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의 구원과 삼십팔 년 된 병자
요한복음 4:1-5:9
요한복음 4:1-5:9
1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
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나의 행한 모
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
가 한 대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43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나의 행한 모
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
가 한 대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43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5 장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을 받음
생수를 사모함
본문 1-2절에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7절에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제 육시는 우리 시간으로 열두 시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시간은 시작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오후 여섯 시부터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제 육시에 여섯 시간을 더하면 낮 열두 시입니다. 즉, 정오에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우물가로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물을 조금 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8-9절에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 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 사람은 상종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대 사람인 당신이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왜 물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라고 이 여자가 예수님께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수님께서 유대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쓰시는 말[語], 입으신 의복 등을보고 파악했을 것입니다.
본문 10-1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이 판 이 우물의 속이 깊고, 또 물을 길어 담을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12-14절에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물’이라는 것은 사마리아 우물의 물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우물의 물은 물질이 주는 해갈(解渴), 즉 일시적으로 목마르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이것이 좋은 물입니다. 세상의 물인 사마리아 우물의 물은 먹을 때에는 시원하지만 다시 목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
세상이 주는 해갈은 일시적 해갈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생수가 솟아나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물에서 떠 올리는 생수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의 역사는 한 번 마시면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계속 나옵니다. 그래서 항상 시원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물인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는 것은 세상 것으로 해갈하려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목마른 것을 해갈하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무엇을 하여야 갈급증이 없어질까, 하며 동분서주합니다.
돈에 목이 말라 돌아가는 사람, 학문에 목이 말라 돌아가는 사람, 쾌락에 목이 말라 돌아가는 사람, 명예나 영광심에 목이 말라 돌아가는 사람 등 세상에는 세상의 물에 목마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나 물질 등 세상의 것으로 욕구를 채우면 일시적으로는 목마른 것이 해결되지만 곧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이것은 목마를 때에 소금 물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목마를 때 소금 물을 마시면 잠시 목마름이 해결되는 듯하지만, 조금 있으면 목이 더 마르게 됩니다. 또,
소금 물 한 그릇을 마시면 당장에는 시원하지만 조금 있으면 목이 더 마르게 됩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목마른 것을 해갈하려는 사람들은 목이 더 마르고, 더 모자랍니다.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요구하여 계속 목이 말라 돌아가다가 마지막에는 목이 말라서 죽습니다.
그런데, 한 번 먹으면 목이 안 마르는 물이 있으니,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새 생명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한 번 받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언제나 평안하고 기쁘고 충만하고 만족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역사가 속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하늘나라 시온 산의 바람이 불어서 기쁨, 즐거움, 상쾌함, 만족함, 충만함,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입니다. 이에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이 말씀하시는 그 물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매일 우물에 물 길러 다니는 것이 이 여자에게 상당한 곤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자는 한 번 마시면 목마르지 않는 그 물을 원했습니다. 또, 그 물을 마시고 다시 이곳에 물을 길러 오지 않게 해달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본문 16-18절에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생수를 먹으려면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 여자가 “나는 남편이 없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고 하는 말이 옳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뒤에 여자는 기분이 상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신이 보기라도 했습니까?”라고 예수님께 험한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흉한 사람 하나 만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여자는 남편이 없다는 자신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에 어떻게 응했습니까?
본문 19절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여자는 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다 없어지고, 지금 있는 남편도 실제 자기 남편은 아닌데, 그 사람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이성 문제로 죄를 많이 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작부터 남편 문제가 나올 때면 머리가 수그러지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없다는 자신의 말을 옳게 여기시는 예수님께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여자입니다”라는 뜻으로,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회개
이 사마리아 여자를 그 여자가 예전에 살던 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생수를 주어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려고 그녀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이 중요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생수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좋은 생수, 나도 먹기를 원합니다”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이 여자는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 나는 이성 문제 때문에 죄를 많이 진 여자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생수를 주시옵소서”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생수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셨습니다. 가리고 변명하고 거짓으로 외식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가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서 “주여
남편 다섯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 남편이 아닌 자와 같이 삽니다, 제가 그런 여자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어 주시옵소서”라고 한 것은 회개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죄를 붙들고 거꾸러져서 주님께서 살려주지 아니하시면 살 수 없는 줄 아는 사람, 그러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어떠한 죄를 범했든지 자신이 마땅히 벌 받아 죽을 자인 줄 알고, 생수를 사모하여 자기 죄를 솔직하게 회개하는 사람, 예수님을 바라보고 거꾸러져서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찾으십니다.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나가며 ‘사정이 있어서 죄를 지었다’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참으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에 완전히 자기가 부인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자기는 하나님께 벌 받을 것 밖에 없는 자인 줄 알고, 죄를 자복할 때에 생수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과거의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베드로는 한 번 지은 죄로 말미암아 매일 새벽 닭이 울 때마다 하나님께 회개했다고 합니다. 다윗도 한 번 지은 죄, 즉 간음죄로 말미암아 침상이 뜨도록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경우, 매일 눈물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회개’,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회개하면 다 용서해주시지만, 그래도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그런 자를 권고하십니다.
