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누가복음 2:41-52 예수님이 열두 살 때에 된 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이 열두 살 때에 된 일
누가복음 2:41-52

41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 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 예수님이 열두 살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감

본문 41-44절에ࡒ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유대에 명절이 세 번 있습니다. 그 세 개의 명절을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첫째 명절은 유월절인데, 유월절은 성력으로 정월 14일부터입니다. 둘째 절기는 맥추절,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셋째 절기는 수장절 혹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너희 남자들은 매년 세 번씩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되 빈손으로 내게 오지 말라(신 16:16)’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1년에 세 번 있는 명절 가운데 유월절은 아주 큰 명절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에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셨을 때였는데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좇아 올라갔습니다.

2.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

분문 42-44절을 보면, 그들이 유월절 절기의 전례를 좇아올라 갔다가 그 날들을 다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는데,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에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아보았지만 만나지 못하여서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잃어버렸으니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보통 아이 하나를 잃어버리면 얼마나 큰일입니까? 게다가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실 것임을 미리부터 하나님께서 다 알게 해주셨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할 때도 알게 해주셨고, 해산한 때에도 다 알게 해주셨고, 또 천군 천사가 여러 번 나타나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또, 애굽으로 피난 갈 때에도 알게 해 주셨고, 동방박사가 와서 예배드릴 때에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다 알게 해 주셨는데, 그런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3. 예수님을 잃어버린 원인

은밀한 골방을 잃어버림

그럼 잃어버린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잃어버렸습니까? 예수를 잃어버린 원인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명절 지키느라고 북적북적하고, 여러 사람이 떠들어대고, 여러 사람이 가고, 친척들이 가고, 아는 자들이 가고, 모르는 자들도 가고, 그렇게 명절 지키는 분위기에 들떠서 내려간 것 같습니다. 복잡하고 뒤숭숭하고 그런 들뜬 분위기일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마귀가 장 날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시골에 가면 장날이 있습니다. 5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게 있는데 장날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아주 복잡합니다. 그런 날에 마귀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날에 뒤숭숭하고 복잡하고, 들뜬 분위기에서 은밀한 골방을 잃어버릴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때가 그런 때입니다. 뒤숭숭하고,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고, 친척이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이 오고, 왔다 갔다 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기쁘다고 하면서 돌아갈 때에 그만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다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생명이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신데, 온 세계를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큽니다. 예수님 잃어버린 것은 세계를 잃어버린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음

왜 잃어 버렸습니까? 둘째 이유는 예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내려올 때에는 예수님을 찾아서 내려와야 되겠는데, 찾지 않고는 그저 동행중에 있는 줄 알고, 그냥 내려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거기서 미리 찾았다면 떠나기 전에 찾아서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언제 잃어버리는가 하면, 예수님을 찾지 않을 때 잃어버립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야 됩니다. 늘 예수님을 찾고, 사모하고, 앙망하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찾아서 예수님으로 더불어 살려고 해야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찾는 생활이 잠시라도 끊어지면, 그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자나 깨나, 낮이나 밤이나, 무슨 일을 하나, 어디를 가나, 늘 예수님을 찾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예수님을 그만 잃어버립니다. 

언제 잃어버린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찾지 않을 때, 예수님을 찾지 않는 날에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는 시간, 그 시간에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을 하지 않은 까닭에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 중심 생활을 하지 않아 잃음

