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10:25-37 영생문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영생문답
누가복음 10:25-37

25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 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 율법사가 예수님께 영생 얻는 방법에 대해 물음

본문 25-26절에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물을 때 예수님이 "네가 성경을 읽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율법사는 성경 전문가로 성경을 잘 압니다. 율법사가 신명기 6:5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라고 하였으며 레위기 19:18에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율법사가 성경을 바로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답변을 들으시고 본문 2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 얻는 방법입니다. 두 가지를 행하면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율법사가 물었습니다.

2.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

본문 3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고 하였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옷을 다 벗기우고, 매를 많이 맞고, 버림을 당했습니다.

본문 31-32절에,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라고 하였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때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직분을 가진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는 직분입니다. 레위사람도 제사장을 도와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건져줄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피하여 지나갔단 말입니다. 강도가 많이 나오는 곳이므로 “이 사람을 건져주다간 나도 강도 만나 이 사람같이 될 염려가 있다”하며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날 우리입니다. 강도는 마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 강도와 같이 마귀를 만나서 마귀에게 옷을 다 벗기웠습니다. 즉 의와 진리와 거룩인 하나님의 형상을 다 벗기웠습니다. 마귀에게 매를 많이 맞고, 상처를 많이 입고, 피를 흘리고, 거반 죽었던 것입니다. 이젠 조금만 더 버려두면 피를 많이 흘려서 완전히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즉 신앙의 세계를 떠나서 세상으로 내려가다가 마귀에게 붙잡혀서 매를 많이 맞고, 의복도 벗기우고, 거반 죽은 상태에서 버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건져줄 의무가 있는 제사장이 그냥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자기도 강도 만날까 두려워서 못 본체 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기주의, 의식적인 종교가들은 다 지나가고 맙니다.

본문 33절-35절에,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사람과 원수로 상종을 안하는 사람입니다. 상종도 안하고, 원수로 여기는, 건져줄 의무도 없는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 다음에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또 자기 짐승에게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습니다. 주막은 여관입니다. 여관으로 데려가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그 여관 주인에게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요한일서 2:27에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는 이사야 55:1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성찬예식 할 때에 떡과 포도즙으로 하는데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것이고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부어주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피를 부어주시고 또 성령을 부어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고, 낫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가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고 싸매어 주고, 자기가 타고 갔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갔습니다. 여관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돌보아 주라고 데나리온 둘을 주며 교회에 맡겼습니다.

데나리온은 은전으로 한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 일한 값입니다.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이 사람을 고쳐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데나리온은 진리와 영감입니다. 교회에 진리와 영감을 주었습니다. 진리와 영감 둘을 주면서 이 사람을 고쳐주라고 하였습니다. 부비가 더 들면 예수님이 오실 때에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부비를 더 들여서라도 이 사람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6-37절에,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하고 물으실 때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어야 되겠는데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 할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과는 감정이 좋지 않으므로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3. 영생 얻는 방법

예수님께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영생 얻는 방법은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 얻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만 하면 영생을 얻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도 여러 가지 종류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질이 다릅니다. 그 내용이 다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믿지 않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껍데기로만 사랑합니다. 또하나님을 사랑해도 들은 풍월대로만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모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혼이 중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영혼입니다. 영은 죽었는데 그 육신의 생각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껍데기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못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가 아들 사랑하는 것과 다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영으로 사랑하여야 참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껍데기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중생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 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중생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인간적인 사랑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사랑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은 껍데기 사랑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영생을 어떻게 하여야 얻겠습니까?” 하고 물을 때 “네가 계명을 지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율법사가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어느 계명이오니이까?”하고 물을 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직하지 말라, 부모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할 때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할 때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은 부자이므로 재물이 우상이었습니다.
그 우상을 버리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예수님을 좇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아들이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영이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이웃 사랑하는 것도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아서, 예수님의 지체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는 것이 영생을 얻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의 사마리아 사람의 예를 들어 예수님의 구속을 말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는다’는 뜻이 그 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으로 섬기시려고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사람처럼 그저 보고 슬슬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사람 많을 때에는 도와주나 사람 없는데에서는 우선 자기가 살고 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살고 보아야겠으므로 돌봐줄 여지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젖 먹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기가 죽을 경우에는 아이를 내버리고 도망갑니다.

