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라
마태복음 7:6-29
마태복음 7:6-29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1.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본문 6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또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면 개가 거룩한 것을 버리기 때문에, 다 물어 찢어서 상한다는 것입니다. 또 귀한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면, 돼지는 그 진주가 귀한 줄 모르기 때문에, 발로 다 밟고 진주가 다 상한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개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한 것이 너희에게 임했는데, 그것이 거룩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너희에게 임할 때에 영감을 받은 너희 몸과 마음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라는 것은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고, 또 음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고, 음행하는 것이 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너희는 그런 생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 같은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은 너희의 몸과 마음은 거룩한 것인데 그것을 개와 같은데다가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와 같은 생활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 진주’라 했는데, 그냥 진주라 하지 않고 너희 진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진주라는 말은 자기에게 해당한 진리를 깨달은 마음과 몸, 바른 진리를 깨달은 심신, 이것이 진주입니다. 진리를 깨달았으니까 진주 아니겠습니까? 진리가 진주이고, 바른 진리를 깨달았으니까, 깨달은 마음과 몸이 다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 진주를, 너희가 소유한 그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돼지라는 것은 먹자주의입니다. 먹자주의, 그저 무얼 먹는 것밖에 모릅니다. 돼지한테 무엇을 주면 그저 더, 한 번 더 달라고 합니다. 그저 먹는 것 밖에 모릅니다. 또 조금 떨어져서 조금 있다가 그 앞에 앉으면, 꽥꽥 해가지고 또 달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먹는 돼지와 같은 생활, 먹자주의, 먹는데 빠지는 것, 물질주의, 배로 하나님을 삼는 주의, 물질을 따라가는 주의 그것이 돼지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를 늘 가지고 있어도, 돼지와 같은 생활에 빠지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면, 돼지가 그 진주를 발로 밟고 진주가 다 상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감 받는 너희 몸과 마음은 거룩한데,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바른 진리를 깨달은 몸과 마음은 먹자주의, 물질주의 여기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진주를 발견했으면, 있는 것을 다 희생하고 그 말씀만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본문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렇게 구하는 것, 찾는 것, 두드리는 것, 세 가지인데 각각의 뜻이 있습니다.
구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위의 것 신령한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하나님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항상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신령한 세계가 발견이 되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모든 것을 주십니다. 회개 하면서 힘써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항상 구해서 그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하지 말고, 자기 유익되는 대로 하지 말고, 자기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한테서 이틀 전에 전화가 왔는데,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 생각이 표준이냐? 하나님의 뜻이 표준이냐? 성경 어디에 자기 생각대로 하라고 했느냐? 하나님 뜻대로 하라고 그러지 않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내 생각에는 저렇게 하면 좋겠다, 자기 생각엔 먹으면 좋겠다, 자기 생각과 자기 마음에는 저리로 가면 좋겠다고 아무리 해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으면 안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말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그러시면 안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으면 예루살렘을 안 떠나야 됩니다. 자기 생각이 표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찾으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두드리는 것은 도달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두드리는 것을 그냥 두드리지 않습니다. 열리도록 그 진리에 도달하려고 계속 애를 쓰는 것입니다. 안 되면 또 애를 쓰고, 안 되면 또 애를 써서 마침내는 거기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본문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떡 달라고 하면 돌 하나 주면서 “이거 갖다 먹어라” 그거 먹다 이가 다 부러지도록 하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 한 마리 주면서 “이거 갖다 먹어라” 하며 전갈을 줄 사람이 있겠냐는 말입니다.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떡을 달라하면 돌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그렇게 안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라고 했는데, 왜 악한 자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다 악하다는 것입니다. 왜 악하냐 하면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이기주의는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은 선한 것이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후에는 다 자기 중심으로 돌아섰습니다. 자기중심, 자기 뜻, 제 생각, 자기 위하는 것으로 다 돌아섰기 때문에 다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4. 섬기는 자의 복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내 생명을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 이것은 예수님의 길이 아닙니다. 섬기려고 하시는 것이 예수님이시고, 대접하려고 하시는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섬기다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접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계속 섬기다가 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많이 섬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또 여러 사람을 섬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섬긴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라고 했습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큰 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큰 자가 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인사를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받는 사람보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내게 인사를 안 하면 어떻게 할까?’ 안 해도 자꾸 하는 것입니다. 인사해도 안 받으면 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엔 그 사람도 인사할 날이 옵니다. ‘네가 인사 안 하면 나도 안 한다.’ 네가 안 하면 나도 안한다고 하는 그 사람은 점점 좁아집니다. 마지막에는 설 땅이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게 잘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기를 힘써야 됩니다.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은 보지 말고,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리 저 사람이 내게 잘못했어도, 뺨을 칠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내가 그 사람을 대접하고 인사하고 선을 행하고 주는 것, 그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입니다.
