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5일 화요일

마태복음 11:2-23 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마태복음 11:2-23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1.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세례요한의 질문

본문 2-3절에,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혔는데, 갇혀서 여러 달 되었어도 예수님께서 심판하지 아니하고, 그냥 자기를 구원해 주지도 아니하는 것을 볼 때에, 세례요한이 의아한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오실 그이’는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어있는데 ‘당신이 그리스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요한다운 질문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증거 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날 때부터 예수님을 증거 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에게도 세례를 베풀었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할 때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말씀이 있었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다 보았고, 그 음성을 들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고 확실히 증거를 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할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인 것을 확실히 증거 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구속주, 속죄주인 것을 확실히 증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 세례요한이 신앙의 잠이 듦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제일 많이 그리스도를 알고 확실히 증거 한 세례요한이 왜 이렇게 ‘당신이 그리스도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것은 신앙이 잠이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깨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고 나가지만 신앙의 잠이 들면 몽롱한 가운데 빠집니다. 모든 진리에 대해서 몽롱해집니다. 전에 확실하던 것도 확실해지지 않고 전에 잘 알던 것도 얼떨떨 해가지고 ‘이것인가? 저것인가?’하게 됩니다. 신앙이 잠들면 그렇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윗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범죄 했고, 엘리야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죽여 달라고 했고, 요나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잠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신앙이 깨어있는 때가 있고 잠들어 있는 때가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때는 흑암을 만나고 기도가 잘 안 나오고, 모든 것에 대해서 확실한 분별력이 없고 오리무중에 빠지고 맙니다. 육신중심, 세상중심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영적 생활이 아니고, 영이 깨어서 영적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심령이 어두워져서 분별을 잘 못하는 때가 잠드는 때입니다. 그럴 땐 힘쓰지 못합니다. 믿는 일을 잘 못하고 육신의 일만 생각하고 세상일만 생각하면 신앙이 잠든 때입니다.

잠들지 않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잠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깨어있는 성도, 항상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성도, 명백하게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의 세계를 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은 신앙이 잠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답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증거

본문 4-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실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예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다, 아니다’ 답변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세례요한에게 알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들이 그리스도인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하려고 오셨고 이것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때에도 하시던 일이고 지금도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증거입니다. 이 일은 언제나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소경과 앉은뱅이만 보게 하시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고, 영적 소경을 보게 하시고 영적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영적 문둥병자 죄로 인해서 썩어져 들어가는 영적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영적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영혼이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을 하시고,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영적 병을 고치시고 살리시는 일을 하시는 예수님

그리스도께서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 일을 하십니다. 지금도 이 일을 하십니다. 소경 눈뜨게 하는 일, 즉, 요한복음 9장에 소경의 눈을 어떻게 뜨게 하셨습니까? 침을 땅에 뱉어서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발라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순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은 명령을 순종 시켜서 눈뜨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그 일을 하십니다. 순종하면 눈을 뜹니다.

그 다음은 ‘앉은뱅이가 걷는다’고 했는데, 앉은뱅이가 되어서 걸어가지 못하고 앉아서 뭉겨대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달음박질하지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걸어가지도 못합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신자들, 거저 메어다가 교회 놓았다가 또 메어 가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영적 앉은뱅이들입니다. 이것을 고치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앉은뱅이 어떻게 고치십니까? 예수님께서 ‘일어서라!’ 하실 때에 일어서면 고쳐지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같은 신자는 잘 들으십시오. 앉은뱅이 고치는 일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일어서라!’ 할 때에, ‘예!’ 하고 일어서면 고쳐집니다.

소경은 어떻게 하면 눈이 떠집니까?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하면 ‘예!’하고 순종하면 고쳐지고 눈이 떠집니다. 또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습니다. 문둥이는 죄로 인해서 우리 심령이 썩어져 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것을 가만두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함을 받아라. 깨끗해라’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예!’하고 순종하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데, 귀머거리가 되어서 하나님 말씀을 안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듣고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와야 됩니다. 놀라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기뻐 뛰어야 되겠는데, 귀머거리가 되어 멍멍해서, 이 소리가 저 소리 같고 저 소리가 이 소리 같은 것입니다. ‘귀머거리는 들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회개해야 되고, ‘예!’ 하고 돌이키면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입니다. 영혼이 죽은 자가 복음을 듣고 살아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 말씀을 들으면, 신앙이 죽은 자라도 그리스도께서 ‘살아나라!’하실 때 ‘예’하고 일어나면 살아납니다. 나사로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돌을 옮겨 놓으라.’ 할 때에 옮겨 놓으면 되었었고, ‘나사로야 나오라!’ 할 때에 ‘예!’하고 나오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만능입니다. 내가 죽은 상태, 신앙이 죽은 상태에 있는데, ‘내가 이런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오라!’ 하실 때 ‘예!’하고 나오면 살아납니다.

