 믿는 신앙을 소유한 것입니다.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라는 것은 합당치 못한 행동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음란한 것을 가지고 세상과 더불어 젖을 먹으며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남편이 되어 주지 않으십니다.
음행을 제하지 않으면 벌거벗김을 당하고 목말라 죽게 됨
본문 3절에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음란 한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다 벌거 벗겨서 나던 날과 같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옷을 벗겨서 속에 있는 수치가 다 드러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신 은혜를 다 빼앗고 좋은 환경을 다 빼앗아 부끄러움으로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광야같이 쓸쓸하며 고독하게 만드시고, 의뢰할 자가 없게 만드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회개하지 않고 세상과 계속 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좋은 날에 하나님
께 회개하고, 늘 깨어서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며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데, 좋은 날이라고 해서 그것을 육신의 기회로 삼고 세상과 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십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도 좋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 그들을 위하도록 만들어놓으셨는데, 그런 좋은 환경에서 믿음을 지키지 않고 자기를 위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집을 심판하시고, 비참하게 하셨습니다. 좋은 때에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이렇게 비참하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셨을 때에 믿음을 잘 지키고 회개하며 음란을 버려야겠습니다.
음란한 얼굴, 음란한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가 되고, 벌거벗겨 목말라 죽고, 마른 땅이 되어 샘이 다 끊어집니다. 영적 샘도 끊어지고, 육신의 모든 행복도 다 끊어지며, 목이 말라서 심령도 목마르고 육신도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공의대로 심판하시는데, 우리에게 좋은 날을 주셨을 때에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늘 좋을 줄 알고 방탕하고 향락주의로 나가서 바로 하지 않으면, 마른 땅의 광야와 같이 되고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나며 목말라 죽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요새가 하나님께서 신령한 은혜를 주려고 하시는 때인 것 같습니다. 신령한 생수와 만나를 주시려는 때인데, 이럴 때에 음란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모해서 어떻게든 받으려고 애를 쓰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보통으로 돌아다니면 받지도 못하고, 얼마 안 있으면 구해도 받지 못할 날이 오게 됩니다.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고 먹을 것이 없어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기갈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권고 하시는 날에 권고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음란한 자식이 된 유대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하심
본문 4절에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자매를 루하마라고 하여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아직도 음란을 행하며 음란 가운데 있는 자들이기에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8장41-45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조상 때부터 바른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내내 행음하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연애하는 자들을 왜 따라갔습니까? 떡도 주고 물도 주고 양털도 주고 삼과 기름, 술들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삼’이라는 것은 삼베, 모시적삼 같은 것인데 이런 모든 것을 주니까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연애하는 자’는 우상과 연애하며 우상을 사랑하는 자인데, 자기들이 실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들이 모든 것을 주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상들이 주는 줄로 압니다. 우상으로 만들어놓은 단체나 직장이 여러 가지를 주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또 세상 나라인 애굽, 앗수르와 짝하여 얻는 것이 많고, 그 때문에 풍족한 생활을 하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둘째이고,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우상, 자기를 잘 살게 해줄 것 같은 것들을 따라가는 것이 첫째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길을 막아주심
가시와 담으로 막아서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심
본문 6-7절에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가시를 주셔서 우상을 따라가는 길과 담을 막으시고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른 것을 사랑하고 따라가면 망하겠기에 가시 울타리를 쳐서 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가지 못하
도록 막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본 남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도록 막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본 남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막아주셔서 가지 않은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육신적으로도 그랬는데, 피난 때 하나님께서 해주로 못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때 해주로 가려면 기차가 다니지 않아서 걸어가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제 발을 아프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가겠다’면서 개성으로 해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는데, 해주로 간 사람은 인민군이 길을 몽땅 막고 잡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막으셔서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가만 두셨으면 세상으로 따라가고 미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울타리와 담으로 막아주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바른 진리의 길, 교통하는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는 할 수 없이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때는 상대방을 죽이면서까지 하나님께 오도록 만드시고, 낙망하여 할 수 없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시는 일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재미난 것을 만들어 그것으로 살살 연애를 하면서 나아가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망하거나 담으로 쌓아서 가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연애하는 자를 자꾸 따라가면 사고가 일어나게 하시면서라도 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참 감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따라가려고 하면 돌아오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실패와 낙망을 당한 후에는 할 수 없이 ‘주여,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하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야곱도 환도뼈가 부러져서 왔고, 다윗도 아들이 죽어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왔습니다. 요즘에는 아들이나 가족과 연애, 직장과 연애, 세상과 연애, 돈과 연애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막으시고 끊어주시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주십니다.
음녀에게 빠지는 자는 간음하는 가운데 버리심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저주를 받은 자는 간음하는 가운데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2장 14절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노를 당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막아주시지만, 음녀에게 빠지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은 것이기 때문에 빠지도록 놔두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쫒아가는 데도 고난이나 시험을 겪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상과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고, 하나님 외의 것으로 연애를 하는 데도 그저 별 이상이 없는 자는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형통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이며, 계속 있는 것보다 깨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 외의 것으로 연애하는 사람들은 깨지면 다 좋은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아들과의 담을 막으시고 등을 돌리도록 만드시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아들이 우상이었던 어떤 사람이 좋은 며느리를 얻으려고 상대편 부모들의 신앙과 다른 여러 가지를 보고 선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이 아들이 자기 부모님과 점점 상관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시부모와 아들이 연락하지도 않으며 살도록 종용하였는데, 이런 담은 결국 하나님께서 막아놓으신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하
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길렀기에 담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쩔 수 없게 되자 시어머니가 본 남편인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담을 막고 가시로 막아 그 길로 가지 못함을 당한 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가도록 놔두는 자는 노를 받는 자입니다.
가시와 담으로 길을 막아서 본 남편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심
본문 7절에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에 본 남편만 섬길 때의 형편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좋은 세월을 보냈었는데, 우상을 따라가는 바람에 형편이 나빠진 지금, 본 남편을 섬기던 그때가 좋은 세월이었음을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제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만드신 상황에 놓이자 하나님과 더불어 신령한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은혜, 처음 사랑, 처음 믿음을 이제야 찾은 것입니다. 공연히 중간에서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포도주를 한 잔씩 얻어먹으며 따라갔지만 이제는 진짜 좋은 세월을 발견하고 옛날의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포도주를 먹으며 달콤하게 살았는데, 실제로는 거지 이 잡는 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지들은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까 눈이 오는 날이면 양지에서 옷을 벗고 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500석 타작을 했는데”라고 하면서 이를 잡는데, 전에 잘 살던 것이 이제 무슨 소용입니까? 현재는 거지일 뿐입니다. 타락한 신앙도 이와 같아서 밤새 기도하며 기뻐하고 눈물로 기도했던 좋은 세월은 다 보내고, 요새는 거지 이 잡는 신앙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다가는 전부 이렇게 됩니다. 세상의 돈과 바람, 자기 욕심, 이기주의, 명예와 영광심을 따라가다가 거지 이 잡는 신앙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가다가도 처음 신앙이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해주실 날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는 것을 없애주시고 막아주시기 때문에,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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