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일 토요일

마태복음 6:5-15 주기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주기도
마태복음 6:5-15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그것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1. 골방에서 기도하라

본문 5-6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세, 기도하는 정신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먼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골방은 영적 골방을 가르칩니다. 영적 골방, 은밀한 곳을 찾아서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라 하셨습니다. 은밀한 골방, 장소적으로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는 자기의 영적 세계를 찾아서 기도하는 것이 은밀한 골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가 장소적으로도 은밀한 곳을 찾아서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습관을 세워놓고, 늘 그 동산에 가셔서, 은밀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변화산 그 높은 곳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것처럼 장소적으로 은밀한 곳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좀 더 그 은밀한 골방은 영적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이 뒤숭숭하고 복잡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영적인 세계를 찾아서 깊은 기도, 깊은 영의 세계를 찾아서 기도하는 것은 은밀한 골방을 찾아서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장소적으로 은밀하지 않아도 어디에 있든지 은밀한 영적세계를 찾아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갚아주십니다.

2. 믿고 기도하라

본문 7-8절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랬는데, 이것은 한소리 또 하고 한소리 또 하고 하는 것이 중언부언이 아니고, 믿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언부언입니다.

믿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같은 말을 계속 반복을 해도, 그것은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같은 말을 세 번 기도 했는데, 그것은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일곱 번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믿지 않고 또 말을 많이 하여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줄 알고 떠들어대는 것은 중언부언이고, 믿고 기도하는 것은 같은 말을 밤새도록 한다 해도 그것은 중언
부언이 아닙니다.

3. 주기도의 능력
본문 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도, 주기도는 전부 열 마디로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를 하루에 여러 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주기도부터 먼저하고 다른 기도하는 것이 좋고, 또 기도 다 한 다음에 주기도 한번 더 하는 것이 좋고, 또 기도 가운데 주기도 하는 것이 좋고, 늘 하고 주기도대로 이루어지기를 늘 고대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주기도대로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바로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이루어져 나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우리가 복도 받습니다. 주기도대로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만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기도를 늘 해야 되겠습니다.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교회가 다 없었던 때인데, 그 때 어떤 사람 하나가 가서 주기도 하나를 써주고 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주기도를 받아서 그것을 읽고 그대로 기도하는 가운데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주기도를 써서 베껴서 또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변화가 또 일어나고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주기도 하나 가지고 여러 사람이 그 지방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주기도가 이만큼 위대합니다. 주기도에 하나님의 복음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욕탕에 들어가서 목욕할 때에 주기도 한 번씩 한다고 합니다. 주기도를 한번만 할 것이 아니고 여러 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주기도를 자주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도

첫마디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랬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이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 거룩한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해달라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도 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기도도 됩니다.

신명기 4:10에,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노라”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늘 들어가야만 합니다. 또 자기도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고 또 자녀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는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그것은 저주 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늘 배워나가는 사람은 복 받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항상 복이 임합니다. 그 사람에게 복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하나님을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는데 이 사람에게 왜 복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고넬료의 가정은 그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에게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경외하는 성도가 되어야 되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해주는 것이 제일 큰 재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떠나면, 그것은 복을 떠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그 저주가 그 앞에 가려 막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좀 더 알고, 하나님을 좀 더 경외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 자기만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랬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라 하면 모든 택한 백성 전체가 다 들어갑니다. 택한 모든 백성의 아버지, 우리의 세계에서 택한 백성이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입니다. 첫마디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기도

둘째는 “나라에 임하옵시며” 그랬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은 통치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과의 교통,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세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 자리에서 사는 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이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택한 백성 전체의 심령 속에 임하고 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기도

