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9일 토요일

마태복음 18:12-35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라
마태복음 18:12-35

12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26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 다시 찾은 양 하나를 기뻐하심

본문 12-13절에,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양을 하나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리지 아니한 아흔아홉보다 그것을 더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양, 또 뒤떨어져 돌아다니는 그런 양을 잃어버렸습니다. 좋은 양이야 언제나 목자 곁에 있으니까 잃어버릴 수가 없지만, 이 양은 제대로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하고 돌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린양 하나 잃어버렸는데, 어린양 이것을 찾으려고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두었습니다. 산에다 두었다고 했는데 물론 양의 우리에 두었을 것입니다. 양의 우리에다가 두고 그리고서는 한 마리를 찾으려고 사방 돌아가면서 찾다가 찾고 나서 기뻐서 돌아왔습니다. 한 마리 어린양, 그것은 한 명의 어린아이입니다. 이렇게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잃어버렸던 양 하나를 찾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누가 기뻐하십니까? 본문 14절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소자 중에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렸던 것,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찾으면 이것도 어린양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를 찾으면 누가 기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찾은 사람도 물론 기쁘겠지만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5:5-7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이 소자 하나, 어린아이와 같은 그 잃어버린 것 하나 찾으면, 찾은 사람도 물론 기뻐하고 하늘에서 그 일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이것은 하늘에서 기뻐하는 일입니다.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화
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교회에서 죄를 치리하되 사람은 사랑하라

본문 15-17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죄를 치리하라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가만 두어두면 포도원을 다 헐어치웁니다.
교회에 죄가 들어오고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들어와서 돌아가면 포도원 꽃 다 떨어뜨리고 열매 다 떨어뜨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서 2:15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포도원,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여우가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들어왔습니다.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그냥 두어두면 포도원을 다 망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꽃을 다 떨어뜨리고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그렇기 때문에 여우를 잡아서 제거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죄지은 그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그 여우는 제거시켜야 되겠으니까 잡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다가 죄까지 사랑하면 이것은 예수님에게 책망 받습니다. 또한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면 그것도 예수님께 책망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는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했습니다. 처음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책망 받았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사람을 사랑하다가 죄까지 사랑했습니다. 그러다가 또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으로 예수님께서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죄가 들어오면 죄를 용납하지 말고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제거시켜야 됩니다. 죄를 제거시키기 위해서 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있으면 처음에 한 사람이 그 죄지은 사람을 만나서 권고하다가, 안 되면 두세 사람이 만나서 권고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안 들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말씀하셨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맬 때는 매고 풀 때는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했다고 매어놓고 영영히 이것은 못 쓸 것으로 내버리지 말고 회개하면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치리하는 것을 교회가 해야 하는데 치리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성결을 도모하고 죄지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본인을 회개시키려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죽이려고 징계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시키려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교회에서 치리하는 것의 목적은, 교회의 성결을 도모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면, 누가 죄를 지으면 하늘에서도 그 사람을 정죄하고 또 그 사람이 회개한다고 하면 하늘에서도 그 사람을 풀어준다는 말씀입니다. 매는 역사도 있고 푸는 역사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시켜서 매는 역사도 있고, 또 회개하면 교회를 시켜서 풀어주는 역사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려내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있으면 죄를 다스리기 위해 권징도 해야 합니다. 그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성결을 도모하고 그 사람을 회개시켜서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잘 해나가게 하는데 있습니다. 회개하면 다 용서해 줘야 됩니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심 

본문 19-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땅에서 합심해서 기도하며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이면 되는데, 두 사람이나 혹은 세 사람이 모인다고 해도 좋고, 그 이상 모이는 것도 좋습니다. 백 사람이나, 천 사람이나, 만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드리면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디 계십니까?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드리면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사람들끼리만 모여 하는 것은 예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또한 사람끼리 사람의 명한 것으로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계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예수님을 모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또 예수님은 진리이시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대로 두 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 예수님을 모시고 신령한 영적인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님께서 같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

