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0일 목요일

다니엘 6:1-10 다니엘의 기도와 감사를 본받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니엘의 기도와 감사를 본받자
다니엘 6:1-10

1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
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함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

본문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감사해볼 것을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무엇을 감사해야 하느냐 하면 우리가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 수하에 36년 동안 있다가 해방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대동아전쟁이 안 일어나고, 또 미국이 한국에 독립을 주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본 수하에 있을 뻔했습니다. 한 번 점령당한 국가가 독립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본은 이 땅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일본 군대로 주둔하게 하며, 남자들은 징용으로 뽑아서 탄광에 보내고, 여자들은 정신대 위안부로 가게 하는 등 36년간 한국을 다스렸습니다. 또 그들은 한국 백성을 한국에서 살지 못하게 만주로 다 쫓아 보낼 방침을 가졌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치하에 있었더라면 우리 한국 백성은 거의 다 만주로 가고, 한국 땅에는 일본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8·15 해방이 되어서 우리나라가 독립 국가가 되게 해주셨으니, 진실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6·25 사변때에는 우리가 공산군에게 다 점령당해서 부산 쪽 조금밖에 남지 않았었습니다.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갔고 목포로 돌아서 마산까지 갔습니다. 부산이 손바닥 만큼밖에 안 남았었는데, 쫄딱 다 망할 뻔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김일성이 한국 전체를 정치하고, 그러다가 김정일 수하에 다 들어가서 이북 사람들이 많이 굶어죽는 것처럼 우리도 많이 굶어죽고 전혀 자유가 없이 나갈 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엔군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와서 많이 죽으면서, 우리나라를 건져주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청년들이 와서 5만 명 이상이 죽고 부상을 당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줬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인 줄 알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 당시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구제품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보릿고개 넘기기가 힘들어 강원도 사람들은 강냉이만 먹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풍성하게 먹을 것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아주 형편없는 나라였는데, 하나님께서 요새는 한국을 세계적으로 추앙 받는 나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칠레의 대통령이 와서 한국이 제일 좋다고 한답니다. 한강만큼 좋은 강이 없고, 한국을 좀 더 보고 가야겠다고 해서 보고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좋다고 하지 아니하고 중국이 좋다고 하지 아니하고, 한국이 좋다고 합니다.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우러러볼 만한 이런 나라가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세계 20개국 정상회담의 회장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 와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또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진리를 주셨습니다. 요새 교회들이 다 타락되고 세속화되어 열린 예배를 하고, 또 신 신학, 신비주의와 합하며 육체주의로 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주셔서 진리의 말씀대로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면서 신앙 생활을 하게 해주셨으니, 그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의식적으로만 교회를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이 살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신령한 양식을 많이 주셔서 그 양식을 먹고 우리 영이 살게 해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사람은 아무리 해도 일각이라도 더 살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일 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셔서 전쟁이 나지 않게 해주시고, 태풍이 들어오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다른데는 지진이 많이 났는데, 우리나라에 지진이 나지 않게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바른 길, 생명의 길, 진리의 말씀의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일년 동안 가르쳐주신 것을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또 건강을 지켜주시고, 생명을 유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진실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한량이 없습니다. 사형을 받을 데에서 건져주신 것, 죽어서 망할 데에서 건져주신 것,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게 해주신 것, 아버지를 찾고 본향을 찾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버지 하나님을 찾게 해주시고, 본향을 알게 해주시고, 또 바른 길, 바른 진리, 생명의 길을 저희에게 가르쳐주셔서 일년 동안 지나오게 해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하자

그런데 감사절을 당해서 우리가 참으로 감사해야 하겠는데,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법이 공포된 줄 알면서도 본문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기도하면 사자굴에 갖다 넣기로 법령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하였습니다. 전에 늘 감사한 것처럼, 이제 사자굴에 들어갈지라도 오늘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살려달라고 기도했을 것 같은데, 다니엘은 감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바울의 신앙 -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사자굴에 들어가겠는데 무슨 감사가 나오겠는가에 대해서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사는 것,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죽어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죽는 것이 왜 유익합니까? 살면 여러 가지 걸리적거리는 것, 방해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이 다 제거되고, 순전히 하나님과 예수님과 살게되니 감사합니다. 다니엘의 신앙도 바울의 신앙과 같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을 가졌다고 봐야 합니다.

