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일 금요일

마태복음 5:33-48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
마태복음 5:33-48

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려면,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는데, 그 시험에 넘어 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을 따라가려면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는데, 그 시험을 이기고 성경말씀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또 신앙 양심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가려면, 양심, 성령의 감동, 하나님의 섭리, 또 인도자에게 순종, 이 여러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맹세하지 말라

본문 33-36절에,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라, 또 땅으로도 하지 말라,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맹세하는 것은 올무가 됩니다. 올무가 될까봐 맹세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본문 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고, 잠언 20:25에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고 맹세하면 그 다음에는 그것이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우리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쫒아가야 됩니다. 그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따라가야 됩니다. 성경 말씀에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따라가는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안 따라가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성경 말씀과, 신앙 양심으로 분별합니다. 양심이 옳은 것을 판단하지만, 양심은 지식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성경말씀에 비판받은 양심이어야만 선한 양심입니다. 성경에 복종한 양심, 그것이 선한 양심이고 자기 양심에 아무리 옳다고 생각을 해도, 성경에 비판받지 않은 것은 옳은 양심이 못됩니다. 선한 양심이 못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비판 받은 그 양심으로, ‘옳다, 옳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서 떠나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맹세해 놓으면, 그 때는 옳은 것 같아서 맹세를 했는데, 지나가 보면 옳지 않은 것이 발견이 됩니다. 그때는 변경해야 합니다. 일단 맹세를 해 놓았으면 변경 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맹세하지 말고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만 계속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맹세를 했지만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맹세, 그것은 변경시켜야 됩니다. 그것이 맹세가 올무가 된 것입니다. 어긋나는데, 변경해야 하는데, 맹세한 것이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양보하지 말라

본문 38-42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약성경에 ‘이는 이로 갚아라. 눈은 눈으로 갚아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재판장이 쓰는 말입니다. 재판장이 쓰는 법입니다. 재판장이 재판 할 때에는, 눈은 눈으로 갚도록 판결해야 합니다. 또 이하나 부러뜨렸으면, 부러뜨린 사람의 이 하나를 부러뜨려야 합니다. 이것은 재판 법인데, 구약에도 레위기 19:18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교회들이 그것을 잘못 가르쳐서, 일반 백성에게 ‘눈은 눈으로 갚아라’ 하면서, 저 사람이 내 눈 하나 멀게 했으면 같이 가서 찔러가지고 눈을 멀게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또 이 하나 부러뜨렸으면 같이 망치를 가져와서 이를 부러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약의 근본정신대로 바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정신을 바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그 원수를 사랑해라’, ‘누구든지 대적이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고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져오라 하거든 겉옷까지도 가져가라’,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다”, “이것은 안 맞을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고, 또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주고, 또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겠느냐?”고 하면서, “그것은 약한 여자들이나 믿는 종교지, 남자들은 믿은 바가 못 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약자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약자의 교가 아니라, 강자의 교입니다. 강한 자가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오른편 뺨을 칠 때에 왼편도 돌려대면서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는 것은 인격을 무시하는 것인데, 자신의 인격이 무시당해도 믿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결을 지키고, 신앙양심을 지켜나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고 그러면 벌써 승리한 것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면 영원한 승리인데, 억지로 속옷을 가져오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주면서도 믿음 지키라는 것입니다. 네가 믿음을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 양보하면 죽습니다.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믿음만 잘 지키면, 이것은 겉옷 속옷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없어도 사는 것이고,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겉옷 없으면 못삽니까? 또 속옷 없는 사람은 못삽니까? 또 옷 한 벌 밖에 없습니까? 한 벌 자리 하나도 없고 전부다 두벌 이상인데, 한 벌 빼앗기면 나머지 한 벌 그것을 입으면 되지 않습니까? 뭐가 걱정입니까? 어떤 사람은 옷이 여러 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옷, 겉옷 다 빼앗기면 다른 속옷, 다른 겉옷 입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것도 빼앗기면 다른 입을 것 있지 않습니까? 자기 옷 양심적으로 몇 벌 있나 세어보십시오. 아마 여기 열 벌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구두 10켤레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구두 5켤레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나도 구두가 4켤레입니다. 하나 줘서 3켤레입니다. 또 하나 더 줘야 하는데 내발만큼 큰 사람 오면 줄려고 합니다.

