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대한 교훈
마태복음 12:1-37
마태복음 12:1-37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18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22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27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1. 안식일과 주일 (1-8)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신약시대 안식일은 주일입니다.
날짜를 고쳤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 칠일 안식일이었고, 신약시대는 이레 중 첫날이 안식일인데 오늘날의 주일입니다. 왜 고쳤습니까?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참 안식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림자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참 안식이 진짜로 온다는 것입니다. 참 안식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셨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참 안식일입니다.
날짜를 고쳤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 칠일 안식일이었고, 신약시대는 이레 중 첫날이 안식일인데 오늘날의 주일입니다. 왜 고쳤습니까?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참 안식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림자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참 안식이 진짜로 온다는 것입니다. 참 안식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셨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참 안식일입니다.
구약은 그림자, 실체는 그리스도
구약시대 모든 율법이나 의식이나 의문이나 제물이나 절기나 그것은 전부 그림자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전부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세상 사람들은 실체가 먼저오고 그림자가 나중에 따라오는데, 성경에서는 그림자가 먼저 왔고 실체가 나중에 왔습니다.
골로새서 2:14-17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절기나 안식일이 그림자라는 성구입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들 구약시대의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입니다. 월삭,절기,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실체인 몸은 그리스도입니다.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실체로 하는 것이지, 그림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그림자라고 합시다. 아버지의 사진을 그림자라고 하면, 아버지는 실체입니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아버지가 멀리 가 계실 때에 사진을 보고 아버지라고 했지만, 멀리 가셨던 아버지가 오셨을 때엔 사진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진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진짜 아버지가 오셨는데도 사진을 보면서, ‘이것이 아버지다’하고선,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면 아버지가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이 아이가 정신이 똑똑한 아이인가? 정신이 조금 나가지 않았나?’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왔으면 사진은 치우고 진짜 아버지를 영접해야 하겠는데, 아버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사진보고 아버지라 하면 얼마나 아버지가 섭섭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아버지가 상당히 걱정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이 된 증거
신약시대에는 구약에서의 그림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 받는 일, 유월절 지키는 일, 장막절에, 초막절에, 속죄일, 오순절에, 사순절 모두 구약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체로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지키는 것도 토요일에 지키는 것은 구약대로 하는 것입니다.
토요일 안식은 그림자이고, 실체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입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성령 강림한 날입니다.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하셔서 안식을 주셨습니다.
오순절 날은 성령 강림한 날이고, 주일입니다. 오순절 날은 유월절부터 오십일 째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날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셨다가 유월절 다음날 부활 하셨습니다. 그 날이 주일날인데 그날부터 49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7일이 7번인 49일째, 일곱째 번 주일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유월절 날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유월절 전날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왜 맞는가 하면, 예수님을 장사해놓고 이 날이 예비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유월절을 예비하는 날입니다. 또 재판 받으실 때, 그 유대 사람들이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을 잘 지키려고 재판석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날이 유월절 전날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야 유월절 다음날 살아나신 것이 되고, 그날 살아나셨어야 오순절 날이 주일날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했습니다. 주일날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주의 날’에 계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주일날에 성부께서는 계시를 주신 날이고, 성자께서는 부활하신 날이고, 성령께서는 오순절 강림하신 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날에 복 주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7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다른 날로 변경한다고 했습니다. 4절부터 칠일 안식일에 대해 말했는데 ‘다윗의 글에 어느 날을 정하사’라고 했습니다. 칠일 안식일이 아니고 다른 날을 정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구약시대 안식일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날을 정해서 안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폐하고 다른 날을 안식일로 정했습니다. 사도시대에도 주일날을 지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주일날 예배드릴 때에 연보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사도바울이 다음날 떠나려고 밤새도록 강론했는데, 유두고가 걸쳐 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었을 때에 살려 놓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고 연보하고 확정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4장에는 ‘토요일에 지켜야 된다’, ‘주일날 지켜야 된다’는 변론이 생겼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갑자기 변경이 되니까 ‘제 칠일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파가 생겼고 ‘이제는 주일날 지켜야 된다. 부활한 날을 지켜야 된다’하는 파가 생겼습니다. “이거냐? 저거냐? 토요일을 지켜야 되느냐? 주일날을 지켜야 되느냐?” 이렇게 얼떨떨해가지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렇게 하면 믿음이 안 됩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확정이 안 되어서 돌아가는 사람은 믿음이 잘 안
됩니다. 의심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파선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확정하라”고 했습니다. ‘혹은 이날이 저 날 보다 낫다. 저 날이 이날 보다 낫다고 하지만 어느 것이 하나님 뜻인지 확정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으니까 확정하라는 것입니다. 확정해야 믿음이 되지, ‘이것이 옳은가? 저게 옳은가?’하고 나가면 믿음이 아닙니다. 파선합니다. 배가 깨집니다. 의심하는 자는 파선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다 물결이 요동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언제나 진리에 대한 확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옳은가, 저게 옳은가, 얼떨떨해서 돌아가면 믿음이 안 됩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확정을 해야 합니다. 가다가 보니까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확정하고 나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데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가다가 저것이 옳다고 하니까,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얼떨떨해서 돌아가면, 바다 물결이 요동함 같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옳은 것이 있으면, 이것이 옳다고 확정하고 나가야 됩니다. 주일날 지키는 것을 확정하고 나가야만 된다고 했습니다.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라
안식일 지키는 것이 날짜는 주일로 변경이 되었지만, 지키는 정신 만은 구약 시대 안식일 지키는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제 4계명 지키는 그 정신으로 주일날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날 어떻게 지키라고 했습니까? 남종이나 여종이나 일하게 하지 말고, 아들 딸 모두 일하게 하지 말고, 문 안에 거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고, 짐승도 일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일시키는 것은 제 4계명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자기도 일하면 안 됩니다.
