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9일 토요일

마태복음 17:1-8 변화산의 교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변화산의 교훈
마태복음 17:1-8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2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1.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예수님

본문 1절에,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라고 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중요한 좋은 교훈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셨습니다. 본문에 ‘높은 산에 올라갔다’ 했는데,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 세 제자를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높은 산은 헤르몬산이라고 하는데 헤르몬산은 2850m나 되는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우리 백두산은 2744m인데 백두산보다도 상당히 높은 산입니다. 그런 산에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아래서 기도해도 되겠는데 왜 이렇게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까? 그 산에 올라가려면 상당히 힘이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중국에 갔다가 백두산을 한번 가봤는데 거기 올라가느라 땀을 얼마나 뺐는지 의복이 다 젖었었습니다. 헤르몬산에 올라가는 것이 상당히 힘이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높은 산에 힘들게 올라가셨을까? 산에 오르려면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려야 되는지 모릅니다. 한번 올라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시간도 여러 시간 걸려서 올라가셨을 것인데,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데 왜 아래서 좀 쉽게 기도하지 않고 이 높은 산, 유대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안 계신 곳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아무데서나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다 받으십니다. 그러나 집에서 기도하는 것과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과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고 또 보통 낮은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 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기도해보면 압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까?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은, 이 세상 아래서 기도하는 것이 여러 가지 환경과 습관과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이 세상의 복잡한 환경, 풍속, 습관, 또 육신의 안일주의, 이러한 것들을 다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산에 갈 때는 그런 것들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산에 가면 세상 것들이 멀리 떠나지 않습니까? 집에 있으면 뭐 이것저것 이 생각 저 생각 또 이일 저일 또 이사람 저사람, 여러 가지 일이 많은데 산에 올라가는 것은 다 뚝 떼어놓고 아예 이 세상 모든 일은 뚝 떼어놓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것
입니다. 산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지고 기도하는 마음이 점점 생기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점점 향하게 됩니다. 또한 산에 올라가면 세상이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자주 올라가셨습니다. 팔복 산에도 올라가셨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올라가셨고, 또 갈릴리 바다에서 걸어가실 때도 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다 그 바다위로 걸어가셨고, 또 구약성경에 보면 그 훌륭한 선지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그 광야의 호렙산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같은 사람도 산에서 기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러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놨다고 했는데, 겟세마네 동산은 늘 습관을 따라서 가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헤르몬산 등 여러 곳에 다니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예수님의 기도하신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특별 기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래서만 늘 하는 기도하지 말고 산에 올라가서 하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참 좋은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는데 하루 몇 시간해야 합니까? 하루 2시간씩 기도해야 됩니다. 루터는 하루 2시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2시간 기도하지 않는 날에는 마귀에게 졌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2시간씩 기도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께서 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기도하고 돌아오셔서 제자들에게 “한 시간도 이와 같이 나와 같이 깨어있을 수 없더냐?”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한 시간 기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매일 한 시간은 기도해야합니다. 그 다음에 그것도 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최소한 반시간은 기도해야합니다. 보통은 한 시간, 좀 많이 한다는 사람은 2시간, 제일 못하는 사람은 반시간 기도해야합니다. 반시간도 기도 못하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죽었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그랬는데 호흡하지 못하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죽은 신자입니다. 반시간 이상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작정을 합시다. 반시간 이상 매일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반시간 이상은 제일 최소입니다. 반시간 이상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분 손 들어보십시오. 이거 손 안 드는 사람이 있는데, 반시간 기도 안하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루 반시간 이상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 손 쳐들어 작정하십시오. 기도 반시간도 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까? 밥은 하루 세끼 먹으면서 하루 반시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죽은 믿음인 줄로만 아십시오. 자기가 죽은 믿음인가 아닌가 보려면, 반시간 기도 하는가 보면 됩니다.
또 보통은 한 시간 기도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좀 많이 한다하는 것은 2시간입니다. 우리 교역자들 신학생들 하루 2시간씩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기도하는 것은 호흡이니까 생명입니다. 호흡을 해야 생명이 살지 않습니까? 숨 안 쉬면 어떻게 생명이 살겠습니까? 또 기도를 안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29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기도안하면 마귀 못 이겨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는 마귀를 내보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기도를 안하면 언제나 마귀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마귀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2. 변화하신 예수님

