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이신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
호세아 8:1-14
호세아 8:1-14
1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2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3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 4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5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6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 7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찌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8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이제 열국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9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10저희가 열방 사람에게 값을 주었을찌라도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 11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13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찌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14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1. 죄로 인해 외국의 침략이 임할 것을 경고함
유다가 배약(背約)하며 율법을 어김
본문 1절에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배약한 죄가 큰 죄입니다.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을 변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은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이 언약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이 언약을 잘 지켰습니까? 어겼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찬송했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고 찬송한 언약을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하나님께 바쳤던 것을 도로 다 찾아다놓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배약입니다. 배신하는 행위와 고리 대금은 불신 세계에서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맹세한 것, 그 의를 손해가 나더라도 지켜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도 서약한 것은 지켜야 하겠습니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 나라를 잘 섬기겠다고 언약을 맺었는데, 시드기야 왕이 그것을 배신하였습니다. 시드기야가 애굽과 손을 잡으려고 하다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나라가 괘씸히 여겨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드기야 왕을 잡아 자녀들은 그의 눈앞에서 다 죽이고 그의 눈알은 빼서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다 불 태우고 많은 백성을 죽였습니다. 에스겔서에 ‘배신하고서야 어떻게 망하지 않겠느냐? 독수리가 포도나무에서 물을 받다가 다른 포도나무로 물을 돌렸기 때문에(배신했기 때문에) 다 와서 멸망을 시킨다’고 하였는데, 배신하면 이만큼 잔인한 보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도 이렇게 배신한 것을 가만히 안 두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배신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놔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수를 독수리처럼 빨리 날려 보내서 잔인하게 빼앗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집을 다 멸망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고 신앙 양심을 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할 도리를 다 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명령대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배신이 아닙니다.
또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라고 하였는데,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죄입니다. 요리문답 1문에 ‘죄가 무엇이뇨?’라고 하였을 때 답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나 혹은 순종함에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말씀을 어긴 것이나 말씀을 순종하는 데 부족한 것이 없는지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율법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다 완성하셨으므로 신약시대에는 율법이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보면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1절에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이고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또 오늘날 율법을 지켜야 됩니까,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율법의 역할
1)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임
예수님께서 오셔서 신,구약 성경(율법)을 다 지켜 의를 이루시고 우리는 완성된 그 의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아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왜 필요한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 ‘율법은 첫째로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몽학 선생이라 함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을 보고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가서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전부 율법의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율법이 필요한데, 이것을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처럼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 은혜에서 떨어진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2)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게 함
그러나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폐법주의도 그 자체로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폐하는 것으로, 악한 죄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율법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 받은 신자에게 계속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나아가 성화가 되도록, 즉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기왕에 받은 구원 위에서 우리가 더욱 죄를 깨닫고 낮아져서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게 만드는,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폐한 자는 죄를 짓고도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회개도 못하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폐하면 안 됩니다.
율법을 폐한 자는 죄를 짓고도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회개도 못하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폐하면 안 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알려줌
또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율법은 구원 받는 방법이 아니고, 이미 구원 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원 받은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주일날을 범하는 것, 간음하는 것이나 도적질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우상을 섬기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과 기뻐하지 않으시는 뜻을 율법이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과 기뻐하지 않으시는 뜻을 율법이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합니다.
