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법
마태복음 5:13-26
마태복음 5:13-26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
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1. 맛이 나는 소금
천국에도 작은 자가 있고 큰 자가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면 영원히 큰 자가 되고 큰 자로 삽니다. 천국에서 작은 자는 큰 자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법은,
‘맛이 나는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소금이 되어 있습니다.
소금의 특징은 맛에 있으며, 소금은 왕으로부터 거지까지 다 필요합니다. 소금을 안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 먹고는 생명이 유지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것과,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 등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에서 맛을 내고 부패하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이 세가지 역할을 잘 하여야 합니다. 소금의 직무를 잘 감당하면 어디에 가나 맛이 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맛을 냅니다. 그러나 맛을 잃은 소금은 신앙의 맛을 잃어 버려서 무미건조하게 되고, 하나님은 내어 버리시고, 세상 사람들은 발로 밟고 비방합니다. 맛 잃은 소금은 신앙의 맛, 기도의 맛, 말씀의 맛이 없어집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면 맛이 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거창에 배추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6.25사변 때 인민군이 주일날 “짐 지고 가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날이라서 짐 못 지고 간다”고 했더니 그러면 “개를 끌고 가자”고 해서, “주일날 개 끌고 가지 못한다”고 했더니 또 “마당을 쓸라”고 해서 “주일날 마당 못 씁니다”하였더니, 뒷동산에 데리고 가서 쏴 죽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맛을 잃지 않은 소금입니다. 끝까지 짠맛을 유지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큰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는데, 이렇게 천국에 간 사도바울과, 죽을 때 회개한 강도와 어떻게 같겠습니까? 같다면 그것은 불
공평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신앙양보하고 세상이 하라는 데로 다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안 지키고 진리를 양보하는 것은 맛 잃은 소금입니다.
2. 빛이 비추어 나가는 등 (燈)
말 아래 두지 말 것
본문 14-15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벌써 빛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누구나 다 빛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산위의 동네가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숨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빛을 말 아래 두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 아래 둔 빛은 밖에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등불을 켜서 곡식 되는 말로 뒤집어 씌워놓으면 전부 캄캄합니다. 등불을 안 킨 것과 같습니다. 빛은 빛인데 말 때문에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하므로, 말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말을 깨뜨려 버리면 빛이 비추어 나갑니다. 빛이 없어서 비추어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 때문에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1) 지연, 학연, 혈연, 당파심, 지방관념... 등이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사회에 당파심이 많이 있고 지방색체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이 이것을 벗어나야 바로 됩니다. 지연, 학연, 혈연...이것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2) 자기욕심, 자기명예, 자기중심, 자기를 위하는 것, 자기 알아달라는 것 ... 등이 말입니다. 아무리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주었다고 할지라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다 무효입니다. 자기위해서 한 것은 하나님 앞에 상달 못됩니다. 열심이 있다, 연보를 많이 했다, 교회를 세웠다 해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전부 무효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것은 전부 말 아래 둔 등불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예수 믿는 것도 자기 위해서 믿는 것은 낙제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성경학교 한 학기 마쳐놓고, 학기말 시험을 구두시험으로 하는데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 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려고 믿습니다” 하면, “너는 낙제이다 저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셨으므로 감사해서 믿습니다” 하는 것은 합격입니다. 그때 합격 맞은 사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은 낙제입니다. 또 자기를 위해서 선한 일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봉사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직분을 맡는 것도 낙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3.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함
본문 16-19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행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행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입니다.
무엇을 행하여야겠는가? 자기 진리를 행하여야 합니다. 즉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합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 그것을 찾아서 행하여야 큰 자가 됩니다.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 몇 가지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행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막혔던 것을, 행함으로 인하여 다 뚫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돌아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보일러와 같습니다. 보일러가 원 보일러에서 돌아 다시 원 보일러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 막히면 다 막힙니다. 자기가 마땅히 행하지 못하는 것, 누구하고 막힌 것,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못 고치는 것,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 등을 뚫어 놓아야 합니다. 거짓말 하고, 사기, 횡령하고, 외식하고, 간음하고, 음란한 마음 품고, 하나님이 맡긴 일에 충성 하지 못하고, 정도로 걸어가다가 외도하는 것, 주일날 생일 집에 가고, 결혼식에 가는 것... 등을 고쳐야 합니다.
요새 교회들이 주일날 장례식하고, 추도예배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겠다는 정신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면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고난이 와도 그것을 행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찾아 그것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큰 자가 되고, 행하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자는 작은 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다 갑니다. 그러나 많이 자라나서 가는 사람과 자라나지 못하고 간 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살 난 아이는 전깃불, 자동차, 에어컨... 등을 모릅니다. 자라난 사람은 다 알고 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도 사용할 수 있고, 비행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라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살인하지 않고, 신앙 양심을 쓰고, 사람을 살려 나가는 자
본문 21-22절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고 노(怒)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노하는 것부터 살인에 들어갑니다. 또 ‘라가’(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 ‘머리가 빈 녀석’,‘무가치한 자’라는 경멸과 조롱의 표현)라고 하는 자도 살인한 자입니다. 형제를 미련한 자라고 하는 자도 지옥 불에 들어갈 살인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잘
못하여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는 자녀들을 격노케 하지 말고, 형제간에는 서로 노하는 일이 생겨도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가’라는 것은 욕하는 말입니다. 일본말로는 ‘빠가야로’가 욕하는 말입니다. 한국말로는 ‘깍정이 같은 놈’, ‘문둥이 같은 놈’, ‘개자식’, ‘상놈의 새끼’, ‘백정놈’,... 등이 욕하는 말입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백 데나리온입니다. 큰 것을 하나님께 탕감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자’하며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官隸)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하였습니다. 송사하는 자는 신앙양심입니다.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 송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양심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쓰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신앙양심을 안 쓰는 자는 하늘나라에 가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됩니다. 신앙양심을 쓰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됩니다. 재판관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재판관은 율법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5:45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 반대 할 때 계속 죄를 범하고 나가면 율법이 정죄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이 재판장이 되어서 감옥에 가둡니다. 감옥에 가둔다는 것은 흑암 속에 갇힌다는 것입니다. 관예에게 내어 준다고 하였는데 관예는 죄악의 세력을 말합니다.
시편 32:4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양심을 버린 사람은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1:19에 양심을 버린 사람은 배가 파선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속이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양심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하고 따라가야 하며, 아닌 것은 “아니다” 하며 떠나가야 합니다. 신앙양심을 쓰고, 그 후에는 사람을 살려나가는데 써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하였습니다.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드러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공적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고, 예수 믿는 사람은 개인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서, 상을 받을 자는 상을 받고 상을 못 받을 자는 상을 못 받고, 각자가 다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심판대를 향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바로 하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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