본문 2절에,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변화되셨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변화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올라가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려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변화가 되었습니다. 얼굴도 변화되었고 광채가 났고 그 옷도 광채가 났고 그 땅도 광채가 났습니다. 거기에 천국이 임한 것입니다.
변화가 되었는데 이것은 외부적 변화가 아니고 속에서부터 심령에서부터 변화가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외부만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심령 속에서 부터 변화가 되어서 기쁘고 즐거움이 나오고, 하나님과의 역사가 일어나고, 천국이 심령에게 임했다는 말입니다. 천국이 임하니까 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변하여 새사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하는 찬송가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더불어 깊은 영적 교통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깊이 이루어지니까 그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것이 심령 속에서부터 왔다는 말입니다. 그 심령 속에 하늘의 영광이 임하고, 하늘의 기쁨과 하늘의 평강이 임하고, 하늘의 즐거움이 임하고, 하늘의 모든 것이 심령 속에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얼굴로 나타나서 외부적인 모든 것이 변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천국이 임한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심령이 변화가 되고 기도해야만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기도해야만 주 예수께서 내 맘에 들어와 계실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주님을 심령 속에 모실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떠나십니다. 죄만 짓고 세상 일만 하는데 주님이 어떻게 계실수가 있습니까?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까워집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그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변화 역사가 임하고 전부 다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차게 되면 얼굴도 변합니다. 시커먼 얼굴로 돌아다니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얼굴이 시커멓던 것이 다 없어져 환해집니다. 광채가 납니다. 기도 외에는 변화운동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로 모든 것이 변화가 됩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심령 속에 임하고, 변화의 역사가 우리 심령 속에 임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우리 심령 속에 충만이 차서 우리 인격으로 다 나타나고, 우리 생활 전체에 그것이 모두 나타나서 변화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변화된 사람, 변화된 환경, 변화된 역사,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했겠습니까?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말씀했다고 그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임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의논했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구약 모세 오경은 율법이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구약에 예언한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 십자가에 못 박혀서 구속하실 것을 의논했습니다. 그 때에 변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구속에 깊이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그 때에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기 육신의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 구속에 대한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기도, 말씀대로 하는 기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무엇을 주세요. 무엇을 주세요” 거지처럼 매일 달라고만 하지 말고 자기가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만하면 다 됩니다. 다 이깁니다. 

3. 순종함으로 얻는 영원히 승리

세상 사람들은 싸워서 이기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싸워서 이기는 것인데 싸워서 이기는 것은 이긴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은 둘 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해서 이긴 것은 영원히 이긴 것입니다. 참으로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해서 이기셨습니다.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도록 까지 순종하셨는데 다 이기셨습니다. 유대제사장도 이기고 바리새교인도 이기고 빌라도도 이기고 로마정권도 이기고 사망권세도 이기고 다 이겼습니다. 순종하면 모든 것을 다 이깁니다. 로마군대도 이기고 경비대도 이기고 다 이깁니다.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다 이기는 것입니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순종만 하십시오. 

싸우면 둘 다 집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습니까? 둘 다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둘 다 지는 거 아닙니까? 싸우면 둘 다 집니다. 고린도후서 6장을 보면 너희가 편당이 되어서 싸우면 피차간 완연한 허물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싸우면 둘 다 완연한 허물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저사람 허물 드러내고 저 사람은 이 사람 허물 드러내니까 둘 다 완연한 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싸우면 이겨도 지는 것이고 져도 지는 것이고 둘 다 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회개하는 것은 둘 다 이기는 것이고 순종하면 자기가 이기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에 누가 이겼습니까? 천사는 하나님의 대행자인데 말하자면 하나님하고 씨름 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고 했는데, 야곱이 이겼다는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지셨습니까? 하나님도 이기신 것입니다. 천사하고 씨름할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밤새도록 무엇을 가지고 씨름 했습니까? 살려 달라고 씨름 했습니다. 에서가 400명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러 오니까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밤새도록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살려 주십시오”하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야, 회개해라!” 그러면, 또 “살려 주십시오”, “야, 회개해라”, 이것을 밤새도록 씨름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환도 뼈를 치시니까 야곱이 “아이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러고선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넌 이스라엘이야. 네가 이겼다”하신 것입니다. 회개하니까 이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그 다음은 순종하는 것, 그러면 다 이깁니다. 천하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정권 빌라도 바리새교인 경비대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해서 다 이기셨습니다. 마귀의 음모 술수를 다 이기셨다는 말입니다. 가룟유다가 팔아먹은 것 다 이기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하면 다 이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기게 해주실 줄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9:11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입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뛴다고 선착한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유력하다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적으로 강국이지만 월남전에서 패전하지 않았습니까?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얻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으신 것을 생각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빠져나간 것은 생명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대속해주신 것, 그 피를 늘 생각하면서 감격에 넘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 피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4.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본문 4절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의논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워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랬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습니까?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까진 잘 되었는데 그 아랫말이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좋사오니’도 절반만 바로된 것이고 절반은 바로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아랫말이 무엇입니까? 초막을 몇 개 짓는다고 말했습니까? 3개를 지어서 하나는 예수님을 먼저 주고 하나는 모세에게 주고 하나는 엘리야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왜 잘못되었습니까? 거기서 늘 있으라고 하나님께서 천국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근본 목적을 모른 것입니다. 그 변화산에서 천국을 보여 주신 것, 천국이 임하게 해주신 목적은 거기서 늘 살라고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목적을 알아야 되는데 원 목적을 모르면 이렇게 삐뚤게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 천국을 임시로 보여준 목적은 예수를 믿으면 앞으로 저 하늘나라에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에서 산다는 것, 하늘나라가 이렇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의 확실한 증거를 분명히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산 아랫사람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너도 확실한 증거를 받아가지고 산 아래 내려가서 네 사명을 다하라고 보여주신 것인데 베드로가 여기 있겠다고 그랬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내려가서 사명 다하라고 그러셨는데 왜 있겠다고 그러느냐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을 초막에 모시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초막에 들어가서 계시겠습니까? 천지가 다 예수님 것인데, 이 하늘이 보좌고 땅이 발등상이고 우주에 충만하신 예수님인데, 예수님께서 그 초막에 들어가서 사람처럼 쭈그리고 앉아계시겠습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초막에 모시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같은 취급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같은 취급을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하고 예수님하고 동등으로 취급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산 아래 내려가서 할 일이 많습니다. 산 아래 아홉 제자가 있고, 귀신들린 사람 데려와서 귀신 내쫓아달라 하고 있고, 또한 귀신들린 사람을 마귀가 지금 죽이려는 지경에 있는데, 산 아래 있는 형제들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쌍한 사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사명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잘못하는 것도 모르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5. 너희는 예수님의 말만 들으라

