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호세아 3:1-5
호세아 3:1-5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2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3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그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 가리라
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심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따라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상당히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건포도 떡’은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된 제물과 세상주의를 가리키는데, 그것이 건포도 떡과 같이, 또 포도주와 같이 달콤하며 도취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2절에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음녀가 포도주에 취한다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인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세상주의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데로 도망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떠나 우상을 섬기며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데로 도망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호세아의 희생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
1)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내를 삼
본문 2절에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갔는데,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아내를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출애굽기 21장 32절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찌니라”고 하였고, 스가랴 11장 11-12절에는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은 삼십은 종 한 명의 값입니다. 고멜은 그 절반의 값과 보리쌀 한 호멜 반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1장 2-3절에“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가 본래 음란한 여자이며 이름도 ‘부패’란 뜻의 ‘고멜’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녀가 호세아와 살다가 다른 남자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고 데려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기를 희생하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적 음란을 호세아를 통해서 알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음란한 여자를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혼할 만한 조건이 안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방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는 일이었기 때문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호세아가 처음부터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고, 또 살다가 다른 남자에게 간 아내를 사랑하며 다시 데려오라고 하실 때에도 하님을 위해서 순종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렇게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자기는 어떠한 희생을 하더라도 좋다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찌니라”고 하였고, 스가랴 11장 11-12절에는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은 삼십은 종 한 명의 값입니다. 고멜은 그 절반의 값과 보리쌀 한 호멜 반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1장 2-3절에“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가 본래 음란한 여자이며 이름도 ‘부패’란 뜻의 ‘고멜’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녀가 호세아와 살다가 다른 남자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고 데려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기를 희생하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적 음란을 호세아를 통해서 알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음란한 여자를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혼할 만한 조건이 안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방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는 일이었기 때문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호세아가 처음부터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고, 또 살다가 다른 남자에게 간 아내를 사랑하며 다시 데려오라고 하실 때에도 하님을 위해서 순종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렇게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자기는 어떠한 희생을 하더라도 좋다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이런 호세아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희생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죽으라고 하시면 죽는 것이 마땅하고, 독자를 바치라고 하시면 독자를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정신이 얼마나 귀합니까?
2)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으로 사심
그러면 고멜을 다시 데려오느라 준 이 돈을 누가 받았겠습니까? 아마 고멜이 따라간 남자에게 주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팔리어 갈 때는 그만큼 빚을 진다고 합니다. 요사이 술집에 있는 여자들도 다 팔리어 가서 이렇게 처음부터 빚을 지게 하여 빚에 묶여 못 나
오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아마 이 당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 일의 깊은 뜻은 예수님께서 팔려간 우리를 값 주고 사신 것과 연관됩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 팔려가고 마귀에게 팔려갔던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돈을 따라가며 하나님을 뒤에 놓고 건포도 떡을 먹으면서 세상주의로 나갔는데,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셔서 다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셨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우상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먹으면서 향락주의로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희생의 값을 주고 하나님께로 사 오셨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정하신 사람과 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어야 함
창세기 6장 1-2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아내를 삼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무 볼 것도 없고 위신도 안 서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아들의 결혼에 기도를 부탁하여 어떤 여자인가 물으니 안 믿는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반대해도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고 하여 그냥 아들이 좋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뒀다는데, 그것이 바로 이 창세기 6장에 있는 대로 한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도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다가 120년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어떻게 결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하는 것은 심판을 받는 일입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안목의 정욕대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아내를 맞았습니다. 자기가 낮아지고 멸시를 받아도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만족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려 하는 것, 이것이 참된 성도의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때 미인과 하려고 한답니다. 세상에는 다 죄인 뿐인데 미인이 어디 있습니까? TV에 나오는 미인, 미스코리아 같은 사람들은 변변치 않습니다. 미인은 없는 줄로 알면 됩니다. 또 미인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유하고 고요하며 안정된 심령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영적 생활을 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인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지, 미인 한 명 얻어놓고 그 사람만 쳐다보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까? 또 그 사람만 쳐다보면 뭐하겠습니까? 결혼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사람과 해야 합니다. 또 이미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살라는 것이 뜻인 줄 알고 아무리 마음에 맞지 않아도 창세때 예정해주신 사람이므로 기도하며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고 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랑하고 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가정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넓은 의미에서는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심
본문 3절에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는 세상과 짝하며 돈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만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해주시고 다른 것을 위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돈과 명예, 영광을 따라가도 한 호멜 반짜리와 은 열다섯 개짜리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43장 3-5절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아주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믿음에 서서 하나님만 따라갈 때에는 아주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상 따라가는 것, 세상 따라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같이 있자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따라가며 신랑은 주님으로만 모셔야 하겠습니다. 주님으로만 즐거워하고 주님으로만 사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함
본문 4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상’과 ‘드라빔’은 우상들입니다. ‘에봇’은 하나님께 물어볼 때 입는 옷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포로로 잡혀갔으므로 우상도 편안할 때나 섬기지, 징계가 임하였는데 어떻게 섬기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도 응답을 받지못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죄 값으로 징계하시는 동안 고통 속에서 아무 위안 없이 사는 것입니다.
3. 말일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옴
본문 5절에 “그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음행하면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셔서,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도록 하십니다. 우상을 섬기려 해도 섬길 수 없게 하시는데, 우리도 마귀를 따라가다가는 이렇게 됩니다.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할 수 없게 만들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오셔서 구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그 은총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호세아의 희생으로 인해 계시된 것 입니다. 호세아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호세아가 희생한 것처럼 언제나 나도 희생, 가정도 희생, 생활 전체가 희생, 물질도 희생하며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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