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교권 문제와 포도원 농부 비유
마태복음 21:23-46
마태복음 21:23-46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33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38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40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41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1. 예수님의 권세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누가 주셨다고 그랬습니까?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입니다.
‘무슨 권세를 가지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하시는 권세는 섬기는 권세, 봉사의 권세입니다. 하늘나라를 세우는 권세, 사람을 살려내는 권세,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세,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입니다.
섬기는 권세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섬기는 권세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도 섬기는 권세를 주신 것이고 안 맡은 사람도 섬기는 권세가 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누가 막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권세입니다. 소경을 눈뜨게 했습니다. 모든 병자를 고치는 권세, 그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세도를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권세를 부리고 세도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살려내라고 주신 것이고, 하나
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주신 것이고, 그리스도의 왕권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권세를 다 주셨는데 이걸 가지고 나가서 쓰라고 예수님에게 주셨던 권세 우리에게 다 주었습니다. 무슨 권세입니까? 섬기는 권세, 봉사의 권세, 사람을 살려내는 권세, 병자를 고치는 권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권세,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세,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입니다. 이 권세를 쓰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다 좋아합니다. 섬기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병 고쳐주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접을 받고자 하면 그것은 안 되지만. 섬기려고 하면 다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 없어서 못쓰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권세를 부리는 자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 개인들이 권세를 부리고, 집권자들이 임의로 주관하고 이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세상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것입니다. 봉사의 권세, 사람을 살려내는 권세, 병자를 고치는 권세, 기도해 주면 낫습니다. 고치는 권세입니다.
어떤 성도가 소년 때부터 믿었는데 마귀가 붙어서 몇 사람이서 매일 가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매일같이 그 집에 가서 한 두어 달 동안 기도해주셨는데 나았습니다. 목사나 장로들이 매일 갈 수 없었지만, 저는 매일 갔습니다. 그런데 한 두어 달 동안 기도하는 동안에 다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 쓰는 것입니다. 그 권세 쓰는데 누가 막을 자가 있습니까? 교회에서 다 좋아하지 싫어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성도가 소년 때부터 믿었는데 마귀가 붙어서 몇 사람이서 매일 가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매일같이 그 집에 가서 한 두어 달 동안 기도해주셨는데 나았습니다. 목사나 장로들이 매일 갈 수 없었지만, 저는 매일 갔습니다. 그런데 한 두어 달 동안 기도하는 동안에 다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 쓰는 것입니다. 그 권세 쓰는데 누가 막을 자가 있습니까? 교회에서 다 좋아하지 싫어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살려내는 권세
그 다음에 살려내는 권세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권세,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세입니다. 성전이 더러워지는데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후대에도 깨끗하고 거룩한 성전을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성전을 지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정결하고 옳고 바른,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는 영적인 성전, 진리에 맞는 성전, 이런 영적성전을 건설해가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도 주었고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누가 주었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평신도에게 이 권세를 다 주었습니다. 쓰면 되는 것입니다. 집사 한자리 못했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집사 못됐다, 장로 못되었다, 섭섭해 하면 안 됩니다. 목사 못되었다. 이 권세는 평교인이라도 하나님께서 다 주셨기 때문에 이 권세를 쓰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이것은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세를 써나가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2. 포도원 농부의 비유
본문 33-39절에,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
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포도원은 구약에는 이스라엘 나라이고 신약시대에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포도원입니다. 주인이 좋은 포도 맺기를 원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포도원인데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다 종들입니다. 목사도 종, 장로도 종, 집사도 종, 다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포도원이고 하나님께서 해 놓으셨습니다.
