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일요일

누가복음 13:31-35 이스라엘 멸망을 애통해 하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 멸망을 애통해 하심
누가복음 13:31-35

31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5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헤롯

어떤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본문 31절,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 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이 와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예수님 보고 “여기를 떠나소서”라고 했습니다. 왜 떠나라고 그랬습니까?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까 여기를 떠나서 딴 곳으로 피난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 있다가는 죽을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32-33절에,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래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우’가 누구입니까? ‘여우에게 말하기를’에서 헤롯 왕을 여우라고 했습니다. 헤롯 왕이 여우와 같이 간교하고, 물고 찢고 잡아 죽이려고 하니까 여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여우와 같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우는 뭘 먹고 삽니까? 시체, 송장을 먹고, 간교하고, 변덕이 많습니다. 간교한 게 여우입니다. 남을 잡아 죽이고 잡아먹으려고 하는 자가 여우와 같은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핍박하는 것, 기독교를 핍박하고, 기독교 박멸주의를 쓰는 자는 다 여우와 같이 악한 자입니다.

언제나 복음에 손해를 주는 자, 또한 하나님의 일에 방해 놓는 자들, 핍박하는 자들은 다 여우와 같은 자들입니다. 악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서 뭐라고 말하라 그랬습니까? “오늘이나 내일이나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 완전하리라”라고 말하라고 하셨는데, 오늘이나 내일 뭘 한다고 그랬습니까? 오늘은 일하는 오늘이고, 내일은 십자가 지는 내일입니다. 제3일에 부활입니다. 오늘은 일하는 날이고, 내일은 십자가 지는 날이고, 제3일은 부활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오늘이나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곤 제3일에 다시 부활 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1:4-5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난다”라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걸 거론했는데, 세례 요한에게 가서 이것을 전라고 그랬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열두 제자에게 병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약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권능,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7-8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가서 이거 하라는 것입니다. 뭘 하라고 했습니까? ‘천국이 가까웠다’는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또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또한 귀신을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할 일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다 주의
명령을 받아서 이렇게 가는 데마다 귀신을 쫓아내고, 마귀 들린 사람을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또한 병든 자를 고쳐야 하는데, 모든 병이 다 귀신 때문에 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병든 자를 고친 것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병이 다 귀신 때문에 낫다고 하면 귀신 쫓아내는 것 하나만 하면 다 되겠는데, 그게 아니고 귀신 쫓아내는 일도 하고, 병든 자 고치는 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 살리는 일도 하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는 등 여러 가지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할 일은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귀신 쫓아내는 일, 심령의 병 고치는 일, 죽은 자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영혼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문둥이와 같이 죄로 인해서 썩어져 들어가는 것을 건져내는 일을 믿는 사람이 해야 됩니다. 이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거고, 또 믿는 사람에게도 그런 권능을 주셔서 일을 시키셨으니까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마귀를 이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건져내는 일,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건지는 것도 마귀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귀신의 미혹,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들을 건져내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할 일은 이것입니다. 병 낫게 하는 일, 심령의 병든 사람 고치는 일, 전도하고 심방하면서 심령의 병든 사람 고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들의 심령의 병을 고쳐줘야 됩니다. 의사는 육신의 병을 고칠 수는 있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심령의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는 심령의 병은 못 고칩니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영적인 병은 못 고칩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 복음을 가지고 가야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전도하고 와야 합니다. 의사는 내 육신의 병을 고쳐주려고 하지만 나는 의사의 병을 고쳐주고 와야 합니다. 병원에 갔다 그냥 오지 말고 전도하고 와야 됩니다. 그렇게 서로 고쳐줘야지 안하면 그 사람을 누가 고쳐주겠습니까. 육신의 병 고치는 것만 알고 심령의 병은 못 고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헤롯이 아무리 잡아 죽이려고 해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 할 일을 하기 전에는 예수님을 못 죽인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려 두었느냐, 귀신을 쫓아내고 병 낫게 하는 일 때문에 살려 놓으셨습니다. 우리 살려 놓은 것도 이 심령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점점 물리치는 이런 일을 위해서 살려 놓으셨습니다. “제 삼일에 완전하여 지리라”고 하셨는데, 이다음에 완전해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르라

본문 33절에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하셨는데,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갈 길을 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오늘은 귀신 쫓아내는 일을 하는 날이고, 또 내일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일을 하시고, 모래는 부활하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주께서 그 갈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이 예수님의 갈 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실 길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일, 주를 위해서 죽는 일, 희생당하는 일, 영광의 부활에 참예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는데,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 죽음의 장소가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떠나지 말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 됩니다. 아무데서나 죽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을 전한다고 했는데, 복음전하는 일이 시작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 장소가 중요합니다. 제 마음대로 훌쩍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말라’고 한 장소는 안 떠나야 합니다. 떠나면 안 됩니다. 떠나지 말라고 하실 때에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건 안 됩니다. 떠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셔야 됩니다. 목숨 살겠다고 떠나면 하나님의 일이 전부 낭패가 됩니다. 헤롯이 죽이려 한다고 해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죽어도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죽어도 예루살렘에서 죽는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죽어도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되고, 죽어도 죽을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왜정 말단에 신사참배의 바람이 들어 올 때에, ‘내가 죽어도 평양 가서 죽어야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그때 평양이 한국에서 제일 기독교가 부흥된 곳입니다. 평양이 당시 교회가 부흥 된 때여서 ‘죽어도 평양 가서 죽어야 된다’고 그러면서 평양으로 갔다고 합니다. 가서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된다는 생각이 중요한데, 토마스 목사도 복음을 가지고 평양 대동강에 와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죽는장소가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선지자가 다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복음이 온 땅에 다 퍼지고 모든 사람이 다 그 복음을 믿게 됩니다.