그러니까 대접을 받을 생각이 있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내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먼저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안 돌아와도 또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또 안 돌아오면 또 해주라는 것입니다. 안 돌아오는 것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습니다.
대접한 것이 돌아오면 이 세상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대접을 해서 그 사람이 날 또 대접한다면 그것은 받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는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안 받고, 자꾸 계속 대접만 하면 하늘나라에 쌓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길은, 남을 대접하는 길입니다. 대접 받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선지자가 다 이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본문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길은 좁다. 문도 좁고, 길도 좁고, 험악하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넓은 문이 또 있는데,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많고, 그 길은 넓고, 많은 사람이 그 길로 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문제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가 힘들고, 좁은 길로 걸어가기가 힘들지만 그 결과가 생명입니다. 마지막엔 생명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가기가 쉽고, 가는 사람도 많지만 그 결과가 뭐라고 했습니까?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가기는 쉽고, 가는 사람도 많지만, 마지막에는 멸망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험한 길로 가는 사람은, 가기가 힘들지만 그 마지막에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좁은 문이 생명길입니다.
좁은 길은 소수가 간다
좁은 길, 그 진리는 많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이 좁은 문이요,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걸어가는 것은 다 허랑 방탕, 세상 길, 죄 짓는 길, 성경을 순종하지 않는 길입니다. 이것은 넓은 문이고 넓은 길입니다. 그 마지막이 멸망입니다.
누가복음 13:2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거가기를 힘을 써라. 들어가기를 힘을 써도 못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좁은 문은 생명길입니다. 넓은 문과 좁은 문, 넓은 길과 좁은 길,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길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입니다.
그러면 좁은 길이 무엇입니까? 좁은 문, 좁은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것,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이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성경대로 걸어가는 것이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성경을 어기고 가는 길은 넓은 문, 넓은 길이고 불신자들은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성경을 알지도 못하니까 성경을 어기고 나아가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이 세상 불신자 가운데 아무리 성인군자들, 양반들,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들 많지만 그것은 다 넓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대로 걸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걸어간 사람이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걸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그 길로 들어가려 해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누가복음 12장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 좁은 길로 걷는 사람은 적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다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소수에 있습니다. 진리대로 바로 걸어가는 사람은 소수고, 적은 무리입니다. 넓은 길로 걸어 가서 진리에 어긋나고 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갑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의 두 종류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두 가지 종류인데, 불신자들은 성경 모르니까 불신자가 전부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 중에 경건한 사람들이 혹시 있지만 그 사람들도 우상 섬기고 하나님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안 지키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좁은 길을 가는 것인데, 안 지키니까 넓은 길입니다. 안 지키고 교회 다니는 사람, 성경 안 지키면서 예수 믿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 그것은 다 넓은 길로 가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성경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안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보면 그 시험에 넘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왜정 때 신사참배 바람이 불 때에,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장로교 27회 총회를 했는데, 거기서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고 국가 의식이니까 신사참배 해도 좋다는 가결을 했는데, 대부분이 다 찬성을 했습니다. 반대한 사람이 몇 사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생명 내놓고 나가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나가는 사람은 소수라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1948년도로 기억되는데, 그때 주일날에 대의원선거를 했습니다. 12월 3일에 대의원 선거했는데 그때 대부분이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하다가, 대부분이 나중에는 다 주일날 선거하고, 안 한 사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다 한 것이고, 선거 안 한 목사들은 숙청 맞고, 쫓겨나고, 또 잡혀서 감옥에 가고, 순교 당하고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교회 안에도 많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도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교회 다니면서 사기횡령하고, 주색잡기하고, 음란방탕하고, 토색하고, 그런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이게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성경대로 하려면 요새 주일날 지켜야 되는데, 주일날 안 지키는 교회가 지금 대부분입니다. 성경 다 어기고 나가는 길입니다. 이게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좁은 길은 생명의 길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인데 언제든지 소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라고 해도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좁은 길로 가야 생명이 있습니다. 넓은 길로 가면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을 양보하고, 죄를 그냥 거침없이 거저 짓고 나가고, 방탕하고 이런 사람이 교회에 나와도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성경말씀을 말씀대로 믿는 사람, 바로 믿으려고 애쓰고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 여기에 생명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힘써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간다고 잘되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그 길 간다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이것을 가지고 판단해야 됩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적은 무리면 어때, 성경대로 가면 되지’ 하면서 여기에 생명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영이 살아야 되고, 생명의 역사가 있고, 바른 진리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찾고, 생명 길을 걸어가면 그것이 영생길입니다.