포도원 만드시고 뭘 하셨다고 했습니까? ‘산울로 두르고’ 산울로 둘렀다는 것은 울타리 둘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원수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포도원 허는 어떤 것이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울타리 잘해서 산울로 둘러놓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왜 산울로 둘러놓고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습니까? 포도농사 잘하라고, 포도 잘 맺으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원수가 꼼짝 못하도록 다 둘러서 견고하게 둘러 쳐가지고 이렇게 보호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지나간 일 년 동안도 이렇게 산울로 두르고 우리 한국교회 보호해 주셨습니다. 세계교회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열매를 바치라
열매 잘 맺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잘 맺은 다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열매를 주인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자기네끼리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 열매 맺어서 주인에게 바치라고 주신 것입니다. 저희끼리 먹으면 안 됩니다. 먹자주의, 놀자주의 교회, 자기를 위해 다 써서 치우는 교회 안 됩니다. 주인에게 바치라고 했지 저희끼리 다 써서 치우라고 했습니까? 뭘 사라, 뭘 사라 하며, 하나님께 바칠 생각 하지 않고 저희끼리 그렇게 다 써서 치웁니다. 교회 재정 준 것이 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입니다. 포도원 농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기네 교회에서 다 쓰고 선교하는데 바치지 못하고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끼리 다 쓰고 자기끼리 다 해먹고 이렇게 선교헌금이나 상납금은 바치지 못하고 이것이 바로 됐습니까? 없어서 못 바친다고 하는데 저희들끼리 해먹지 않았습니까? 없어서 못 바치는 교회, 저희들끼리 해먹은 것이 없습니까? 해먹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끼리 해먹으면서 하나님께 왜 안 바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열매 맺어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 바치라고 세를 주신 것입니다.
자기들 것이 아닙니다. 세로 주셨습니다. 임시로 맡긴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 잘해서 주인에게 바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포도원이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임시로 맡은 것입니다. 농사 잘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맡긴 것입니다. 저희들끼리 해먹으라고 맡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바쳐야 됩니다. 교회 돈도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써야 됩니다. 쌓아놓는 것은 하나님께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네가 다 쓰고 선교하는데 바치지 못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선교하는데 바치라고 했는데 왜 안 바칩니까? 자기네 교회에만 쓰는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바치는 것이, 포도원을 구원사업에 바치는 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잘 순종해야합니다. ‘성경 번역하는 일하는데 바쳐라’하시면 바쳐야합니다. ‘선교하는데 바쳐라’하시면 바치십시오. 송완규 목사 우즈베키스탄 나고이에 교회 하나를 사야한다고 하는데, 세 교회에 나누어서 바치라고 했는데 바치십시오.
이것이 열매 바치는 것입니다. 열매 바쳐서 하나님의 일하는 데 이용당해야 합니다. 농사 잘해서 열매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포도 맺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이 하나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임시로 세 맡고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농사 잘해서 주인에게 바치는 생활을 하여야 됩니다.
보내실 때 어디든 가는 종
종들을 보내니까 농부들이 심히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 그래도 종은 가야 됩니다. 먼저 간 종이 돌에 맞았습니다. 먼저 간 종이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먼저 간 종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번에 보낼 때 또 가야 됩니다. 매 맞을 각오하고 돌에 맞을 각오하고 죽을 각오하고 가야 됩니다. 좋은 데만 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가라는데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됩니다. 교역자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이 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가라하면 가야 됩니다.
젊은 사람들 신학교 가라면 가십시오. ‘신학교 가면 돈 많이 벌지 못한다’, ‘세상 직장 나가야 돈 많이 번다’, ‘무엇을 해야 돈 많이 번다’, ‘의사가 돼야 돈 많이 번다’, ‘운동선수가 되면 돈 많이 번다’, ‘탤런트가 되면 돈 많이 번다’고 하는데, 탤런트 해먹으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보내셨는가 생각을 해보라는 말입니다.
포도원에 가서 다 일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이것이 복된 자리인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갑니다. 이것이 주의 종의 길입니다.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죽어야 몇 년 일찍 죽는 겁니까? 아무래도 죽을 것인데 몇 십 년 더 살아 뭐합니까? 순교 당했으면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는 것인데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영원에 갖다 놓으면 100년은 점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걸 가지고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면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5복이라고 하는데 잘 죽는다는 것이 뭘 가지고 잘 죽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 이름 가지고 순교당하는 것이 제일 잘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잘 죽는 것인 줄 아십시오. 주의 종의 길을 가야합니다.
3. 머릿돌 위에 건축해 나가는 교회
유기적 연합체 교회, 에클레시아
본문 42-4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돌이 나왔는데, 세 가지가 나왔습니다.