겉옷과 속옷 다 빼앗겨도 그것 보다 큰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 마음의 화평, 하나님과의 교통,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그것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하나님만 모시고 살면, 겉옷 속옷이 백 벌 있는 것보다 낫고, 만 벌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천하만국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 말씀 따라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많이 주십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6.25사변 때 구제품 받으면 끼고 살았는데 요새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 벌 가질 수 있습니다. 쉽게 입고, 시장에 나가보면 얼마나 이것을 쌓아두고 팝니까? 덤핑해가지고 사면 아주 싼 것들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속옷 겉옷 열 벌도 주실 수 있고 백 벌도 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이 다 없어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되었지, 사람이 옷으로 살겠습니까?

오른뺨을 맞아서 인격을 무시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켰으면 인격이 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이미 귀하게 보십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아, 저 사람이 오른뺨을 맞을 때 왼뺨도 맞는구나” 하고 “믿음을 잘 지키는 구나” 하며 우러러보게 됩니다. 왼뺨 안 맞는 것보다 낮습니다. 자기 영이 날마다 자라나가고 인격이 더 많이 올라갑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승리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억지로 “오리 가보자!” 하며 자기에게 있는 물질들을 빼앗으려 합니다. 물질, 겉옷, 속옷, 소유권, 등을 조금 빼앗길지언정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다가 피차간 멸망하지 말아야합니다. 싸우지 않고 조금만 양보하고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됩니다. 

지금 마귀가 왜 물건 때문에 시험하게 만들어 놓느냐면, 믿음 빼앗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빼앗으려고, 물질 때문에 시비가 생기게 하고 또 빼앗아 가려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는데, 우리가 화평한 방법으로 안 빼앗기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 악한 자가 와서 기어코 빼앗으려고 할 때에는 악한 자하고 싸우느라 믿음 팔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와 싸우느라 마음 상하고, 기도 못하고, 상처를 받고 하는 것은 벌써 믿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악한 자 때문에 믿음을 빼앗기면, 속의 성결을 빼앗기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빼앗깁니다. 그것은 천하를 다 빼앗긴 것입니다. 물질을 양보하더라도 믿음 안 빼앗기고 성결을 안 빼앗기면, 그것은 대 승리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는 법이 아니라 이기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천하에 있는 것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에게 왜 안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왜 싸우지 않습니까? 겉옷, 속옷 때문에 왜 안 싸웁니까? 믿음 지키느라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안 싸우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질까봐 매를 맞든지, 물질을 빼앗기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만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대항치 않고 말씀만 지켜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양보하면 죽고, 신앙 양심 양보 하면 죽습니다. 아무리 핍박이 오고, 아무리 환난고통이 오고, 아무리 악인이 악용(惡用)을 하고, 고문을 하고 쫒아내고, 우리가 감옥에 가고, 악인이 죽인다고 해도 말씀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양심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빼앗겨도 괜찮습니다. 희생당해도, 그 이상 하나님께서 몇 배나 보충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왜 하나님께서 안주시겠습니까? 더 많이 주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더 주십니다.
믿음 지키는 가운데 자기 영이 자라나고, 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고, 또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니 얼마나 복된 길입니까? 이것은 손해 보는 길이 아니고 큰 유익을 보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낮아지는 길이 아니고 크게 높아지는 길입니다. 이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받는 것, 더 존귀해지는 그런 진리입니다.

