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
에스겔 23:1-49
에스겔 23:1-49
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3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4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5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6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7그가 앗수르 중에 잘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 8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 바 되었더니 그가 그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10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을 행함이니라 11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12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13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14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15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 곧 그 고토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16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 17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18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 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19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20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도다 21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 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 22그러므로 오홀리바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연애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격동시켜서 그들로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23그들은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앗수르 사람 곧 준수한 소년이며 다 방백과 감독이며 귀인과 유명한 자, 다 말 타는 자들이라 24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와서 너를 에워쌀찌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25내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 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26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장식품을 빼앗을찌라 27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28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미워하는 자와 네 마음에 싫어하는 자의 손에 너를 붙이리니 29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하여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앗고 너를 벌거벗겨 적신으로 두어서 네 음행의 벗은 몸 곧 네 음란하며 음행하던 것을 드러낼 것이라 30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 31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은즉 내가 그의 잔을 네 손에 주리라 32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네 형의 잔을 네가 마시고 비소와 조롱을 당하리라 33네가 네 형 사마리아의 잔 곧 놀람과 패망의 잔에 넘치게 취하고 근심할찌라 34네가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씹으며 네 유방을 꼬집을 것은 내가 이렇게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35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찌니라 하시니라 36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국문하려느냐 그러면 그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고하라 37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38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39그들이 자녀를 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당일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되 그들이 내 성전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였으며 40또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 41화려한 자리에 앉아 앞에 상을 베풀고 내 향과 기름을 그 위에 놓고 42그 무리와 편히 지꺼리고 즐겼으며 또 광야에서 잡류와 술 취한 사람을 청하여 오매 그들이 팔쇠를 그 손목에 끼우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었도다. 43내가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하노라 그가 그래도 그들과 피차 행음하는도다 44그들이 그에게 나오기를 기생에게 나아옴같이 음란한 여인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나아왔은즉 45의인이 음부를 심문함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 46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게 하여 그들로 학대와 약탈을 당하게 하리니 47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48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49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찌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1.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두 여인에 비유함
본문 1-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
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두 여인’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는데,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예루살렘은 남 유다의 수도입니다. 이 둘이 갈라졌지만 처음에는 한 어미의 딸들처럼 같은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난 한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초창기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짝한 것을 음행으로 비유하여 애굽 백성들이 마치 그들을 유린한 것처럼 묘사하였습니다.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된 것처럼 신앙의 정조를 유린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살았는데, 사마리아가 우상을 섬기다가 예루살렘보다 먼저 망했기 때문에 형으로 비유되었습니다. ‘그녀의 장막’이란 뜻의 오홀라는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 때로부터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장막에서 금송아지를 섬긴 사실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나의 장막이 그녀에게 있다”는 뜻의 오홀리바는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예루살렘에 친히 성전을 세우신 사실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2. 사마리아의 음행과 심판
본문 5-7절에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그가 앗수르 중에 잘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즉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한 것은 음행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세상과 짝하고 세상을 의지하고 나가는 것은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이며(약4:4),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또 북 이스라엘이 자색 옷,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처럼 강하고 화려하며 용맹스러워 보인 앗수르를 의지하였는데, 성도가 세상의 화려함에 취하고 세상을 좋아하여 짝하는 것은 영적으로 음행하는 죄입니다.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라고 하였는데, 사마리아가 앗수르와 짝한 다음에 앗수르 사람이 섬기는 우상도 섬겼다는 것입니다
본문 8-10절에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 바 되었더니 그가 그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을 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나라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앗수르와 음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앗수르에게 다 점령당하고 망하게 하셨는데,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이나 권세를 의지하고 살면 의지하던 그것이 올무와 덫이 되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며 인본주의를 쓰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 청년들은 세상으로 다 나가 영적으로 죽은 바가 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세상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3. 예루살렘의 음행
본문 11-12절에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북 사마리아가 앗수르를 의지하며 우상을 섬기다가 앗수르 사람에게 망한 것을 보고도 남 예루살렘 역시 그러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먼저 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도 남 유다 백성이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애굽을 의지하였고, 결국 주전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3-14절에 “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쪽 유다는 앗수르뿐 아니라 갈대아 땅에 있는 바벨론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행음하였습니다.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유다가 바벨론왕궁 벽에 붉은 색으로 그려진 바벨론 군대의 전쟁과 승전 그림에서 그 군대의 위엄과 화려함을 보고 바벨론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는 앗수르뿐 아니라 갈대아 땅에 있는 바벨론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행음하였습니다.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유다가 바벨론왕궁 벽에 붉은 색으로 그려진 바벨론 군대의 전쟁과 승전 그림에서 그 군대의 위엄과 화려함을 보고 바벨론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 곧 그 고토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라고 하였습니다. ‘고토(故土)’는 유다의 조상 아브라함의 본토인갈대아 우르를 가리키는데, 남 유다가 동족 혈연관계로 바벨론과 짝한 것을 뜻합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외부적인 높은 수준에 매료되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 나라에 도움을 청하러 사자, 즉 사신을 보내어 정치적으로 결속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않고 세상 권세와 물질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면 세상과 연애하고 행음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과 정치적으로 동맹하여 이방 풍속으로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그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한 후에는 또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겔17:11-15).