요한복음 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아버지께서 찾으시는데,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으로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아버지께서 찾아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많은 무리가 모여서 성전마당을 밟아도, 그리고 안식일에 모여서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사야 1장에 보면 너희가 내 마당 밟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모이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수만 강수의 기름을 갖다가 제사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고 또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입과 입술로만 공경을 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공경은 영적인 면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의 계명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뿐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떠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또 영적으로 제사 드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제사 드리는 것도 안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제사 드리고, 또 영적으로 제사 드리는 이것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하고, 아무리 갖다가 연보 많이 하고, 재물 많이 가지고 왔지만 그것은 안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왜 안 받으셨습니까? 가인이 정성을 다해서 농사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제사 드렸는데 왜 안 받으셨습니까? 성경말씀에 안 맞았습니다. 말씀, 즉,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에 안 받으셨습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 드리라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1장에는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어도 하나님께서 안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또 왜 안 받으셨습니까? 양의 피만 가지고 오면 또한 안 됩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올 때에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주실 것, 또 그리스도께서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이 제사를, 그리스도의 구속도 믿지 않고, 또 피흘려주실 것도 믿지 않고 그저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안 받으셨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안 받으신다는 그 말씀입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안 받으시고, 영적으로 드린 영적인 예배는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의 신령한 예배는 받으시고 또 진리대로 드리는 예배는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드리는 예배는 두 세 사람이 모여도 같이하십니다. 진리대로 드리는 예배는 많은 사람 모여도 같이 하시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이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 혼자 믿는다. 혼자 기도한다” 물론 혼자 믿고 혼자 기도해도 됩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예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모여서 예배드릴 때 예수님께서 같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나갑니다.
또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고 교통하고 악을 제재하고 모여서 예배드릴 때에 아주 선한 기도가 나오고 선한 예배가 됩니다. 기도도 자기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는 모여 기도하면 좀 더 기도가 거룩한 기도가 됩니다. 혼자 기도하면 무슨 기도하게 됩니까? 자기 개인기도, 정욕대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 “뭘 주시오. 뭘 주시오” 합니다. 처녀들이 여럿이 모여서 기도하면 한참동안 떠들썩하게 기도하다가도, 결혼 잘하게 해달라는 것은 누구 들으면 안 되겠으니까 소곤소곤 하는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그런 못된 기도를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이 제재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있어서 못된 행동도 못하고, 선한 기도를 하고, 그리고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도와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 위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십니다. 그것을 받으십니다.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안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거룩한 기도, 모여서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같이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주십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적용됩니다(마 18:3-4). 어린아이들이 두 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여우는 잡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우는 두어두면 다 헐어치울 것이니까 여우는 잡되, 치리하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회개하면 풀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도 살고 교회도 살고 다 사는 것입니다. 치리하는 것은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살리고 자기도 살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바로하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개인기도 물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개인기도하는 것보다 둘이서 하는 것이 나으냐하면, 둘이서 모여서 “찬송 몇 장 합시다”하고 책을 펼치잖습니까? 그래서 찬송을 했습니다. 또 “성경 몇 장 봅시다”해서 봤다는 말입니다. 대표기도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십니다. 그것이 신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 “그다음엔 성경 읽읍시다”하고 성경 읽으면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같이 계셔서 성경 읽은 것을 알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 다음은 “주기도 드립시다”하면, 주기도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시고 그 예배를 받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됩니다. 
또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닙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도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 잊어버리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냐 하면 예배드릴 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돌아다니다가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주일날 임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임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큰 것인 줄 언제나 알아야 됩니다. 성경 해석 안 해도 성경 본문만 읽어도 괜찮습니다. 뜻을 알고 싶으면 강해서에 해석이 다 있으니까 우리 강해서 펼쳐놓고 강해서 읽어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있으시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또 두 세 사람이 서로 합심했으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서로 협력하니까 하나님 나라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이루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서 연결되어서 이루어져 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와 영감이 있어야 됩니다. 진리와 영감이 없는 곳에는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이 말세인데 바로 되어야 됩니다. 또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이 껍데기만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4. 형제를 용서해 주어라

본문 21-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막히는 것이 아닙니다. 막히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열려야 됩니다. 형제가 죄를 범해서 나하고 막혔다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막힌 것입니다. 용서해 주면 열리는 것입니다. 일곱 번 용서해 줬지만 그 다음에 또 형제가 범죄 해서 또 막혔다고 하면 또 열어놓아야 됩니다. 막혔으면 열고 또 열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열어 놓아야만 됩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그 범한 것은 용서해 주어야 하고, 하나님께 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려야 됩니다. 내게 범한 것은 아무리 많이 범했어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또 용서해 주고 또 용서해 주고, 몇 번까지 해주라고 하십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칠 곱하기 칠이 사십구니까 사백 구십인데, 이 칠 수는 완전수입니다. 얼마든지 형제가 잘못하고 회개하면 또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에 대한 비유

본문 23-35절에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는 것에 대해서 비유를 들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천국은 종들과 회계하려 하는 어떤 임금과 같으니’ 이것이 천국운동입니다. 천국운동은 종들과 회계하려고하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천국운동이라는 말씀입니다. 회계할 때의 회계는 계산하는 것입니다. 

