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일 금요일

마태복음 5:1-12 팔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팔복
마태복음 5:1-12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복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여덟 가지 복으로 세상의 오복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오복은 오래 사는 것, 부귀, 건강, 덕, 죽을 때 잘 죽는 것으로 세상의 오복은 죽을 때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팔복은 영적인 복이며, 하늘나라에 영원히 쌓아둘 복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본문 1-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복이 있으며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천국에 대하여 가난한 것으로 다 내어 놓고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것만 사모하는 것으로 영의 것을 계속 요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신령한 것을 좀더 요구하고, 신령한 것을 좀더 사모하고, 신령한 것을 좀더 받으려고 하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심령이라는 것은 영혼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면을 말합니다.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영이 산 사람입니다. 심령이 깨어 산 역사가 있어야 가난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심령이 잠자는 상태에 있으면 가난을 느끼지 못합니다. 영이 깨어서 심령이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게 됩니다. 심령에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갈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많은 것을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영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영의 일을 해 나가면 또 다시 모자라게 되어 다시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심령에 가난을 느껴야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이 나며, 심령에 가난을 느껴야 성경을 배울 때에도 열심히 듣게 되며,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고 정금보다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6:24에 심령의 가난함이 없이 배부른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부요한 자는 재물과 세상적인 것과 종교의 의식적인 것과 사업적인 것으로 만족합니다. 누가복음 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부요한 마음을 가졌고, 요한계시록 3:14-22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교 의식과 사업적인 면과 교인수가 많은 것을 가지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수치를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신령한 것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것이 없어질 때에 함께 망합니다. 그러므로 화가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예배당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것,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예배 한 시간만 드리면 되는 줄 아는 것, 등이 다 배부른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좀 더 받아야겠다, 더 배워야겠다, 더 깨달아야겠다, 좀더 사모하여야 겠다”하며 더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예배시간 전에 나와 기도하며 예배는 한 시간도 빠지지 않습니다. 주일 오후 예배도 빠지지 않고, 수요 예배도 빠지지 않고, 기도회도 빠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는데 갓난아이는 젖을 사모하여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먹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할 때 벌써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 더 많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2. 애통하는 자

본문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웃는 자가 복이 있는 줄 아는데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배부르며 웃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눅 6:25). “배부른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반대입니다. 배부른 심정과 배부른 태도로 나가는 자들은 귀한 진리를 주어도 받지 않고 내어버리며, 의에 대해서 귀히 여기지 않고 흘려 떠내려 보냅니다. 또 “웃는 자”는 애통하는 자와 반대로 육신적 향락으로 웃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영적 생활에서 떠났기 때문에 죄에 대한 애통이나, 의를 이루기 위한 애통이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애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웃는 자는 세상 것이 없어질 때에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며 배부른 자는 주릴 날이 올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죄 때문에 애통하면 죄사함 받은 기쁨이 있고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애통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전에는 내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었다고 하며 전에 지은 죄를 가지고 늘 애통하였으며(딤전 1:13),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죄를 붙들고 매일 아침에 닭이 울 때마다 회개하였다고 합니다(마 26:75). 또 다윗은 간음죄로 인해서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회개하였습니다(시 6:6).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죄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애통하며 회개하여야 합니다.

의를 이루지 못한 것을 애통하여야 합니다.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아직도 아이라고 하였습니다(히 5:12). 말씀대로 주님을 닮아가지 못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신앙의 달음박질 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애통하여야 합니다. “거룩하게 해 주시옵소서, 진실하게 해 주시옵소서”하며 좀더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날마다 애통하여야 합니다. 현재의 죄, 과거의 죄를 붙들고 애통하여야 하고, 올라가지 못하고, 나아지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이기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능력을 입혀서 말씀대로 만들어지게 하십니다. 즉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면서 말씀의 표준에 도달하려고 힘을 쓰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기독교는 애통을 통과한 후에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또 애통을 통과한 다음에 오는 기쁨이어야 참된 기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애통하면서 힘을 기울이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조금씩 말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눈물을 통과하여 얻는 기쁨이 참으로 가치 있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생명이 자라나게 되고, 새로운 영적 세계가 발견이 되며, 영이 힘을 얻고 소생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한량없이 내려옵니다.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므로 하나님이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자

본문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온유한 것이 땅을 차지합니다. 짐승들도 강한 짐승보다 온유한 짐승이 많이 번식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지만 고양이보다 쥐가 많고, 매가 꿩을 잡아먹지만 매보다 꿩이 많고, 큰 짐승이 작은 짐승을 잡아먹지만 큰 짐승보다 작은 짐승이 많습니다. 바다의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지만 큰 물고기보다 작은 물고기가 많습니다. 소가 귀는 온유하고 뿔은 강한데 강한 뿔은 부러져도 귀는 부러지지 않습니다. 뿔 부러진 소는 있어도 귀 부러진 소는 없습니다. 또 사람에게 치아가 있고 혀가 있는데 연약한 혀는 하나 가지고 쓰고도 남고, 강한 이는 모자라서 치과 병원에 갑니다. 치과 병원은 있어도 설과 병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것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온유한 것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강하면 부러집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고, 완악하지 아니하고,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하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때로는 고집쟁이라는 말을 듣게 되나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뻣뻣하고 고집하고 완악한 것은 온유와 반대입니다. 그것은 땅을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아가는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이용당합니다.

