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의 복
마태복음 5:1-5
마태복음 5:1-5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천국이 부요해짐
본문 1-3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않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님이 산에 올라가서 가르치셨습니다. 첫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요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24-25에, “그러나 화 있을찐저 저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배부른 자, 부요한 자,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 가지고 배부르고, 부요하고, 웃고 있으면 영의 것이 그 사람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 영이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즉 자기 영이 가난을 느껴 좀더 영의 것을 받으려고 갈급한 심령, 사모하는 심령을 말합니다. 영의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님이 산에 올라가서 가르치셨습니다. 첫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요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24-25에, “그러나 화 있을찐저 저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배부른 자, 부요한 자,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 가지고 배부르고, 부요하고, 웃고 있으면 영의 것이 그 사람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 영이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즉 자기 영이 가난을 느껴 좀더 영의 것을 받으려고 갈급한 심령, 사모하는 심령을 말합니다. 영의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이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여야 합니다. 가난해서 좀 더 영의 것을 찾으려 하고, 신령한 양식을 얻어먹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부요한 자는 이것과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부요한 자는 지옥이 저희의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되어 신령한 양식을 더 찾아 먹으려고 애를 쓰는 그 사람에게는, 천국이 더욱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가난한 상태가 벌써 천국이 임한 것이지만 좀더 신령한 것을, 영의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천국이 더욱 더 많이 임하게 됩니다. 즉 점점 천국이 더 이루어져 나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좀 얻어먹으면 이어 다 소화시킵니다. 그리고 또 가난을 느끼고 좀더 얻어먹고, 이어 다 소화해서 또 가난을 느끼고, 계속 가난을 느끼는 상태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영의 것을 찾으려고 사모하며 간절히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전도서 5:12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논에 나가서 일하다가 잠간 쉬는 시간에 논두렁에 누워서 잠을 자면 아랫목(아궁이에서 가까운 쪽의 방바닥)보다 더 낫습니다. 논두렁이 흙이고 울퉁불퉁하여도 거기 누워서 자면 잠을 달게 잡니다. 그러나 부자는 배부름으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은 밥을 큰 밥그릇에 곱으로 담아가지고, 그것을 다 먹습니다. 그만큼 먹어도 한 두 시간 있으면 배가 고파서 “중참 가지고 오너라” 또 두 시간 있으면 배가 고파서 또 “중참 가지고 오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은 하루 세 번 먹는 것도 소화가 잘 안되어 많이 못
먹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무엇을 주면 이어 다 소화시켜서 또 배가 고픕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으면 또 이어 소화시켜서 더 받으려고 합니다. 더 사모하고 더 사모하여서 계속 모자랍니다. 계속 모자라므로 계속 가난하고 또 계속 받아먹고 또 가난하고... 그 사람은 항상 가난합니다. 영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하고, 항상 받아먹으려고 애를 쓰고, 항상 가난을 느끼고 나가는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도 돈이 더 모자랍니다. 가난한 사람은 모자라도 쌀 한말 모자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몇 억대, 몇 십억, 몇 백억 모자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더욱 더 가난하고, 더욱 더 사모하고, 더욱 더 받으려 하고, 또 가난하고, 또 모자랍니다. 그러나 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만 먹어도 소화불량이 생기고 더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점점 빼앗기고 그 사람에게는 천국이 임하지 않습니다. 세상 것으로 부요해지고, 세상 것으로 만족하고, 세상 것으로 위로받는 사람은 천국이 점점 없어집니다. 속에 좀 있던 것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부한 자는 회개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내려가야 하며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신령한 것을 찾으려고 산으로 들로 멀리 찾아다닙니다.
필자가 청년시절 이북에 있을 때에 박천에서 이기선 목사님이 사경회를 한다고 합니다. 박천은 청천강하고 대동강 중간에 있는데 박천에 가려면 약 십리(십리는 약 4km) 걸어가서 기차타고 영미라는데서 내려서 또 거기서 몇 십리를 걸어가서 청천강을 건너가야 박천교회가 있습니다. 그래도 몇십리 걸어가서 기차타고, 또 걸어가서 강을 건너갑니다.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들은 먹여 주어도 잘 안 먹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항상 사모하고, 신령한 양식을 먹으려고 애를 쓰는 그 사람에게 천국이 더욱더 많이 임합니다. 가난한 것이 벌써 천국이 임한 상태이지만 그 사람은 점점 더 천국이 많이 임해서 그 심령 속에 천국이 부요해집니다.