첫째는 건축자들의 모퉁이돌 머릿돌. 이 머릿돌에 의지해가지고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초돌입니다. 머릿돌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산돌인데, 거기서 산 능력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머릿돌인데 그 돌에 의지해가지고 그 머릿돌에서 나오는 능력을 가지고 그 머릿돌의 힘으로 성전을 건축해 나가야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벽돌 한 장과 같고 큰 성전을 지어나가는데 성전이 점점 지어져 나갑니다. 산돌의 능력으로 지어져 나갑니다. 세운 것마다 연합하여 성전이 세워져 나간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21-22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합해서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성도의 단체입니다. 성도의 유기체적인 연합체 이것이 교회인데, 서로 연결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 나갑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연합하여 개교회가 지어져 나가고, 개교회가 연합해서 교단교회가 지어져 나가고, 교단들이 합해서 연합된 에클레시아라는 세계교회가 지어져나갑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교회’란 말입니다.
무교회주의, 개교회 독단
이렇게 지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야합니다. 교회 안 나가고 무교회주의, ‘자기 집에서 예수 믿어도 구원받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혼자서 예수 믿으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자가 없으니까 가르쳐 주지도 못하고, 다스림 받아야 되는데 교역자 없이 어떻게 다스림 받겠습니까?
또 개교회 독단으로는 안 됩니다. 개교회만으로 믿으면 간섭하는 곳도 없고 편하긴 하겠지만, 그러나 그 교회 다스림 받지 못합니다. 누가 다스립니까? 목사가 다스리게 됩니다. 그럼 목사는 누가 다스립니까? 개교회의 목사를 다스릴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가 왕이 됩니다. 그것은 그 목사의 교회가 됩니다. 그러다가 목사가 그 교회 팔아먹고 싶으면 교인 내쫓고 교회 팔아먹습니다. 교인들이 죄를 범하면 목사가 치리하지만 목사가 죄를 범하면 누가 치리합니까? 목사는 범죄 안하겠습니까? 목사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가다가 늘 실수하고 회개하고 그러는 것이 목사입니다.
목사라고 완전무결한 것이 아닙니다. 명륜 교회 할 적에 정인도 장로라고 있었는데 약방을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복권방을 했었는데 목사님이 감기 들려서 약 좀 해가야겠다고 한 말에 ‘아 목사도 감기 들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목사를 무슨 초인간인줄 아는데 목사도 감기 들리고 시험도 들립니다. 늘 회개하고 바로 서서 하는 것입니다. 목사도 실수합니다. 그럴 때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입니다.
목사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회개를 빨리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왜 회개를 빨리 하냐하면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오른손에 붙들려 있으니까 목사가 조금만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가만 안 두십니다. 즉시로 회개 시키십니다. 회개 안하면 그 다음엔 주님께서 징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가다가 실수하고 시험에 들고 죄 가운데 빠졌다 회개하고 나오고 그렇게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다스려야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다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이 필요합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다스리는 것이 없으면 참교회가 아닙니다.
참교회의 지표
참교회의 세 가지 지표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 바로 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례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권징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고 부지런히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울타리 둘러가지고 전쟁 안 나게 해주고 포도나무 열매 맺혀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데 이것을 못하면 징계의 막대기가 내려옵니다. 돌이 내려옵니다. 이 돌은 잘 쓰면 아주 좋은 돌, 기초 돌로서 머릿돌로 잘 쓰면 성전을 잘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성전 짓는 양식도 제대로 해야 됩니다. 교단이 있어야 됩니다. 교단이 없으면 그 교회는 앞으로 희망이 없고 어디로 갈지 방향이 없습니다. 지도하는 상위 기관도 없고 권징 하는 기관도 없고 제멋대로 나가면 누가 그걸 다스리겠습니까? 그리고, 교단이 있어도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교단, 성례를 제대로 행하는 교단, 권징을 제대로 하는 교단이어야 합니다.
요즘 교단이 많지만 권징 하는 것이 대게 다 없어졌습니다. 별짓 다 해도 가만 둡니다. 권징을 다 상실한 교회가 되었고 교회들은 죄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만 해주고 복 받는 말만 해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의에 대해서 세워나가고 이렇게 해야지 ‘죄를 책망하면 싫어한다’고 해서 죄에 대한 말 하나도 안하고 잘된다, 평안하다, 재앙이 없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3:16-17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평안하다’ 라고만 하고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는다’, ‘잘 된다’라고만 하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요즘 교회들이 여기 다 빠졌습니다. 좋은 말, 잘 된다는 말, 귀에 즐거운 말만 하고, 교인들이나 많이 모으려고 하고, 연보나 많이 거두려고 하고, 예배당 크게 지려고 하고, 목사들이 자기 월급 많이 받으려고 하고, 이렇게 전부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나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해야 합니다. 하지만 죄를 너무 자꾸 책망하면 안 됩니다. 죄를 책망하는 것도 잘 해야 합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재앙이 없다’는 것은 참교회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구약시대에 그렇게 하다가 다 망했습니다.