셋째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 예정에 따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 하나님의 예정하신 그 뜻,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는 구원의 역사가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말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 하나님 뜻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삽니다. 우리가 바르게 이루어드리면 복을 많이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지 못하면 복을 못 받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산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어디 있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해야 되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가야 됩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하고 뜻이 아니면 안 해야 됩니다. 고난 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십자가를 질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 육신의 평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십자가라도 지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어떤 고난이어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원치 않는 곳이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니느웨로 가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자기 생각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풍파를 만나서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생각 대로, 자기 유익을 위하여 육신 중심으로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사람 따라가는 이것은 다 하나님을 뜻을 생각지 않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생각을 내버리고 자기 뜻을 이루려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동이요, 패역한 일이요, 하나님의 심판받을 일들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이면 내가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어찌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이것까지 참아라’, ‘십자가를 내가 지어야 된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예수님 잡으러 온 환도와 몽치를 든 무리에게 베드로가 환도를 빼서 말고의 귀를 깎으니까 예수님께서 “이것까지 참아라.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마셔야 됩니다. 내가 마실 잔을 내가 마셔야지 안마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서 마주 나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셨는데, 이 잔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은 십자가 안 지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려고 오셨고, 예루살렘에 올라 오신 목적도 십자가 지려 올라오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증거 하셨는데, 정작 십자가가 닥칠 때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은 고난만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십자가를 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지되 고난을 면케 해달라는 그런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하시고 마지막에는 “그러나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실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고난을 받아야 아버지 뜻이면 아버지 원대로 고난 다 받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을 했습니다.

우리 기도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정욕에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십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이면 내가 순종을 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니느웨로 가라면 니느웨로 가겠습니다’, ‘아골 골짜기로 가라면 가겠습니다’, ‘소돔 고모라로 가라면 가겠습니다. 또 가지 말라면 안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는 것은 자기 뜻을 내어버리고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드릴 목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늘 해야 되겠습니다.

날마다 영의 양식을 먹기 위한 기도

본문 11절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넷째마디로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의 양식이어야 합니다. 영의 양식 날마다 영의 양식을 먹어야 우리 영혼은 살게 되어 있는데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더 중요합니다. 영이 사는 것이 우리에게 대한 원 목적입니다. 육식의 양식은 다 더러운 것이고 부속품이고 원 양식은 영의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양식은 구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양식을 구하지 말라. 이것은 이방사람이 구하는 것이다”에서 육신의 양식 구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먼저 아신다’, ‘구하기 전에 다 주신다’고 하시며 육신의 양식을 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 주기도에서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잠언 30:8-9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30:8-9의 “나를 너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가난하면 도적질하고 부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두려우나이다” 이렇게 말한 것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이 ‘이것은 육신의 양식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주옵소서’ 잠언에 그런 말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너무 부요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배불러서 하나님 모를까봐 한 말이고, 또 너무 가난하면 도적질 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한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 연약성을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면 부한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겼고, 가난한 사람도 잘 섬긴 사람이 많습니다. 솔로몬 같은 사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까? 다윗 같은 사람 부했지만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또 거지 나사로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그렇지만 그 믿음 잘 지켰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12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내가 부요하게 될 때도 있었다. 그것도 배웠다”, 또 “가난하게 되었을 때도 배고플 때도 있었다. 이 부요할 때에나 가난할 때에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라고 합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말은 부할 때도 믿음을 잘 지켰고, 가난할 때도 믿음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제재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 다 통과하는 그 비밀을, 그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부하다고 믿음이 떠나고, 가난하다고 떠나고, 이것은 믿음이 연약한 상태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부해도 거기에 제재를 안 받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가난해도 거기서 믿음 더 잘 지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만 꼭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육신의 양식을 구하는 것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육신의 양식을 구하면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요함, 돈 많이 주셔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주시는 것을 거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요하면 하나님의 일 많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0:42에,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 대접하려고 음식을 차리느라 바빴는데 마리아는 돕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님 마리아를 가만 두어두십니까? 내 동생을 명해서 도와주라 하소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다는 말은 말씀 하나로 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직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말씀 하나면 족하다’ 한 것을 보면 그 말씀만 있다면 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5-46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충성 되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는 말은 영의 양식을 나눠 준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양식이 아닙니다. 
때를 따라서 성도들에게 영의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에 복이 있을 것이니 영의 양식을 때를 따라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나눠주는 사람이 복이 있고 일용할 양식을 받아먹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기도는, ‘영의 양식을 우리가 받아먹게 해 주시옵소서’ 영의 양식을 먹어야 새 힘이나고, 강하고, 또 달음박질 할 수 있다는 기도입니다. 양식먹지 않는 사람은 굶는 사람인데 달음박질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용할 양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자기의 영의 양식이 되도록 하면,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깨달아져서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이 일용할 자기 양식이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경말씀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깨달은 다음에는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의 성경말씀이 일용할 양식이 되려면, 우리가 늘 기도하는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성경말씀 가운데서 새로 깨달아서 회개할 바를 회개 하고, 이 말씀대로 할 바를 하려고 결심하고 깨달아서 이 말씀대로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일용할 양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목사가 먼저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새로운 성경의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말씀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어야 됩니다. 교인들도 기도 많이 하는 가운데서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서, 새로운 생명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의 힘에 의지해서 달음박질 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매일 먹어야 됩니다. 주일날 마다 먹어야 되고 또 매일 먹어야 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전에 먹었다고 오늘 안 먹으면 안 됩니다. 며칠 전에 먹은 것을 가지고 오늘 안 먹어도 된다고 하면 힘을 못 씁니다. 늘 새로운 영의 양식이 되는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시간에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과거에 깨닫지 못한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 말씀으로 자기의 힘을 삼아야 됩니다. 생명을 삼고 달음박질 해나가야 됩니다. 교회 나가서 예배드릴 때에 신령한 생명의 양식을 받지 못하면 한주일 동안 달음박질 못하고, 다음 주일날 양식 못 받으면 그 다음 주일동안 또 못합니다. 내내 허탕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은 말을 가지고 이 다음에 달음질 하겠다고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데, 한 달 전에 먹은 양식가지고 달음박질 할 수 있습니까? 일 년 전에 먹어놓은 양식가지고 금년에 달음박질 할 수 있습니까? 늘 계속해서 이 양식을 먹어야 달음박질 할 수 있습니다. 또 강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 일용할 양식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요엘 2:23에,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이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른 비는 곡식을 소생하게 하는 비이고, 늦은 비는 결실하게 하는 비입니다. 또 장마 비가 있습니다.