용서받은 죄를 또 회개하고 용서받은 죄를 또 회개하면 그것이 큰 복이 됩니다. 곡식으로 말하면 회개하는 것이 비료가 되고, 약이 됩니다. 자기 영혼에 좋은 약이 됩니다. 곡식에 비료를 주어야 잘되는 것처럼 회개는 거름이 됩니다. 회개할 때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영의 양식을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회개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여 주시고 회개하는 자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참 예배에 대하여 물음
본문 20-22절에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예수님께서 선지자이신 줄 알고 예수님께 참 예배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다고 하고,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예배하여야 참 예배가 되겠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참 예배를 찾으려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이 여자가 참 예배를 찾기 위하여 애를 쓴 것입니다. 참 예배를 찾는 정신, 이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즉, 사마리아에서보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은 그러한 때가 다 지나갔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23-24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전에는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았으나 지금부터는 예배의 장소를 떠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옳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였는데, 참 예배는 신령과 진정, 이 둘이 합해져야 합니다. 여기서 ‘진정’은 진리와 같은 말입니다. 구약은 다 그림자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배는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림자에 대한 실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를 드리려면 진리에 맞는 예배, 또 영적 예배, 이 두 가지가 합해져야 합니다. 한 가지만 하면 안 됩니다. 진리만 가지고 예배하여도 참 예배가 아니고, 영적인 면만 가지고 예배하여도 참 예배가 아닙니다. 첫째는 성경 말씀에 맞아야 하고, 둘째는 영으로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 예배입니다.
이러한 참 예배의 성격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가장 좋은 품질의 농작물로 정성을 다하여 바친 것이었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피를 가지고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창세기 3:21-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한 다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3:15에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려 희생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 말씀을 통해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 줄 것이니 그것을 믿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 아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며 제사 드린 것이 아벨의 제사요, 예배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으로’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즉, 아벨은 단순히 양의 피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 구속해주실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왜 받지 않으셨습니까? 가인의 제사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믿는, 그 증거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가인은 피도 안 가지고 나왔습니다. 물론 양의 피만 가지고 나온다고 하나님께서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이사야 당시에 유대인들이 양의 피를 많이 가지고 나와서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양의 피, 그 단계에까지만 나
왔을 뿐, 조금 더 나아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의 피는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 구속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오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믿지 않았습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오면서, 양이 피 흘린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제사 드리는 것이 아벨의 제사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은 양의 피, 그 단계에까지만 오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주실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는 성경 말씀에 맞아야 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인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이 ‘신령’입니다. ‘진정’은 진리입니다. 진정(진리)과 신령이 합하여야만 산 제사이고 참 예배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맞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그러한 영적인 역사가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
진리가 바로 되어 있느냐 영적인 면이 있으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영적인 면 없이 냉냉하며 이론만 가르치고, 성경 말씀이 아닌 세상 이야기나 책 읽은 이야기 등을 하는 것은 산 예배가 못 됩니다. 교역자는 말씀을 단단한 식물로써 교인들에게 먹여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교인들 역시 예배 시간에 진리를 받아서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산 제사입니다.
오늘날 말세가 되어서 성경대로 바로 나아가는 교회가 많지 않고 육신에 속한 말, 육신의 즐거움, 쾌락주의, 향락주의가 교회에 다 들어왔습니다. 육신의 향락은 다 죽여야 합니다. 이것을 다 죽여야 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육신을 즐겁게 하려고 세상 이야기나 하는 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신령한 말씀에 대한 깊은 뜻을 바로 해석하여 성도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주어야 합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영의 역사가 있으므로 성도들의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생수의 역사는 영이 살아나는 역사입니다. 또,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해야 영적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전함
본문 27-29절에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물 기를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전도하였습니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자기(自己)’라는 것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자기는 마땅히 죽을 자이고 죄인 가운데 괴수이므로 자기라는 것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니 사람들에게 “와 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본문 30-34절에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 35-38절에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곡식을 심어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하는데 지금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9-42절에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을 보고, 더 많이 믿게 되었습니다. 친히 가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 친히 듣고, 메시아이신 줄을 확실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남의 말만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직접 가서 보고, 듣고, 경험을 하고,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
본문 43-54절에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헤롯 왕의 한 신하(臣下)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내려가다가 자기 집의 종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말을 들고 그들에게 언제부터 열기가 떨어졌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 신하는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 아들의 열기가 떨어져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이 신하와 그의 온 집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에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입니다. 첫 번째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입니다(요 2:1-11).