고린도전서 3:21-22에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에게는 만물이 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용되므로 땅 위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것이 땅을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온유한 자는 많은 사람을 얻습니다. 제 고집대로 하고, 제 맘대로 하고, 자기를 위하려고 하고, 강퍅하게 나가는 것은 땅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설 자리가 없이 됩니다. 온유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습니다. 또 말씀대로 잘 순종하므로 자신이 잘 만들어집니다. 말씀대로 만들어진 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 고집대로 하지 말고 “주여 믿습니다, 이젠 맡깁니다, 주의 인도만 따라 갑니다”하며 하나님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가며 만물이 하나님의 형상을 좋아하며 따라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사람에게 만물을 다 맡겼습니다(창 1:27-28).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본문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의만 거합니다. 의가 아닌 것은 하나도 상달이 못됩니다.

베드로후서 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9:12- 19에는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의를 이룬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가실 때 세례요한이 내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내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겠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 3:13-15). 예수님이 의를 이루시려고 세례를 받으셨으며,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도는 천하를 다 준다고 하여도 의가 아니면 행치 말고 의를 이루는 일이라면 죽음이라도 사양치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은 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다니엘은 의를 위하여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성도가 “의”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게 되고 또 자기가 의를 이루어 만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배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기 위해서 밤낮 애타는 심정으로 사모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의를 이룰 날이 오게 됩니다.

성도를 이 세상에 살게 하는 목적은 믿는 일을 잘하여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ࡒ의ࡓ인 줄 알면서도 자기 육신을 아끼느라고 따라가지 못하고 돈과 인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의가 얼마나 귀한 것인 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인 줄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재산이나 자기의 생명을 잃어버려도 따라가야 하며, 무엇을 하든지 의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며 불의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9:9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음으로 그 의가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9:8에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킨 의로운 행실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빛나는 세마포가 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날마다 힘써 믿음을 지키면 그 행위에 의하여 세마포가 깨끗하여지고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의”면 낮아져도 따라가고, 손해가 나도 따라가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따라가야 합니다. 의를 하나 이루면 자기 영이 그만큼 배가 부르고, 강해지고, 자라나고,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큽니다. 의 하나가 중요한 것입니다. 의를 잃어버리는 것은 천하를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4-25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세세토록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고, 공부를 많이 하여 유명한 박사 학위를 받고, 큰 권세를 얻었다 해도 그 영광이 잠시 잠깐 후에 시들어 없어집니다. 오직 의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내놓고 의를 지켜야 합니다. 의 하나는 생명보다 귀합니다. 소돔, 고모라에서 롯이 의를 지켰으므로 의로운 롯을 하나님이 건져 내셨다고 하였습니다(벧후 2:6-7).

의를 배반하지 않고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이 건져 주십니다. 지금은 의가 다 없어지는 세대인데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하여야겠습니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고, 의로운 교회를 세워 나가고, 의로운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의”를 이룰 수 있을까 하며 의를 이루어 나가는데 힘을 써야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

본문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되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약 2:13).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긍휼의 세계이며, 사랑의 세계이며, 자비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이 온유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베풉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더 많은 긍휼을 주시게 되므로 긍휼의 그릇이 점점 커집니다. 그릇이 커지면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 더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손해를 주고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불쌍히 여겨 용서 해주어야 합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 해주면 되겠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8:21-22).

6. 마음이 청결한 자

본문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지려면 물욕, 정욕, 사욕을 버리고 중생한 영으로 영적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마음은 청결한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이요, 깨끗한 마음이요, 의로운 마음입니다. 중생한 영으로 살면 언제나 마음이 청결하며, 깨끗하며, 거룩하며, 화평이 옵니다.
중생한 영혼에는 언제나 성령이 내재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마음을 사용하면 선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만 좋아하며 그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롬 7:22).
그러나 마음이 육체의 부패성에게 이용될 때에는 불의의 병기가 됩니다(롬 6:15-19). 즉 부패성이 마음을 이용하면 악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멀리하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려면 마음이 항상 중생한 영에 붙들려서 중생한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7. 화평케 하는 자

본문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하나님과 화평하여 자기 마음에 화평을 누리고, 다른 사람과 화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화목제물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화목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화목제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과 화목이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되면 자기 마음도 화목이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도 화목 됩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고통 가운데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선하게 쓰고 하나님을 순종해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이 건져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지 못했으면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다”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면 자기 마음도 화평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괴로움이 들어오고, 고통이 들어오고, 외로움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목하면 자기 마음에 천국이 임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자기 마음에 화평을 가지고, 그 화평으로 다른 사람과 화목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겠습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본문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것은 벌써 의를 소유한 증거입니다. 그 사람은 벌써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고 또 더 많이 천국을 소유할 것이며 더 많은 상급을 받을 사람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로 비방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핍박이 올 때에 기뻐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핍박이 오는 것은 예수님이 속에 있는 증거이며, 믿음이 산 증거이고의의 길을 걷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해서 욕먹고, 핍박 받고, 비방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겠습니다. 핍박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연단이 되어 더 좋은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전에 있던 모든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핍박을 받게 되면 선지자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줄 알고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겠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달게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