에스겔 34:26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 비를 내리리라”고 하십니다. 장마 비를 복되게 내리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 일용할 양식과 같은 그런 생명의 생수를 주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장마가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장마가 복되다고 했는데 장마 때에는 수해도 좀 있지만 한국에 장마가 있는 바람에 저수지에 물이 넘치고 모든 곡식이 다 풍성하게 자라나고 산에 초막이 우거집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참 복 받은 나라입니다. 어떤 나라 가보면 여름에 비 한 방울도 안 오는 나라가 있습니다. 빼빼 말라 가지고 겨울에 한 달쯤 비 오고
여름에는 한 방울도 안 옵니다. 산에는 전부다 말라가지고 빼빼하게 말라가고 길가에 풀 다 마르고 전부 사막 지대고 그렇게 적막한 그런 지방이 많이 있는데, 우리 한국이 참 복 받은 나라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은 ‘날마다 먹고 자라날 영적 양식을 주시옵소서’, 또 ‘그 말씀의 힘을 얻어서 달음박질 할 수 있는 그 영의 양식을 오늘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입니다. 그러면 때를 따라서 풍성한 은혜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사경회 하는 것이 때를 따라서 그 풍성한 이른 비 늦은 비 또 장마 비 이렇게 풍성하게 내려다 쏟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으로 다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영적 양식만 받아먹으면 그 사람이 달음박질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양식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영의 양식을 받아먹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하는 사람에게 육신의 양식은 덤으로 주십니다. 덤으로 갖다가 주십니다. 무엇 물건하나 사면 덤 하나 주지 않습니까? 덤을 주십니다. 그 육신의 양식은 덤입니다. 영의 양식을 받아먹고 영적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 영의 길을 걸으며 달음박질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덤으로 그 육신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가운데 먼저는 영의 양식이고 그 다음에 육신의 양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포함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우리가 주일날 나와서 일용할 양식을 받아야 되고 깨달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경회 할 때도 풍성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장마 비와 같은 것을 잘 받아서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나야 됩니다. 소생해 올라와야 됩니다.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