4) 영의 양식이 됨
율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 양식이 됩니다. 이미 구원 받은 우리가 율법을 잘 읽고 그대로 행하면 영이 자라나는데, 그것이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고자 하여 난관을 이겨나가면 영이 힘을 얻고 점점 자라납니다. 의를 행함으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천국에서 큰 자로서의 자격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을 잘 지켜나가고 부모를 잘 공경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서 죄를 깨닫고 이겨나가며 은혜를 받게 해줍니다.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율법을 읽고 지키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켜 완성시켜 놓으신 그 의를, 믿는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완전한 의를 받아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의인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율법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어도 율법대로 못하면 죄를 지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다가는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이단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하고, 율법을 보고 읽고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말씀 그대로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였고 지키다가 부족한 것이 많은데, 이것이 다 죄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하나님의 율법을 다 범하고 버리고 폐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인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길인지 모르고 무법천지로 나가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율법을 지키다가 죽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시대의 진리
1) 왜정 시대 - 제2계명
왜정 말기에 주기철 목사님을 위시하여 최권능 목사님 외에 많은 분들께서 신사 참배를 안 하므로 감옥에 갇혔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또 여러 해 동안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다가 8·15 해방 후 석방되어 나온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제2계명 하나를 지키고자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고 순교자의 경우에는 순교자의 반열에 세워주십니다. 그러나 계명을 폐한 사람들은 마음 놓고 우상을 섬겨 그 죄 값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왜 38선이 갈라져서 이북이 공산주의 치하에 들어갔습니까? 1938년도에 평양 서문 밖에서 총회장 이하가 모두 모여 27회 총회를 하였는데, 그때 신사 참배할 것을 가결하였습니다. 신사 참배는 죄가 아니라고 하며 우상 섬기는 것을 가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죄가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만큼 진노하셔서 38선을 갈라 이북을 공산주의에 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상 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까? 제2계명 하나 안 지켰다가 이렇게 벌을 받은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의 진리가 있습니다. 왜정 말기에는 2계명에 대한 진리를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하고 주어진 시대에 대한 진리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2) 사도 바울 시대와 루터와 칼빈 시대
사도 바울 때에는 ‘믿기만 하면 할례를 안 받아도 된다’는 것이 그 시대의 진리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진리를 지킨 것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안 받아도 되느냐 하는 할례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서 입장을 드러내었습니다. 루터와 칼빈 시대의 진리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천주교가 속죄표를 팔고 우상 숭배를 하고 법황 독재를 하는 부패 속에서, 천주교 교리는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어 원죄를 사함 받고 개인이 범한 죄는 고난을 받아야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도 죄 사함을 받으려고 로마에서 빌라도 사다리를 무릎으로 올라가는 고행을 하였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였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죄 사함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음으로만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종교 개혁을 하였는데, 그것이 그 시대에 사수할 진리였던 것입니다.
3) 이 시대에 주신 진리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지키라고 주신 진리는 주일을 지키라는 제4계명입니다. 그래서 4계명에 대한 시험으로 주일을 지키기 힘들고 주일을 범하게 하려는 시험이 자주 자주 옵니다. 이 시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신앙을 지키는 것이고, 이것을 못 지키면 이 시대의 진리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1962년에 주일날 화폐 개혁을 하고 주일날 신청을 하면 돈을 다 바꿔주고 그 하루 동안 신청을 안 하면 다 무효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때 주일 지키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재산인데, 신청 안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공무원 시험, 순위 시험, 자격 시험 등을 주일 날 치기 때문에 이 시대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이 진리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대적에게 심판을 받아 다 쫄딱 망한 다음에 하나님께 돌아와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에 대해서
본문 3절에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싫어 버리면 대적이 따라온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장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하였는데, 죄는 선을 행치 않을 때 들어옵니다. 죄가 쳐들어오려고 항상 매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선을 행하여야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선을 행하려고 하므로 육체에 고난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
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고 고난을 감수하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며, 그만 죄가 물러갑니다. 죄를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선을 행하면 됩니다. 선을 행하지 않고 죄만 물리치려고 하면, 아무리 해도 죄가 안 물러가고 내내 따라다닙니다. 또 문 앞에 엎드려 있다가 기회만 있으면 쳐들어옵니다. 들어오는 죄를 물리치려고 하기보다 선을 계속해서 행해나가면 죄는 점점 물러갑니다.
그럼 선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9장 1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청년 하나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자 “하나님 한 분만 선”이라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선, 완전한 선이시고 그 외에는 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려면 하나님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성령의 인도와 성령의 주장을 받는 것이 다 선한 일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으므로, 날마다 주의 살과 피를 먹는 일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 영의 역사가 있는 일, 그것을 떠나면 생명의 역사가 죽고 원수가 옵니다. 우리 영혼은 선을 먹고 삽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못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세계를 떠나지 마십시오. 또 신령한 말씀을 따라가서 우리 영이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을 먹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그 가지에서 떨어지면 말라지기 때문에 사람이 불에 던져서 사른다고 하였습니다. 말씀 순종이 선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을 영으로 받는 것이 선을 먹는 것이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선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버리셔서 원수가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면도 있고 사람에 대한 면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7장 8절에도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지 말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자기 할 도리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선이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은 악입니다. 이것이 에덴 동산의 법입니다. 절대로 선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선을 버리지 않으려면 그리스도 하나님 안에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야 합니다. 종교 행위라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가 됩니다. 자기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영적 감동이 되는 것이 선입니다. 그것을 버리면 원수가 옵니다.