어떤 여자가 6.25사변 피난 나올 때에 자기가 난 아이를 업고 나오다가 죽게 되자 아이를 수수밭에 내려놓고 피난 갔다고 합니다. 또 어떤 여자는 38선 넘어올 때에 여러 사람이 배를 타고 넘어오는데 아이가 울자, 피난길 안내원이 들키면 다 죽는다고 하므로 업고 왔던 아이를 강에다 내던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모성애”라고 떠들썩해도 결국은 자기가 죽게 되면 자기부터 먼저 살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생명을 내놓고 사랑한 것 아닙니까?

필자의 부친이 “주식형제는 천인류(酒食兄弟는 千人有)요, 급란지붕은 일인무(急難之朋은 一人無)라”는 시를 지어 교훈하셨는데 “주식형제는 천인류”란 술 먹고 방탕할 때 친구는 천사람이나 있으나 “급란지붕은 일인무”란 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인줄 알아야 됩니다. 마귀에게 붙잡혀 상처를 받고 거의 다 죽었는데 이것을 살려줄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찾아오시고, 또 포도주를 갖다 부어 주시고, 기름도 부어 주시고, 싸매어 주시고, 상처를 낫게해 주시고, 또 예수님은 종의 위치에 서서 짐승을 태워서 존귀케 해주시고 교회로 데려가 부비를 더 들여서 고쳐 주라는 것입니다. 비용을 많이 들여서 고쳐 주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고쳐 주는 곳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됩니다. 희생을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된 교회를 위해서 채워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비가 더 든 것만큼 갚아주십니다.

4.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본문 37절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여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살고,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영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너도 이와 같이 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예수님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가서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탔던 짐승에 태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자기가 탔던 짐승에게 태우는 것입니다. 자기는 일어서고 여기 타라는 것입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혀주고, 성령의 감화를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했으므로 버림받은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 가서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하고, 거기다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고, 자기는 종이 되어 자기가 탔던 짐승에게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서 고쳐주는 일을 하여야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를 사람들이 성자라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에 있는 나환자 촌에 가서 교회를 시무했다고 합니다. 문둥병으로 썩어가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며 사랑한 것이 훌륭하다고 해서 손양원 목사를 존경합니다. 또 여수 반란 때에 자기 아들 둘을 공산당이 죽였습니다. 그 죽인 공산당을 데려다가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그것이 또 큰 사랑을 베풀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존경합니다. 자기 아들 둘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아놓고 그날 저녁식사를 잘 했다고 합니다. 사모님은 속이 상해서 저녁식사를 못했다고 합니다. 아들 둘을 죽인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얼마나 속이 상하였겠습니까? 그래도 손양원 목사님은 식사를 잘 했고, 또 잠도 잘 잤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이와 같이 하라” 하는 길을 걸어간 것 같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이와 같이 하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최고의 사랑 즉 순교의 사랑을 하여야겠습니다. 순교는 목숨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순교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자기가 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 이것이 순교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강도 만난 사람, 상처 받은 사람, 쓰러져있는 사람을 볼 때에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로 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육신중심,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아니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종의 위치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람을 구원해서 교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로 한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이만큼 힘이 드는 것입니다. 희생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을 구원해 놓은 다음에는 데나리온 둘을 가지고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로 인도하여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하면서 그 사람들을 고쳐 나가고, 온전케 만들어 나가고, 강건하게 만들어 나가고, 자라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도 살고 그 사람도 살려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살려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갖다 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성령의 감동을 그 사람에게 적용시켜서 그 사람의 상처를 싸매주고 낫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평안한 마음, 건전한 마음, 안위와 생명을 얻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사건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그 사람에게 갚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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