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과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5:1-20
마태복음 15:1-20
1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15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1. 장로들의 유전
본문 1-2절에,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7:3-4에,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켰는데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런 것들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본문 3-6절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고(출 20:12),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라는 말씀이 있는데(출 21:17), 너희 바리새인들은 이 계명을 다 무시하고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11-13에,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고르반’ 사상입니다. ‘부모에게 바칠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는 사상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대접해야 되는데 하나님께 다 바치기만 하면 부모에게 공경할 것이 없다는 것이 고르반 사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고르반사상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훼방하는 자는 죽여라”라는 것인데, 바리새교인들의 고르반사상은,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부모에게 공경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르반사상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즉, 말씀을 폐했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
본문 7-9절에,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라고 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서 증거하였습니다.
이사야 29:13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이랬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가까이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때도 그것이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것입니다.
이사야 29:13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이랬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가까이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때도 그것이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잘 공경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어떻게 합니까?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고 무엇으로 가르칩니까? 사람의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의 교훈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신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그것은 진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입술로 아무리 ‘주여, 주여’ 해도, 입술로 공경하고 입으로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심이 하나님을 떠났는데, 입술로 와서 그저 ‘주여, 주여’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해야 됩니다. 진정으로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마음을 통해서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으로 하나님과 동행을 하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지, 입술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죄가 큰 죄입니다. 선지자서를 보면, 이사야 당시나 예레미야 당시나 호세아 때나 요엘이나, 다 보면,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큰 죄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했는데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떠난 것과,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 세상 우물을 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큰 죄입니다. 세상 우물을 파는 것이 죄입니다. 세상 의지하고 세상나라 의지하고 세상 따라가는 것이 음행한 죄입니다. 그것이 우상 섬기는 죄입니다. 하나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입술로만 섬기고 실제로는 세상 의지하고, 세상 방법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신령한 것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섬기는 것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났으니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하나님께 신령으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어야하고,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진리로, 말씀, 계명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공경해야 합니다. 계명을 떠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신령한 자리를 떠난 것도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껍데기만 가지고 하는 것은 껍데기 예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에 영적예배를 드려야하고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하고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말씀이 있느냐?’, ‘교회에서 가르치는데 말씀이 있느냐?’, ‘생명이 있는 말씀이 있느냐?’, ‘영적인 예배이냐?’, ‘의식적으로만 예배드리는 것은 아니냐?’, ‘영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적세계를 발견하느냐?’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야합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진정한 안식을 선물로 받아서 안식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안식을 받는 날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영적인 면을 다 떠났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교회가 영적 면에서 떠났습니까? 교회가 진리를 왜 떠났습니까? 진리 떠난 것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가니까 진리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면을 떠난 것은, 마음이 세상에 가 있기 때문에 떠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에 가고, 바벨론에 가고, 앗수르에 가고, 우상 섬기고, 행음하면서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말세에도 교회나 성도들이 이렇게 의식적으로 입술로 말로 하나님을 존경은 합니다. 예배도 드리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리가 있습니까? 계명 다 떠났는데 진리가 있겠습니까? 영적인 면을 다 떠나서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 줄 압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계명을 다 떠나서, 고르반 사상으로 나가고, 영적 면이 다 떠나고, 입으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외식하는 자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 ‘영으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말씀에서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영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살아나야 합니다.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뜨고, 약한 자가 살아나고, 썩어져가는 문둥병자 같은 것들이 다 나음을 얻고,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하는 것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 증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때만 그 일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일을 하십니다. 살아나야 합니다. 영이 살아나야 하고 죽은 심령이 살아나야 합니다. 병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이 나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예배드릴 때에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라
그리고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말씀을 떠나서 사람의 계명 사람의 교훈, 학설을 따라갑니다. 학설은 사람의 교훈입니다. 신신학자들의 학설, 철학적인 학설, 바르트주의 학설, 여러 가지 유전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압니다.