언제든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순종해나가고 바로 이루어나가려고 하는 것이 선입니다. 마태복음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거룩한 것과 진주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거룩한 것과 진주가 없습니다. 거룩한 것은 성령의 거룩한 영감을 받은 우리의 심령과 거룩한 양심으로 제어되는 우리의 몸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이 진리의 말씀대로 인격을 만들어나가다가 그 선을 개와 돼지와 같이 되어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을 버리는 것이 신, 구약에 다 통해 있기 때문에 신약도 필요하고 구약도 필요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껍질이고 그 모체이므로, 신약에 있는 진리가 구약에 다 있고 구약에 있는 진리가 신약에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 다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선을 버리고 옳은 것을 버리고 자기가 살 길을 버립니까? 영의 양식을 왜 버립니까? 생명의 세계를 왜 버립니까? ‘사정이 있어서’라고 하는데, 그것이 죽을 사정입니다. 사정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만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며 선을 버리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의 영이 살고 많이 자라나고 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선을 버렸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걸어갈 길, 내가 먹을 양식, 내가 살 신령한 집, 아버지의 집, 주의 살과 피,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 영이 살 수
있는 생명의 세계, 말씀의 세계, 이것만 선이고 살 길입니다. 이 선을 버린다면 사망밖에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선을 버리고 악을 행함
본문 4절에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버렸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으니 악입니다. 그러므로 파괴 밖에는 당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한 것은 전부 선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제 생각대로, 민주주의로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당해서 된 것, 그것이 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하면 그것은 악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예’하고 아골 골짜기, 거친 들, 소돔 고모라라도 가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골 골
짜기라도 소망의 문이 열리게 만들어주십니다. 신앙 양심에 옳은 것을 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그리고 은, 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그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은과 금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자기를 위해서 쌓아놓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지 않으므로, 그것이 우상이고 악인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물질을 다 받아도 청지기의 위치에서 받으면 괜찮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100가지라도 좋습니다. 그래서 심을철 목사는 기도하고 술을 먹고 기도하고 담배를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술 한 잔을 먹겠사오니 한 잔을 먹고 정신이 아찔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고, ‘하나님이여, 이 담배를 한 대 피겠사오니 연기가 내 속에 쑥 들어갔다가 쌍 굴뚝으로 쑥 나오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안 나오는 것을 보니 하나
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그 기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닌, 악이기 때문에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대로 하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다 선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것은 전부 악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맞아도 자기를 위하는 것은 악입니다. 성경에 안 맞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안 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은 다 마귀의 일입니다.
우상 숭배의 대가
본문 5절에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한테 가서 하나님, 하나님 하고 섬깁니다. 그러니 왜 죄가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실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를 다 부서뜨린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찌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고 하였는데, 헛된 것을 심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바람을 심으면 안 됩니다. 참 진리, 사실을 심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헛된 의식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나 심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는 말이 예전에는 부흥회를 해서 떠들썩 하고 손뼉을 치며 흥분을 시켜놓곤 했는데, 지나가고 나면 하나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면 그것은 내내 교인들 심령 속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심령 속에 신령한 진
리를 심을 때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이삭이 생겨서 충실하게 여뭅니다. 성경 진리를 심어놓는 것이 아주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이 열방을 의지하므로 쇠해짐
본문 8절에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이제 열국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선을 버리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제가 하고, 종교는 바람을 심어놓고 하므로 하나님께서 열국 가운데 헤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서있으면 위대한 방백이고, 믿음에서 떨어지면 가는 곳마다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려고 하며, 하나님의 영적 신앙에만 딱 서나가야 합니다. 선만 위하십시오.