본문 18절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북쪽 사마리아 나라를 싫어해서 결국 심판하신 것처럼 남쪽 유다를 싫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이 음행하다가 망한 것을 보았으면 동생이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서서 나가야겠는데, 그 음행이 더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월남이 어떠한 죄를 짓다가 망했습니까?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관리들은 다 부패하고 반 정부 활동만 계속하며 서로 싸우고 권력다툼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죄로 인해 망한 것을 보고도 같은 죄를 짓고 나가면 망합니다.
또 교회는 정치 운동, 세상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음행이고 간음이므로 망합니다. 요새 천주교는 드러내놓고 정치 운동을 합니다. 명동 성당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밤낮 합숙하면서 정치 운동을합니다. 신부들 대다수가 해방 신학을 옹호하며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월남 천주교가 반 정부 운동을 하다가 망하였듯이, 교회는 반정부 운동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가 정치 운동을 하면 이미 탈선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 사상이 비뚤게 나가면 교회가 이것을 바로 인도해줄 책임이 있습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을 계속 잘못하지 않게 교인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당파 싸움하는 것도 잘못된 것임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한국은 너무 당파가 심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헬라인은 헬라인끼리만 로마인은 로마인끼리만 다니면 바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당파심, 지역 감정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대로 바로 된 것입니다. 자기 지방 사람이면 무조건 지지한다는 생각은 성경적으로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느 곳에 자기 지역 사람만 지지하라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고, 진리 편에 서고, 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선거할 때도 자기 지방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을 뽑지 말고, 누구를 뽑아야 이 나라가 바로 되겠는지를 생각하고 뽑아야 합니다. 하여간 교회부터 바로 해야 한국이 잘되므로 교회가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합니다. 옳게 하고 바로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형이 망하는 것을 보고도 왜 같은 길을 갑니까? 이북 교회, 월남 교회, 캄보디아 교회가 세상 운동, 정치 운동을 하다가 다 망한 것을 보고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본문 19-21절에 “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도다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 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姦夫)’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과 짝하였다 배신하고 그 옛날 그들이 종 살이하던 것을 생각지 않고 애굽의 원조를 구하고 애굽으로 말미암아 살겠다며 또 다시 망할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4. 예루살렘이 받을 징벌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연애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격동시켜서 그들로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의지하다 앗수르에 의해 망하였는데, 남 유다는 바벨론을 의지하다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종속되어 도움을 받다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과 짝하므로 바벨론 왕이 격분하여 유다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 “그들은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앗수르 사람 곧 준수한 소년이며 다 방백과 감독이며 귀인과 유명한 자, 다 말 타는 자들이라 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찌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당시 지배하던 타 족속들, 앗수르 군대까지도 동원시켜 예루살렘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문하는 권세를 그들에게 맡긴 것처럼 바벨론에게 주어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5-26절에 “내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장식품을 빼앗을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이용하여 유다를 치시는데, 중요한 부분인 코와 귀를 깎아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요긴한 사람들을 제거시킨다는 것이며, 또 코와 귀 같은 유다의 중요한 지역이 점령당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셋째로 자녀를 빼앗아가는 것처럼 자녀가 있어도 사상이 어긋나 마귀의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불에 사르며,
다섯째, 벌거벗기어 수치를 당하고,
여섯째는 장식품을 다 빼앗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27-29절에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미워하는 자와 네 마음에 싫어하는 자의 손에 너를 붙이리니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하여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앗고 너를 벌거벗겨 적신으로 두어서 네 음행의 벗은 몸 곧 네 음란하며 음행하던 것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미워
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의 손에 붙이고, 여덟째는 수고한 것을 다 빼앗는 것입니다. 수고해서 모든 소유를 얻었지만 원수에게 다 빼앗기고 맙니다. 아홉째는 음행을 다 드러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 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은즉 내가 그의 잔을 네 손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열째는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잔’은 받을 분깃이나 고난을 가리키는데,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같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의 값은 사망 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32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네 형의 잔을 네가 마시고 비소와 조롱을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받을 고난이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잔처럼 크고 심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방거리와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롱당하기 전에 죄를 회개하면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 잔을 마시게 됩니다.
