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10:1-12 70인 전도 파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70인 전도 파견
누가복음 10:1-12

1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막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9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 반시 고요한 때에 전도하라

본문 1절에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있고 또 칠십 제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칠십 제자를 택해서 각동 각처로 둘씩 전도를 보냈습니다. 여럿이 가면 너무 복잡하고 혼자가면 협력하고 말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증거자의 수는 둘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본문 2절에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추수한다는 것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해서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추수하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많은데 추수할 일군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요새는 추수할 밭은 넓어졌는데 추수할 사람이 참으로 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곡식이 다 익어서 추수할 때가 되어 일꾼을 사방으로 보내어야 할텐데 보낼만한 일꾼이 없습니다. 구소련, 중국, 몽고,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 일꾼을 보내어야겠는데 보낼 일군이 없습니다. 또 앞으로 북한이 열리면 북한에 교회를 세워야겠는데 일군이 없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빨리 일군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또 한국 내에도 교회 세울 데가 많습니다. 지금 각 처에 아파트촌이 새로 생깁니다. 오산에 송탄이라는 데가 있는데 지금 아파트를 많이 지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교단 개척교회를 하려고 상가 하나를 분양받았습니다. 이용주 조사를 그곳에 보내려고 하는데 11월부터 시작을 할 것 같습니다. 추수할 시기가 반시고요한 때인데 빨리 추수해야 됩니다. 우리가 추수할 일군과 경제적 후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것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추수할 기간에 추수 하지 않고 그냥두면 벼가 부러지고 이삭이 아래로 수그러집니다. 그렇게 되면 추수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지고, 또 땅에 벼 알이 많이 떨어져 추수할 때 손실이 많아집니다. 제때에 추수하지 않으면 결국은 농사했어도 그 추수가 시원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열가마니 날 것 같으면 다섯 가마니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제 때에 추수를 해야 제대로 충실하게 추수할 수 있습니다. 만사가 때가 지나면 안됩니다. 이젠 추수 때가 얼마 안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일군이 아주 귀한 때가 되었습니다.

2.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본문 3절에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도 내보낼 때에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양이 이리 가운데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리가 와서 물고 찢고 잡아먹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은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리가 사방에서 어린 양을 물고 찢고 잡아먹으려고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마태복음 10:16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였습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여야 합니다.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은 뱀이 자기 밖에 있는 마귀의 지혜를 받아서 아담, 하와를 유혹한 것처럼 우리도 자기 지혜로 하지 말고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 지혜로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기 지혜, 자기 수단, 자기 방법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안됩니다. 진리보다 좀 더 나가도 안되고 좀 덜 나가도 안됩니다. 진리의 말씀대로만 해야 됩니다. 진리 밖으로 조금이라도 나가면 이리한테 먹힙니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서만 나가야 합니다.

‘순결은 비둘기 같이 하라’는 말은 온유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구약시대에 제물로 사용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소나 양으로 제물을 바칠 때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온전히 바치고 온유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 ‘순결은 비둘기같이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몸과 생명을 바쳐놓고 온유하여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리가 가득찬 세상에서 손해보지 않고 언제나 형통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3. 전대, 주머니, 신을 가지지 말라

본문 4절에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도하러 떠날 때에 전대, 주머니, 신을 가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 등 의지 할 것을 가지고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가다가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것은 문안하느라고 복음전파를 지연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문안하러 다니느라고 거기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전파 하는 시간이 급한데 문안하느라고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따라 올라갈 때 첫 사람은 평안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가려고 하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고, 둘째 사람은 부친 장사한다고 하니 “죽은 자더러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하였고, 셋째 사람은 가족을 작별하고 온다고 하니 “손에 쟁기를 갖고 뒤를 돌아다본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친 장사하느라고 예수 따라가는 일 연기하고, 가족 작별하느라고 예수 따라가는 길을 중지하면 합당치 않습니다. 즉시로 순종해서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든지 연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 다 길러놓고 전도하겠습니다, 또 손자 길러놓고 새벽기도 나가겠습니다”하는데 손자 때문에 새벽기도 못나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손자를 업고서라도 새벽기도 시간에 나와야 합니다. 새벽밥 때문에 새벽기도에 못나온다고 합니다. 새벽밥은 초저녁에 해놓으면 될 것 아닙니까? 언제든지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4. 그 집의 평안을 빌라

본문 5절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집의 평안을 빌라는 말입니다.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요 만일 받지 않으면 너에게로 평안이 돌아옵니다. 선한 마음과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도 평안하고, 다른 사람도 평안하게 만들고, 또 그 사람이 돌아오게 되면 더 평안해질 것입니다.

본문 7절에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먹는 것이 마땅하며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즉 다른 집에 가서 더 잘 대접받으려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서 대접을 잘하지 않아도 그저 그 집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서 연단을 받으며 참고 견디는 것도 배웁니다. 또 복음전파에 시험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대접 잘 못 받더라도 거기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필자가 사경회 강사로 나갈 때 머무는 집에서 이불을 주면 키 작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이불을 갖다 주므로 발이 밖으로 쑥 나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이불이 작다고 그럴 수 없습니다. 주는 대로 덮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위에 두루마기, 바지 등으로 덮으면 발이 따스합니다. 아침에 주인이 잘 주무셨습니까? 하면 “예, 잘 잤습니다” 합니다. 발은 다른 것으로 덮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또 세숫물을 적게 주면 적게 주는 대로 세수하고, 딱딱한 밥을 주면 좀 오래 씹으면 되고, 또
밥을 묽게 하면 죽인 줄 알고 먹고, 국을 짜게 해주면 물을 부어 먹으면 되고, 걱정 없습니다. 짠 것 주면 물 좀 타서 먹으면 되고, 싱거운 것은 간장을 쳐서 먹으면 되는 것이고, 굳으면 오래 씹으면 되는 것이고, 묽으면 죽 먹는 줄 알고 먹으면 되는 것이고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타박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주는 것 가지고 먹고,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하면 안됩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괴롭다고 하지 말고 거기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거기서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이 복음 전파하는데 큰 유익입니다.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지만 불평하나 없이 잘 참고 견디면 그 집에서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 비방거리가 되고 말썽이 많아집니다. “대접 잘 받으려고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들은 가난하다고 사람으로 취급도 안한다” 이렇게 되면 복음 전파에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에서 잘 참고 견디고,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거기서 참아야 복음전파에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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