돈 계산을 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일만 달란트는 많이 빚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장정이 하루 일한 고가라고 합니다. 데나리온은 얼마입니까? 일만 달란트를 요새로 말하면 얼마가 됩니까? 1 데나리온은 하루 일한 고가(요즘 가치로 하루 10만원정도), 1 달란트가 6천 데나리온인데, 달러로 60억 달러, 한국 돈으로 하면 얼마입니까? 약 6조원입니다. 6조원을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빚을 많이 졌습니다. 한국 돈으로 하면 6조원을 빚진 사람이 하나 있는데, 6조원이면 뭐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백억, 천억, 그 다음에 일조, 6조원이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빚을 졌는데 “빚을 갚아라.” 그 왕이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임금이 그 사람에게 빚을 졌으니까 “갚아라. 얼마냐?” “6조원입니다.” 6조원을 갚으려면 몸과 처와 자식과 소유를 다 팔아도 그 값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갚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주인이 네 몸도 팔고 또 네 처도 팔고 자식도 팔고 네 소유 다 팔아다가 갚아라” 하고 왕이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다 팔아 봐도 그것은 6조원 못되고, 일만 달란트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벌벌 떨었습니다. 다 팔아 봐도 이것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도 팔아오라니까 벌벌 떨면서, 안 팔면 이것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이제는 가서 몸과 처와 자식과 소유를 다 팔아야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엔 감옥에서 썩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이 이만큼 빚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이 이만큼 큰 빚을 졌습니다. 죄로 말하면 일만 달란트 빚진 것과 같은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이 죄 값으로 말하면 이 몸 다 팔아도 모자라고 처와 자식과 소유를 다 팔아도 이 죄 값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죄를 짓고 있습니다. 내 가족과 재산과 모든 것 다 희생해서 쫄딱 다 없어질 만한 그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 지은 것으로 말하면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가족이나 재산 다해도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 받을 수 없는 이런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다 팔아도 부족합니다. 다 망해도 죄 값이 안 됩니다. 이런 죄를 우리가 범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다 탕감 받음

그래서 26절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습니까? 몸도 팔고, 처도 팔고, 또 아들도 팔고,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갚겠다고 좀 참아달라고 엎드려가지고 종이 말했습니다. 27절에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습니다. 그 가족과 몸과 재산 전부다 죄 값으로 망하고 없어져도 못 갚을 만한 이런 죄를 지었는데, 엎드려서 빌었기 때문에 주인이 불쌍히 여겨 주어서 다 탕감하여 주었다는 말입니다. 죽을 것이 살아난 것입니다. 탕감해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자기도 임금이 탕감하여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고, 자기 처도 이 죄를 탕감해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고, 또 자녀도 임금이 탕감하여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고, 재산도 임금이 죄를 탕감하여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빚이 조금이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고 죄 값을 물어 주시고 탕감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 망할 것인데, 죄로 말하면 다 망할 것인데, 내 자신도 벌써 다 망했을 것이고 가족도 다 망했을 것이고, 재산 다 쫄딱 망했을 것인데, 그래도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피흘려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탕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탕감 받았습니까? 예. 탕감 받았습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안함

