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9일 토요일

마태복음 18:1-10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됨
마태복음 18:1-10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7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 누가 천국에 들어갈 자이며 큰 자인가?

본문 1-4절에,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하고 예수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랬고, 또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본문 5-6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시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또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다”, 또 “어린아이 하나를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라고 그랬습니다.

2.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됨

자기를 낮추는 자

본문 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떤 자라고 4절에 나왔습니까?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자’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8:17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잘 배우는 자들,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자기를 낮춘다’라고 그랬는데 자기가 나오면 그것은 벌써 탈선입니다. 열차가 레일 위로 가다가 자기 자신이 나오면 그 레일을 떠나는 것입니다. 열차가 못갑니다. 일평생 원수가 자기 자신이고 자기와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자기가 나오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자기 지혜와 지식 그것이 나와도 다 틀어집니다.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만 받아서, 말씀이 자기 지혜가 되고,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사상이 되고, 자기 생명이 되어나가야 됩니다. 자기 것이 하나 나오면 탈선이고, 거기서부터 끝장입니다.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지혜와 지식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고,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것이다. 지혜로는 하나님의 나라 뜻을 알지 못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알지 못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지혜와 지식 다 내버리고, 또 자기도 내 버려야 됩니다. 자기를 내 버려야 됩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 자기를 위하는 것 이런 것은 영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기주의가 어떻게 영의 세계가 되겠습니까? 어린아이의 세계가 영의 세계인데, 이기주의, 자기중심, 자기 위하는 것, 자기고집, 교만, 자기생각, 자기 뜻,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높이는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 나라 바깥에 있는 일들이지 하나님의 나라에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벌써 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떠난 것들 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벌써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이고, 또 계속 받아먹으니까 자라나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점점 자라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백짓장 같은 어린아이

마태복음 11:25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또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숨겨집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어린아이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와는 반대라는 말입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와 반대가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기 지혜와 자기 지식과 자기 생각으로 하려는 사람이 여기서의 ‘지혜로운 사람’ 입니다. 세상 지혜, 세상 지식 그런 것에 반대가 ‘어린아이’ 입니다. 자기 지혜와 자기 지식과 또 자기 판단, 그것이 없는 사람,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과 자기 생각, 자기 지혜와 자기 지식과 이것을 가지고 하려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린아이란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백지장 같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사람은 백지장이 아닙니다.
그 속에 뭐라고 글자가 써 있고, 주장이 써 있고, 강하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있고, 교만이 있습니다. 그 반대가 어린아이입니다. 백지장과 같은 것이 어린아이인데, 백지장은 글자를 쓰는 대로 씌어지고 물을 염색하는 대로 염색이 됩니다. 백지장에는 뭐가 없으니까 글자를 쓰면 잘 써진다는 말입니다. 또 백지장은 색깔이 없으니까 무슨 색깔이라도 염색하면 그대로 됩니다. 이것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란 말입니다. 어쨌든 어린아이는 ‘지혜롭고 통달한 자’와 반대라는 것만 알면 되겠습니다.

어린아이에게만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고 지혜가 통달한 자에게는 숨긴다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는 참 순진하다는 말씀입니다. 순진해서 자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것이 없고 말씀하시는 대로 받는 것입니다. 말씀하는 대로 받아서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주시는 대로 받아서 그대로 새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은 배우는 것이 잘 안됩니다. 어린아이들이 외국어를 배우면 그대로 들어가 박히는 것입니다. 나이든 사람이 아무리 잘 배웠어도 그것은 어린아이에 비하면 잘 안 배워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 배운 사람은 그대로 들어가 박히니까 외국 사람과 똑같습니다. 나이가 좀든 사람은 자기나라 말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외국어 배워도 자기나라 말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억양도 그렇고, 무엇이든 한마디 들어봐도 다 압니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백지장과 같아서 그대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대로 물이 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그대로 말씀을 듣고 새겨지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순진해서 그대로 믿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을 판단하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듣고, 자기 지식을 가지고 무얼 판단하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 되겠지만 하나님의 나라, 이 복음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받아들이는 것이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받들고, 또 ‘자기를 낮춘다’고 했는데, 어린아이는 자기는 낮춥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자기 것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나라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일의 인도를 그대로 받고, 주장을 그대로 받고 하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자기 지혜와 지식의 통달한 것을 가지고서 판단하려 하면 하늘나라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자

어린아이와 같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자기를 낮추는 사람, 중생한 영혼이 어린아이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을 써야 되고, 영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영을 쓰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은 하나님을 잘 받들게 되고 또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어린아이입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어린아이는 젖을 먹어야 살고 다른 것은 안 먹으니까, 이것만 먹어야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젖이다’ 하면 여간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사모해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잘 사모하고 받아들이고, 또 소화를 잘해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라나니까 천국에서 큰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자라난 사람이 큰 자라는 말입니다.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큰 자가 아닙니다. 중생한 영이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중생을 하고 말씀을 사모합니다.