2. 애통하는 자의 복
위로를 받음
본문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웃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천국에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으며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애통은 첫째는 죄 때문에 애통합니다. 죄에서 나오려고, 죄를 이기려고, 죄를 회개 하려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둘째 애통은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살려고, 좀더 거룩해 지려고, 좀더 신령한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좀더 올라가려고 애통 합니다. 이 두 가지 애통이 없는 사람은 위로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애통이 없는 사람은 죄에 대해 감각도 없어지고 위로가 없습니다. 좀더 나아지고, 좀더 올라가려고, 좀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려고, 좀더 진보가 되게 하려고, 좀더 자라나려고 하는 것이 없는 사람도 위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죄를 붙들고 애통하여야 하며 의를 이루기 위해 애통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15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죄인 가운데 죄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지 오래 되었고 전도도 많이 하였으나 현재 죄인 가운데 괴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날마다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한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것이며 현재 자기 속에 있는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죄를 찾아 계속 회개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신을 벗기 위해 40년간 미디안에서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40년간 미디안 생활은 모세의 신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신 벗는 것을 40년간 한 것입니다. 신을 벗으면 그 안에 또 신이 있습니다. 양파와 같습니다. 양파 껍데기 하나 벗겨버리면 그 안에 또 양파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파를 벗기면 또 있고 또 벗기면 또 있습니다. 계속 벗기면 양파가 다 없어집니다. 우리가 신을 벗는 것도 처음의 것 하나 벗었다고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또 벗어야 하고 또 벗어야 하고 또 벗어야 합니다. 이처럼 날마다 죄를 붙들고 애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의를 이루기 위해 애통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는 생활, 의를 행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는 생활, 신령한 세계에 올라가지 못한 것을 애통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올라오라고 했는데 올라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7계단으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계단 올라온 후 다 된 줄 압니다. 또 어떤 사람은 2계단, 3계단에 올라와서 다 된 줄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4계단에 올라가야 하고, 5계단에 올라가야 하고, 6계단에 올라가야 하고, 7계단에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가 몇 계단에 올라간 것 같습니까? 7계단 올라간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1계단, 2계단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올라오라, 한 계단 더 올라오라, 거기서 또 한 계단 더 올라오라 할 때 올라가지 못해서 애통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올라가야 하는데 안 올라가집니다. 그래서 날마다 애통하면서 또 올라가려고 하고 또 실패하면 또 올라가려고 합니다. 백번 실패해도 또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이 잘 안되면 또 하여야 합니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실패했으면 ‘또 올라간다’, 실패했으면 ‘또 올라간다’ 하며, 계속해서 성공하도록까지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는 것을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붙들어 주어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애통하는 생활을 계속하여야겠습니다.
3. 온유한 자의 복
땅을 기업으로 받음
본문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으며, 온유가 이깁니다. 온유는 성격상의 온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주장, 제 생각, 제 뜻, 제 고집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하나님의 주장을 받는 생활이 온유입니다. 자기주장대로 하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물병에 물을 넣으면 물이 병의 형태대로 그 안에 들어가 고여 있습니다. 둥그런 병에 들어가면 물이 둥글어지고, 사각형 병에 들어가면 물이 사각형이 됩니다. 물이 온유하기 때문에 그릇대로 자리가 잡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온유하면 말씀의 인도대로 만들어집니다. 말씀대로 되는 것이 온유입니다. 내가 하여야겠다는 것이 다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땅을 차지하고 대성공을 합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땅의 모든 것이 다 그 사람에게 이용된다는 것이고, 대성공 한다는 뜻입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차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완악한 사람은 인심을 잃어버립니다. 온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환영을 받고 마음을 차지합니다. 또 온유해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주어서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세상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남의 것이라도 다 자기 구원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상 만물도 온유한 것이 이기게 만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강한 것보다 온유한 것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즉 고양이가 강하고 쥐가 온유한데, 고양이가 쥐를 밤낮 잡아먹어도 쥐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매가 꿩을 잡아먹는데, 매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꿩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데, 큰 고기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작은 고기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강한 것 보다 온유한 것이 이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도 뿔은 강하고 귀는 온유한데, 뿔 부러진
소는 있어도 귀 부러진 소는 없습니다. 혀는 온유하고 이는 강한데 치과 병원은 있어도 설과 병원은 없습니다. 치아는 32개 가지고도 모자라서 밤낮 치과에 가는데, 혀는 하나가지고도 일생 쓰고도 남아서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도 하나님이 온유한 것이 이기게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가 온유하여야 합니다. 온유하면 세상에서도 승리합니다. 온유는, 말씀에 가라고 했으면 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앉으라고 했으면 앉는 것입니다. 말씀이 양보하라고 하면 양보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이 많이 주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의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다 이용당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 받습니다. 그러므로 온유가 이기는 것입니다. 강해서 싸우고, 다투어 남을 정복하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므로, 땅의 모든 것이 네 구원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복을 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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