4. 우리도 예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함

본문 34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탄식을 하셨고,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아래 모으려 한 것처럼 그렇게 예루살렘 백성들을 모으려 한 것이 여러 번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품으로 모아들이려고 한 것이 여러 번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어
떻게 했습니까? 원치 않았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습니까? 날개아래 품습니다. 병아리들 다 나가 돌아다니다가 독수리가 오면 자기 어미의 날개 속으로 다 들어갑니다. 쑥 쑥 들어갑니다. 독수리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다가도 쏙 어미들 품속으로 그 날개 안으로 다 들어갔기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병아리 훈련시켰습니까? 병아리가 어떻게 알고 들어갔을까요? 자기 어미 닭 날개 아래 들어가면 독수리가 못 먹을지 어떻게 알고 들어갔겠습니까? 그것은 무슨 훈련시킨 것도 아니고 강습도 안 시켰고, 독수리라는 것도 배워준 것도 없고, 날개 아래 가면 산다는 것도 배워주지도 않았는데, 쏙 쏙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배우지 않았어도 본능적으로 다 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날개 아래로 예수님의 품속으로 들어가야 삽니다. 독수리 같은 마귀가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언제나 예수님의 품속에 쏙 달려 들어가면 마귀가 잡아 먹지 못합니다. 우리를 손대지 못합니다. 암탉이 자기가 위급해지면 병아리를 내버리고 달아납니까? 자기 품속에 다 들어 왔는데 자기가 위험하면 내버리고 달아나겠습니까? 안 달아납니다. 자기가 독수리한테 핍박을 받아도 병아리를 보호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보니까 산에 불이 붙었는데 닭이 하나 타져 있더랍니다. 암탉이 하나 타져서 죽었기에 발로 툭 차보니까 병아리가 뺑글 뺑글 하면서 그 안에서 여러 마리가 나오더랍니다. 그 암탉이 산에 불이 붙으니까 병아리들이 자기 속으로 들어온 모양이입니다. 품속으로 들어왔으니 자기 몸이 타져도 병아리를 놓지 않고 그냥 꼭 품고 그저 타져 죽도록 병아리를 보호했던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어미 닭도 새끼를 보호 하는데, 예수님께서 품속에 들어온 성도를 보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든 위험하면, 독수리가 오면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예수님 품속으로 달려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주여!” 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달려 들어가면 독수리가 거기는 못 들어옵니다.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것을 원했습니까? 예수께서 여러 번 품으려고 했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이 원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몇 번이나 했지만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품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으니까, 이젠 독수리가 올 수 밖에 없잖습니까? 예수님 품속에 품어 주려고 몇 번이나 했지만, 몇 번이나 불러주고, 보호해 주려고 하고, 오라고 하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라고 하고, 세상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고, 생명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안 들어오고 거역해 나가니까, 이제 어떻게 되겠습니까?

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본문 35절에,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 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역해 나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너희 집이 황폐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거역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부를 때에 대답하고 와야 되고 순종을 해야 됩니다. 순종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야 되고, 말씀을 순종해야 됩니다. 이것을 거역하고 그냥 나가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심판 밖에 남을 것이 없습니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터만 남으리라’, 이제 황폐해져서 터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가는 세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새 ‘평안하다, 안전하다’하고 나가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갑자기 옵니다. 해산의 고통이 갑자기 온다고 그랬습니다.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고통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멸망이 홀연히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그랬습니다. 언제 심판이 올지 모릅니다.

세계가 지금 서로 분쟁하고 있습니다. 각처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또 작은 나라들이 핵무기 만드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핵무기를 큰 나라 몇 나라만 가지고 있었는데, 몇 십 년 가는 동안에 다 배웠고, 이제는 다 배워서 작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몇 년 내로 핵무기를 많이 만들게 되어있습니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원자탄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막으려고 지금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쓰는 것입니다. 갑자기 핵무기를 쓰면 막을 수 없습니다. 요격 미사일,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지금 만들고 있지만 그것도 핵무기 미사일을 쏘면 모두 핵을 쏘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쏴서 망하는 데에 7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7분 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핵이 떨어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저기서 핵무기를 쏜다고 하면, 여기선 핵이 도착하기 전에 알아서 다시 마주 쏴서 떨어지는데 7분이 걸린다니까, 도망갈 준비 하려 하면 툭 떨어지고 끝나는 거라는 것입니다.

언제 도망갈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 같습니다. 이런 원자탄 심판이 올 수도 있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진 같은 심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가 지진으로 다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본을 거쳐서 뉴질랜드를 갔다 오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고야를 통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왜 동경을 안 거치냐고 하니까 동경은 지진이 위험해서 비행기 갈아타는 사이에 지진나면 죽을까봐 나고야에 가서 갈아타고 간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공기 가운데 오존층에 구멍이 났다는데, 북쪽에도 남극에도 구멍이 나려한다는데 얼마 안 있으면 구멍이 생긴다고 합니다. 오존층 구멍이 나는 날에는 사람이 다 태양광에 쬐여 죽는다고 합니다. 태양광을 막아주는 오존층에 구멍이 나면 다 사람이 다 죽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이 하늘에서 유황불, 초자연적인 유황불이 내려와서 멸망시킬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된 이와 같은 시대인데, 그저 우리는 믿는 일 잘하는 것밖엔 남을 것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피난처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들어가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지 다른데 무슨 피난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몇 번이나 너희를 모으려 했지만 너희가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제 너희에게 남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 하리로다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모할 때 까지’, 사람들이 주님을 사모하게 될 때까지는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불순종하다가 심판 받아서 다 멸망하고 난 후에, 회개하고 주님을 사모할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불순종한 자들은 다 멸망하게 되고 세상이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 회개하고 주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야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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