순진하고 순종하는 자

순진한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순진하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주장을 잘 받고, 인도를 받고, 모든 주장을 잘 받습니다. 그리고 잘 배웁니다. 잘 배우는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를 소유할 사람이고 하늘나라 가서 큰 자가 됩니다. 계속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계속 순종하고, 계속 순진하고, 계속 배워나가고 그래야 계속 자라날 것이 아닙니까?
자라나가다가 자기생각, 자기 뜻, 자기라는 것이 나오면 탈선이 되어, 그 다음은 다른 데로 갑니다. 탈선이 되면 다 전복(顚覆)이 되고 다른 데로 가고 맙니다. 말씀만 사모하고 말씀만 따라가고 하나님만 사모하고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자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라는 것이 없어져야 됩니다. 말씀만 따라가고 말씀만 사모하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만 사모하고, 아버지의 집이 좋고 아버지 말씀이 좋아야 됩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예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집이 좋고 아버지의 나라가 좋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은 다 좋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없고 그저 하나님만 즐거워하는 세계, 하나님만 좋아하는 세계, 어린이와 같은 그런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자라나고 자라나니까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 자 입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물어보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큰 자다. 또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인간성 가지고는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성을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인간성을 넘어서 영의 세계에 들어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중생한 영혼, 순진한 그 세계, 거기서 말씀을 받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천사를 보내서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런 사람에 대해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하나님 앞에 가서 그 사람의 사정을 다 보고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그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 사람을 보호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천사를 보내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또 그의 사정을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고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서 하나님의 통치가 떠나지 않고, 어린아이의 소식이 하나님 앞에서 끊이지 않게 천사가 가고,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것이 계속 옵니다. 어린아이를 하나님께서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보호해 주십니다. 천사를 통해서 보호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소식도 전해주시고, 어린아이의 소식은 하나님께 보고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어린아이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어린아이가 됩시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어린아이는 그대로 받아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 자기주장, 자기 뜻이 없습니다. 물론 요새 어린아이들은 자기주장과 자기 뜻이 있지만 그런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주장, 자기 뜻이 없는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순진한 어린아이, 백지장과 같은 어린아이, 그냥 받는 아이, 겸손한 어린아이가 겸손한 것입니다. 그런 아이가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습니까?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고 점점 자라날 사람이고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될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참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귀히 여기시고 또 어떻게 해주신다고 했습니까? 무엇을 보내서 보호해주십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는 천사를 보내서 보호해주시고, 또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의 사정은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보고가 되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눈이 다 와서 있고, 하나님께서 그사람의 사정을 다 아시고 돌봐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를 위하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면 탈선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다 없어져야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 말씀만 받고 그 말씀대로 하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자기 주장, 자기 뜻, 자기 위하는 것이 들어오면 탈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서 떠나서, 자기 위하는 생각,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지식, 이것이 들어오면 탈선이 됩니다. 열차가 레일 위로 가다가 탈선되면 전복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는 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나가다 그 세계를 잃어버리면 그 세계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지 못합니다. 열차가 탈선되었는데, 나가 넘어갔는데, 전복되었는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바퀴가 위에 올라갔는데, 열차 그 몸체가 땅에 닿는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바퀴는 옆으로 갔던지 위로 올라갔던지 했는데 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있다가 또 다시 자기 위하는 정신이 들어오면 거기서 탈선입니다. 전복입니다. 또다시 자기 생각대로 나가려는 생각, 자기욕심 채워야겠다는 생각, 자기 명예영광, 자기 위하는 생각, 그것은 어린아이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야 됩니다. 
또 순진해야 됩니다. 끝까지 순진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3.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