그런데 28절에 그 종이 탕감 받고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하나를 만났는데,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 빚진 동관입니까? 백 데나리온입니다. 자기는 얼마 탕감 받았습니까? 일만 달란트입니다. 일만 달란트하고 백 데나리온하고 얼마 차이입니까? 육십만분의 일입니다. 백 데나리온보다 일만 달란트는 육십만배보다 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임금에게 탕감 받고 나오면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그 사람 하나를 만나가지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동관도 엎드려 가지고 “주여 참으소서. 내가 갚으리이다”하며, 자기하고 똑같이 빈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 줬어야 되겠는데, 백 데나리온 받으려고 그가 빚을 다 갚도록 옥에다 가두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동관이 보니까 너무 한심한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 자기는 일만 달란트를 주인에게 탕감 받고 나오다가 자기 친구 하나의 백 데나리온 빚진 것을, 이것 하나를 탕감 못해가지고, 이것을 받으려고 눈이 새빨개가지고 목을 잡고 가서 감옥에 갖다 가두어가지고 다 갚으라는 것이 이것이 말이 되냐.” 그래서 다른 친구 동관이 그 주인에게 가서 보고했습니다. 아무개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고 나갔는데,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 하나를 목을 잡고 감옥에 갖다 가두어 놓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그 말을 듣고 그를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그 일만 달란트 탕감해준 종을 불러왔습니다. 불러다가 뭐라고 하십니까?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네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게 붙였습니다. “나도 일만 달란트 도로 다 받아야겠다. 탕감해 주었지만 네가 하는 행동 보니까 안 되겠다. 네가 탕감 안 해줬으니까 나도 탕감 안 해준다. 일만 달란트 다 갚아라” 그렇게 노해서 그 일만 달란트 탕감해준 종을 다 갚도록 감옥에다가 가두었습니다. 그 형제의 백 데나리온 그거 탕감 안 해주다가 자기가 탕감 받은 일만 달란트를 도로 다 갚아야 되게 되었습니다. 그 일만 달란트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뭘 팔아야 됩니까? 몸도 팔고, 처도 팔고, 자식도 팔고, 소유를 다 팔아도 일만 달란트에 모자라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나라, 통하는 나라가 되라

본문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용서하는 나라입니다. 용서하는 나라, 막힌 것을 여는 나라, 또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용서하는 나라이고, 또 막힌 것을 여는 나라이고, 막힌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막힌 것이 있으면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입니다.
사람에게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힙니다. 사람에게 막힌 것을 열어놓아야 하나님과의 막힌 것이 열립니다. 사람한테 막아놓고선 하나님 보고 “주여, 주여”하는 것은 수도꼭지 막아놓고 물 나오라, 물 나오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꼭지를 막아놓고 그릇을 갖다놓고 물 나오라, 물 나오라 하면 나오겠습니까? 수도꼭지를 열어놓아야 나옵니다. 막힌 것을 열어놓아야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막힌 것은 하나님과 막힌 것입니다. 보일러파이프와 같이 파이프 하나에 빙빙 돌아가면서 돌아가다가 다 돌아가면 도로 보일러로 들어옵니다. 더운물이 보일러에서 나와서 다 빙빙 돌다가 다시 보일러로 들어오곤 하지 않습니까? 어디든 하나만 막히면 안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에서 막혀도 안돌아가고, 가운데 막혀도 안돌아가고, 마지막 대목에 막혀도 안돌아가고 아무데 막혀도 한 곳만 막히면 보일러는 안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 통하는 나라입니다. 막힌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막힌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은 하늘나라 밖에 나간 사람입니다. 수도꼭지 딱 막아놓고 수돗물 먹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막혀서 생명수가 없습니다. 사람 앞에 막아놓았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수가 막힙니다. 자기만 손해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 안 해주고 다른 사람과 막아놓고, 통하지 못하고 그러면 자기는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손해입니까? 자기가 손해입니다. 사람하고 원수가 졌으면 자기가 하나님과 원수 진 것입니다. 또 사람을 원망하고 비방했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막혔습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고 원망하고 그래놓고는 또 하나님 앞에 가서는 물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꾸 수도 막아놓고 물이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막아 놓고 용서 안 해주고 원수지고 원망하고 비방하고 악평하고, 콱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 막혔는데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물이 나오겠습니까? 막아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과 통하고 싶으면 사람 앞에 막힌 것을 열어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가 사는 길입니다.
형제가 잘못한 것이 얼마짜리입니까? 백 데나리온입니다. 자기는 얼마 탕감 받았습니까? 일만 달란트입니다. 육십만 분의 일입니다. 내가 탕감 받은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한 것은 육십만 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용서 안 해주고, 딱 정지하고 막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여기서 일만 달란트 탕감 받고 나가다가, 백 데나리온 자기의 동관 있으니까 이것을 탕감 안 해 주다가 하나님께서, 그 주인이 노하지 않았습니까? 탕감했다가도 가두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형제를 용서치 아니하면 네 천부께서도 너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탕감 받은 것 같이 잘못 한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 한 것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 것처럼 형제가 잘못한 것을 중심으로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5. 하나님 나라의 특징