또 ‘누구든지 억지로 너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억지로 끌고 오리를 가려고 하면, 십리까지 갈 각오를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오리 안 가겠다고 싸우고, 다리 걸어서 돌멩이로 때리고, 씨름하고, 오리를 안 가겠다고 때리고, 갖다 박고, 그렇게 해서 오리를 안가면 또 무엇 하겠습니까? 대가리(머리)가 다 깨지겠는데 오리 안 갔으면 뭐합니까? 믿음 다 팔아먹으면서 오리 안 갔으면 뭐합니까? 속이 상해서, 부글부글하면 마귀에게 믿음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리 안 가느라고, “인권을 무시하느냐? 왜 나보고 오리를 억지로 가자고 하느냐? 사람의 인권인데” 하면서 싸우고 다투면, 오리는 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 난 것은 무엇입니
까? 그것은 믿음, 다 결단 난 것입니다. 대가리(머리) 다 결단 났습니다. 속이 다 결단 났습니다. 속이 상했고, 기도를 못합니다. 오리를 안가고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가서 앉아 있으면 속이 편안합니까? “나보고 오리 가자고 하고 그랬는데 안가고 들어왔다.” “어떻게 안 갔느냐?” 하면, “헐떡헐떡” 하면서 싸우고 돌아왔다고, 이기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리는 안 갔는데 왜 화평이 없습니까? 오리 안 가느라고 마음이 상했다고 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오리 안 가서 마음 상하고, 믿음 빼앗기고, 성결 빼앗기고, 화평 빼앗겼으면 소용없습니다. 오리 안 가느라고 우리가 성결을 빼앗긴다면 얼마나 많이 손해보는 것입니까?
억지로 십리를 가도 하나님과 함께 하면, 대승리입니다. 대승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믿음 잘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십리 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십리 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도 마음의 화평을 누리면서, 성결을 유지 하면서 십리를 가면, 억지로 갔다 오긴 하지만 얻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믿음을 지킨 것이고, 믿음이 자라났고, 자기 심령 속에 화평이 커지고, 영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말씀 지킨 것, 믿음 지킨 것, 천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하지 말라

이렇게 성도가 이런 유익을 보고, 유익 가운데서 영이 자라나라고, 하나님께서 이 도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은 진리를 양보하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성경을 어기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데, 성경을 어기고 십리 까지 같이 갔다 오면,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받는 길입니다. 진노하십니다. 성경을 어기는 길을 가는 것은 죽어도 가면 안 됩니다. 한 발짝도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인데,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느라고, 사정 봐주느라고, 그 사람과 화평을 누리려고, 그 사람과 싸우지 않으려고 성경 어기고 가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기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데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 놔두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을 어기면서 가자고 하는 것은 절대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길입니다.

가령, “주일날 결혼식 보러 오너라” 또, “주일날 환갑집에 오너라”또, “제삿집에 오너라” 이런 문제 같은 것, 또 “주일날 노라리(놀이) 가자”, “야외 나가자”, “가서 조금 놀다 오자”, 그런 것이 다 주일을 못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는 ‘성경에 가라고 했으니까 가야지’ 하면서 그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오리 가니까 십리까지 갑시다”, 또 십리 가자고 하면 “이십 리 갑시다” 하면 됩니까? 여기로 말하면 “주일날 놀러 원주까지 갑시다” 하면 “강릉까지 갑시다”, “청평 가자” 하면 “그것의 배나 갑시다”라고 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주일날 놀러 다니는 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죄 값은 뭐라고 했습니
까?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죄 값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씀도 잃어버리고, 믿음도 잃어버리고, 사람 사정 봐주느라고 자기 생명도 잃어버리고, 마음의 화평과 성결을 잃어버리고, 기도하는 것도 다 잃어버리고, 영적 생활 다 잃어버립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지키면서 다른 문제를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와 신앙은 절대 양보하지 말고, 신앙 양심은 절대 양보하지 말고,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이것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지키느라 다른 문제는, 물질문제나, 인권문제나, 인격문제나, 이런 것이 희생이 조금 되어도, 손해를 봐도, 손해 보면서 믿음 지키고, 신앙 양심 지키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고, 성결 된 길을 걸어간다고 하면, 이것은 천하를 다 얻은 것이나 같습니다. 이것은 몇 억 만 배의 유익을 본 것입니다. 손해가 아니라 몇 억 만 배 유익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에게 지지 말고, 어떠한 손해가 와도 양심을 써서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이것을 양보하지 말고 계속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시적인 손해도 보고, 매도 맞고, 손해도 보지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잘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상 주심

말씀을 순종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가, “야, 여기 하나님 말씀 지키는 사람 하나가 있구나.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해주십니다. “물질보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줄까? 무엇을 줄꼬?” 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하고, 제일 좋고, 손해 본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상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바라보는 땅, 걸어가는 땅을 다 주심