본문 33-34절에 “네가 네 형 사마리아의 잔 곧 놀람과 패망의 잔에 넘치게 취하고 근심할찌라 네가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씹으며 네 유방을 꼬집을 것은 내가 이렇게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가 이미 망한 것 같이 예루살렘도 망하고 근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받을 고난이 깨어진 조각을 씹는 것처럼 혹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기 유방을 꼬집는 것처럼 요긴한 부분이 타격을 받아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35절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찌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50편 17절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라고 하였는데, 예루살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던지고 이방과 짝하는 죄로 인하여 큰 수치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이 안식일마다 하나님을 섬겼고 제사도 드렸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났으므로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디도서 1장 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행실로 배반하지 않아야겠고, 마음으로도 떠나지 않아야겠습니다(사 29:13). 성경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과 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등 뒤에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5. 두 여인을 심문하여 심판함
두 여인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본문 36-39절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국문하려느냐 그러면 그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그들이 자녀를 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당일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되 그들이 내 성전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 즉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죄는
첫째, 행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우상이나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째, 살인한 죄입니다. 피를 손에 묻혔다는 것은 남을 죽인 것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서로 미워하며 말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였습니다. 이것이 살인 죄입니다.
셋째,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우상과 행음하였다는 것은 우상 섬긴 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지배 받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누구나 우상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돈 우상, 사람 우상, 단체 우상이 있고, 교인 우상도 있습니다. 교인 우상이란 자기가 인도한 교인을 너무 사랑하여 생사를 같이 하려는 것입니다. 교인을 사랑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가 인도한 교인뿐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모든 교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언제든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인도한 자와 생사를 같이 합니까? 언제나 하나님께만 붙들리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야지, 교인이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또 이와 반대로 ‘저 교인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교인인데 왜 떠나라고 합니까? 또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시면 있으면서 죽을 각오를 하며 그곳에서 충성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교인을 죽이는 것이고, 자기도 죽습니다. 교역자는 언제나 인정과 사소한 것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쓸 만한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누구나 우상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돈 우상, 사람 우상, 단체 우상이 있고, 교인 우상도 있습니다. 교인 우상이란 자기가 인도한 교인을 너무 사랑하여 생사를 같이 하려는 것입니다. 교인을 사랑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가 인도한 교인뿐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모든 교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언제든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인도한 자와 생사를 같이 합니까? 언제나 하나님께만 붙들리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야지, 교인이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또 이와 반대로 ‘저 교인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교인인데 왜 떠나라고 합니까? 또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시면 있으면서 죽을 각오를 하며 그곳에서 충성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교인을 죽이는 것이고, 자기도 죽습니다. 교역자는 언제나 인정과 사소한 것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쓸 만한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넷째,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죄입니다. 자식들을 몰록 우상에게 화제로 불살라 드린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실제 자식을 몰록 우상에게 바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믿는 일보다 공부하는 것과 출세하는 것을 첫째로 삼게 하는 것이 자식을 우상에게 화제로 바쳐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째, 성소를 더럽힌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죄입니다.
여섯째, 안식일을 범한 죄입니다. 내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그대로 안식일을 온 종일 기쁘고 즐거운 심령으로 지키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아야 하고, 사고팔지 않아야 하며, 오락을 행치 않아야 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주일을 범하는 것이 큰 죄인 줄 알고 주일을 범하지 않도록 항상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일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어도 온 종일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전심전력을 다 바쳐 주일을 지켰는가 생각해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본문 40절에 “또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나라와 짝한 영적 행음 죄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세상의 권세 있는 사람을 교회로 불러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41절에 “화려한 자리에 앉아 앞에 상을 베풀고 내 향과 기름을 그 위에 놓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향과 기름을 이방사람들 앞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남편에게 내어놓아야 할 좋은 음식을 다른 남자에게 내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세상 사람에게 돌립니다.