3. 삼십팔 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음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라
5:1-4에 “그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명절은 안식일이라고 한 것을 보아(본문 9절) 유월절이나 나팔절인 것 같
습니다. 이 날,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레위기 23:23-25에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라고 하였습니다. 7월 초하루에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것을 공포하라는 뜻입니다.
습니다. 이 날,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레위기 23:23-25에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라고 하였습니다. 7월 초하루에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것을 공포하라는 뜻입니다.
명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 양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었는데,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에 행각 다섯이 있었고 그 행각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그리고 삼십팔 년 된 병자가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에는 전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즉, 못의 물이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그 걸린 병이 무엇이든지 간에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수많은 병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못가에 모여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약국이나 병원에 가서 약을 쓰거나 치료를 받아도 병이 낫지 않으므로 최후의 소망을 품고 이 베데스다 못가로 모여든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과 같이 갑자기 물이 솟아 올라오다 그쳤다가 또 얼마동안 올
라오다 그쳤다가 하는 샘이 있습니다. 이러한 못을 간헐천(間歇泉)이라고 합니다.
본문 5-7절에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안 드렸어도 다 아십니다. 진즉에 아시고 이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즉, ‘네가 나아야 될 자인 줄 아느냐?, 낫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내게로 소망을 두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예수님으로 병 낫기를 원하는, 그러한 마음을 갖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병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병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베데스다 못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등이 모여 있는 것처럼 우리의 병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병에 대하여도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어보실 때에 우리는 자신이 나아야 될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병자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병이 낫기를 원하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병, 성질의 병 등 정상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 다 병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고집, 자포자기, 교만, 자기가 제일인 줄 아는 마음, 참지 못하는 것, 용납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는 것, 미워하는 것, 욕심 부리는 것, 이기주의 등이 병입니다. 또, 한 주는 교회에 나왔다가 한 주는 교회에 나오자 않는 것도 신앙의 절뚝발이 병입니다. 혈기가 말라 아무 힘이 없는 것, 즉 믿음의 힘이 없는 것도 병입니다. 소경과 같이 바로 보지 못하고 ‘흰 것을 검다, 검은 것을 희다’로 비뚤게 판단하는 것도 병입니다. 자기가 다 바로 보는 줄로 알지만,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흰 것을 검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에 색맹시험을 봅니다. 노랑색을 제대로 보는가? 흰색을 제대로 보는가?, 그리고 색 구별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색맹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볼 때에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결국에 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잘되게 하는 것인 줄 알기도 합니다. 분별을 바로 못합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병이 들었다, 병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경질, 교만, 외고집, 사랑하지 못하는 것, 참지 못하는 것, 용납하지 못하는 것, 이기주의, 마음이 좁은 것 등이 다 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낫고자 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온전케 되고자 합니다. 고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바라봅니다’라고 하며 병 낫기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이 삼십팔 년 된 병자를 누군가 못에 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제껏 그렇게 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태껏 못의 물이 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일어나라
본문 8-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의 상태를 다 아시고, 그에게 병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셨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가 걸었습니까?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하실 때에 그 사람이 일어나면 됩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서 “일어나”하실 때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병이 다 나았습니다. 걸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하실 때에 “예, 일어납니다” 하고 행동했습니다. 이에 꾸부러져서 안 펴지는 부분도 다 펴지고 다리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라고 하실 때에 “예, 일어납니다”하면 꾸부러졌던 것이 펴지고 가는 것이 굵어지고 없던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이 다 뚝뚝 떨어져 나가도록 역사하십니다.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예”하고 일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하실 때에 “예”하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면 이전의 모든 풍속, 습관의 병, 마음의 병, 정상적이지 못했던 모든 성격의 병이 나음을 얻습니다. 또, 육신의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무엇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자리가 문제입니다. 누워서 병신 노릇하던 자리, 그것을 그냥 두고 가면 다시 와서 누울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다시 와서 눕지 못하도록 아예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병신 노릇하던 자리가 무엇입니까? 예전에 병자 노릇하던 환경이나 분위기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다 정리해 치워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참 좋은 세상을 만났습니다.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삼십팔 년 된 병자만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나을 수 있습니다. 삼십팔 년 된 것 뿐 아니라 사십팔 년 된 것도 나을 수 있고 오십팔 년 된 것도 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에는 왜 찾아가셨습니까? 이 삼십팔 년 된 병자의 오랜 병을 고쳐주시려고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병자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일어서고 난 뒤에는 이전에 누웠던 자리를 다 집어치우고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병든 상태로부터 건져주시려 고 하실 때에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서라” 하실 때에 일어서면 됩니다. 다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병을 다 고치셔서 생명이 있는 새 사람이 되어 걸어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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