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일요일

누가복음 13:10-30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10-30

10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
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8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22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1. 안식일에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십팔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10-11절에,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꼬부라져서 다니는 이 사람은 귀신 들려서 이렇게 병이 생겼고 18년 동안을 꼬부라져서 다니는 여자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따로 있고 또 그 생리적으로 병 생긴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생리적으로 꼬부랑 곱새등이 있고, 귀신들려서 꼬
부라져서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여자는 귀신들려서 18년 동안을 꼬부라져서 다닌 것입니다.

본문 12-13절에,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셨습니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8년 동안 귀신들려서 꼬부라져서 다니는 것이 즉시 나았습니다.

본문 14절에,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라고 했습니다. 회당장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분을 내면서 안식일에 병 고침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하시며, 외양간에서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서 이끌고 나가서 풀과 물을 안식일에도 먹인다고 했습니다. 본문16절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소나 나귀도 외양간에서 풀어서 내다가 물이나 꼴을 먹이는데, 하물며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하십니다.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붙들려서 고생하는 이 여자를 그 마귀에서 풀어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소나 나귀도 안식일에 풀어주는데, 이 아브라함의 딸을 풀어주는 게 옳지 않느냐? ‘아브라함의 딸’이라는 것은 믿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믿는 여자, 아브라함은 신앙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여자를 풀어내서 마귀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7-18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습니다. 순리대로 했으니까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식일에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 기도해서 고쳐주는 것이 합당합니다. 바리새교인들은 율법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지만, 병 고쳐주는 건 합당하다 그 말입니다. 요새도 주일날 마귀에게 들린 사람 기도해서 그 마귀 나가게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하면 안 됩니다. 주일날 세상일 하면 안 되고, 또 개인병원을 하는 사람들은 주일날 문 닫고 교회에 나가야 됩니다. 그러나 그런 부득이한 환자가 오는 경우에 고쳐줄 수 있습니다. 주일날 안 고치면 안 될 만한 그런 급성환자, 부득이한 환자는 주일날 병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주일날 다 일 안하고 다른 날에 고치는 것이 합당합니다. 주일날 생명을 살리는 일, 구제하는 일, 전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일, 돈 벌려고 하는 일, 그건 다 옳지 않습니다. 그런 건 안해야 되겠습니다.