하늘나라는 용서해 주는 나라입니다. 또 막힌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미워하는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요한1서에 보면 살인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다 통하는 나라이고, 하늘나라는 서로 협력하는 나라입니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두 세 사람부터 협력하는 나라이고, 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나라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나라이고, 어린아이와 같이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되고, 영의 나라가 임해야 됩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는 하늘나라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만해가지고 처음엔 어린아이 같았다가 얼마 있으면 뭘 좀 배우고 조금 알게 되면, 교만해가지고 “나도 안다”하는 그것은 하늘나라 밖에 나가는 것입니다. 탈선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되면 열차가 레일 위를 탈선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복되든지 뒤집어지든지 옆으로 나가 자빠지든지 다 자빠지게 되어있습니다. 열차바퀴가 옆으로 가 있든지, 바퀴가 하늘꼭대기로 하늘을 향해 있으면 그것이 가겠습니까? 그 열차가 잔등으로 가겠습니까? 또 옆으로 갑니까? 어린아이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레일이 탈선 된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린아이 자리에 있어야만 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받는 것이고, 가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계속 권고해 주는 것이고, 천사들이 또 보호해 주는 것이고, 보고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들어오면 안 됩니다. 죄를 제거시켜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속에 들어오는 죄도 항상 제거시키면서 회개해야 되고, 또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는 사건이 있어도 가만히 놔두면 하늘나라가 파괴되는 것이니까 제거시켜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회개시켜야 됩니다. 죄를 회개시키면서, 회개하면 용서해주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는 나라입니다. 천사가 항상 돌보는 나라이고, 그 사정을 천사가 항상 하나님께 보고하는 나라이고,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위급할 때에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가다가 말씀 따라가다가 위태해지면 천사를 보내서 다리가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더불어 막힌 것이 없습니다. 통해있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입니다. 막힌 것이 없습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에,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통하십니다. 하나님과 통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내려와서 보고해주고, 올라가서 보고하고, 내려와서 인도해주고, 올라가서 보고하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은 자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영의 세계입니다. 중생한 영을 쓰는 세계입니다. 영 밖에는 안 됩니다. 이 나라 밖에 무슨 하늘나라가 있겠습니까? 이 나라 밖에는 하늘나라 아닙니다. 하늘나라 밖에서 사는 사람들, 어린아이를 떠난 것은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예배드리는 나라입니다. 기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는 나라입니다. 나도 그 가운데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내 이름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두세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나도 그 가운데 같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과 동거, 동락, 동행, 동사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만 따라가는 나라입니다.
여기에 방해물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가는 길 못 가게, 이 길을 못 가게 방해하면 잘라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눈은 빼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고서라도 이 하나님의 나라 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너저분하게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스무 개씩 너덜너덜하게 다 달고 다니지 않아도, 한 절반 잘라버려도 그 길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눈 둘 다 가지면 좋지만, 하나님의 나라 걸어가는데 방해 놓으니까 하나 빼고 한 눈 가지고 가도 되는 것입니다. 한 눈 가지고도 다 보면 되지 않습니까? 꼭 두 눈 있어야 되겠습니까? 눈 또 작은 눈도 괜찮습니다.
크면 무얼 하겠습니까? 크면 먼지만 많이 들어가고 크면 무얼 합니까? 보면 되는 것입니다. 눈 하나라도 보면 되는 것입니다. 다 있으면 물론 좋습니다. 눈 둘 다 있으면 얼마나 좋고, 수족 다 있으면 얼마나 좋고, 또 폐도 둘 다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두 개 가지고는 안 될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늘나라 길을 걸어가는데 못 갈 염려가 있습니다. 못 가게 방해 놓고, 범죄 하게 되고, 못 가게 만듭니다. 이것들이 뒤에서 붙잡으면 그럼 못 가게 됩니다. 잘라버려야 합니다. 잘라버리고라도 아예 집어치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가면 살지 않습니까? 생명이 사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붙이고 있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교회가 살아야 되고, 자기가 살아야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나라입니다. 저희들끼리 모여서 친목하고 희희낙락하고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나라입니다. 잃어버린 어린양 찾으면 누가 기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 다음에 자기도 기쁩니다. 교회도 다 기뻐합니다. 전도해서 잃어버린 양을 계속 찾아다가 충수를 하라고, 보충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택한 백성이면 다 양의 우리에 불러서 들여야 됩니다. 택한 백성 많으니까 다 불러서 우리로 들어가게 해야 됩니다. 합심해서 하늘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부터 합동해서, 합심해서 건설해 나가는데, 예수님과 같이 건설해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니까 예수님과 같이 건설해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막힌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는데, 막히면 안 됩니다. 사람한테 막히면 하나님께 막힙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내게 잘못했어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면서 막힌 것을 열어놓아야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선 그것을 안 열어놓으면 자기부터 지옥고통을 당하는데, 용서 안 해주면 기도가 막힙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용서해 주고,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형식적으로 용서한다고 하지 말고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상대가 잘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고는 사랑하고 서로 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할 것입니다. 내가 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정 잘못했다 그러면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데, 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을 용서 안 해주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생활, 하늘나라 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하고, 용납하고, 바로 서기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야 됩니다.