주일날 결혼식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쥐새끼처럼 뒤로 살살 빠져가지고 결혼식에 가는 사람 있는데, 예배당 살짝 나왔다가 뒤로 빠져가지고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빠져나갑니다. “왜 빠져나가나?”하고 물어보니까, 결혼식 가느라고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쥐새끼 교인입니다. 살살 빠지는 교인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것인데, 예배 시간 빠지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죄 짓는 것입니까?
어떤 집사가 하나 있었는데, 주일날 예배당 왔다 가면서 시장에 나가서 이거 저것 많이 샀다고 합니다. 사놓고선 치마 아래에 감추면서, 목사님이 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치마 아래 감추었다고 합니다. 목사가 따라 다니면서 그것이나 보겠습니까? 목사님은 보지 않지만, 하나님은 다 보십니다. 치마 아래 하나님께서 못 보시지 않습니다. 왜 주일날 시장에 갑니까? 주일날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때에 주일날 지키지 않아서 포로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주일에 장사꾼이 들어와도 사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사고파는 것 안 됩니다. 계명인데 계명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 아닙니까? 말씀 어기는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말씀 가운데십계명이 강령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죄를 아는 것은 계명을 보고 알게 됩니다. 계명을 어겼으면 죄이고, 계명을 순종하다가 부족했어도 죄입니다. 계명을 어기고서 죄가 아니라고 말하면 죄가 아니겠습니까? 양잿물 먹고 괜찮다 하면 괜찮습니까? 양잿물 먹었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고 먹었어도 죽는 것입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남에게 미혹을 받아서 먹었어도 양잿물 먹었으면 죽는 것입니다. 하여간 죄 값은 사망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켜야 됩니다. 4계명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4계명이고, 엿새 동안 일하는 것도 4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안식일은 쉬라고 했습니다. 안식일 날 쉬는 것도 4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일 안하는 것은 4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않고 거저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취직하려고 했는데, 기도해 보니까 하나님께서 취직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뭘 할라고 하시더냐?”라고 물으니까 전도하라고 했답니다. 그런 식으로 먹을 것이 없는데 취직도 안하고 ‘전도하러 다닌다’고 하는 그것은 예수의 멍에를 멘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려고 한다면 일하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 안하고 전도하려면 전문적으로 전도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부인으로 취직을 해가지고 교회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전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활비 받으면서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생활비도 안 받으면서도 전도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이 사람에게 손 벌리고 저 사람에게 손 벌리고 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멍에를 메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 멍에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 멍에 메지 않으면 쇠 멍에가 와서 쫄딱 망합니다. 일해서 먹어야 됩니다.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전문적으로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교역자들 놀고먹으면 안 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해야 합니다.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하고 주일날은 쉬고 그 얼마나 좋습니까? 주일날은 하루 종일이 하나님의 날이고, 이날은 사사로운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사사로운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주일날부터 바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일날 시장하여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했는데, 바리새인들이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따졌습니다. 주일에 일을 하면 안 되지만, 주일날 음식은 해먹어도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생명에 관계되는 일, 생명을 살려야 되는 일에는 진설병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불을 피우든지 청소하는 것은 율법의 규례를 어겨도 죄가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때문에 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십니다. 안식일 날 자비를 베풀거나 사람을 살리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안식을 주장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안식을 주십니다.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으로 가야 참된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주장 하시고, 안식일을 주시고,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을 받는 날입니다. 안식을 받아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 날은 기쁜 날 즐거운 날이고, 존귀한 날입니다. 거룩한 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받는 날입니다. 그 다음은 자비를 베푸는 날입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 들어가고 기쁘고 즐거움을 얻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날이 되어야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를 많이 받고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날, 선을 행하는 날 이것이 안식일의 알맹이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내적 알맹이는 그날에 안식을 받는 것입니다. 안식을 받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에게 받아야 하는데,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일날 예수께로 나가 안식을 받고 안식세계에 참여하고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기쁘고 즐거움을 얻어야 합니다.