어떤 곳에 보니까 꽃주일, 어버이주일, 이래 가지고 주일에 꽃을 잔뜩 갖다놓고는 꽃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주일인데 무슨 꽃주일이란 말입니까? 꽃이 주인입니까? 주일을 다 잘라먹었습니다. 꽃이 주일을 잘라먹고, 어버이가 주일을 잘라먹고, 어린이가 주일을 잘라먹고, 뭐가 잘라먹고, 무슨 주일, 무슨 주일 이런 것은 사람의 명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지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꽃주일 안합니다. 성경에 어디 꽃주일이 있습니까? 또 어린이주일도 안 합니다. 늘 어린이를 잘 인도해야지 일 년에 한 번만 인도하는 것입니까? 어버이주일도 그렇습니다. 늘 어버이는 잘 공경해야지 그날만 어버이 주일입니까? 다음 주
가 어버이주간이라는데 잘라먹지 마십시오. 어버이주일 성경에 없습니다.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것, 이것 옳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런 사람의 계명 여러 가지를 만들어가지고 교회가 가지각색 것들을 해나가는데, 그 바람에 하나님 말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신령한 세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영적인 것을 가지고 하지 않고,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것을 가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사랑도 사람의 사랑입니다. 친목도 사람의 친목입니다. 교제도 사람의 교제로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교통이 되어야하겠는데, 하나님과의 교제는 떠났으니까 사람끼리 교제합니다. 인본주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이사야 때의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이렇게 타락이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때가 되었습니다. 왜정시대에는 신사 참배하느라고 제 2계명을 버리고 예수 믿었지만, 요새는 제 4계명을 버리고 예수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계명이나 4계명이나 같은 것입니다. 거창의 배추달씨가 주일날 하나 지키려다가 순교 당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주일날 헌신짝 내버리듯이 다 내버리고 주일에 찬양대 하고서는 음식점가고, 제직회하고서는 음식점에 가고 이런 것이 다 계명 내버린 것이 아닙니까? 주일에, 음식점에서 제직회하고, 찬양대 사다 먹이고, 학생들 사다 먹이고, 그런 것 안 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것, 다 계명 어기는 것 아닙니까? 사람의 교훈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실제로는 계명 다 범합니다.
또 어버이주일이라고 카네이션 꽃 달아드리고 뭐 많이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집에서 부모 공경합니까? 뒷방에 내버리고, 자기들끼리 수군수군하고, 꽃이나 달아주는 것이 부모 공경하는 것입니까? 어디 요새, 부모를 공경합니까? 이것 다,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모공경 하라고 했는데, 부모공경 안하면 죄입니다. 회개하고 부모공경 해야 합니다. 꽃주일에 해드리면 된다, 어버이주일에 해드리면 된다는 그런 것이 무슨 사상입니까? 그런 것이 ‘고르반사상’ 입니다. 다른데 가서는 ‘흥, 흥!’ 이러면서, 스승의 날에 선물하나 사다주면 되는 것입니까? 스승을 존경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야겠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말했지마는 우리는 이렇게 하자. 그것을 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래가지고 계명을 다 범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보리떡 그것 다, 부스러기 같은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것 가지고 일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리떡도 하나님께 바친 보리떡이어야 됩니다. 바친 보리떡 말입니다. 보리떡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쓰는데 어떤 보리떡이냐면, ‘바친 보리떡’을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릇에 담아서 끼고 다니는 그런 것은 안 쓰십니다. 인절미도 안 쓰시는데 보리떡은 뭐에다 쓰시겠습니까? 바친 것, 바친 보리떡을 쓰십니다.
그래서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바친 그 보리떡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십니다. 안 바친 것은 안 쓰십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고 영적인 문제, 영적인 면이 다 떠났고 이런 것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바로 하는 운동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운동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운동과 영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운동 입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
본문 10-11절에,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먹는 것은 사람을 그다지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간입니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대단히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8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손 씻고 먹는 것 좋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 좋지 않습니까? 그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에 갔다가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건은 그것보다 몇 십 배, 몇 천배 유익이 있습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 육체의 위생, 육체의 건강법, 좋지 않은 것을 안 먹는 것, 그런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요즘 소고기 안 먹는다고 합니다. 광우병 걸릴까봐 안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먹어도 안 걸립니다. 없어서 못 먹습니다. 나보고 ‘안 걸릴 줄 어떻게 압니까?’ 물어보면, 마가복음 16장에서 안다고 했습니다. 또 사료 나쁜 것을 먹인 동물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또 구제역 있어서 돼지고기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돼지고기 먹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왜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먹습니까?
