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누가복음 2:25-39 시므온과 안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시므온과 안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함
누가복음 2:25-39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34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9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시므온과 안나의 신앙에 대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에 시므온과 안나가 준비를 잘 했다가 영접을 했습니다. 탄생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하는 것을 시므온과 안나에게서 배워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두 사람이 특별히 영접을 한 것입니다. 준비를 잘한 시므온입니다. 

1. 의롭고 경건했던 시므온

본문 25-27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고 경건한 생활 한 사람이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기다린 것을 내포합니다. 언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겠는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오신다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기다리는 그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또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한 것을 볼 때 성령의 인도를 언제나 받는 시므온이었습니다. 성령의 감동, 성령의 인도, 성령의 위로, 그것이 언제나 충만한 시므온입니다. 성령께서 지시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뭐라고 지시해 주었습니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 하리라’ 죽기 전에 주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주의 성령께서 지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은 것을 보면 늘 그 신앙이 깨어 있었고, 늘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고, 성령으로 늘 모든 것을 행한 사람이고, 영이 늘 깨어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잘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특별한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하나님의 감동이 때때로 있습니다. 믿음이 좋고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죽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시므온입니다. 

2.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시므온

본문 27-28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 안에 늘 거주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므온이 늘 깨어 있는 생활, 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했는데 하루는 성령께서 감동을 시켜서 성전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가보니까 마침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와서 율법의 전례대로 할례를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오는 것을 만났습니다.

그 때에 시므온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뭐라고 찬송했습니까? 본문 29-32절을 보면,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찬미한 내용을 보면,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시는 대로 종을 편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했는데,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자유와 해방과 평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과 평안을 주십니다. 그런 그리스도이신 줄 알고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평안해집니다. 모든 근심걱정, 고통, 염려, 괴로움, 이것 다 예수님만 영접하면 평안해진다는 말입니다. 근심걱정이 다 뚝뚝 떨어져 나가고, 모든 괴로움도 떨어져 나가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그 심령이 참으로 평안해 진다는 말입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본 것은 구원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원하시는 구주시라는 말입니다.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사오니’라는 말입니다.

본문 31절에,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주시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은 이방까지 나갑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어서 어두운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비춰서 건져냅니다. 

본문 32절에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찬송한 것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큰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찬송한 것입니다.

3. 많은 사람의 패함과 흥함을 위해 오신 예수님

본문 33-34절에, 시므온이 저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말하기를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또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을 패하고 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흥하고 예수님을 반대하면 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돌로 오셨습니다. 이 돌을 반대하면 깨지고 돌을 영접하는 자는 산 돌이 되어서 산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흥하고 반대하면 패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오셨으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비방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끔 하십니다. 패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고 세움을 입으신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흥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잘 된 사람이 많습니다. 살아난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흥함

그러나 패한 사람도 많습니다. 망한 사람도 많습니다. 요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 군대가 가서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다 파괴시켰습니다. 그 이슬람 사람들이 아무리 호언장담하며 결심했지만 아무 맥도 못추고 다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이슬람국가가 여러 개가 된다고 합니다. 50여개 된다는데, 그렇게 여러 국가지만 전부 다 미약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전에 애굽같은 나라는 얼마나 강했습니까? 블레셋나라는 또 얼마나 강했습니까? 또 바벨론 나라는 얼마나 강했습니까? 바벨론이 지금 이라크와 이란인데, 옛날에는 세계를 다 통치하던, 세계패권을 잡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앗수르나 블레셋나라나 이런 나라들이 이슬람교가 들어간 다음에는 전부 다 약해졌습니다. 전부 가난해 졌고, 전부 맥을 못 추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국가는 여자들이 나가서 일해야 된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놀고 먹고 그런다고 하니까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남자들이 나가서 일해야지 여자들이 나가서 일하니, 다른 나라보다 절반밖에 못할텐데 그게 어떻게 나라가 잘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슬람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코란을 들라고 합니다. 코란을 받던지, 칼을 받던지 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슬람은 남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스람교 코란이라는 성경이 있는데 이스람교 안 믿으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여버리는 것 밖에 없으니까 나라가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루 다섯 번씩 모하메드 태어났던 곳인 메카를 향하여 기도해야 되고, 또 뭘 해야 되고, 그 사람들 하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 하느라고 제대로 일하지 못합니다. 남자들은 또 머리에 빙빙 둘러 감고 다니는데 여름에 얼마나 덥겠습니까? 여자들은 뒤집어쓰고 눈도 제대로 내 놓지 못하고, 얼굴 다 뒤집어쓰고 다녀야 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데만 구멍을 조금씩 뚫어 놓고 그 곳으로 내다보아야 됩니다. 그렇게 여자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데, 그러면 일은 여자들한테 시켜먹고, 그러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은 일대로 안하고 이렇게 남을 괴롭게만 하고 남자들은 놀고먹고, 나라가 자꾸 약해지게 됩니다. 계속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강하던 나
라가 이제는 제일 미약한 나라들이 됐습니다.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유력한 나라가 되었는데 이북과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이것은 한국이 하나님을 섬기는 영국이나 미국으로부터 전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전해줄때 그 축복해 준 것을 받은 것입니다. 문명이 들어갈 때 기독교도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혜택을 받아서 이 만큼이라도 된 것입니다. 