성전을 지어나가야 하는데 각 교단마다 색채가 다릅니다. 돌도 돌마다 서로 질이 다르지 않습니까? 보통 돌이 있고, 좋은 돌이 있고, 보석이 있습니다. 보석까진 아니어도 차돌같이 아주 좋은 돌 많습니다. 보석은 얼마나 비쌉니까? 그와 같이 진리를 세워 나가는데 따라서 가치가 다릅니다. 교단마다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인데, 진리를 바로 세워나가는 교단은 가치가 보석같이 있는 것이고, 진리 세워나가지 못하고 죄를 책망하지 못하는 것은 썩어진 돌입니다. 썩어진 돌은 가다가 부스러지고 말 것입니다. 진리 세워나가야 합니다.
영적인 면이 없는 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영감이 있어서 진리를 영적으로 바로 세워나가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영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영을 살려나가야지 사람만 많이 모아가지려고 하는 것은 참 교회가 아닙니다. 진리와 영감과 영혼을 살려나가는 참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각 교단이 다릅니다. 요한계시록 7장을 보면, 구원받은 지파가 열두지파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열두지파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지파 같으면 왜 단지파가 빠졌겠습니까? 또 맏아들인 르우벤 지파가 먼저 나와야겠는데 유다지파가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종류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단마다 종류가 다르고 진리를 깨달은 것마다 종류가 다릅니다. 교단대로 세워나가는 것이 다 따로 있습니다.
바른 진리를 많이 세워나가면 아주 좋은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70%고, 비진리가 30%면 그냥 그런 정도의 교단입니다. 또 50% 잘못되고 50% 잘되면 그런 교단입니다. 성경을 계명을 버리고 믿으면 그런 교단입니다. 성경대로 지키고 믿으면 아름다운 존귀한 교단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지파가 다 있습니다. 우리 교단으로 말하자면 한 지파와 같습니다. 다른 교단은 다른 지파입니다. 치리권이 없는 지파는 오합지졸 모아 놓고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잡동사니가 되고 맙니다. 각기 지파가 있기 때문에 교단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교단이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유다지파는 유다지파대로 나가는 것이고, 르우벤 지파는 르우벤 지파대로 나가는 것이고, 레위지파는 레위지파대로 나가야지, 레위지파가 유다지파가 될 수 없습니다. 지파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교단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을 점점 지어나가는데 돌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벽돌 한 장입니다. 교단은 한 모퉁이, 벽돌이 여러 장 모여서 한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 교회가 모여서 한 교단이 되었습니다. 어떤 한 모퉁이를 쌓아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교단은 저쪽 다른 모퉁이를 쌓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예수님 재림하는 날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을 거스르지 말라
성전 지어나가는 모퉁이 돌을 거스르다가 깨집니다. 돌 위에 떨어지다가 깨진다는 것, 돌 위에 떨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돌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돌 거스르다간 깨집니다. 돌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합니다. 극강무비 입니다. 모든 것을 심판하고도 남음이 있는 강력한 돌인데 여기 거스르다간 깨져나갑니다.
뭣도 모르고 돌 거스르다가 깨진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가 돌 거스르다가 깨졌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돌 거스르다가 깨졌습니다. 대원군 정권이 망한 것도 돌 거스르다가 깨진 것입니다. 일본이 망한 것도 기독교들 다 잡아 죽이려고 계획하는 돌 거스르다가 깨진 것입니 다. 개인도 돌 거스르다가 깨진 사람 많습니다. 돌은 순종하는 것이지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순종해야지 예수님을 거스르다가는 자기가 깨집니다.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께서 위에 떨어지면 그것은 가루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손대면 다 가루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돌을 거스른 사람은 개별적으로 깨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손을 대면 다 가루가 됩니다. 돌이 와서 떨어지는데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항상 주님이 무서운 줄 알아야합니다. 돌이 무서운 줄 알아야합니다.
건축할 때에는 좋은 돌, 사랑의 돌입니다. 거스를 때에는 심판의 돌 입니다. 깨뜨려 내버리는 돌입니다. 돌이 떨어지면 가루가 돼 버리고 맙니다. 돌이 중요한줄 알고 돌에 순종할 줄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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