본문 42절에 “그 무리와 편히 지꺼리고 즐겼으며 또 광야에서 잡류와 술 취한 사람을 청하여 오매 그들이 팔쇠를 그 손목에 끼우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웠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세상 풍속을 다 들여다 놓고 지껄이며 즐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 헛된 소리하는 사람을 데려다 강단에 세우고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름과 향을 다른 데 쓰는 것입니다. 교회가 허튼 소리하는 사람을 데려와 그 사람에게 모든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 목사, 미국 목사가 와서 부흥회를 한다, 굉장한 사람이 왔다고 해도 제대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대부분 잡류입니다. 실제 그들의 목회하는 교회를 가보면 교인도 별로 없는 목사, 사기 치며 가짜 학위나 파는 목사를 데려다가 잔뜩 높여주고 선물을 주며 면류관을 씌워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진실하게 바르게 써야지, 허튼 곳에 쓰면 안 됩니다. 향과 기름은 하나님께 돌리라고 주신 것이므로, 다른 곳에 쓰면 안 됩니다.
또 추도 예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고, 성물을 죽은 사람에게 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6장 14절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24장 17절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31편 12절에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부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18절에는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라고 하였습니다. 신, 구약 전체 사상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을 위해 기념한 구절이 없습니다. 성경에 죽은 그 다음 해에 추도 예배를 드린 곳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제사 풍습에서 나온 것이고, 방법만 다르지 제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추도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이 추도 예배를 하지 않았고, 이삭이 죽은 후에 야곱도 추도 예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추도 예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을 진실하게 바르게 써야지, 허튼 곳에 쓰면 안 됩니다. 향과 기름은 하나님께 돌리라고 주신 것이므로, 다른 곳에 쓰면 안 됩니다.
또 추도 예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고, 성물을 죽은 사람에게 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6장 14절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24장 17절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31편 12절에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부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18절에는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라고 하였습니다. 신, 구약 전체 사상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을 위해 기념한 구절이 없습니다. 성경에 죽은 그 다음 해에 추도 예배를 드린 곳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제사 풍습에서 나온 것이고, 방법만 다르지 제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추도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이 추도 예배를 하지 않았고, 이삭이 죽은 후에 야곱도 추도 예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추도 예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3-44절에 “내가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하노라 그가 그래도 그들과 피차 행음하는도다 그들이 그에게 나아오기를 기생에게 나아옴같이 음란한 여인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나아왔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음행으로 쇠한 여인’이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와 짝하므로 인하여 국력이 쇠해지고 약해진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기생에게 오듯 이방 나라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기생과 같이 된 것입니다. 즉,
교회가 정조를 빼앗겼습니다.
본문 45절에 “의인이 음부를 심문함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 나라를 심문한다는 것인데, 바벨론을 ‘의인’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대행자로 바벨론을 사용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심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6-47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게 하여 그들로 학대와 약탈을 당하게 하리니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너를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성도를 두려워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의지하고 살면 세상이 우리를 멸시하고 마지막에는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의지해서 무슨 유익을 좀 볼까 하는 생각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돈이 좀 없어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한 마음으로 나가야 세상이 두려워합니다. 무슨 도움을 받으려고 교회가 세상에 머리를 숙이고 나가면 세상에 멸시를 당합니다.
교회가 세상 정치가를 강단에 세워 연설을 시키면 안 됩니다. 정치인들이 교회에 와서 인사하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무슨 인사를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그저 잠깐만 내세워 주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창광 교회에서는 정치가를 인사 시켜 주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연보 좀 하겠다”고 하여 “뒤에 연보함에 넣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광고는 못해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연보하지 않고 그냥 갑니다. 아마 강단에서 인사 몇 마디 하게 해주면 연보하려고 했나 봅니다. 그러나 그런 연보를 받아서 뭐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식으로 해서 연보를 받으면 세상 사람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짝하면 망함
본문 48-49절에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찌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죄로 인하여 이방 사람에게 침략당하고 망한 것은 죄로 인하여 받는 보응입니다. 그것을 보고 다른 나라들이 경성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
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세상과 짝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형이 망하는 것을 보면 동생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동생의 자리에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보다 앞선 나라에서 교회들이 세상과 짝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길로 걸어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시온 성을 쌓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등 뒤에 던지고, 세상주의로 나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주의를 끊어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바라보고, 말씀대로만 나가야겠습니다.
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세상과 짝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형이 망하는 것을 보면 동생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동생의 자리에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보다 앞선 나라에서 교회들이 세상과 짝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길로 걸어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시온 성을 쌓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등 뒤에 던지고, 세상주의로 나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주의를 끊어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바라보고, 말씀대로만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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