셋째 이유는 예수님 중심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을 헛 지키고 왔습니다. 유월절 지키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해서 지켰는데 껍데기만 지킨 셈입니다. 유월절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유월절의 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유월절에 양 잡아서 제사 드리고, 유월절을 그저 명절로만 지키고 그냥 내려온 것입니다. 그 핵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실체는 예수님이신데 실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은 그림자 제사이고, 실체는 예수님이십니다. 핵심, 알맹이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켰어도 의식적으로만 지켰고 알맹이는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또 예수 믿는 것을 의식적으로만 믿기가 쉽습니다. 가서 그저 참예하면 되는가 보다, 예배시간에 예배당 와서 참예하면 그저 예수 다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찬송가 한번 부르고 예수 다 믿은 줄 알고, 예배시간 참여하면 예수 다 믿은 줄 압니다. 그러나 예배에는 알맹이가 있는데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모든 것보다 귀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잠시라도 떠나면 안 될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영접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살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잠시라도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는 그런 생활을 했다면, 그리스도를 안 잃어 버렸을 것인데, 그만 그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12살 난 그들의 아들이지만 그 분이 그리스도였습니다. 벌써부터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다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 부모에게다 알게 해 주셨고, 자기들도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또한 동방박사가 와서 다 알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실체가 되시고 알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생명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로만 유월절 지키고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성도, 신자가 많습니다. 알맹이는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그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예배시간에 거저 참여하면 되는 줄로 압니다. 또한 예배시간에 늦어지면서도 ‘아, 아직도 설교 시작 안 했군, 됐다’고 하면서, 예배시간을 성경말씀을 강론하는 것, 그 전에만 오면 늦지 않은 줄 압니다. 그리고 끝날 때에는 3절 찬송가 부를 때 먼저 달아나는 것입니다. 교회만 왔다 가면 그것으로 예수 다 믿은 것인 줄로 압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친척과 아는 사람들 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뭐 우리가 아는 자중에 있겠지. 친척 중에 있겠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빨리 고향에 돌아가느라고 잃어버렸습니다. 39절에 마리아와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다고 그랬습니다. 나사렛은 북쪽이고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야 되겠기 때문에, 고향 가느라 급급해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바쁘게 고향 가는 데에만 정신이 다 팔리고 마음이 거기에 다 가 있는 바람에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 버렸습니다. 고향 가는 것은 좋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갔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제일 좋고 중요한 것이 예수님입니다. 돈보다, 직장보다, 고향보다, 아는 자보다, 친척보다, 동행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하는 것보다, 알맹이,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냥 고향에 가면 뭘 합니까?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고향가면 뭘 합니까? 예수님 잃어버리고 다른 것 다 잘한들 뭘 합니까? 예수 한번 잃어버리면 모두 헛된 것입니다. 예수 한번 잃어버리면 고향가도 헛된 것이고, 성공해도 헛된 성공이고, 돈 벌어도 헛된 거고, 직장이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그것다 헛된 것입니다. 예수 한번 잃어버리면 전부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한번 소유하면 그것은 전부 성공입니다. 예수 한번 소유하면, 예수님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면, 그것은 고향 못가도 성공이고, 돈 못 벌어도 성공이고, 먹을 것이 없어도 성공이고, 또 친척이 없어도 성공이고, 다 성공입니다. 

그러면 뭘 먹고 사느냐고 하는데, “먹고 살 것은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그랬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것은 다 이방사람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벌써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먼저 아시고 다 준비해 놨다”고 그랬습니다. 그럼 왜 먹을 게 없느냐고 불평하는데, 날아다니면 먹을 게 있습니다. 날아다니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을 다 찾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먹을 게 생깁니까? 날
아다니면 됩니다. 먹을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날아만 다니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고 하십니다. 날지 않고 목침 베고 낮잠 자면 굶어 죽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순종이기 때문에 죄 값으로 죽는 것입니다. 날아만 다니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다 해놓으셨습니다. 날아만 다니면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4. 예수님을 찾는 방법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찾음

예수님을 잃어버린 생활이 되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모가 자기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아들 찾느라고 돌아다니는 것은 또 얼마나 마음에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룻길을 내려가서 찾는데, 하루 종일 찾아도 못 찾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자리로 올라가야 됩니다.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그 자리로 올라가야 됩니다. 근원지로 올라가서 거기서 찾으려고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찾으려면 돌아서야 됩니다. 회개하고 돌아서야지 찾을 수 있습니다. 올라가야 됩니다. 

어떻게 하다가 잃어버렸습니까? 내려가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찾습니까? 올라가야 찾습니다.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찾으려고 올라가야 됩니다. 이제부터 올라가야 합니다.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야 하는데,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아브라함이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지경에 싸였습니다. 자기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올라가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날마다 올라가야 됩니다. 모든 것을 다 뒤에 세워놓고 올라가는 생활,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온 산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성전(아버지 집)에 가야 찾음