그 다음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했는데, 가난한 자, 불쌍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전파해서 영의 부요한 자를 만들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곤고하고 벌거벗고 수치를 알지 못하는 그런 심령들에게 ‘부요해져라!’하실 때에 부요해집니다. 이렇게 살려내는 것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이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천국이 임했는데 우리가 와서 눈뜨고 가야 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가야 되고, 새 힘을 얻어서 뛰놀며 가야 됩니다. 새 생명을 얻어야 되고, 이제는 깨끗함을 받아야 되고, 심령이 가난하고 곤고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이제는 일어나야 됩니다. 그리고 병에서 고침 받기만 한 상태를 벗어나서 믿음의 부요한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힘을 얻어서 새 생명을 얻어서 뛰놀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을 제대로 못해가지고 예배시간에 형식적으로 나왔다 들어갔다만 하고, 말씀이 생명이 안 되는 이런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살아나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해서 살아나는 역사,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밤낮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런 것들을 살려내는 일이고, 변화를 시키는 일이고, 모든 심령을 고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병을 고치는 동시에, 영적 병이 고쳐짐을 알게 해주시는 표상으로 육신의 병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해주시고, 앉은뱅이 걷게 해주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즘도 이적 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소경 눈떴다. 앉은뱅이 걸었다. 벙어리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새 사람들이 행하는 보통 이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껍데기로만 이적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으로만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생명을 살려내면서 하는 이적은 그리스도의 이적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생명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적을 거짓 선지자도 많이 행하지만 그것은 껍데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적 생명을 살려내는 이적은 아닙니다.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적을 행한다고 해서, 다 무슨 희한한 일이고 굉장한 일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실족한 자는 다 일어서라

본문 6절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이것을 보면 세례요한이 실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실족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좋은 종도 일시적으로 실족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잠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솔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가 실족했다” 세례요한을 보고 실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이제 실족한 사람들은 다시 깨어나십시오. 다시 바로 서십시오.
실족이라는 것은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넘어가 있는 사람들, 얼음판에 넘어진 송아지 눈 아십니까? 얼음판을 걸어가다가 송아지가 넘어갔는데 넘어가면 못 일어섭니다. 네 다리가 옆으로 가고 몸뚱이가 누웠는데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사람 같으면 팔로 짚고서 일어설 수 가 있는데 송아지가 팔 있습니까? 요새 신자들도 그런 신자들 많습니다. 송아지가 얼음판에 넘어간 것과 같은 신자들 많습니다. 일어서십시오. 얼음판에 넘어갔어도 정신은 멀쩡합니다. 실족한 사람들 다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족한 것을 알겠습니까? 실족해서 넘어져 있는 것 압니까? 송아지가 얼음판에 넘어갔는데 넘어간 줄 모릅니까? 알 것입니다. 버둥버둥 해보겠지만 그래도 안 되거든 어떻게 하면 일어서겠습니까? 여기도 넘어간 송아지들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일어서라’ 손을 대서 쳐들어 주시면, “벌떡”하고 일어나야 됩니다. 일어난 다음에 다시 넘어가면 안 됩니다. 넘어지면 예수님께서 일으켜 세워십니까?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일어서라 하십니까? 일어서라 하십니다. ‘예’하고 벌떡 일어서면 됩니다. 실족하지 마십시오.