2. 처음에는 작은 겨자씨 같지만 나중에는 점점 커지는 복음운동 

본문 18-19절에,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씨 가운데 작은 씨인데 좁쌀보다 작은 것입니다. 좁쌀 다 아시지요? 좁쌀보담 작은 겨자씨입니다. 깨보다도 더 작은 것입니다. 그런 겨자씨, 지극히 작은 씨지만 갖다가 심으면 거기서 겨자나무가 나와서 상당히 커지는 모양입니다. 사람 한 길 더 되는 모양입니다. 사람 한 길, 혹은 두 길, 이렇게 커져서 나무가 되는 모양입니다. 공중의 새가 거기 가서 깃들일 만큼 되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지극히 작게 시작이 되지만, 그저 얼마 안 있으면 큰 나무와 같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미미하고 지극히 작단 말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보면, 점점 커져서 큰 나무와 같은 큰 세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운동이 이렇게 흥할 것을 가르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처음에 한 사람이 예수님 믿고, 또 두 사람이 되고, 또 세 사람이 예수님 믿으며 시작하는데, 처음엔 지극히 작지만 여러 해 지나는 동안에 큰 교회가 되고 또 여러 교회가 됩니다. 그렇게 이 복음 운동이 이와 같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지극히 작은 숫자로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몇 십 년 지나면 큰 교회들이 다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시기 때문에 복음운동이 커집니다. 명륜 교회도 처음에 적은 건물 얻어서 몇 명이 시작했습니다. 일곱 명인가 몇 명이 시작을 했는데, 그 다음에 점점 하나님께서 크게 만들어주셔서 오늘날에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옆의 집들을 다 사서 예배당 다 지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지만, 복음 운동은 점점 커져서 큰 세력을 얻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이 아주 큰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은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제가 있던 평양에서 신학교 다니던 동창생들 좀 있는데, 여기 나와서 장사한 사람들이 다 실패했습니다. 능수능란한 사람들 많이 있었는데, 세상 사업하느라고 돈 좀 벌었다 했지만 결국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맡아서 봉사한 사람들은, 다 잘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모든 그 직업 가운데 복음 전도하는 직업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의사는 육신을 살리고 복음은 영혼을 살려나가는 일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사업은 복음 전도하는 사업입니다. 교역자와 둘째는 학교 교사, 사람들을 가르쳐서 바로 길러나가는 것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 복음 전도하는 것이 이와 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세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 세우는 것이 처음에는 예배당도 없고, 대지도 없고, 남의 집 얻어서 하고 그렇지만, 얼마 후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배당 다 짓게 만들어주시고, 큰 교회가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창광교회도 처음에 시작할 때 한서고등공민학교를 얻어서 시작을 했습니다. 양영원 집사네 마당에서도 시작을 했고, 거기서 몇 주간 보다가 한서고등공민학교를 얻어서 몇 달 예배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집들 다 있는데 있는 빈터 가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기준씨가 복덕방을 했는데 땅을 알아봤습니다. 알아보니까 150평인데 한 평에 2만원 씩 달라고 했습니다. 사라고 그랬습니다. 무조건 계약을 하라고 했습니다. 150평 2만원씩 이니까 300만원 입니다. 그때 300만원은 상당히 큰 돈 입니다. 사실 돈이 없는 때인데, 믿사오니 하고 계약을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 집 주인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사방으로 조사해 알았는데, 북아현동 어디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아현동에 가서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곤 이제는 기도하라고, 돈 없는데 기도해야지 어떡하겠냐구 했습니다. 그래서 온 교인들이 기도하는데, 그것으로 300만원 다 물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당 다 짓게 만들어주시고, 그 다음에는 그 땅이 좁아서 그 담엔 더 질 수 없었습니다. 150평이니 얼마 하겠습니까. 김주순 집사 있을 때인데 그 옆의 집을 좀 사라고 했습니다. 150평이면 지금 예배당의 한 절반도 안 됩니다. 지금 한 600평 넘고 그게 150평이니까, 4분의 1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그 옆의 집을 사라고 했습니다. 