본문 5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와 같이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하시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자는 예수님 대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는 하나님과 통하고 있는 것인데 그를 영접하면 예수님 영접이고, 대접하면 예수님 대접입니다. 그가 예수님하고 통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실족케 하지 말라

본문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를 실족케 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어린아이는 예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시고 예수님과 같이 하는데,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까?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연자 맷돌이 얼마나 크냐하면 피아노 만합니다. 연자 맷돌 보지 못한 사람은 피아노 만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피아노 만한 돌을 목에다 달고 바다에 갔다 빠뜨리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첨버덩!” 하면 벌써 바다 밑에 까지 내려가겠는데, 다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은 그 만큼 형벌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대한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본문 7절에,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귀중히 여겨야지 실족케 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화가있단 말입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발이 미끄러져나가는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하나의 손해를 주는 것, 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족케 하는 것은 어린아이를 넘어지게 하는 것, 발이 미끄러져나가게 하는 것, 제대로 서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아주 귀한 것입니다. 천사를 보내서 지켜주십니다. 또한 천사가 하나님께 가서 늘 보고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에게 와서 있습니다. 모든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범죄하게 하는 것은 내버리라

본문 8-9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이 나오다가 갑자기 손과 발이 범죄 하게하면 찍어버리라고 그랬습니다. 또 눈도 빼버리라고 그랬단 말입니다.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따라가다가, 손과 발 때문에 그만 그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신앙에서 벗어나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 손과 발을 잘라 버리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말씀만 가지고 걸어가는데 눈이 범죄 하게하면 눈을 빼 버리란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고서라고 말씀만 따라 가라는 말씀입니다.
두 눈을 가지고 가다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서 떠나게 되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났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영생길입니다. 어린아이와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순진한 신앙을 가지고 가는 것이 영생길입니다. 그런데, 손과 발 때문에 못 가게 된다면 안 됩니다. 그 영생 길을 가는데 손과 발 때문에 못가면 얼마나 화입니까? 잘라 버리고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말씀만 따라 가는데, 생명 길을 걸어가는데, 눈 때문에 못 가게 된다면 빼버리라고도 영생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영생 길을 못가면 지옥불입니다. 손과 같이 귀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나, 사업, 그런 것들 때문에 영생 길 못 가면 그것들을 다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생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또, 눈과 같이 요긴한 모든 요긴한 일이나 사람, 친구나 모든 것, 그것들 때문에 영생 길을 못 가게 되면, 아무리 눈과 같이 요긴한 것이라도 다 빼버리더라도 영생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붙잡혀서 못가면 그것은 영생의 세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따라가고 생명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 때문에 못 간다면, 어떤 직장 때문에 못 간다면, 또 어떤 물질 때문에 못 간다면, 또 친구 때문에 못 간다면, 그러면 그것들을 다 잘라버리고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친구 잘라버리고 말씀 따라가야 합니다. 영생 길 걸어가는데 못 가게 막는 세력들, 붙잡는 세력들, 얽매여있는 세력들 그것들을 다 잘라버리고 빼버리고 그냥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생 길 가는 것이 났지, 두 눈 가지고 있다가 영생 길에 못가면 뭘 하겠습니까? 한눈만 가지고라도 영생길 가야지, 불구자가 되어서라도 영생길가는 것이 났지, 온전한 사람으로 있다가 영생 길 못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온 천하를 다 얻고라도 자기를 잃던지 빼앗기던지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누가복음 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온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만들어지는 것을 잃어버리던지 자기 만들어지는 것을 빼앗긴다고 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손 때문에 잃어버리고 눈 때문에 잃어버리고 빼앗겼단 말입니다. 이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두 손을 가지고 있다가 영생길 가는 것을 빼앗기고, 자기 만들 것, 영의 사람, 영의 길 걸어가는 것을 잃어버리는데,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생 길을 빼앗기면,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 아무리 벌면 뭐합니까? 영생 길 걸어가는 것을 다 빼앗겼는데, 자기 만들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렸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하를 다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영생 길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자기가 자라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자기가 이 생명 길 걸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해서 이 길을 못 가게 하면 잘라 버리고라도 이 길 걸어가고,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하나 빼버리고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약한 성도를 귀중히 여기라