본문 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다섯째 마디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를 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죄에서 벗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인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지은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하여 준 것 같이’ 벌써 사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먼저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많이 있는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모든 죄, 우리의 모든
죄,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사하여 주셨는데, ‘사하여 주신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말은 우리 인간 사이에 막힌 죄, 사람 사이에 막힌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죄악의 담을 다 헐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죄를 사해 주신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도 믿는 사람 믿는 사람끼리 담 막힌 것, 죄악의 담이 막힌 것 이것 다 헐어 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사람사이에 서로 원수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죄 짓고 막히고, 이것을 다 사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해주셨으니 그만큼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음 심정을 가져야겠습니다.

죄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은 백 데나리온의 얼마 안 되는 죄입니다. 작은 것, 작은 죄, 이거 하나 용서해주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죄 사해 주신 것을 다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것처럼, 우리가 우리 사이에 있는 이 허물들, 이 과실들, 이것을 사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용서해 주어야겠습니다. 실제로 나가서 사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실제로 원수를 다 사랑하면서 막힌 담을 다 헐면서 사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나가야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죄에서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 죄를 벗어버리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 우리의 세계에서 자기 혼자만 죄 안 지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세계에서 전체가 죄 안 지려고 해야 됩니다. 죄에서 벗어져 나오게 하려고 해야 됩니다. 우리의 세계에서 죄 안 지으려고 해야 됩니다. 전체 죄에서 벗어져 나오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 전체의 구원을 이루어나가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주기도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구하는 기도

본문 13절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여섯 번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였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것’이 여섯 번째입니다.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오늘날 우리를 계속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더라도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렇게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은 우리이고 늘 시험에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또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힘을 써야 됩니다. 계속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되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시험에 듭니다.

마귀는 세 가지를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마귀의 그 시험하는 방법은, 에덴동산에서나, 예수님 때나, 말세 때나 똑같습니다. 시험하는방법은 세 가지,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돌로 떡덩이 해먹어라” 물질입니다. 물질시험, 돌로 떡덩이 해먹으라는 것이 물질시험 아닙니까? 첫째가 물질시험입니다. 마귀는 물질을 가지고 언제나 시험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다 물질시험입니다. 싸움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다 물질싸움이고, 서로 물고 찢는 것을 보면 물질문제입니다. 재판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다 물질문제입니다. 죽인다 하고 돌아 다니는 것, 죽인다고 하는 것, 어떤 사람이 그럽니까? 그런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받으려고 죽인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돈 좀 뜯어내려고 하는 것 결국은 전부 물질시험입니다.

어떤 목사님 집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목사의 아들이 아주 불량한 동무를 사귀고 다녔는데 그 아버지에게 돈 뜯어서 나간다고 합니다. 돈 조금 주면 얻어다가 방탕해 없애치우고 또 들어와 돈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돈이 많다는 말입니까? 돈 안주면 자기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돈 조금 주면 또 나가서 없애치우고 또 들어와서 죽인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 목사가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금은 세상 떠났습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한 것입니까? 결국은 따지고 보면 물질문제입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기도했습니다. 요새 신문에서 떠드는 사건들 보면 다 물질 문제 아닙니까? 무슨 오대양사건, 무슨 세모사건, 무슨 사건, 다 물질 문제입니다. 물질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물질가지고 이렇게 시험합니다. 그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야 됩니다. 물질시험에 안 들려면 물질 초월해야 됩니다. 아예 물질 초월해야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 말씀 하나로만 산다며 이렇게 나가야 이 마귀시험 안들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그 선악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고 했는데 그 먹음직하다는 것이 물질시험 아닙니까?

그 다음에 둘째는 무슨 시험입니까? 성전 꼭대기 올려다 세워놓고 영광을 위해서 뛰라고 합니다. “내려 뛰라” 이것은 명예영광 시험입니다. 그다음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보암직한 것, 이생의 자랑, 천하영광을 위해 절하라는 것, 다 자랑이란 말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지라’고 했는데, 이생의 자랑입니다. 