그날 하나님의 자비의 세계에 참여해야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나눠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알맹이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알맹이는 다 집어 치우고 껍데기만 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날 일하면 안 된다’는 이것만 주장했습니다. 우리도 ‘주일날 일하면 안 된다’는 이것만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일해도 괜찮다’ 하는 것은 더 악한 일입니다. 주일에 일을 안 해야 되는데, 일 안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일 안하는 그것은 껍데기이고 알맹이는 그리스도이신 주인한테 가서 안식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안식 세계에 참여하는 것, 그날에 말씀의 생명을 받는 것,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비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 자기도 살아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의 알맹입니다.
아침에 일찍 1부 예배드리고 그 다음에는 일하러 간다고 합니다. 주일을 하루 종일 지켜야 되겠는데, 오전 7시까지 지키면 3분의 1도 못 지킨 것입니다. 껍데기만도 3분의 1밖에 못 지킨 것입니다. 다 지켜야 됩니다. 하루 종일, 24시간이 하나님의 날입니다. 자기 날이 아닙니다. 지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안식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주일날 교회 나와서 싸우고 다투고, 빚쟁이 만나면 돈 달라고 따라다니고, 요즘은 안식일 다 파괴시켰습니다. 주일날 교회 나가서, 돈 빌려준 사람 만나면 돈 달라고 합니다. 빚진 것이 있는데 돈 달라고 하니까 주일날 교회 가려면 끔찍하다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갚으면 좋겠는데, 돈이 없으니까, 사업이 안 되어서 돈이 없으니까 주일날 교회 안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돈 얼마가지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돈 빚진 것을 참견하려면 다른 날 하지 왜 주일날 합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집인데,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서 그 사람 교회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빚졌는지 물어보니까 그 사람이 미국에 있는 사람인데 삼백 불 빚졌다고 합니다. 얼마 안 되는 돈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탕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절반 주고 탕감해달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갚을 수가 없다. 없는 걸 어떻게 하나?”하고 탕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아마 탕감 받았을 것입니다. 요새 교회 잘 나갈 것입니다.
2.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 (9-23)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라
본문 9-13절에,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 좋은 것입니다.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나왔는데, 병자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으로 송사하려고 바리새인들이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것이 옳다’ 하시고 그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 심방하는 것 좋은 것입니다.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 죽은 사람 살리는 것, 소경 눈뜨게 하고, 앉은뱅이 일으켜 세우고, 이러한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은 안 됩니다. 구경 다니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것이 옳다’ 하시고 그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 심방하는 것 좋은 것입니다.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 죽은 사람 살리는 것, 소경 눈뜨게 하고, 앉은뱅이 일으켜 세우고, 이러한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은 안 됩니다. 구경 다니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은닉(隱匿) 사상
본문 14-16절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이려고 서로 의논을 하는 것을 예수께서 아시고 떠나실 때에, 사람들이 많이 좇았고 예수님께서는 저희들의 병을 많이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하지 말라는 경계인데, 이것은 전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역을 완성한 다음에 전파하려시고 당시는 나타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17-21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구원 운동은 떠들썩하고, 다투며 드러내고, 혁명적이고, 때려 부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하고 은밀하게 말씀을 전파해서, 그 음성으로 말씀을 따라오게 해서 하는 일입니다.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들썩하고
굉장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하게 세미한 음성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그것을 듣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것도 사랑하시고, 꺼져가는 심지 같이 깜빡깜빡해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가만히 내어두십니다. 문둥이 절름발이 소경, 거의 죽어가는 것, 다 가만히 나두시고 영접해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언제까지 놔두고 보호해주시겠습니까? 내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장이 옵니다. 심판 때 까지 입니다. 심판 때에는 심판하십니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사랑하고 보호해주십니다. 촛불 같은 것도 사랑하시고, 거의 죽어가는 것도 사랑하시고, 영접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3. 바리새인들의 훼방을 책망함 (24-37)
성령훼방 죄
본문 31-32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심판 날에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령훼방 죄는, 어떠한 것이 성령의 역사인줄 알고도 중심으로 반대하기를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 성령훼방 죄입니다. 이 죄는 중생하지 못한 죄인들이 짓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성령이 역사하는 줄을 알기 때문에, 성령에게 반대를 하지 못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성령훼방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훼방 죄는 중심으로 반대하되 죽을 때까지 반대하는 죄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회개만 하면 사함 받게 됩니다.
말한 대로 심판하심
본문 33-35절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무에 악한 열매가 맺히면 속에 악한 것이 있는 것이고, 선한 열매가 맺히면 속에 선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악이 나오면 속에 악이 있는걸 알 수 있고, 겉으로 선이 나오면 속에 선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본문 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말한 대로’하나님께서 심판 하십니다. 선한 말을 했으면 하나님의 선한 심판이 있고, 악한 말을 했으면 하나님의 악한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악한 말, 즉 남 욕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은 남에게 나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남을 욕하고 저주하고 정죄하고 악평하고 비방하고 훼방하는 말, 전부 하나님의 심판대에 가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한 악한 말을 하면 마음이 악해집니다. 선한 말을 하면 자기 마음도 선해지게 됩니다. 늘 선하게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믿는 것과, 그 구속으로 인해서 살아 나는 역사가 있는 것이 기본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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