본문 46절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 창세기 13:14-17에는,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손해 보면서라도 매 맞으면서라도 믿음 잘 지켜나가면,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면 상이 크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 목자가 서로 싸울 때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너 좋은 데로 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네가 오른쪽으로 간다면 나는 왼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 때 소돔 고모라 땅이 들판이 좋고 초장이 좋았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망하기 전에는 에덴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소돔이 그렇게 좋은 땅입니다. 롯은 아주 좋은 땅이 있으니까 그리로 자기가 먼저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안 가는 곳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반대로 간다고 했으니까, 우하면 좌한다고 했으니까, 저 가나안 산골 헤브론, 가나안 산골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 지키려고 간 것입니다. “왜 양보하고 갔느냐?” 아브라함 보고 누가 물어보면,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살기 때문에 아무데나 가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전체고, 또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살았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데나 가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모시고 가면 나는 됩니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롯은 세상 좋은 것 보고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도 모시고, 세상도 따라 갔습니다. 그러니까 한 손에는 하나님도 붙들고, 다른 한 손엔 세상 붙들고 따라간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다 양보하고 산골 가나안 땅으로 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하고 불러 주시고, 그 다음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은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십니다. 또 “너는 일어나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네가 그것을 네가 발로 밟는 땅은 다 네게 주리라” 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세상 것을 양보하고 하나님 한분만 붙들고 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주셨습니다.

며칠 전에 전도사 한분을 만났는데, 그분 하는 말이, 자기는 형제들이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한다고 합니다. 그것 아주 참 좋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제가 참 감명을 받았습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면 얼마든지 주실 것 아니겠습니까? 믿음 지키면, 신령한 것부터 주실 것이고, 그 다음에 다른 것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이제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세상 것 다 희생하고 따라왔으니, 네가 네게 복을 줄 것이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보이는 땅 전부다 네게 준다. 또한 네 자손에게 준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이는 땅 다 준다고 하니까 얼마나 많겠습니까? 눈을 들어서 눈에 보이는데 까지 다 아브라함의 것입니다. 동서남북, 얼마나 많이 보이겠습니까? 그 땅이 조금 높은 지대였으면 굉장히 많이 보였을 것이고, 조금 평지라고 해도 아마 몇 십리 이상 보였을 것입니다. 조금 높은 데면 몇 백리, 백리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몇 백리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땅 다 네게 준다. 바라보면 다 너 준다’ 이것의 신령한 뜻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말씀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사모하면, ‘전부 다 네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세계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것을 신령한 눈으로,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천당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부활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수님이 생명이 되는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우리를 위해 하늘에 복을 쌓아둔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은 것을 보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또 믿음 지키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준다는 그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전부 그 사람 것이 됩니다. 믿고 바라보라. 바라보고 믿고, 믿고 바라보고 소망을 가져라. 소망 가진 것은 다 네게 준다.