이북은 기독교가 들어갔었지만 지금은 예배당 문 다 닫아놓았기 때문에 이북은 자꾸 떨어지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도 자꾸 떨어지는것입니다. 공산주의 처음 할 때는 다 괜찮았지만 공산주의를 자꾸 하면 내내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자기 의욕이 다 없어지게 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뭐 일해서 돈 벌어 잘 살겠다는 의욕이 다 없어집니다. 시키는 일을 시간만 때우고 주는 배급 받아 먹으면 됩니다. 뭐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되겠는데, 잘 하면 뭐 하냐는 말입니다. 다 국가 소유니까 잘해도 못해도 받는 건 같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시간만 때우고 배급 타다 먹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사 하는 사람들도 농사 좀 더 잘해서 곡식 좀 많이 내야 하겠다고 해야 많이 나겠는데 많이 나면 뭘 합니까? 다 국가에 다 갖다 바치는데 배급 타다 먹으면 마찬가진데, 농사해서 곡식이 많이 난 것이나 조금 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잘 해야겠다는 노력이나 의욕이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이나 때우고 배급 받아 먹으니 능률이 도무지 나지 않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그 어떤 도시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농사해도 3분의 일은 농장에 다 흘리고, 3분의 일은 가다 길 바닥에 다 떨어뜨리고, 3분의 일만 국가로 들어가더랍니다. 농사한 것을 신고 가는데, 하나도 아끼지 않고 땅에 흘려지면 흘려지는 대로 그대로 가더랍니다. 그것 뭐 내꺼냐고 하며, 흘린 사람이나 안 흘린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한 알이라도, 곡식 한 알이라도 아껴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흘리고 가도 마찬가지고 안 흘리고 가도 마찬가지니까 3분의 일만 창고에 들어간답니다. 

그렇게 잘 하겠다는 의욕이 전혀 없어지니까 자꾸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치고 뒤떨어지지 않은 국가가 없습니다. 다 뒤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나가니까 어떻게 발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잘 하려고 하고, 많이 좀 수확하려고 하고, 좀 더 많이 벌려고 하고, 그 다음 자기 유익이 되려고 그렇게 하여야 되겠는데, 자기 유익이 안 되니까 잘 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하려고 하면 괜히 힘만 들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나으니까 자꾸 뒤떨어집니다.

중국에서는 등소평이 그런 문제를 알아서, 이제는 공산주의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경제를 자유경제로 해야 나라가 살지, 그렇지 않으면 살지 못하겠다고 해서 한 십여 년 전에는 농지를 전부 개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농지가 국가 소유였던 것인데, ‘개인이 전부 다 맡아서 이제부터 농사해 먹어라’, ‘농사짓도록 해라’고 하여 잘 한 사람 많이 먹게 하고 돈 벌수 있게 했습니다. 또 장사도 옛날에는 월급 줘 가지고 팔았는데 이제는 각자가 장사하게 하고 돈 많이 벌면 자기 것이 되게 하고, 집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중국에 자유경제가 들어가서 상당히 많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의 이 복음의 빛이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역사가 따라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성경말씀대로 하는 법칙, 성경말씀대로 하는 통치, 이런 정치가 들어가야 다 잘 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이렇게 성경이 다 잘 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대로 했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들이 다 잘되었고, 우리 한국까지 그 혜택이 왔고, 기독교를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 만큼 받은 것입니다. 전에는 얼마나 한심했습니까?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형편없는 나라였고, 제일 약속국가였고, 제일 못 사는 나라였는데, 한국에 복음이 들어와서 기독교가 퍼지는 바람에 기독교에 딸려오는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들어올 때 하나님의 축복도 따라옵니다. 그래서 이 만큼 된 것입니다. 

패하고 흥함을 위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교가 들어가면 흥해집니다. 반대하는 국가는 패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비방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를 보면, 비방 받는 표적이라고 했는데 기독교가 들어갈 때에 사람들이 비방을 합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는 흥해집니다. 잘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언

본문 35절에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는 것은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찌른다는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마리아의 마음이 칼로 찌르듯 하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다 드러낸다고 하십니다.