3.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알아주심

믿는 일 한 것을 알아주시는 예수님

본문 7-9절에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생활 할 때,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너희가 다 거기 나갔었는데 왜 나갔었냐고 물어보십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보려고 나갔더냐?”하고 물으십니다. 세례요한은 바람의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옷이나 입으려고 왕궁에 가서 아첨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 나간 사람이고, 부드러운 옷을 입은 세상에 출세하려 하고 자기 잘 살려고 권력에 아부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직하게 왕을 면책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광야에 나갔습니까? 선지자를 보려고 나갔습니까? 맞습니다. 세례요한은 선지자 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을 바로 안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이 세례 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세례요한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했지만 지금은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다들 쏙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세례요한을 바로 아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려 앞서 보낸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어떻게 예비하였습니까? “내 뒤에 오시는 이가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그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 “그는 나보다 먼저 계신 자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면서 세례요한이 증거 했습니다.
그렇게 세례요한이 바른 증거 한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지금은 세례요한이 일시적으로 실족했지만, 세례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흔들흔들 하며 여론에 밀려 따라가고, 인간의 요구에 의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진리에 의해서 나가는 사람이고 또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내 앞서 보내서 내 앞에 예비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앞잡이가 되고 선구자가 되어서 증거 한 것을 예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잠들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전에 한 것 다 알아주십니다.

성도가 죽을 즈음에 깨어서 믿는 일 잘하고 증거 잘하고 죽는 사람도 있고, 전에 훌륭하게 믿음 잘 지켰지만 죽을 즈음에 제대로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 흑암에 빠져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 시체가 환하게 하얀 사람도 있고, 죽을 때 시체가 시커먼 사람도 있습니다. 시커멓게 되면 지옥에 같다고 그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지옥에 갔는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시커멓게 되었다고 지옥 간 것이 아닙니다. “하얘야 천국 간 것이다”라고 하는데 하얘야 천당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시커멓게 죽는 줄 아십니까? 뇌출혈 걸린 사람이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서 죽습니다. 뇌에서 피가 나와서 자꾸 흐르니까 시커멓게 될 것 아닙니까? 시꺼멓다고 해서 지옥 간 것이 아닙니다.

또 죽을 때에 명백하게 신앙을 증거하고 죽는 사람이 있고, 신앙 좋았던 사람이 죽을 때에 그만 증거 잘 못하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천국가고 지옥 가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어떻게 믿었는지, 전에 예수를 어떻게 믿었는지, 전에 믿는 일 어떻게 했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전에 예수님을 얼마나 증거 했는지, 전에 천국을 위해서 얼마나 힘썼는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는 것이지, 죽을 때의 상태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 물론 깨어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는 치매 걸려서 오랫동안 정신없다가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목사가 제가 잘 아는 유명한 목사인데, 치매 걸려서 그랬어도 그 목사가 지옥 갔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치매에 걸려서 허튼소리 하고, 불미스런 행동하다가 갔지만, 그 사람은 믿은 좋은 사람입니다. 죽을 때 얼굴이 시꺼멓게 되었어도 지옥 가는 것이 아님을 언제나 알아 놓으십시오. 죽을 때 얼굴이 하얘야 천당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믿었으면 천당 가고, 안 믿었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믿는 일 잘 한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박태선파에서 천당 가면 죽을 때 얼굴이 환해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얼굴이 환해서 광채가 나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전에 믿은 일, 전에 주를 위해서 수고한 일, 예수님의 앞잡이가 되어서 천국 예비한 일을 예수님께서 다 알고 증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큰 자인 이유

본문 11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 여자가 낳았지 남자가 낳았겠습니까? 여자가 낳은 모든 사람 중에 세례요한이 제일 크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이 왜 모든 사람보다 큰 자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예수님을 직접 이 세상에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예수님의 앞잡이가 되어서 직접 예수님을 이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 그 앞잡이로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시다”라고 했으니까 제일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은 세계가 놀랄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오신다! 이분이 하나님이시다!”한다면, 하나님이 오실 때에 그 사람이 제일 큰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이 제일 크시니까 하나님 앞에서 소개하는 사람은 큰 자입니다. 세계에서 그 사람이 제일 큰 사람입니다. 달나라에 처음으로 갔다 온 사람이 암스트롱인데, 그 당시에 달나라에 대해서 연구할 때에 제일 큰 자는 암스트롱이 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갔고 제일 먼저 증거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찾아오시는데 그것을 소개하는 사람은 제일 큰 자입니다. 그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둘째, 제일 큰 자가 된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제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구약 역사적으로 아담 때부터 세례요한 때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무슨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보면서, ‘성령이 임하는 분이 이분이 그리스도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구속주다, 심판주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속의 진리를 그 당시에 제일 많이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이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중에 제일 크다고 한 것입니다.