하여간 그때는 밥 먹고 그거 사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집들 많이 있었는데, 판자 집들 또 하나 팔겠다고 나오면 무조건 다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거리 한 편에 벽돌집 이층짜리는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무조건 비싸도 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은 이거 600여평, 이렇게 지금은 대지가 확보되고, 예배당 320평, 이제는 예배당 내면적이 320평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크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복음 전도하는 일을 이렇게 하나님이 크게 만들어주시는 것을 알고, 우리가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복음을 들고 산을 넘어 가고,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몸 바쳐서 일하고,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선교사 하나, 목사 하나 보내가지고 개척교회 시작하면 얼마 안가서 큰 교회가 또 됩니다. 부산에 이헌학 목사 보낸 지 십 년도 못 되었을 것 같은데, 당시 혼자 보냈습니다. 거기서 셋 집 하나 얻어주고, 교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 모여서 예배드렸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달에 가보니까 이제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인이 지금 거의 한 100명이 되고, 자동차도 사고, 지금 교인들이 아주 열심히 믿고, 교회를 큰 50평짜린가를 전세로 얻었습니다. 6000만원 인가를 주고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크십니까? 이헌학 목사 그 조그마한 사람이 어디 가서 교회할 것 같은지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갖다 놓으시니까 아주 크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또 김세빈 목사 미국 달라스에 갈 때에, 거기 교회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민 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가서 어떤 교인의 집에서 몇 달 동안 예배를 봤습니다. 아마 한 6개월 이상 봤을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어떤 집을 얻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예배당을 얻게 만들어주시고, 또 지금은 예배당 대지를 샀습니다. 이제 허가만 나오면 예배당을 지을 것입니다. 교인이 한 30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복음이 처음에는 지극히 작게 생각되지만, 얼마 안가면 큰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민 간 사람들이 우리 교단 교회를 세운 것은 다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단으로 나간 사람들은 전부 실패했습니다. 하나도 한 게 없습니다. 다 삼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불광동에 김정도 라는 집사가 있었는데, 열심히 여기서 잘 나왔는데 미국 가서 다른 교단으로 나갔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진리 다 잃어버리고, 또 우리는 그 교인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아들도 미국으로 갔었는데, 그 아들, 며느리, 딸 다 갔는데 다 어디 갔는지 없어졌습니다. 다 삼키어졌습니다. 우리 진리 다 없어지고, 또 교회도 다 없어지고, 창광교회가 속에서부터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몇 십 년 된 믿음이 다 없어졌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 진리를 세우려고 힘을 쓰고, 교회를 세우고, 그리곤 교인들도 찾아가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우리 교단 교회를 찾아가서 교회를 받들어도 큰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손도 잘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도 됩니다. 그런 몇 가지를 하면 교역자를 들여보내서 교회해도 됩니다. 그러면 성공이 되어서 큰 세력이 되고, 얼마 안 가면 큰 교회가 되게 됩니다. 우리 교단에서 세운 교회들이 다 얼마나 큰 교회들 많이 되었습니까? 뉴욕에 문영준 목사 갔는데 거기도 지금 한 80여 명, 거의 100명 되는 모양입니다. 얼마나 큰 교회가 되었습니까? 혼자 갔습니다. 정일만 목사가 Washington D.C.에 가서 최근 편지가 왔는데 교회 자리가 잡혔다고 합니다. 한 40여명 모인다고 합니다. 우리 진리가 전파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전에도 송완규 장로와, 이태희 목사 보냈는데, 거기도 교회가 지금 잘 되어나가고 있습니다. 또 김성갑 목사가 워싱턴 주 Fullman에 갔는데 거기도 교회가 되고 하니까 어디든지 이 참된 복음을 가지고 가서 교회를 세우면 얼마 안가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안가면 교회가 됩니다. 큰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안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 세우면 다 없어집니다. 자기가 우리 교단을 찾아가든지 그것도 안하면 거기다 우리 교단을 세우든지 해야지, 그 다음은 현실에 다 삼키어져가지고 얼마 안가면 다 맹숭맹숭 해가지구 여기 신앙 다 잃어 버리고, 영혼이 자라나던 것이 다 엉망진창 어그랑망창이 되어 버립니다. 자라나던 게 못 자라납니다. 교회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느니라.” 이것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새가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커진다 하는 뜻도 있고, 또 한 가지는 이런 것을 다 의지하고 살 사람이 많이 온다, 큰 세력이 되니까 의지하고 살 사람들이 많이 모여온다는 뜻이 됩니다. 또 하나는 새는 마귀를 가리키는데, 마귀가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커지면 마귀가 들어온다는 그런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3. 누룩의 두 가지 의미