다니엘이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하였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다니엘이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까지 내다본 것입니다. 다니엘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바울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한 것같이, 다니엘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는 신앙을 가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좋
고 죽어도 유익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2-24절에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쪽은 사는 것, 한 쪽은 죽는 것입니다. 양 손에 떡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취하려느냐?”하고 바울한테 물어보면 바울이 답변하기를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한 손에 있고 죽는 것이 한 손에 있으므로, 양통입니다. 살아도 이(利), 죽어도 이(利)입니다.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은 것, 이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다니엘의 신앙도 그것입니다. 사는 것과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죽는 것) 둘 사이에 끼었는데 “둘 가운에 어느 것을 취하겠느냐?”라고 하니까 “떠나서 하늘나라에 가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살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살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신앙으로 인도하니까 좋고,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유익을 주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쳐줘서 바른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 큰 유익이 됩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또 떠나게 되면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것이 신부가 신랑과 같이있는 것처럼 더 좋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친정 동생들을 돌봐줍니다. 그렇게 자기가 벌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여러 가지를 도와주는 것이 좋지만, 떠나서 자기 신랑과 같이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신앙이 그런 것입니다. 다니엘의 신앙도 바울 신앙과 같으니까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죽으면 다 벗어놓고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더 좋습니다. ‘생즉타익(生卽他益)이고 사즉아익(死卽我益)’이라고 했습니다. 살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죽으면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다니엘의 신앙도 바울 신앙과 같은 신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신앙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믿은 지가 몇 년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추수감사절을 몇 번 지냈습니까? 아직 다니엘의 신앙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부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가 몇 년이 되었습니까? 나로 말하면 17살부터 예수를 믿었으니까 70년을 믿었습니다. 어느 추수감사절 날 아이들은 쌀을 가져오는데, 우리 어머니가 안 믿으니까 우리 집에서는 쌀을 못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너무 감사해서 호주머니에 있는 15전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다 뒤져도 15전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때 15전이면 얼마 안 되었습니다. 냉면 한 그릇 값이나 되는 그런 정도입니다. 늘 너무 감사해서 있는 것을 다 바치고, 또 ‘이제는 이 몸도 바칩니다’하고 15전을 추수감사절 날 예물로 바쳐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직도 다니엘의 신앙에 도달해야겠는데,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달하려고 회개하고 애를 씁니다. 조금 있으면 도달할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추수감사절을 몇 번 지냈습니까? 몇 십년을 믿었으므로 다니엘의 신앙에 도달해야 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하는, 그런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물론 말로는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내일 사자굴에 들어갈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들어가서 사자한테 잡혀 먹힐 생각을 하면 보통은 살려달라고 기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감사 기도를 한 것입니다.
전에도 감사 기도, 오늘도 감사 기도,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또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으로 믿고 감사하고,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가 아니면 주지 아니하시고, 복이 아니면 주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 복된 것으로 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와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으니’하는 신앙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라고 하였는데, 전에도 늘 이 신앙입니다. 전에도 늘 감사했고,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올 때에만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것이 와도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모든 것을 감사로 통과시키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루 세 번씩 하는 기도 -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신앙

또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하였는데,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는 것에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은 결과라고 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한 생활을 회개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나? 하루 세 번씩 기도했나? 세 번씩은 기도하지 못했어도 새벽 기도는 매일 계속 했는가?
새벽 기도하던 사람이 새벽 기도를 안 하고 하루 몇 번씩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를 안 하면 기도하던 것이 점점 식어집니다. 기도 시간을 빼앗기면 다른 것을 다 빼앗긴다고 합니다. 기도 시간을 빼앗기면 믿음도 빼앗기고 열심도 빼앗기고 감사도 빼앗깁니다. 절대로 기도 시간을 빼앗기는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는 타락이 안 되었는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할 때에 신앙이 그만 타락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절을 당해서 다니엘과 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부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결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 한 번이라도 특별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번도 못하면 그 사람은 타락의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루 세 번 기도한 것은 시간을 좀 가지고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함 - 성경 순종

또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했다는 것은 성경 순종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상 12장 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열왕기상 8장46-49절에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포로로 잡혀간 다음에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사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경을 믿고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매일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성경을 순종하지 않고 욕심대로, 정욕대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안 받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기도가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은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겸손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자

우리가 이 추수감사절을 당해서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국가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육신적으로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고 사모합니다. 또 얻어먹던 나라가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 영적 면에서 보면 다른 데에서 받아먹지 못한 신령한 양식을 1년간 많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이 사는 길, 영이 자라나가는 길, 이러한 진리를 많이 주셨는데,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니엘과 같이 어떠한 일이 와도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사도 바울과 같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은’, 그런 신앙을 가졌는데, 오늘날 우리도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신앙을 가지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가지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추수감사절에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다니엘의 신앙과 같은 그런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 살든지 죽든지 감사로 통과하는 그런 신앙을 저희가 다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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