본문 5절에,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초막 셋을 지어서 여기 있겠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이고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니까, 너희는 그의 말만 들으라는 그것입니다. 예수님보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그러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하는 말을 보면 아버지가 진짜로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왜 사랑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의 주시는 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기 때문에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는데, 기뻐 하시는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명령을 다 순종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다 받아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아버지의 명령을 다 순종하셨습니다. 구속 완성을 해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예수님 말만 들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명령만 들어라.”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만 들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것이 다 왔고 예수님께서 순종해서 아버지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고 하셨으니까 이제는 예수님 명령만 들으면 됩니다.

그럼 예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명령은 믿는 것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음도 산 믿음 가져야 합니다. 죽은 믿음은 안 됩니다.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개별적인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내게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떤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 이것을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순종해야 될 것,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주일 못 지키는 사람은 주일날 지키는 것을 순종하고, 십일조 못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순종하고, 양심 비뚤게 쓰는 사람은 그것을 회개하고 양심 바로 쓰는 것부터 순종하고, 남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회개해서 미워하는 것 다 없애고, 사랑하고 원수를 풀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고 매일매일 사건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합니다. 내가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바로 하겠는지 찾아야합니다. 내가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바로 하겠는지 찾아야합니다.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바로 하겠는지 찾아야합니다. 국가의 국민으로서 생활을 어떻게 해야 바로 하겠는지 찾아야합니다. 이것을 매일 순종을 하라는 말입니다. 매일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건이 닥쳐올 때에 내가 이 사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순종하겠는지 찾아야합니다. 이기는 법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기는 방법은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회개 하고 순종만 하면 다 이깁니다. 로마 정권도 이길 수가 있고 바리새교인 교권도 이길 수가 있고 제사장도 이길 수가 있고 다 이기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면 다 이깁니다. 순종을 하는데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지가 문제인데, 어떻게 순종해야 되겠는지 이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와서 “내가 무엇을 하리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군인들이 와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리니까?” 물으니까 “참소하지 말고 무소하지 말며 받는 족한 줄 알아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내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하니까 정한 세외에는 더 받지 말라고 합니다. 정한 세에서 더 받아먹으면서 “주여 주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또 옷 두벌인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옷 두벌인 자는 다른 사람 주라는 말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은 다른 사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제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지 말라는데 기어코 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거역하다가 이제 마지막에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안가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 불순종입니다. 갈 때는 어디로 가야겠습니까? 니느웨로 가라고 하면 니느웨로 가야지, 다시스로 가면 그것은 또 실패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으면 떠나지 않는 것이 순종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라 그랬으면 올라가는 것이 순종이고, 또 싸우지 마라 했으면 싸우지 않는 것이 순종이고,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찾아서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찾아서 그대로 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니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남전도회의 남자 집사들이 몇 주간 전에 어디로 놀러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놀러가는 곳에 자기도 따라 가야겠는지 어떤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송가 안하기로 결의하고 모여서 노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저희들끼리 가면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따라가라”고 그랬습니다. 대답하고는 한 가지 물어봤습니다. 그 집사들이 우리 사경회 하는데 다 오는 사람들인가 물어보니까 안 온다고 합니다. 그것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말씀 받는 것이 큰데, 말씀 받는 사경회는 안 오고, 저희끼리 어디 놀러가서 노라리(표준어: 놀이) 하는데 2박 3일 있다가 온다고 합니다. 노라리 하는데 가서 2박 3일 있다 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말씀 받는 것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시간 있으면 노라리 하면 몰라도, 어째서 말씀 받는 것은 안하고 노라리 하는데 갑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합니다.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의 뜻은,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모든 명령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도 변화가 되고 너희도 새사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 영광 중에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다 없어지고 그다음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구름도 없어지고, 변화도 없어지고, 모세와 엘리야 다 없어지고, 예수님만 보였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 붙들고 그 명령만 순종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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