그 다음에 이제는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 다 너에게 줄 뿐만 아니라, 이제 발로 걸어가라 이것입니다. ‘종과 횡으로 걸어가면 그 안의 것은 다 네 것이다.’ 종으로 걸으라는 것은 세로로 걸으라는 것이고, 횡은 가로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열십자로 걸으라는 그것입니다. 한번 쭉 걸어갔다가 그 다음에 중간에서 또 옆으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백리 걸어갔으면 옆으로도 백리를 걸어가라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의 것은 다 네 것이라는 것입니다.
걸어가면 다 네 것이 된다고 그랬는데, 걸어 갈 때에 어떻게 걸어갔을 것 같습니까? 걸어간 것은 전부다 자기 것이 되니까, 자기 자손 것, 영원히 자신의 것이니까 어떻게 걸어갔을 것 같습니까? 아침에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가 하루인데, 해 뜰부터 해 질 때 까지 걸어간 것을 준다고 하면 언제부터 걸어갔을 것 같습니까? 새벽부터, 아예 해 뜨기 전 새벽부터 밥 먹고, 점심 먹을 것 다 싸가지고, 허리에 차고 가면서 점심 먹었을 것입니다. 점심 먹는 시간만 쉬어도 얼마나 많은 땅이 없어집니까? 가면서 점심 먹어야합니다. 주먹밥 해가지고 가면서 한 덩어리씩 먹으면서 갔어야 했을 것입니다. 옆에 물통도 차고 가면서 마시면서 가야 됩니다. 가면서 마셔야 됩니다. 서서 마시면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이 못가겠습니까? 해가 뜨자마자 ‘간다!’ 하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냥 가면서 주먹밥 한 덩어리씩 꺼내먹으면서 물먹고, 또 가고, 또 가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갔겠습니까?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해질 때까지 갔을 것입니다. 가다가 조금 쉬었겠습니까? 반시간만 쉬어도 땅이 얼마나 없어집니까? 반시간에 얼마나 갔을 것 같습니까? 반시간에 5리는 갔을 것 같은데, 사방이 5리면 땅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시간에 10리 가니까, 반시간에 2Km 갑니다. 또 빨리 가면 한 3 Km 갑니다. 사방이 3Km면 땅이 얼마입니까? 쉴 시간이 없습니다.
저녁때 쯤 가면 다리가 똑 부러질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걸었을 것입니다. 쉬지 않았겠습니다. 다리가 똑 부러질 것 같아도 조금 쉬었겠습니까? ‘아이코 다리가 부러지겠다. 아프다’ 하고 조금 쉬었을 것 같습니까? ‘부러지기야 뭐 부러지겠느냐? 간다. 부러질 것 같아도 그저 간다’ 하고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을 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그래도 계속 하니까 그 다음엔 허리가 없는 것 같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져봤다고 합니다. ‘내 허리가 있나 없나?’ 하고 만져 보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만져보니까 있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아파서 없는 것 같더랍니다.

깨달은 말씀을 실행하라

이렇게 밟는 것을 너에게 준다는 것은 실행하는 것은 다 네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행하는 것, 말하자면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다 네 것이다. 너와 네 자손의 것이다.’ 즉, 실행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깨달은 말씀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견고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실행하면 전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상급을 주십니다. 성경말씀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발로 걸어가는 것을 너에게 준다는 것은 네가 실행한 것을 다 네게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라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발자국 안 떼는 사람입니다. 실행하는 것은 발자국 떼어서 자꾸 가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떼면 하나 실행한 것입니다. 또 하나 실행하면 또 한 발자국 뗀 것입니다. 또 하나 실행하면 또 한 발자국 뗀 것입니다. 열 가지 실행하면 열 발자국, 백 가지 실행하면 백 발자국, 계속 실행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실행할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도 실행하지 않고 그저 ‘주여, 주여’ 하면서 다니는 자는 소득이 없습니다. 왜 실행을 안 하십니까? 기도하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예배시간 빠지는 사람은 안 빠지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예배에 늦어지는 사람은 늦어지지 않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용서해주지 않는 사람은 용서해주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십일조 안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주일날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주일날 거룩히 지키는 것을 실행해야 되고, 전도 못하는 사람은 전도 하는 것을 실행해야 됩니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만나는 사람을 전도 못하다가 다른 사람이 와서 먼저 그 사람을 전도하면 부끄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김정희 목사하고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을 해야 해서 김정희 목사를 처음으로 제가 데려 간 것입니다. 거기에 돈 받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늘 보던 아이인데 김정희 목사가 나오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인 것 같은데 김정희 목사가 하니까 제 가슴이 철렁 내려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내가 못 하기 때문에 김정희 목사한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상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해야 겠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저에게 돌아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리석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했으면 그것이 자기 것인데 다른 사람이 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로 갔습니다. 이젠 내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한 사람이 있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이 있습니다. 자기가 상 받습니다. 또 심방 잘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병난사람을 잘 돌봐주고,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실행을 한 사람은 상 받습니다. 우리가 형제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고, 용서해 주고, 또 선을 베풀고, 전도하고, 선교사 보내고, 교회를 세우고 이런 일, 하나님 앞에 실행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실행한 것만큼 그 사람에게 큰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실행을 많이 하면 복이 많습니다. 상급이 많습니다. 또 성경말씀을 바라보고 그대로 소망하는 것만큼 상급이 많습니다. 바라보고 소망하고 나가야합니다. 믿고 바라보고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미 받을 줄로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잘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 시험을 이기면서 하나님을 잘 따라가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상급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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