물질, 명예영광, 육신의 정욕,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늘 시험을 하는데 시험에 들게 하지 말게 해달라고 하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 이성 문제에 대한 시험 이것도 육신의 정욕입니다. 물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물욕과 정욕과 사욕 이 세 가지 시험에 안 들게 늘 기도하고 또 시험에 안 들게 늘 힘을 써야 되고 삼가 조심하여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

일곱 번째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에서 구해 달라는 일곱 번째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해주셔야지 사람이 아무리 그 악에 안 빠지려고 해도 모릅니다. 악의 그물이 씌우면 나오려야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끌리어 가는 것도 다 자기 본의로 끌리어가는 것이 아닌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괜찮은 줄 알고, 아닌 줄 알고 노느라고 한 것인데 구렁텅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새에게 그물이 씌우는 것처럼 갑자기 씌우면 악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에 나쁜 동무 사귀었다가 악한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 많습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늘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언제 이런 악한 구렁텅이에 빠질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망하고 관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 구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 구해주시면 꼼짝 못합니다. 또 전쟁도 하나님께서 안 나게 해주셔야지 전쟁 나게 되면 별 수가 없습니다. 전쟁 하나님께서 안 막아 주시면 전쟁 나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 나면 다 끌려가게 됩니다. 전쟁에 나가면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하여 주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셨습니다. 죽을 것, 죽을 구렁텅이에 여러 번 빠졌던 것을 하나님께서 다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건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건져 주셨으면 벌써 다 죽은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 죽었을 것입니다. 저부터도 죽었을 것이고 안 건져 주시면 다 죽습니다. “악
에서 구하옵소서” 기도를 늘 해야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람

여덟 번째로 ‘대개’라는 말이 들어가야 되는데, 여기는 지금 ‘대개’가 빠졌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에서 ‘대개’는 어떤 사본에는 대개가 있고 어떤 사본에는 대개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위에 일곱 가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일곱까지 기도를 했는데 왜 이렇게 일곱 가지 기도를 했는가 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를 한 것입니다. 주기도 할 때 ‘대개’ 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개’라는 말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권세 또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 이것이 하늘나라에 세세토록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를 마지막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마지막에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과 나라와 영광이, 이제 최후에 가서,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권세, 아버지의 권세와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 운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그 영광 가운데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일곱 가지 기도를 지금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지금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 언제부터 그 별이 있었겠습니까? 또 달을 쳐다보면 언제부터 달이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던 달이고, 아담 때부터 있었던 별이고, 또 다윗 때도 있었고, 솔로몬 때도 있었고, 또 예수님 때도 있었고, 그 달과 별과 일월성신입니다. 우리가 보던 일월성신이 구약시대에 모든 성도가 쳐다보고 있던 것들인데 우리도 그것을 보고 살다가 세상 다 떠났다는 말입니다. 몇 천 년 동안 사람들이 그 별, 달 보다가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 사람들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죽어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별과 같이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늘에 달이 계속 있는 것처럼, 별이 있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는 잠깐 동안 있었다가 가는 나그네와 같은 세상살이지만 우리도 하늘의 달이나 별이나 태양처럼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살아있게 됩니다. 영원한 나라 영원한 권세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우리가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광을 이루어 나가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의 권세를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이루어져나가는 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영원히 우리 성도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갈 것을 믿습니다” 하는 기도입니다.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대로 이루어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주기도를 우리가 늘 하루도 몇 번씩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기도가 안 나올 때에 주기도만 밤새도록 해도 괜찮습니다. 주기도만 밤새도록 해도 아주 큰 기도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기도를 하면 됩니다. 심방을 가게 되면, “오늘 나, 기도 시키지 마십시오”라고 기도시킬까봐 겁이 바짝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 기도할 줄 모르면 심방 가서 기도 시킬 것 같으면 주기도를 하십시오. 주기도를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인데 무엇이 잘못 된 기도가 되겠습니까? 주기도 하면 다 됩니다. 그러니까 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며, 자기가 그 자리에 서기를 힘쓰고, 그 기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힘쓰고, 주기도대로 이루어 나가기를 계속 힘을 쓰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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