4. 성전에서 늘 기도하던 안나

본문 36-37절에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했습니다. 안나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선지자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 직분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초대교회는 선지자의 직분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늙었다고 했습니다. 출가한 후 몇 해 동안 남편과 살았습니까?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됐는데,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고, 일곱 해 동안 남편과 같이 살았으니까, 백 다섯살은 됐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늘 성전에서 기도한 모양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늘 있었습니다. 또 주야로 금식하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6․25사변 직후에는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배당에 와서 밤에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성전에서 늘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명륜교회에 윤할머니가 있었는데 성전인 교회에 와서 늘 기도했고, 또 명륜교회에 김성애 집사라고 있었는데 매일 저녁 예배당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추우면 뒤집어쓰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가 있고 나이는 칠십이 넘었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미국에 가서 전화통화를 했는데 아직도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김진수 목사의 사모가 완동교회 교인으로 처녀일 때 매일 성전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곤 김진수 목사와 결혼시켰는데, 시집 간 다음에는 기도 안합니다. 그래서 처녀들 신앙은 믿을 수 없는 것 같습니
다. 그와 같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과거에는 많이 있었습니다. 요새 보면 기도원에 가서 늘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 많이 하십시오. 기도 많이 하면 증거가 있는데, 기도를 많이 했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오래 전 아현교회에 김현봉 목사님 계실 때에 제가 한번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경기노회 교회들을 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경기노회는 서울에 한 몇 몇 개의 교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몇 교회 가보다가 아현교회에 처음으로 가 보게 되었습니다. 가보니까 옛날 한옥 집을 헐어가지고, 건물은 납작한데 기둥이 한 몇 십 개였습니다. 문을 열어보니까 낮인데 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더기를 구석에 쌓아놓았었는데 헌 방석을 구석에 쌓아놓고 있었고, 거기에 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목사님은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까 삼각산에 가셨다는 겁니다. ‘삼각산은 또 뭘 하러 갔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산에 기도하러 간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가시냐고 물으니까 매일 가신답니다. ‘별 교회가 참 다 있다’ 고 생각하고선, 목사님 한번 만나보아야겠는데 언제 만나볼 수 있겠냐고 하니까, 목사님이 삼각산 안 가시는 시간에 와서 만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현교회에도 매일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김목사님을 못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에 또 가니까 그 땐 김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보니까 조그마한 영감이 머리를 빡빡 깍고선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몇 마디 말을 하다가, “이 교회 세운지가 몇 년 됐습니까?” 물으니까, 이십 일년 됐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삼년 있다가 떠나야 된다고 배웠었는데, 그것이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십 일년 있었습니까? 저는 삼년 있다가는 떠나야 된다고 배웠다”고 물었습니다. 이십 일년을 쫓겨나지 않고 있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한마디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가르쳐 주시려냐고 하니까, 사경회를 할 테니까 사경회에 오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 집회에 참석해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사람만 데려가도 사경회 해줍니까?”하니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창생 황가정 목사가 신당동 교회에 있었는데, 성산교회 김순 목사랑 그리고 한 사람 더 삼각산 제일 기도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는 삼각산 기도원이었는데, 지금 올림피아 호텔자리입니다. 호텔 뒤에 그때는 제일 기도원은 없었고 돌집이 자그마한 것 있었습니다. 겨울에 갔는데 추웠습니다. 추우니까 많이 나는 아카시아 나무를 찍어다가 불을 때었는데, 불을 때면 방안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그 때 김재홍 목사가 주인으로 있었는데, 제대로 건사를 안 해서 불을 때면 연기가 다 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거기 있으면서 공부하기를 한 주간인가 있으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때에 제가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좀 싸우기도 하고, 안 맞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 하고는 안 맞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주장하고 김목사는 자기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며 싸웠는데, 하루는 그렇게 싸우다가 목사님이 보따리 싸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가려면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순 목사도 가려고 하고, 저도 보따리 싸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안되겠습니다. 강사를 모셔놓고는 싸워놓고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마저 다 끝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간에 가는 것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 하셔서 한 주간을 다 마치는 동안 의견충돌이 거의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한 주간 있는 동안에 처음에는 안 맞아도 계속 배우다 보면 해결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깨닫지 못했으니까 생각이 안 맞을 것 아닙니까? 깨달아지면 다 맞게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우리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 하는 것, 또 집에서도 항상 기도하는 생활 이런 것, 성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것에 속합니다. 금식하면서 기도했다는 것은 금식을 내내 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금식은 한 끼씩 안 먹은 것입니다. 점심을 안 먹던지, 한 끼씩 안 먹는 금식을 내내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많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늘 깨어 있었습니다. 

5. 안나가 아기 예수님을 영접함

본문 38절에,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침 이때에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기를 데리고 가니까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왔다”라고 가서 말해주었습니다. 안나가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 다. 다른 사람은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 속에서 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고,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렸고,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감동을 받았고,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본다고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로 성전에 들어가실 때에,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이신 줄을 깨닫고는 하나님께 찬송을 했습니다. 

안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과부생활을 하면서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전문’입니다. 그리고 성전 중심생활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안나도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우리도 내일 모레가 성탄절인데,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육신 중심생활을 하고, 세상에 빠지고, 마음에 허망한 생각을 가지고 나가고, 죄 짓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예수님 영접을 못합니다. 이렇게 준비 하는 것,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준비 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영접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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