본문 20-21절에,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누룩과 같다, 전부다 부풀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커진다’는 뜻의 해석도 있고, 또 한 가지는, ‘부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을 용납을 하면 부패하게 자란다는 뜻도 있습니다. ‘가루 서 말 속’은 진리를 가리키고, 진리에다 그 누룩적인 요소,
이단이나 의식주의나 인본주의를 갖다 넣으면 다 부패해진다는 그런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을 용납하면 안 됩니다. 누룩이 들어오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다 퍼져서 전부 다 썩게 됩니다.

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본문 22-24절에,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구원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좁은길 생명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생명이 삽니다. 여기는 문도 좁고 또 길은 어떻다고 그랬습니까? 길도 좁고 협착하다, 또 찾는 사람도 적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는 길은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의 길, 허랑방탕 하는 길은 넓고 가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나중엔 멸망입니다. 사망입니다.

예수님 믿는 길은 생명길인데, 이건 문이 좁고, 찾는 사람도 적고, 이건 길도 험하지만, 이것이 영생길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어도 성경대로 믿으려면 그것이 또한 좁은 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성경 양보하고 믿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면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이고, 험한 길이고,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으려는 생각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짐을 버려야 좁은 문으로 들어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모든 짐을 다 버려놓고 들어가야 합니다. 좁은 문을 들어가는데 여러 가지 짐을 지고 들어가려면 못 들어갑니다. 다 버려놓고 홑몸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홑몸으로 겨우 들어가는 문입니다. 뭘 달고 가려면 못 갑니다. 가족을 달고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가고, 또 물질을 달고 가려도 못 들어가고, 세상 직장을 달고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갑니다. 다 그건 전부다, 죄다 돌려 세워놓고, 오직 혼자서, 홑몸으로 들어가야 겨우 들어가는 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떠났습니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혼자 가는 길을 갔습니다. 그래야 갑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 그거 다 한꺼번에 붙잡고 가려면 좁은 문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또 아들 때문에 또 못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다음에 아들 독자를 하나님께서 바치면서까지 좁은 문으로 들어갔단 말입니다. 말씀을 순종해서 하나님이 더 좋은 아들 주셨고, 생명이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생명이 살아납니다. 말씀대로 믿는 길, 말씀을 따라가는 길, 생명 길 걷는 일 이게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은 본토나 친척이나 아비 집 다 떼어놓고 혼자서 말씀만 따라가야만 가는 길입니다. 세상 것 다 가지고 가려면 절대 못 갑니다. 그렇게 하면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죽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못 들어가면 이젠 심령의 역사가 다 죽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다 떠나고 맙니다. 그러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언제나 힘쓰라는 것입니다.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 가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생명길 걸으려고 하는 사람 많습니다. 누구나 성경적으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 하는 게 아닙니다. 좁은 문이기 때문에 다 떼어놓지 않고는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 못 들어가요? 떼어 놓지 않고 다 가지고 들어가려니까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 떼어놓고, 생명까지 바쳐놓고 혼자서 이 생명길, 말씀만 따라가는 길, 이것을 걸으려고 애써야만, 달음박질 해야만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고 좁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천하를 다 얻어도 자신의 생명길을 걷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야 생명이 삽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랬습니다. 천하를 다 얻어도 자기 생명의 길 걷지 못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천하에 있는 것 다 자기 것이라도, 자기 영적 생명이 살아나가는 길, 이 진리를 세워나가는 길, 말씀을 따라가는 길, 이 길을 걷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완전 실패입니다. 완전 실패. 순전히 마귀에서 속아서 완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천하의 영광을 다 보이면서 한 번 절하면 다 네게 준다고 그랬는데, 천하의 영광을 다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천하의 재산을 다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재산 다 있어도, 하루 밥 세끼 먹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밤에 잘 때는 몇 자면 된다고 그랬습니까? 여덟 자면 잠자는데 충분합니다.
자기의 생명이 사는 길을 걷지 못하면 다 어리석은 자요, 자기를 잃어버리는 자요, 빼앗긴 자요, 완전 실패한 자가 되고 맙니다. 자기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손까지 실패합니다. 다 떼어놓고 말씀만 따라갈 때에는 자기도 살고 자손도 살리고 생명이 사는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한마디라도 우리가 더 배우려 하고, 한 발씩이라도 자기가 만들어져서 실행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을 써서 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가고, 더 걸어가고, 환난과 핍박이 많아도 좁은 문을 가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려면 환난과 핍박이 많습니다. 이것이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다 영광의 재료가 됩니다.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심판대 앞에 가서 빛나는 것이고, 영원히 자기를 만들어서 가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행한 것,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만이 하늘나라에서 유효하다 문을 닫아놓았더니 사람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여 주여 열어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알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본문 25-27절에,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고천 기도원에서 가르치셨고, 교회에서 가르쳐주었고, 기도원에서 가르쳐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떠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길거리에서,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많이 배웠다고 해도 성경으로 행한 것이 아니면 바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행하지 못한 자들아, 너희가 나를 암만 따라다니고 배워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러시는 것입니다. 교회 많이 다니기만 한다고 해서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행했느냐? 성경대로 행하지 못한 건 행하는 자가 아니다. 나도 너를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네가 성경을 부인했으니까 나도 너를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인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는 말씀대로 행한 것, 하나님의 것만 남아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인정을 못 합니다. 하늘나라에선 인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 하나님으로 만들어 진 것만이 하늘나라에서 남아있습니다.

본문 28절에,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아주 쫓겨나서 슬피 울고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 자기 조상들 하던 대로 자기가 말씀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배우고, 믿고, 행하는 것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삶

본문 29-30절에,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믿은 사람도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말씀대로 믿으면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자꾸 배우고 그 말씀대로 그것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또 배우고 또 믿고, 또 행하고 또 배우고, 또 믿고 또 행하고, 또 배우고 좀 더 배우고, 그대로 믿고 행하고, 또 좀 더 배우고, 그 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고 만들어 지면, 이 믿음이 쑥 올라갑니다. 계속, 계속 올라갑니다.

먼저 된 사람이라도 성경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그건 점점 내려갑니다. 점점 더 속아서 세상에 빠져 들어갑니다. 말씀대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믿었다고 뽐낼 것이 없습니다. “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믿었다, 몇 십 년 믿었다” 뽐낼 것 없습니다. 말씀대로 행했느냐, 안 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요새 자기가 선배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선배들을 보면 후배들을 이기겠다고 선배를 내세우고 후배들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선배라고 해서 우월감을 가지고 나가는 그런 일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선배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학교, 연령, 예수 믿는 것으론 먼저 믿는 것이 선배고 하는데, 뭐 하나 가지고 다 선배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자기보다 믿음이 난 사람이 또 선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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