여기 이스라엘이 왜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까? 선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지 않고 제 생각, 제 고집대로 자기를 위해서 해치우다가 천덕꾸러기가 된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하15장 19-20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모든 큰 부자에게서 은을 거두어 앗수르 나라에 보내면서 앗수르 나라를 의지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연애입니다.
본문 10절에 “저희가 열방 사람에게 값을 주었을찌라도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나라를 의지하면 그 나라가 잘되게 해줄 것 같아도 무거운 멍에만 메어 주어 그 바람에 점점 쇠약해집니다. 그러므로 아무 쓸 데가 없습니다. 교역자가 세상과 짝하고 돌아가면 세상이 무거운 멍에를 메어 줘서 그것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없고 성경 볼 시간도 없고 점점 쇠퇴합니다. 교회들도 세상 나라와 짝하기 시작하면 세상 나라에서는 ‘교회가 잘한다. 교회에서 뭐했다, 뭐했다’라고 하며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교회는 그것을 따라하려다 점점 쇠해지고 맙니다.
3. 헛된 제사
쉽게 믿으려고 하는 자들은 범죄하게 됨
본문 11절에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12장 5절에 ‘예루살렘 한 곳에서 예배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이 하나님 섬기는 제단을 여러 곳에 많이 만들어놓은 것은 쉽게 믿으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제단을 쌓아놓으면 제사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가려면 어디는 사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데도 있고, 하여간 힘이 듭니다. 그렇게 힘이 드니까 여러 곳에 쌓아놓은 것입니다.
요새 신자들도 쉽게 믿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배당도 멀리 찾아가지 말고 아무 데나 가까운 곳에 가서 예배 한 번 드리고 오면 된다는 생각이 그때 사람들에게도 들어왔습니다. 또 요새는 쉽게 믿겠다는 생각이 한 계단 더 들어와서 오전 예배만 일찍 보고 8시 반에 싹 떠나갑니다. 가까운 데 가서 쉽게 믿어야지, 어떻게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있겠습니까? 하여간 ‘쉽게 믿읍시다’하고 제단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일심정력을 하나님께 기울여서 살고, 힘과 정력을 들여서 제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쉽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고의 원인입니다.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 지을 생각이 살살 들어오는 것입니다. 쉽게 가까운 데 가서 예배 한 번 드리고 오니 시간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TV라도 틀어봐라. 뭐라도 해봐라. 놀러 좀 가자. 누구 친구가 왔다. 노래나 한 번 하자”하며 죄 질 생각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쉽게 하는 것이 시원찮습니다. 모든 것에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믿는 것도 쉽게 믿지 말고 피땀을 들여야 합니다.
공력이 많이 들어가고 연단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을 많이 통과하여야 바로 됩니다. 모든 정성, 모든 정력, 모든 힘, 모든 마음을 가져다가 기울일 예산 편성을 해놓으십시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에 관심이 없음
본문 12절에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고 가르쳤는데, 말씀을 생명으로 삼지 않고 슬슬 다 버렸습니다.
본문 13절에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찌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드린 다음에 자기가 배 부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자기의 배를 채우려고 예배당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알아주고, 교회에 와서 자기 영광과 자기 명예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장가가려고 교회에 오는데, 그것을 장가 예수라고 합니다. 또 시집가려고 교회에 오면 그것은 시집 예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아는 교인이 많이 생기니까 장사를 위해서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들도 나와서 환자들이 자기 병원으로 많이들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제사에는 정신이 없고 젯밥에만 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이 거룩한 일을 자기의 사복(私福)과 유익을 채우는데 이용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고 하였는데, 이제 애굽으로 다시 쫓겨가 종 살이하는 것처럼 쫄딱 망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요새를 쌓는 자는 벌을 받음
본문 14절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교리가 잘못된 타락한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과 금을 가지고 우상의 전각들을 세우며, 즉 세상을 우상으로 삼고 돈을 우상으로 만들어놓고 삽니다. 그리고 ‘유다’는 보수로서 교리가 바른 교회입니다. 그들은 비록 우상은 안 만들었지만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아 그것을 의지하며 살려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므로,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 자기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다 불살라 없애신다고 하였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