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7일 수요일

누가복음 20:9-27 포도원 비유,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포도원 비유
누가복음 20:9-27

9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쫓은지라 13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14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16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18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23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24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27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1. 포도원 비유

본문 9-10절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돌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래 있다가 재림하실 것을 가르칩니다. 농부들은 유대나라 사람들을 가르킵니다. 포도원도 유대나라 사람들이고 농부들도 유대나라 사람들입니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라고 할 때에 농부들이 종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다른 종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냈습니다.

본문 12절에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고 하였습니다.또 세 번째 종을 보내어서 포도열매를 바치라 했는데 세 번째 보낸 종마저 상하게 하고 내어 쫓았습니다. 여러 종들을 보내어서 포도원 소출을 바치라고 하였지만 다 때리고, 상하게 하고, 능욕하고, 쫓아 보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여러 번 보내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 그래도 공경하지 않겠는가, 하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본문 14-15절에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이 그 주인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이는 주인의 아들로 주인의 재산을 상속할 자이다”하며 주인의 아들을 때려 죽였습니다.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이니라,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6절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건축자들은 돌을 내어다가 놓고 건축을 합니다. 주춧돌을 갖다 놓고서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습니다. 주춧돌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대 나라 사람들은 머릿돌이라고 하였는데, 머릿돌이 한국에서는 주춧돌과 같은 것입니다. 머릿돌 하나 든든한 것을 갖다 놓고 거기에 의지해서 건축을 하는 것인데, 건축자들이 못쓰겠다고 내버린 돌이 가장 요긴한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건축자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내어 버렸는데, 그 버린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적 성전 짓는데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가장 요긴한 돌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8절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진다고 하였는데, 돌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진다, 라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 저희가 다 가루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돌 위에 떨어지는 자이고 그것은 깨집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다 깨집니다. 그것은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계란으로 돌을 치면 돌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계란이 깨집니다. 아무리 힘 있게 쳐도 돌은 꿈적도 안 하고 계란만 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그와 같습니다. 또 돌이 그 사람 위에 떨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서, 앞으로 예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가루가 되어서 다 흩어지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본문 19-20절에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백성들이 두려워서 잡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을 책잡아서 빌라도 총독에게 붙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법관들에게 붙여서 죄를 정해 죽이려고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님의 말을 책잡으려 했습니다. 

본문 21절에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가면을 쓰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도만 바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이다’하며 예수님께서 평소의 말씀하시던 것을 말하게 하여 책잡아 정죄하여 죽이려고 가면을 쓴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이것을 물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양통으로 다 걸리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라 하면 “그리스도의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오는 것인데, 로마 정부에 세를 바치라고 하면 그것이 무슨 그리스도냐?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없다”하며 책잡으려 하는 것이고, “바치지 말아라”하면 가이사의 반역자로 몰아서 죽이려고, 두 가지에 다 걸리게 한 것입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입니다. 

본문 23-24절에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간계를 벌써 아셨습니다. 그리고 셋돈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즉, 은전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돈에도 세종대왕 화상(畵像)이 있지요? 그때 로마의 은전에는 가이사 황제의 화상을 그렸던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 자는 누구의 것이 있느냐, 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가이사의 화상과 글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본문 25절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는 국가에 감당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하나님께 다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감당하고, 국가에 바쳐야 할 것은 바쳐야 하며, 국가에 순종해야 할 것은 순종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3대 의무가 있는데, 교육․납세․병역입니다. 성경에 위반 되지 않는 한, 국
가에 대한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즉, 국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그 의무대로 다 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죄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므로 이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일은 사람의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일하는 것은 죄입니다. 또 무엇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너희 몸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6:20).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시편 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재산과 재물도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올 때 가져 온 것이 아닙니다. 땅 위에 충만한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쳐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서, 예배드리는 일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의 하나입니다. 예배
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인데, 예배시간에 늦어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늦어지는 것은 제물이 제사하는 중간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제사하기 전에 제물을 다 차려 놓고 제사 하는 법이지, 제사 한참 하나가 중간에 제물하나가 후다닥 뛰어 들어오면 그것이 무슨 제물이 되겠습니까? 온전한 제물이 못됩니다. 예배시간 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준비하고 예배를 드려야만 온전한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또 마땅히 하나님께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를 다 감당해야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해라!”하시면 그것을 다 해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소를 먹이라!”하시면 소를 먹여야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되고, “밭을 갈아라!”하시면 밭을 갈아야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 하는 것입니다. “양을 치라!”하시면 양을 쳐야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를 다 감당해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고난이 많을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올라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생활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다 바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마땅히 다 감당하고, 바쳐야 할 것을 응당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안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그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해도 걸리게 만들, 저렇게 말해도 걸리게 만들었는데, 예수님은 그에 대해 바른 교훈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책잡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면서 잠잠하였습니다. 진리대로 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이 진리를 몰라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랍니까? 말랍니까? 이렇게 물어 본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 그런 것을 물어 보지 않았겠는데, 진리를 모르므로 물어 보았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지 못하면 어리석은 가운데 빠져서 그만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하고 꼼짝하지 못하고 나아가다가, 죄가 아닌데 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진리를 배워서 나아가면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죄가 아닌데,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언제나 바른 진리를 배워서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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