올라가서 찾으니까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본문 46-47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본문 48절에,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라며 근심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잃어 버렸으니 얼마나 근심했겠습니까?
게다가 그리스도를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근심이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근심하면서 너를 찾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본문 4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라며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부모가 근심하며 사흘 동안 찾아다녔습니다.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놀란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니까,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가야 찾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성전입니다. 또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마태복음 21:13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고 했는데, 아버지의 집은 성전이고,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는데, 기도하는 집에 가야 예수님을 찾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는 방법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과 성전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의 집에 앉아서 말씀을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고 대답도 하시고’라고 한 것을 보면, 아버지의 집은 성경을 강론하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새김질하고 성경말씀을 상고하고 강론하는 집이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집에 나아가서 예수님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 집은 예루살렘입니다. 신령한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야 됩니다.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가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찾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며 내 아버지의 집이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고, 내 아버지 집에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계십니다. 또한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근심 있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버지 집으로 가면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들어가서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콱 죽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어디로 가면 된다고 하십니까? 아버지의 집에 가라는 말입니다. 가서 모든 염려를 다 아버지께 맡기십시오. ‘모든 염려는 다 주께 맡겨 버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짐을 아버지께서 대신 져주십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고 너는 순종만 해라. 그러면 그 짐을 아버지께서 다 맡아 주신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가는 것이 낫습니까? 아버지께 갖다 믿기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버지께 가져다 믿기는 것이 낫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근심이 없습니다. 찬송가 중에서 ‘나 주를 멀리 떠났다 내 주를 찾아 이제 온다, 그 귀한 세월 보내고 내 집을 찾아온다’라는 내용의 찬송이 있는데, 아버지의 집을 찾아와야 됩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근심 걱정이 가득해집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그 부모’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라며 놀랐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놀랄 일이 많이 생기고, 근심 걱정이 많이 생기고, 또한 애타는 마음도 생기곤 하는데, 아버지의 집을 찾아서 예수님을 만나니까 근심 걱정이 다 없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찾는 생활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버지 집은 성전생활, 제단생활, 경배생활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아버지의 집은 성전이라고 했는데, 성전생활을 해야 됩니다. 성전생활을 하며 성전에 들어가야 만나는 것입니다. 어느 성전이냐 하면, 영적 성전입니다. 영적 성전을 찾아서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항상 평안하고 항상 즐겁습니다.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그곳은 낙원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낙원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예수님을 찾으니까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뭐 때문에 걱정이다, 뭐 때문에 걱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밥을 떠서 국에다 넣을까, 국을 떠서 밥에다 넣을까?”와 같은 이런 걱정들이 태산 같았는데, 아버지의 집을 찾아서 예수님을 만나니까 다 해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 사경회에 참여 할 때에 걱정을 가득하게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 올 때에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저 목사님을 만나서 물어봐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경회 중간쯤 되니까 다 해결 됐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를 찾은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을 받았고,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집’을 찾으면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하며 아버지 집을 찾아 돌아오십시오. 

탕자가 아버지 집을 찾아오니까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를 떠나 살 때에 재산을 다 없애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했으나 그것도 없으니까, 이제는 다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에, 아버지는 멀리서 보시곤 자기 아들인줄 알고 즐거워하며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고,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다” 하면서 그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잔치를 하지 않았습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고, 제일 좋은 옷으로 내다 입히고, 신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아버지가 기뻐서 영접해주십니다. 

이제는 돌아갈 생각을 하십시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다하려 해도 일이 안 됩니다. 걱정이 안 없어지고 계속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집을 찾아서 돌아가십시오.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이니까 거기서 기도하십시오. 아버지 집을 찾아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은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집입니다. 강론하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찾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상고하고, 연보하고 하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성경을 상고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곳이 낙원입니다. 여기서 그렇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날마다 찾아서 낙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를 산 제물로 바쳐야 찾음

예수님을 생명으로 삼고, 예수님이 중심인 예수 중심생활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찾는 예수 중심생활을 해야 됩니다. 예수는 실체이십니다. 실체, 알맹이, 핵심인 예수님이 한번 빠져나가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 잃어버린 거니까 예수님 한분 다시 찾아서 예수님으로 살고, 성전생활을 늘 하고, 제단생활을 하고, 성전과 제단에서 경배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산 제물로 바쳐져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으니까 우리도 산 제물로 바쳐져야 됩니다. 로마서 12:1에 보면,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산 제물로 바치는 생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값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는 이 몸 바치는 생활, 제단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낙원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짐을 예수님께서 대신 다 져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끔 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향을 간다 해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 됩니다. 찾아 모시고 가지 않고,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갈 때는 그저 근심, 걱정, 염려, 놀라는 이런 것들이 가득했는데, 이제 예수님을 모시고 고향에 갈 때는 아주 기쁘고, 즐거움으로 갔습니다. 

5. 순종하며 자라나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자

본문 51절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께서 이제는 한가지로 내려가셨는데, 동행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내려가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고 했는데, 순종하여 받드는 것을 우리도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의 하신 것, 순종하며 부모를 받들어나가는 생활을 배워야 됩니다. 

본문 52절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랐습니다.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영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는 동시에 영도 자라나야 됩니다. 몸만 자라야 하는게 아닙니다. 누가복음 2:40에, “자라며 강하여 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했는데, 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이 자라나며 강하여 지고, 키가 자라가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나고, 영이 자라나고, 부모를 잘 순종하고 받들어 나가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아주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사랑스럽고, 사람이 볼 때도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귀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람이 볼 때에도 귀한 사람, 좋은사람, 모범이 될 만한 사람,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사람, 사람에게도 칭찬받는 사람, 예수님과 같은 이런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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