본문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면 좁은 길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야 들어가리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까 내 아버지의 뜻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따라 다녀도 그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 떠나라
본문 22-23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그날에 예수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는 것은 교역자 노릇했다는 말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기도해서 귀신도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저희에게 밝히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것을 보면, 성경대로 안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내쫓고 아무리 큰 권능을 많이 행했다 해도, 너희가 성경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
본문 24-27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부딪히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집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짓기는 둘 다 지었습니다. 모래위에 지은 사람도 잘 지었습니다. 안 지은 것이 아닙니다. 반석 위에 지은 사람도 지었습니다.
집을 지었다는 것을 보니까, 모래 위에 지은 사람도 교회 나온 사람입니다. ‘나의 말을 듣고’라고 한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또 집을 지었으니까 말씀대로 했습니다. 집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기둥도 세우고, 지붕도 하고 다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래 위에 지었기 때문에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모래 위에 지은 것은 무엇입니까? 행하지 않았으면 집을 짓지 않았다는 것인데, 행한 것이 없으면 지은 것이 없어야 하는데, 지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것하고 모래 위에 지은 것하고 뭐가 차이가 있는가 하면, 반석위에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입니다. 반석 위는 깨달은 자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은 하나님
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한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것이 모래 위입니다.
집을 지었으니까, 모래 위도 하긴 했습니다. 지은 것을 보니까 한 것 아닙니까? 겉으로 볼 땐 건물이 둘 다 같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건물이나 반석 위에 지은 건물이나, 다 같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은 깨닫고 그대로 한 사람이고,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3:51-52에,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이것을 물어보셨습니다.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것을 너희가 깨달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깨닫지 못했느냐?” 묻고 계십니다. 깨닫고 행한 사람은 그것이 생명이 되었으니까 반석위에 지은 사람입니다. 깨달았으니까 반석 위에 지은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하니까, 그저 그렇게 한 사람은 모래위에 지은 사람입
니다.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을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생명 내놓고 그 말씀을 지킵니다.
예를 들어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고 깨달은 사람은 안 먹습니다. 어떠한 손해가 나도 안 먹고, 핍박을 해도 안 먹고, 직장에 떨어져도 안 먹고, 감옥에 가도 안 먹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양잿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는 압니다. 알아서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하다가 ‘너 죽인다’ 그러면 먹는다는 말입니다. ‘직장에서 내쫓는다’ 또 ‘매 맞는다’ 하면 양잿물 먹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닫지 못한 사람
은 이렇게 가다가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았습니까? 깨달았으면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하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했으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 세례문답을 할 때, 제가 옆에서 들어봤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이뇨?”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어 천당 가려고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천당 가는 줄 어떻게 압니까?” 이제는 목사님이 물어봤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다고 해서 압니다”라고 그럽니다. 그 때 “목사님이 천당 못 간다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하니까 입이 딱 막혔습니다. 목사님이 그렇다고 해서 안다고 했으니까, 목사님이 못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니 입이 딱 막힌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격될 뻔 했습니까? ‘성경에 천당 간다고 했으니까 갈 줄 믿습니다’ 했어야 되겠는데, 성경이 아닌 목사님이 된다고 했다가 낙제된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 세례문답을 할 때, 제가 옆에서 들어봤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이뇨?”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어 천당 가려고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천당 가는 줄 어떻게 압니까?” 이제는 목사님이 물어봤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다고 해서 압니다”라고 그럽니다. 그 때 “목사님이 천당 못 간다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하니까 입이 딱 막혔습니다. 목사님이 그렇다고 해서 안다고 했으니까, 목사님이 못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니 입이 딱 막힌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격될 뻔 했습니까? ‘성경에 천당 간다고 했으니까 갈 줄 믿습니다’ 했어야 되겠는데, 성경이 아닌 목사님이 된다고 했다가 낙제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깨닫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고, 잡아 죽인다고 해도, 어떠한 환란이 와도, 이것을 깨달았으니까 그 말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소수라도, 혼자 남아도, 깨닫고 나가는 것은 생명 길이니까 이것은 영원히 성공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가다가 다 무너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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