마가복음 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시는데,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뱀을 집어도 뱀이 물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믿음을 지키면서 해나가는 것은 손해가 없습니다. 그래도 위생 지키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위생 지키는 것이 좋은데, 위생을 너무 지나치게 하면 그것도 우상이 됩니다. 어떤 이가 공기 중에 세균이 많다고, 손으로 코를 막고 다니다가 나중엔 지팡이를 뱅뱅 돌리며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세균이 안 들어가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예 심산유곡에 가서 밭에다가 감자 심어먹고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 얼마 못살고 가서 죽을 것입니다. 아니, 공기가 살려주고 물이 살려줍니까?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위생 지키는 것은 좋지만, 너무 지나치는 것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을 떠나는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육체의 연습 약간의 유익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생 지키는 것 좋습니다.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또 운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되는 줄 알면 오산 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독을 마셔도 해롭지 않게 해주시는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 것에 겁나서 지나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위생 지키고 그에 지나친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손 씻고, 발 씻고, 그릇 씻고 먹는 것도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에 비하면 천지차이 입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경건이 큰 줄은 알지 못하고 이런 위생 지키는 것, 장로들의 유전 이런 것들을 큰 줄로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
본문 12-14절에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라고 하십니다.
바리새교인들이 그 말을 듣고 걸림이 되었습니다. 자기네들의 유전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니까 걸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아버려라.”
“천부께서 심은 것만 둬두어라.”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도 없습니다. 천부께서 심은 것만 둬두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 넘어지게 하는 것들 그런 것은 다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다 거두어 내어서 불로 사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천국 운동에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아버지께서 뽑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심은 것만 하나님의 나라가 가서 남아 있습니다.
심지 않은 것은 무엇을 보고 압니까? 아버지께서 심은 것인지 아닌지 무엇을 보고 압니까? 성경보고 알지, 뭘 보고 알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은 전부 성경에 맞습니다.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성경에 다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심은 것입니다.
가라지는 마귀가 심은 것이라고 했는데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전부 마귀가 심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심은 것만 하늘나라에 남습니다. 성경에 맞는 것만 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된 것만 남습니다. 진리와 영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입니다. 이것들이 딱 맞아야 합니다. 딱 맞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운동이라고 해도,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교회운동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운동이라고 해도 영적인 면이 아닌 것은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 아닙니다. 제도적인 것, 인간적인 면, 명예 영광적인 면, 친목적인 면, 인간의 사랑, 인본주의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뽑아버립니다. 하늘나라에 상달이 못 됩니다. 성경에 딱 맞는 것만, 성령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만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존이 됩니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자기가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신령한 면이 없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떠났고 하나님을 떠났는데 소경 아닙니까? 말씀을 떠난 것은 소경입니다. 또 신령한 세계 잃어버리는 것은 소경입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 인도하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둘 다 두었다가는 둘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둘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은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니까, 둘 다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본문 15-20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는데,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생을 지키는 것이 물론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위생을 잘 못 지켰다고 해도, 웬만한 것은 다 배로 들어가서 뒤로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큰 손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어떤 것들입니까?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 이런 것들이 사람 마음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해독을 줍니까? 마음에서 나오는 그 악한 생각이 사람에게 얼마나 손해를 주고, 살인하는 것,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손해를 줍니까? 간음하는 것은 망하는
죄인데, 음란한 것도 간음죄의 일종이고, 도적질, 거짓증거, 사기, 횡령, 훼방,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하나님 나라운동에 손해주고,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큰 것이라는 것입니다. 속에서 나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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