본문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잘 대접하면 그 보고가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께 보고가 갑니다. 아무개가 어린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 줬다고 하나님께 보고가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그것을 기록해 놓았다가 상급을 주십니다.
어린아이 심령 하나가 아주 귀중한 것인데,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 유년부, 유치부 아주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장년이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잘 돌봐야겠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잘 가꾸어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 연보 많이 하는 사람, 대접 잘하는 사람만 위하면 안 됩니다. 어린아이 하나는 목사를 대접할 줄 몰라도 어린아이 하나를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대접 잘하는 사람만 귀중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자기 대접 잘하는 사람만 귀중히 여기면 못씁니다. 전도부인도 그렇습니다. 자기 대접하는 집만 찾아다니고, 자주 심방가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게는 심방 안가고 그런 것은 삯꾼입니다. 삯꾼 목사이고, 삯꾼 전도부인 입니다. 제일 뒤에 쳐져서 가장 연약한 성도를 돌봐야겠습니다. 그들을 잘 가꾸어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하는 심지도 끄지 않으신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싱싱한 갈대만 귀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불 그것만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꺼져하는 심지, 상한 갈대, 이것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보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잘 보호해서 길러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어린아이 하나를 귀중히 여기시고, 어린아이 같은 성도를 잘 돌보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서자

지혜가 통달한 자에게는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셔서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가다가 얼마 지나면 지혜가 통달한 자처럼 ‘자기’라는 것이 나와서 교만해지고,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주장, 자기 뜻만 세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나라가 그 사람에게서 떠나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가다가 얼마 지나 그것이 자라나서 또 다시 교만해지면, 하늘나라가 떠나서 다른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로 갑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천국을 ‘너희’에게 뺏어서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처음엔 어린아이와 같아서 잘 자라났습니다. 순진했습니다. 사모했습니다. 좀 자라나니까 ‘이제 안다. 이제 할 수 있다’ 하면서 껄떡거리면서(거들먹거리면서) 따라갑니다. 그러다가는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빼앗아다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준다는 말입니다.
목사들도 잘 들어야 됩니다. 처음에 전도사 때, 개척교회 처음 할 때, 그 땐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 땐 뭐 아주 순진하고 사모하고 합니다. 그러다가 차차 나이가 좀 더 들고, 교회가 좀 되고, 또 뭘 배웠다고 배운 것도 있고 하니까 “나도 이제 됐다”하면서 껄떡거리며 돌아갈 때는 이미 하늘나라를 빼앗긴 것입니다. 빼앗겨서 다른 사람에게 간 것입니다.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수북하게 올라갑니다. 자라나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가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가 됩니다. 이번 사경회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이번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신령한 젖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라났다’ 하고 ‘나도 안다’고 하는 어른 같은 자에게는 하나도 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빼앗긴 것이 아닙니까? ‘나도 안다. 나도 안다’, ‘늘 듣던 소리다’ 그렇게 말하고, ‘또 강해서 책에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마태복음 공부했다’ 하고 ‘또 한다. 몇 번째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백 번 설교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먹을 것이 없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세계를 잃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지혜가 통달한 자’의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하늘나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못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떠납니다.
항상 우리는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언제나 서야합니다. 

그리고 대접 잘하는 사람 집에만 심방가지 말고, 연보 잘하는 사람만 귀중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과부가 엽전 두 푼 했어도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엽전 두 푼도 안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한 잎도 없어서 안한 사람은 괜찮습니다. 한 잎도 없어서 안한 사람은 괜찮은데, 자기 쓸 것 다 쓰면서 안한 것은 양심을 삐뚤게 쓰는 것입니다. 오늘 사경회 끝나고 가다가 냉면 사먹고, 뭘 사고, 뭘 사고, 또 자기 집에도 좀 있는데 연보 안하고 가고, 그것은
양심 안 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꾀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지혜가 통달한 자’입니다.
순진해야 됩니다. 순진해서 하나님께 바칠 것은 바쳐야겠습니다. 연보할 땐 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합니까? 또 ‘나는 얼마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자기 힘대로 안하는 것 그것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하여간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 가서 큰 자가 됩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 하시는 일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받는 것입니다. 신령한 젖을 날마다 먹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를 잘 돌보고 귀중히 여기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 준 것이 하나님께 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실족케 하는 자는 하나님께 나갔을 때에 무엇을 받는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 실족시키면 화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항상 있어야 하고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를 귀중히 여기고 잘 돌봐주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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