큰 자가 되는 법

큰 자가 되는 법은, 그리스도를 제일 많이 알고, 제일 많이 소개하는 것, 그리스도의 앞잡이가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자가 되는 것, 많이 전하는 것입니다. 또 구속에 대한 진리를 많이 알고, 진리 안에서 살고, 그 세계에서 살고, 그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큰 자가 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를 많이 아는 것, 조금 더 아는 것,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 그를 힘입어 사는 것,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구속의 진리를 많이 알아서, 그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아서 그 세계에서 사는 것, 구속의 대한 진리를 알고, 그 세계에서 자기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섬기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서 다른 사람을 살려내니까 섬기는 자 아니겠습니까? 섬기는 자가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입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는데,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리스도의 심부름을 바로 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많이 깨닫고 그 진리 안에서 살고, 그 진리의 사람이 되고 그 진리를 증거 하는 이 사람이 큰 자입니다.

또한, 말씀을 순종해야 큰 자입니다. 말씀을 받아서 순종해야 큰 자입니다. 말씀으로 알지 못하던 진리를, 새 세계를 발견해서, 자기 세계로 만들면 그 만큼 커지지 않겠습니까? 또 알지 못하던 세계를 발견해서, 더 발견하고 발명하면, 자기가 그 세계 사람으로서 커진 것이 아닙니까? 가령 영국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난 후, 거기에 영국 사람들이 갔습니다. 가서 그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를 자기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커진 것 아닙니까? 호주 하나 발견하고 호주를 자기나라 만들어서 살았다고 하면, 또 그 만큼 커진 것 아닙니까?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알지 못하던 그 진리의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거기 갔습니다. 자기가 그 세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세계를 자기 세계로 만들어야 됩니다. 또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또 그 세계를 자기 세계로 만들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아는 것만 가지고 끝나지 말고 조금 더 알아야 됩니다. ‘나는 다 알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조금 아는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의 진리에 대해서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아는 것입니다. 신학교 졸업하면 신학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데, 다 알긴 뭘 다 압니까? 조직 신학을 배워서 교리를 다 알았다는 생각, 다 알기는 뭘 다 알겠습니까? 조금만 안 것입니다. 조금 더 알아야 됩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진리를 많이 알고, 많이 그 세계를 자기 세계로 만들고, 자기가 그 세계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를 많이 알고, 그리스도를 많이 증거하고,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그리스도를 많이 소유하고, 그리스도를 많이 전하고, 그리스도를 많이 써먹는 자가 큰 자입니다. 써먹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말로 ‘사용한다’라고 하는데, ‘써먹는다’고 말해야지 ‘사용한다’고 하면 뜻을 잘 모릅니다. ‘써먹는다’는 것은 많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것을 이기고, 그로 말미암아 정복할 것은 정복하고, 그로 말미암아 나갈 것을 나가고, 그를 힘입어서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는 말이 있는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크다’는 말은, 천국은 신약교회시대를 가리킵니다. 신약교회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왜 큽니까? 신약교회의 성도가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이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 까지만 알고 그 것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압니다. 신약시대의 것은 놀랄만한 큰일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이 모르는 세계가, 굉장히 큰 위대한 그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 세계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세계에서 신약시대 성도는 그것을 다 압니다. 그것을 다 아니까 큰 것 아니겠습니까? 세례요한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압니다. 전에는 쓰지 못하던 것을 씁니다. 세례요한이 누리지 못하던 것을 우리가 누립니다. 세례요한 보다 크지 않겠습니까? 신약교회시대의 진리가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세례요한이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세계, 이것이 얼마나 큰 것임을 예수님께서 증거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보면 세례요한은 큰 자입니다. 진리 측면과 그리스도의 구속 측면에 있어서 신약교회 성도가 낫다는 말이지, 천당 가서 세례요한이 제일 작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지옥 가서 “헐떡헐떡 뛴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데, 그것은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천당 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증거 해 주신 위대한 증거의 세계에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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