우선 자기부터 살아야 됩니다. 용서 안하면 자기부터 못 삽니다. 자기부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늘나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도 이제 하나님께서 회개시켜서 돌아오게 할 날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용서해 주면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미워하는 나라는 마귀의 나라입니다. 미운 것은 살인하는 죄인데, 절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보기 싫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며느리 발뒤축이 뭐와 같다 그럽니까? 달걀 같다고 하고, 딸 발뒤축 그것은 사과 알 같다고 하는데, 며느리 발뒤축이 왜 달걀 같습니까? 자기 딸 발뒤축은 달걀 같지 않습니까? 그것은 며느리를 괜히 미워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며느리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시어머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면 자기부터 살고 자기 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떠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에게부터 떠나고 가정에서도 다 떠납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자기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고 천국이 자기 심령 속에 임하고 가정에 임하고, 사랑하지 않고 서로 싸우고 미워하면, 그만 하나님의 나라가 다 떠납니다. 마귀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항상 우리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 삼켜야 합니다. 사랑으로 삼켜야 됩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 숯불로 머리에 쌓아놓은 거와 같다” 그러면 자기가 이긴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에 있다가 자기아들 둘 죽인 공산당을 자기 아들로 삼았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공산당이 아들 죽인 것이 잘했습니까? 살인했는데 그래도 다 용서해 줬습니다. 용서해 주니까 손양원 목사가 산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그 위에 임한 것입니다.
용서 안 해줬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떠납니다.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심으로 너희가 사랑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심으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고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용서하고 사랑하라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할 것입니다. 원수 된 사람들 다 푸십시오. “너무 억울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욕하느냐? 또 왜 정죄하느냐?” 예수님께서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래도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고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원수는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억울한 것이 많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 갈 길만 걸어가는 것이 예수님의 갈 길입니다.
내 갈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말씀 순종하는 길입니다. 말씀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나가는 것이 내 갈 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방법입니다. 이제 서로 다 화목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막힌 것 푸십시오. 미워하는 것 다 없어져야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변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보기 싫은 사람이 보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어떤 권찰이 하나 있었는데, 새벽기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자기 옆집에 있는 아이가 대문간에서 뛰어나오는 것을 보면 그 녀석이 하도 못되게 구니까 보기 싫어서 눈이 삐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또 가서 이제는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서도 또 보면 눈이 삐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봅니다. “눈이 삐뚤어지지 않을 때까지 기도해라. 눈이 삐뚤어지는 것 보니까 아직도 기도 다 못했다. 눈이 삐뚤어지지 않을 때까지 네가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그 다음에 그 아이가 나올 때에 사랑스러운 아이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때가 기도 다 한 것이다” 그것이 없어지도록 까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뿌리가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뿌리가 쪽 빠져나가도록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못나온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뿌리가 남지 않도록 쪽 빠져나갈 때까지, 원수를 볼 때 사랑하도록 까지, 쪽 빠져나갈 때까지 기도하고 회개하면, 진정으로 사랑할 마음이 나옵니다. 

이런 사람이 다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우리 교회에 임하고 우리 교단에 임하고, 또 가정에 임하고, 자기 심령 속에 임하고, 우리나라에 임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주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가 용서하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죄를 제거하시는 것처럼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임하시는 대로 예배드리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삼각형으로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이 사람 앞에서 이루어지고, 사람에게 이루어진 것이 하늘나라에 또 올라가고, 하나님께서 정죄한 것이 또 사람에게 정죄가 되고, 하나님께서 해벌하시면 사람도 해벌해 주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하면 같이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양 찾으라고 하실 때 찾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자는 하늘나라가 임할 때에 데려간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커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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